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히틀러의 마지막 유보트.. 그리고 일본의 핵실험

코코몽 |2013.03.01 18:16
조회 12,705 |추천 11

 

U-234 히틀러의 마지막 유보트(Hitler's Last U-Boat)

 

"적은 독일에서 쥐와 쥐새끼밖에 못찾을 것이다. 우리는 잡히지않는다."

U-234는 1945년 4월 15일에 노르웨이의 "크리스티안산"(Kristiansand)항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U-234는 XB타입의 잠수함으로, 지금까지 건조된 잠수함중 제일 큰 크기였다. 8대가 건조되었지만 6척은 격침되고 U-234와 U-219만 남아있다. 높은 건조비용과 느린 제작속도, 자원의 부족의 희생양이 됬다.

 

함장인 중위 "요한 하인리히 펠러"(Johann-Heinrich Fehler,John "Dynamite" Fehler")는 잠수함에 중요한 승객들을 태우고 있었다. "공군중장 케슬러(Lieutenant General Ulrich Kesssler), 산트라트 대령, 네이쉬링 대령, 그리고 제트로켓 전문가와 일본 해군의 장교 "히데오 토노나가"(Hideo Tomonaga)와 "겐죠 쇼지"(Genzo Shoji)가 타고있었다. 이 승객과 화물은 일본으로 보내져 연합군에 대항하기 위해 총통이 보낸것이다. 제국의 최후의 날은 다가왔다, 하지만 동맹국인 일본은 도와야 한다

 

"펠러"함장은 가능한한 적과의 교전을 삼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U-234는 2주일간 깊고 조용하게 전진했다. 영국해협을 지나가고 있을때 막 대서양에 들어설때 함장은 놀라운 무전을 들었다.

1945년 5월 10일의 되니츠 제독의 항복메세지가 담긴 초단파였다. "나의 u-boat맨들..너희는 사자처럼 싸웠다. 무기를 내려놓아라". 지시는 명확했다. 가까운 연합군 항구에 항복을 하라는 것이었다.

 

 

함장은 전의를 상실하고 미국에 항복하기로 한다.. 일본의 두 장교는 잡히지 않기위해 자살을 한다.

U-Boat는 1945년 5월 14일 포츠머스 항구(Portsmouth)에 나타나 "USS Sutton"호에 항복한다.

 

잠수함과 그 승무원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독일 장군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가족코트와 반짝이는 부츠를 신고 철십자훈장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U-234의 비밀 수화물이 들어있는 창고가 열리자 경악을 금할수 없었다.

 

여기에는 240톤의 문서와, 두대의 Me-262제트비행기가 나왔다. 무었보다 놀라운 것은 10개의 박스(여기에는 "일본군"마크가 찍혀있었다.)가 열렸을 때였다.

여기에는 560kg의 우라늄이 들어있었다. 이 물질은 도쿄에 있는 Osaka and the Riken Laboratory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의 제트기 개발과 핵폭탄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그후 2년뒤 미국 동부해안까지 견인된 U-234는 1947년 11월 20일 미국의 잠수함 USS-Greanfish (SS-351 Balao 급) 잠수함의 시험용으로

어뢰를 맞고 침몰 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은 핵무장 의 꿈은 이것으로 끝난건 아니었다.

1945년 8월 12일 흥남 앞 바다에선 작은 원폭 실험이 있었다.

이 날은 일본에서 포츠담 선언 수락 여부를 결정하는 어전회의가 열린 긴박한 날. 당시 일본 군부는 수락반대를 천황에게 요청해 놓은 상태였다.

2차 대전 당시 참전국들은 경쟁적으로 당시 최신무기인 원폭개발에 뛰어들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1941년에는 육군 주도로 동경대 이화학 연구소에서, 42년에는 해군주도로 교토제국대에서 원자 폭탄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일본의 원폭개발은 독일 나치와의 유대가 큰 힘이 되었다.
일본과의 동맹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던 나치는 원폭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우라늄을 지원해주었다. 그런 연유로. 독일잠수함 U-234호는 독일이 패망한 그 순간에도 우라늄 10박스를 싣고 일본으로 향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군의 B-29의 일본 폭격으로 이화학연구소가 파괴되자, 일본에서 행해지던 원폭실험의 주요무대는 한반도 이북 지역으로 옮겨지게 된다. 전력과 우라늄 공급이 용이한 북한 흥남으로 옮겨서 개발을 계속 한 것.

그리고, 조선의 흥남에서1945년 8월 12일 원폭 실험은 성공한다.

 흥남 핵실험이 성공한 바로 그 달, 소련군은 한반도 이북으로 진주해왔다. 일본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소련으로 잡혀갔고, 흥남의 원폭개발시설은 소련의 수중에 떨어졌다. 

 이후 3일뒤 일본은 항복한다. 일본의 원폭실험의 비밀은 왜 히로히토 천황이 히로시마에 원폭을 맞고도 곧바로 항복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푸는 단서를 마련해준다. 히로시마 피폭으로 인해 확연해진 패세(敗勢)를 미국 본토에 대한 카미카제식 자살원폭을 통해 뒤집을 수 있다는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 것이다.

흥남에서 비밀리에 행해지던 원폭개발. 여기에 관련된 인력과 시설은 이후 소련 핵 개발의 모태가 된다. 소련의 핵개발은 다시 북한의 핵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오늘날 북한 핵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사진 : 위 U-234, 잠수함 내부 공개전, 흥남앞바다 핵실험,          겐죠 쇼지> 

 

 

추천수11
반대수1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