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군화입니다
이번달에 상병을 달았습니다. 입대한지 1년째.
그 유명한 일말상초.
저번달에 싸우고서는 지금까지 냉전입니다.
아니 여자친구가 차가워졌습니다.
발단은 그랬습니다.
이때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화했었고 편지도 꼬박꼬박 썼습니다.
휴가나 외박 나가면 집에서 3시간30분 걸리는 거리에도 항상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자신에게 뭔가 뿌듯함과 자부심이 생겼나 봅니다.
어느날 전화할 때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화안하는걸로 거의 다 싸운다는데 내가 매일매일 전화해줘서
우린 일말상초인데도 그런건 없네 ㅎㅎ"
그냥 "응 ㅎㅎ 맨날맨날 전화해서 고마워" 라는 대답이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응, 당연한거 아니야? 자기도 좋아서 전화하는거 아니야? 전화 해'주는'거였어? 그럴거면 하지마"
당시 저는 기대했던 것과 너무나도 다른 반응에 당황했습니다.
좋아서 하는 것이라도 그동안 뿌듯하게 여기면 하루도 안빼먹고 잠깐이라도 전화하려고 시간나면 전화기로 달려가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되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무슨 대답을 기대한건데?"라는 물음에 저는 "그래도 고마워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로 저희는 크게 다퉜습니다.
이때까지 사귀어 오면서 가장 크게 다퉜습니다.
이틀에 걸쳐서 이야기를 하고 서로 다투고, 그리고 화해했습니다.
화해하면서, 그리고 다시 이후에 생각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남들이 '와 너 어떻게 매일 전화하냐 대단하다'라고 말해도
'에이 좋아하니까 매일 하는거지 그게 뭐가 대단하냐'라고 답하는게 맞다는걸 말입니다.
이후에 다시 저희 사이는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그게 저만의 생각이었나봅니다.
여자친구는 이전부터 '우리는 좀 많이 달라'라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품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나던 때에는 서로가 정말 비슷하다며, 많이 닮았다는 얘기만 했었는데 어느새 여자친구의 머리와 가슴에는 닮음보다는 다름이 더 크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또 살짝 다투었고, 그 다툼을 계기로 여자친구는 시간을 갖자고 얘기했습니다.
저에게는 별 것도 아닌 문제였지만 이미 마음속에 '우리는 달라, 우리는 서로 안맞아'라는 생각이 가득차있는 여자친구에게 그 사건은 그저 방아쇠였던것 뿐이었습니다.
여자친구를 정말 사랑하기에, 시간을 갖자는 말은 너무나도 충격이었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힘들어하는 여자친구를 보면서 시간을 주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자대배치 이후 10개월만에 여자친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가지 않아서 다시 연락을 할 수 있었고 그때 여자친구는 이야기했습니다
"나 너무 힘들어...."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일단 여자친구가 떠나가지 않도록 잡으려는 마음만 있었습니다.
서로 울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여자친구도 전화하면서 목소리를 들으면 참 좋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너무 외롭고, 그래서 너무 힘들고, 너무 지친답니다.
여자친구는 우리의 미래가 더이상 밝은 미래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또 우리의 '다름' 때문에 싸우게 될 모습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좋은데, 더 이상 미래를 행복하게 그려내지 못하게 되어버려서 너무 힘들다고.
계속된 며칠간의 연락은 항상 그랬습니다.
이전과 같이 즐거운 대화는 사라지고 정적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둘 다 아무런 얘기 않고 있는 시간이 많았고, 머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나서 저희는 3월 9일에 있을 휴가때 만나서 다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미 결정이 나 있는 것 같은 여자친구에게 사정사정해서 일단 만나자고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우리가 잘 지내던 그때처럼 지내보자고 했습니다.
그 날 이후에 저는 최대한 이전처럼 소소한 얘기도 많이 하고 웃고, 그렇게 했습니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저는 사랑한다고 얘기했고, 여자친구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여자친구는 자기 머리에 있는 안좋은 생각을 지우도록 노력할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고,
저는 점점 더 신이 났습니다.
이전과 같이 지내'보자'고 했던 시간을 정말로 이전과 같아진 것 처럼 여겼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여자친구의 말에,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찼던 제 마음이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다시 사랑을 갈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휴가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어느 날.
저는 여느때처럼 전화를 했습니다. 그날도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이야깃거리가 훨씬 더 풍부해졌고 정말로 곧 다시 관계가 회복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전화를 끊을 때 즈음, 저는 그동안 혼자서 얘기하던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싶어서 간접적으로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그 말을 꺼내지 못했고, 저는 한숨으로 답했습니다.
'아직도 아니구나...'라는 마음이 퍼지고, 뒤숭숭해졌습니다.
그 다음날 여자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불안함은 적중했고 몇 번의 연락시도 이후에 여자친구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았습니다.
'더 이상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매일 전화를 하고 나서 '이게 뭐하는거지.. 이러면 안되는건데'라는 생각만 들어. 이전과 같은 시간을 지내면 자기가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내 마음의 벽이 깨어지길 기대했는데 양쪽다 아닌채로 흘러가는걸 보니 진짜 이젠 아닌가봐..'
정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통보 직후에 여자친구는 알바를 해야 했고, 저는 알바 끝날 시간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긴 4시간이었습니다.
억지로 자보려고 했지만 잘 수 없었고, 멍하니 누워서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했습니다.
여자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렸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긴 시간이 지나고 통화를 했습니다.
여자친구는 차가웠습니다.
"더 이상 의미 없는거 알잖아..."
차갑고 냉정한 여자친구의 태도에 낯설음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전화를 하면서 울었습니다.
대체 그게 뭔데 혼자서 그런 생각에 물을 주고 싹을 피워냈느냐고,
왜 말을 안해주고 그렇게 혼자 다 정리해버리느냐고,
울부짖었습니다. 정말로 통곡했습니다.
여자친구도 같이 울었습니다.
가봐야 할 시간 아니냐고 늦으면 안된다고 얼른 들어가라며 걱정하는 여자친구의 모습에 또 한번 더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걱정하는 사람이 왜 그러느냐고...
우는 저를 달래며 여자친구가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 했습니다. 다시 이야기 하자고.
펑펑 울고 난 저는 마음약해진 여자친구의 제안에 모습에 또 그나마 위안을 얻고 진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자친구는 자기가 나쁜 사람이라며, 저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더 좋은 여자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그렇게 부정하는 저에게 여자친구는 울면서 제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안되겠느냐고 얘기했습니다. 여자도 많이 안만나봤으면서 어떻게 아느냐고 말입니다.
저도 얘기했습니다. 나를 아직도 걱정하고, 고작 몇주 전만 하더라도 절 많이 사랑하고 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곁에 둔다고도 말했던, 전화할때마다 행복했던 우리 사이, 발렌타인 초콜렛을 받고 펑펑 울었던 자기가 왜 헤어짐을 생각하는지 정말 또 냉정하게 생각해보라고.
서로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또 여려진 여자친구와 통화를 지속해나갔습니다.
3일간 그렇게 좋았습니다.
하지만 4일째, 여자친구는 다시 차가워졌습니다.
전화하는 내내 '응'만 말하는 여자친구의 태도에 저도 지쳐갔습니다.
같이 지쳐가는 듯한 여자친구의 모습에 또다시 불안감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정말 뭐가 맞는지, 어떻게 되어가는지 아무것도 모른채 하루종일 여자친구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혼란스럽고, 두렵고, 다시 만날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다음날에는 그냥 쉬게 해주자는 마음에 안부만 묻고 잘자라고 하고 끊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입니다.
저는 휴가를 나왔고, 집에 있습니다.
내일 또 여자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야기해주겠다는 여자친구의 말.
이번 휴가는 기다리는 시간이 설렘이 아니라 고통이었습니다.
지금 정말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휴가인데, 바로 당장 내일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도 하나도 기쁘지 않고 설레지 않습니다.
두려움에 몸서리칩니다.
도망치고 싶기도 합니다. 이미 여자친구의 마음은 결정난 것인데 뭣하러 4시간이나 걸려서 만나러 갈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끝매듭을 짓더라도 정말 순수하고 많이 사랑했던 제 사랑의 끝을 그런식으로 흐지부지 매듭짓고 싶진 않습니다.
내일은 여자친구와 만나는 날입니다.
제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여자친구.
아직까지도 저를 걱정하는 여자친구.
매몰차게 하지 못하겠다는 여자친구.
하지만 이런 것들이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 과거의 사랑에 대한 예의인것만 같아서 더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