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그때 였다. 내 눈에 사진이 한장 들어왔다.

케태챠 |2013.03.13 10:09
조회 266 |추천 2

대학을 입학하게 되었을 때.

난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한 지방의 시립대에 등록했다.

내 의지도 아니고 단지 어머니께서 인터넷 검색중에 알아낸 지방의 한 대학.

어머니 손에 등록되어졌고 등록금이 납부되어졌다.

그리고 거기에 난 단 하나의 거부만을 행사했다. 기숙사에 가지않고 자취하겠다는 거였다.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

남들 다 하는 학창시절이 나에겐 지옥이었다.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 분간이 가지않는 왕따생활중에 나에게 친구가 되어준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있던 친구들 조차도 한명은 정신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썩 잘나가는 대학교에 선행입학했고 다른 한명은 자신의 전공을 찾아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그들의 삶에 더 끼어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충 마음에 드는 학과를 고집했고 일부러 지방으로 나앉았다.

고집부려 얻은 자취방은 5평 남짓한 단칸방이었다. 그리고 자취방 주인의 무관심도 더해져 꽤나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자취방을 고집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허름한 방과 무관심한 주인이 있는 그 방에서 난 마지막을 맞을 생각이었다. 혼자서 자의로 맞는 마지막에 사람이 많아선 안된다. 최대한 피해를 덜 주는 방향으로 맞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피해를 덜 주는 방법을 찾자니 그게 꽤나 어려웠다. 대충 방정리를 마치고 노트북을 들고앉아 하루종일 자살방법을 검색했다.

 

네이버 상단에 뜨는 도움의 전화와 상담기관들.

우스웠다. 내 전공이 심리학과인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상담전공시간에 배운 이론들. 나 스스로를 치료하고자 정한 이 과에서 그 이론들은 나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마치 봉제인형을 만드는 사람이 봉제인형에게 이름을 붙여주지않는 것과 같았다.

우선 자살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것들 또한 자살에 대한 이론만을 가르쳐줄 뿐이었다. 겨울에 자살자가 늘고 그래서 북유럽에 자살비율이 높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살사이트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몰랐다. 학교에 자살 관련 논문들을 찾아보았다. 논문을 쓴 사람들은 그런 조사대상자를 카페나 체팅에서 만난다고 했다. 카페를 찾았다. 누군가가 내게 접선해왔다. 이들에게 만나자고 하면 아마 난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거다.

그런데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자살에 대해서 검색을 하던 중에, 자살 유가족에 대해서 알게되었다. 자살한 사람에 의해 남겨진 유가족들. 그리고 친구들. 이걸 생각하자니 내가 영원한 실종자로 남겨져도, 자살했다고 남겨져도 사고사로 죽었다고 남겨져도. 타살되었다고 알려져도 내가 갚을 수 없는 빚을 남기고 가는 것 같았다.

미우니 고우니 이를 갈며 싸웠던 부모님에게도 못할 짓이었다.

만약 내가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이 자살로 죽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나 혼자만의 상처만 생각하다 이 생각이 드니 그건 정말 못할 짓이었다.

그 때 부터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조차도 죄를 짓는듯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뱃속에서 수정조차 되지 않았다면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았을 테다. 그런데 이미 태어났고 난 날 알고있는 사람들에게 상처줄 권리는 없었다. 내가 알고있는 사람이 자살로 죽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하고 되짚어 생각하니 이미 결론은 지어졌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결론은 그렇게 지어졌다고 해도 문득문득 드는 충동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그만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내가 한심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만 품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더 드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에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갓 태어난 고양이 사진이었다. 그 고양이를 분양받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글이었다.

하얀 얼굴에 까아만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다.

갑자기 그 아이와 살아야겠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리고 그 충동의 바탕에는 내 인생을 책임져줄 생명체가 필요하다는 발버둥이 있었다.

고양이의 생명은 최대 15년간 지속된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을 이 똥고양이를 데려와 키우면 무책임하게 죽겠다는 생각이 좀 덜하겠지. 적어도 15년간 무책임하게 버리고 떠날 생각은 하지 않겠지. 그닥 논리적이지 않지만 그 시점에는 절박했다. 날 묶어둘 뭔가라도 필요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전화를 걸고 꽤 많은 책임비(선수금같은 개념)를 보내고 난 뒤였다.

 

아이를 데리고 오는 시기는 5개월여 뒤. 너무 갓 태어난 아기라서 조금 자라고 난 뒤에 데려오는 조건이었다. 5개월여 간 고양이에 대한 모든걸 준비했고 관련 물품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했다. 여전히 정신은 피폐했고 이런걸 말할 사람도 없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 비슷하게는 생활했던 것 같다.

그 기간동안은 설레임이 가득했다.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기간을 지냈던 것 같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으면 모터(motor)소리같은 골-골- 소리를 낸다는 것과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뜬다는 점. 그리고 기분이 나쁘면 입을 살짝 벌리고 햐악-! 소리를 내며 눈을 똑바로 마주본다는 것 등. 세세한 것도 익혀뒀다. 그리고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새 자취방으로 이사도 했다.

 

그리고 고양이가 집에 오게 되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겪으니 조금 서운했다.

고양이는 집에 오자 마자 침대 밑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그 안에서 먹었고 그 안에서 울었다. 밤이 되었다. 고양이는 나를 보며 계속 냐아- 냐아- 울어댔고 잠시도 쉬지 않았다.

 

며칠 전 부터 이삿짐도 옮기고 먼 지방에서 고양이도 직접 데려오고, 그리고 그걸 도와주던 부모님의 부부싸움도 말리느라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있었다. 내가 그리던 낭만적인 만남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고양이는 열 몇시간을 운다. 새벽인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고양이는 밥도 먹지 않았다. 며칠 째 볼일도 보지 않는다. 물만 조금 마시고 계속 운다. 밤에도 운다.

도대체가 얘는 잠도 자지 않는다. 사람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이 우는 소리에 옆집 사람이 쫓아오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좀 더 살자는 마음으로 아이를 데려왔는데 계속 이러다가는 정말 확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 이미 조금은 미쳐있는 것 같았지만.

여튼. 회유도 해 보고 다독거려보려고 애도 썼지만 아이는 계속 울었다. 돈이 없어서 밖에 나가서 잘 수도 없었고 아이가 걱정되어서라도 나갈 수가 없었다. 계속 운다. 정말 계-속 운다. 당근도 안통하고 채찍도 안통하는데 잠은 자야겠다.

 

새벽까지 그렇게 씨름하는데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참다 참다 해 뜨는걸 보니까 더 화가 났다. 폭발해서 아이 목덜미를 한손으로 잡고 크게 윽박질렀다. '야!!!!!! 너 조용히 안해!!!!!!!!'

새벽이든 뭐든 신경 안쓰고 소리를 냅다 질렀던 것 같다. 할퀴라면 할퀴고 물라면 물라는 생각이었다. 때리지는 못하겠고 화는 내야겠으니까.

 

그런데. 바로 뒤에 아이의 반응이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골- 골- 소리를 내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고 있었다. 어라라? 이게 아닌데. 이건 내가 생각한게 아닌데. 햐악-! 소리를 잘 못 들은건가? 그런데 그 뒤에 아이는 온 몸의 힘을 쭉 빼고 크레 골- 골-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 뭔가 이상하다. 이건 아니다. 그래서 아이를 잡은 채로 한동안 있었다. 아이는 몇초 뒤에도 계속 그러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아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이상하다. 한손으로 가죽을 잡고 그 높이까지 들어올렸으면 가죽이 당겨서 무척 아팠을거다. 그리고 놀랐을거다. 근데 저런 반응은 이상했다.

 

잠시 뒤, 아이는 배를 내어놓고 애교까지 부리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제서야 아이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갔다.

 

아이가 내 집에 오고 나서 난 아이를 안아준 적이 었다. 아이에게 손을 대지도 않았다. 먹을걸 주고 볼일 볼 곳을 줬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밥먹어라, 여기다 볼일 봐라. 조용히 해라.

그런데 정작 난 아이에게 단 한번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아이가 무서워할 것 같았기 때문에.

우습게도, 난 아프라고 한 손짓에 아이는 좋다고 골골대고 있었다.

 

신기했다. 아이가 배를 내밀고 애교부리는게 우스웠다. 저 아프라고 한 짓에 좋다고 저러고 있다. 혹시 아이가 아픈걸 좋아하는 변태가 아닌가 싶어서 쓰다듬어 줬다. 좋댄다. 기분좋다고 더 얼굴을 부비댄다.

 

그걸 마지막으로 난 펑펑 울었다.

정말 펑펑 울었다. 아이가 냐- 냐- 울었던 것 보다도 더 크게 소리내어 엉- 엉- 울었다.

너무 고마웠다. 내 손길을 무서워하지 않고 좋아해 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내가 이 아이에게 진정으로 가치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이는 하루종일 내가 쓰다듬어주길 기다리면서 그렇게 울었는데 난 시끄럽다고 윽박질렀던 것이다. 너무 미안했다. 몰라줘서 미안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를 아이에게 고스란히 되풀이 하고 있었을 때, 아이는 내가 바뀌길 기다려 준 것 같았다. 단 한번도 내게 화내지 않은 채.

 

그 뒤로, 난 이 아이의 일생을 책임지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난 이 아이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한다. 난 그 일로 큰 치유를 받았다. 저 경험이 정신나간 나의 착각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저게 착각이었든 사실이었든 나에게 그 보다 더 큰 치유를 준 것은 없었고 그 일로 내가 조금이나마 변화를 했기 때문에. 난 그 고양이에게 보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고양이를 버리고 떠날 일은 더 없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살충동이 그 뒤로 한번도 들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이미 결론을 지어져 있는 상태다. 적어도 자의로 이 고양이를 떠날 일은 없을것이다. 그리고 내 가족과 친구들도.

내 마음이 모가 나 있던 탓이었는지 그 뒤로 좀 더 유(裕 넉넉할 유)해졌다. 좀더 잘 웃고 부드럽게 말을 하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변했다고 좋아한다. 뭔 일 있었냐고 물으면 그냥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니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생각하는 내가 변하게 된 계기는 이 조그만 고양이 녀석이 내 손길을 좋아해줬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난 이 여우같고 멍청한 요 쪼그만 녀석과 잘 살고 있다. 몇년이 지나 구직준비를 하는 지금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못한거 같고 단점만 수두룩한 것 같이 느껴지지만, 그 때와 다른 점은 내 단점을 장점으로 봐주고 날 응원해주는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점이다.

 

여기까지가 다른 사람들에겐 잘 말하지 않는, 내가 변하게 된. 그리고 우리 집 똥고양이와의 첫 만남 이야기이다. 두서없고 퇴고도 하지 않은 이 글을 지금까지 읽어줘서 감사합니다 :-) 지금은 퇴고보다는 브런치가 더 좋네요 ㅋㅋ

 

 

*저 위에 심리학이 도움이 안된다는 듯이 글을 써 뒀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 때 당시의 거부감이 심했던 심리상태를 서술하기 위해 첨가한 부분일 뿐입니다.

 

이건 즤집 똥고냥이 사진.

지금도 제 타자치는 제 손 핥으며 놀아달라 하네요 ㅋㅋ

추천수2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