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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 '무한(無限) 세상'과의 은밀했던 연애

스티브 맥퀸 |2013.03.01 21:34
조회 58 |추천 0

   흔히 책을 즐겨 읽거나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얘기할 때 공자와 관련된 ’위편삼절(韋編三絶)’이나 ’오거서(五車書)’, 그리고 ’한우충동(汗牛充棟)’이라는 말을 인용하곤 한다. 실상 나는 그런 경지에까지 이를 만큼 책벌레는 결코 못되지만, 책에 대해서만큼은 애착이 남달라 선물로 들어와서든 자비로 구입해서든 마음이 동하는 책들이 서가에 진열돼 있을 때면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 공자의 그런 책사랑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팍팍하고 고단한 삶에 찌든 지금은 비록 과거보다 책에 대한 애정이나 욕심이 다소 식었다고는 하지만, 나 역시 어린 시절과 군 복무 시절에 애틋하면서도 낭만적인 책 사랑, 혹은 독서 사랑의 경험이 있어 가끔씩 책을 펼칠 때마다 옛 시절의 향수에 빠져들곤 한다.
  

   나는 이른바 ’독서삼도(讀書三到)’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어쭙잖은 독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떤 갈래의 책이든 한 번 책을 잡으면 독서삼매(讀書三昧)에 쉽게 몰입하는 경향을 갖고 있기에 독서열만큼은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하는데, 끼니를 거르고 밤을 꼬박 새운 적도 많아 지금도 그때의 인연으로 내 손때 묻은 책들을 보노라면 괜스레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절로 번지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께서 내가 30권이 한 질로 된 위인전들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용돈 몇 백 원을 쥐어 주시던 기억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당시만 해도 시대 상황(1970년대 후반 ~ 80년대 초반)으로나 가정 형편상 책 1질을 구입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었는데, 여느 부모님이 다 그러시겠지만 남다른 교육열로 우리 남매를 홀로 키우셨던 어머니는 큰 부담을 무릅쓰시고 위인전과 세계문학전집, 그리고 세계대백과사전 등을 할부로 구입하셔선 특히 장남인 내게 용돈이라는 반대급부로 독서를 권하시곤 했다. 몇 백 원의 금액이 어린 내게 아무리 큰 돈이라고는 하지만 한창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내겐 어머니의 명 아닌 명이 공부보다 더 곤욕스런 임무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그때 꿋꿋하게 독파했던 책들에 소개된 위인들의 일화나 어록, 혹은 명작들의 깊은 울림들은 지금의 내 가치관과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어 그때 날 당근과 채찍으로 독서의 길로 인도하셨던 어머니의 존재가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어머니께서도 당시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자식을 위해 다수의 책들을 구입하신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셨는지 오죽하면 요즘도 종종 그때 표지가 떨어지고 종이가 누렇게 변색되도록 내가 보고 또 보았던 세계대백과사전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책은 좀 보기 흉하게 됐지만, 네가 그렇게 즐겨 읽어서 책값의 본전은 뺀 것 같다." 하고 말씀하실까.
  

   그렇게 처음 어찌 보면 책과 반강제적인 연애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경험 이후로 나는 그 반작용 때문인지 책과는 거리를 두어 왔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공부도 그 가치와 재미를 깨치면 스스로 알아서 한다고 했던가. 나는 중학교 시절, 각기 밤을 촌각처럼 지새우게 했던 두 권의 책을 접하고 책의 위대함과 그 무한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두 권은 바로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성(城)’과 앙드레 지드의 문제작 ’좁은 문’이었다.
  

   ’성’은 정말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집에 소장돼 있던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어느 순간 어떤 흡인력에 끌리듯 눈이 가 집어 든 책이다. 시지프스의 운명지워진 짐처럼 인간이 끝없이 도달하려 해도 도달할 수 없는 이상으로 설정된 성에 들어가기 위해 K라는 한 측량기사가 그 목표 의식을 실행하려 한다는 줄거리로서 그 과정의 장애와 목표의 근본적 부재를 통해 인간의 부조리를 나타낸 실존주의적 주제 의식, 그리고 카프카 자신의 그 신비한 눈처럼 현실과 그것이 만들어 낸 허상적 권력이 인간에게 가하는 모순과 불안을 날카롭게 통찰한 작가의 뛰어난 예견력에 나는 몸서리를 치며 책장을 넘겨야 했다. 한장한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미력한 인간으로서 고통을 맛봐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이 가져야 하는 삶의 자성적 자세를 깨쳐 나는 마치 제 자신이 실존의 목표에 도달이라도 한 듯 책장을 덮고선 한참이나 우울한 환희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카프카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고, 실존주의 문학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그리고 ’좁은 문’은 다소 감상적인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내가 마치 종교적 속박에 갇혀 사랑의 비극을 맞아야 했던 주인공 알리사라도 된 듯 그 감정이입의 상처로 인해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책인데, ’시대와 종교가 한 인간을 어떻게 구속하고 번민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강렬하게 깨쳐 나는 그만 눈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어찌 보면 한낱 통속적인 주제일 수 있음에도 그것이 어린 내게 공감적 비극의 그늘을 드리울 수 있었던 것은 역시나 대문호 앙드레 지드의 체험에서 우러난 정교한 필력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인간의 희생이 때론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허무한 것인지를 가르쳐주었던 작품. 그 후로 나는 프랑스 문학의 오묘한 매력에 빠져 한동안 프랑스 작가들이 가진 묵직한 존재감에 포획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두 소설은 사뭇 다른 듯하면서도 인간의 한계와 모순을 세밀한 통찰력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공통점도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작품이 내 인생의 좌표로서 지금껏 내 사상과 가치관의 큰 축을 이루며 영향을 주어 왔다는 점에서 두 작품과의 인연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긍정적 자산이 아닌가 싶다. 두 소설은 나를 나이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세상이 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리하여 책은 내게 아주 가깝다고 할 순 없어도 언제나 신비와 경이로움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지극히 미약했던 난 그 달콤하고도 씁쓸한 책들과의 연애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군에 가서야 비로소 책의 소중함과 책 읽기의 즐거움을 깨칠 수 있었다. 늘 곁에 있다가도 막상 그것이 없을 때 느끼는 존재의 소중함이라고나 할까. 군 시절, 특히 초년병 시절엔 책을 가까이 할 시간도 허락되지 않아서인지 갑자기 독서에 대한 절실한 욕망이 물밀 듯 몰아닥치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흘러 계급이 높아질수록 여유도 생겨 나는 틈틈이 책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사회에서 책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일간지를 볼 때마다 매주 별도의 지면으로 할애되거나 별도의 칸에 실리는 일종의 ’북 리뷰’를 먼저 살피곤 했는데, 그때그때 관심이 가거나 호기심을 이끄는 관련 리뷰를 소중히 오려 스크랩해 두었다가 마침 외출하는 전령을 만나게 되면 미리 책 제목과 저자, 그리고 출판사 명을 소중히 메모한 쪽지를 금쪽같은 돈과 함께 건네 구입을 간곡히 부탁하곤 했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전령이 언제나 돌아올까 손꼽아 기다리곤 했는데, 그때의 기다림이란 정말 길고도 힘들어 설렘과 조급함이 마음에 꽉 찬 나머지 하루가 더욱더 지루하게 느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그러다 드디어 원하던 책들이 손에 들어오면 나는 일종의 감격어린 행복감에 도취돼 그 날 하루, 아니 그 새로운 책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 동안만큼은 군 생활로 인한 고단함도 모른 채 오롯이 그 책 세상에 몰입할 수 있었기에 나는 그런 시간들이 내 소중한 청춘 시절에 주어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리고 어느덧 내 나이 불혹을 넘긴 지금, 링컨은 '나이 사십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역설했는데, 과연 나는 내 얼굴에 자신있게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 정신 세계에 많은 교양과 지식을 축적해 떳떳하게 교양인으로서의 행세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영상 매체의 범람과, 그에 따른 즉흥적 가치관의 파급으로 인해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와 ’출판계의 불황’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척박한 독서 풍토에 직면한 지금, 책 읽기는 갈수록 각박해지고 급변해가는 시대의 조류에 떠밀려 점점 켜켜이 먼지 쌓여 가는 우리네 서가처럼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데, 인간성 상실의 시대는 생각하기도 싫듯 그동안 우리 인류의 정신 문화 창달에 끊임없는 불쏘시개 역할을 해 온 책이 그저 시대의 유물로 전락해 한쪽에 자리하는 세상이란 우리 인류에겐 어쩌면 재앙 같은 불행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책이 우리 인류의 자랑스런 정신적 자산이자 긍정적 비전이라는 말은 이제 식상한 모토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응축된 기록으로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오고,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의 온 정서를 오롯이 담아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진리로서의 창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 책은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마르지 않는 샘으로 인류에게 끝없는 지식과 창의의 물꼬를 대 주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인류 문화의 정수이자 원천인 책. 나는 세상의 ’빛과 소금’에 견줄 책의 위대한 능력과 무한한 생명력을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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