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학교의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감정기복이 심했던 엄마의 폭력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는 사람을 잘 믿지 못했다.어쩌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올 때면
상처받은 맹수와도 같이 몸을 웅크리고 그가 나로부터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이러한 성격이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날 때 까지 고쳐지지 못한 탓일까,
내 주위엔 같이 옷을 사러 갈수 있는 친구 한명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첫날, 녀석과 나의 첫만남이 시작되었다.
"안녕?" 이미 학년전체에 왕따라고 소문이 자자하던 내게 녀석이 건넨 첫마디였다.
"응...." 늘 그랬듯 소심한 난 녀석의 눈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주변 아이들의 수근거림이 내 귓가를 때리기 시작했다.
'수현이는 왜 저런 여자애한테 말을 걸어?' '그러게. 쟤 왕따잖아.' '수현이가 쟤 모르나?
내가 가서 말걸지 말라고 말할까?' '야.. 그러지마 좀 불쌍하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늘상 덮쳤던 두려움이 다시 나를 잠식해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미안해..그냥 혼자 지낼게.그게 더마음편해.. 그러니까 말걸지 말아줘..' 그 녀석에게 전해지지도 않을 소리가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너 이름이 뭐야? 나는 홍수현." 하지만 이런 내 바람이 무색할 만큼, 녀석은 너무도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나..나는 황지원." 내 목소리의 떨림을 느꼈을까.아니면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단순히 왕따라는 소리에 동정심이 들어서 그랬을까.
수현인 지극히 평범한 내 모습에 흥미가 생겼는지 빈 의자에 털썩 앉아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래? 이름 이쁘다. 내 이름도 이쁘지? 너 연예인 좋아해?"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의 시선 때문에.
"왜 대답을 안해?안 좋아해?" "아...아니."대답조차 잘 하지 않는 내모습에
그 아이는 답답했는지 몇 번 더 다른 질문을 하다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녀석도 내가 답답할 거야. 그리고 나랑 놀면 저 아이도 왕따가 되버릴걸..
그래 차라리 혼자가 편해.. 계속해서 나는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사람은
의지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며 서로를 헐뜯기 바쁜 존재라고.그러니까 친구따윈 필요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