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열아홉의 추웠던 1월, 처음 너를 봤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 무색하도록 나는 네가 초면이었다.
‘우리 학교에 저런 애가 있었나.’라는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았고,
하얗고 단정했던 너의 첫인상에 빠져 늘 내 시선의 끝에는 네가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 봄이 왔고 5월의 체육대회 날이었다.
우연치 않게 앉게 된 자리 옆에는 네가 있었다. 경기를 보는 건지, 너를 보는 건지.
그 해 체육대회는 널 바라본 것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며칠 뒤,
계단에서 너를 마주치게 되었을 때에는 네가 내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 곁에 있던 너의 친구들은 내 쪽으로 고갯짓을 했고 나는 급히 너를 지나쳤다.
혹시 내가 쳐다본 것을 들켰나 싶어서 조마조마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에게 너의 시선이 닿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널 바라보며 너도 나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내 바램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점심 식사 후, 도서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너도 매일같이
내려와 책장을 사이에 두고 너와 시간을 보냈다.
나 때문에 도서실에 오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는 책을 꺼내는 내 곁에 서서 더 높은 칸에 있는 책을 꺼내기도 하고,
책장 사이로 가만가만 쳐다보기도,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널 처음 본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친구와 같이 있다가 건너편에 걸어가는 너에 대해 물었다.
다행히 내 친구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너를 알고 있었고
나는 너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너는 1반이고 태권도 특기생이었다.
내 친구의 아는 언니를 짝사랑하던 너는 꽤나 순정파였는데
5월쯤부터 그 언니에게 연락이 없다고 들었다.
네가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던 것이 5월, 나 때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후에도 너와 나는 복도에서 마주치면 수줍게 미소 지었고,
점심 시간에 도서실에서 무언의 눈맞춤을 나눴고 수능 때까지 계속 되었다.
수능이 끝나고, 하교가 빨라지면서 너와 볼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졸업을 해버렸고
너도 그렇게 잊혀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지금도 네가 떠오르는 걸 보면
네가 내 첫사랑이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너와 한마디 말도 건네보지 못했는지 후회도 되지만,
그 때의 나는 너를 아마 연애감정보다는 정말 순수했던 마음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의 너처럼 네 기억 속에도 내가 예쁘고 사랑스러운지는 모르겠다.
무미건조했던 내 고등학교 시절에 네가 있어 그 해 1년만큼은 순정만화 같았다.
십대의 마지막, 나의 열아홉에 네가 나타나줘서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