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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너의 꿈을 꿔, 난...

그놈 |2013.03.15 03:22
조회 167 |추천 0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을 알지만 마치 나만 가지고 있는 경험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나만의 소중한 경험이었으면 한다.

 

언제일까? 생에 처음으로 여자라는 존재를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사랑함과 소중히 아껴야 함의 대상인 것을 깨닫게 해준 그녀를 만난 것이. 난 13년 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12년 전일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오래된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잊혀져 가지만, 이제 널 생각해도 설레이고 가슴 아픈 것쯤은 다 사라졌지만, 넌 아직도 내 꿈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 꿈 속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설정된 드라마처럼 난 너에게 매달리고 행복해하고 있다.

 

남녀 공학이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 양껏 부풀어 있었다. 남중을 다니던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중학교를 다니던 지역에서 꽤나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던 나에게 친구 놈이 뿌리치지 못할 제안을 해왔다.

 

"너 나랑 같은 고등학교 가자. 거기 남녀 합반이란다. 언제까지 이런 칙칙한 남자 애들이랑 지낼레?"

 

뿌리치지 못할 유혹이었다. 중학교 때도 롤러 스케이트장에서 여자애들과 다대다 헌팅을 즐기던 나에게는 분명 뿌리치지 못할 유혹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여자란 음란의 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심어린 사랑의 대상도 아닌 그냥 호기심의 대상. 설렘의 대상. 그 나이에 누구나 그렇듯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고등학교 생활. 이쁜 여자 선배들, 동기들.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차츰 학교생활에 적응될 때쯤, 온갖 소문들이 발을 달고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어린 학생들 사이의 소문이란 것은 늘 이성 이야기 아니면 연예인 이야기다. 그 중 꼭 빠지지 않는 인기 탑 3. 남자 선배들 사이에서 여자 동기 탑 3는 하루에 한번씩 알람처럼 듣는다.

 

"김XX, 최XX, 이XX (예명), 이렇게 3명이 선배들 사이에서 지금 인기가 최고라는데?"

"에이 최XX, 걔는 좀 아닌데. 그런데 진짜 김XX는 이쁘고 이XX는 귀여운게, 그런 여자친구 있음 소원이 없겠다."

 

그렇게 그냥저냥 흘러간 1학년. 누군가와 스캔들도 있었고 1시간 거리에 가서 데이트도 했지만 별 의미없이 그냥 그렇게...

 

2학년이 되어 새롭게 만나게 되는 친구들과 동아리. 어느날 내가 있던 복수의 동아리 중 한 곳에서 조장이었던 선배가 2학년이 된 날 불렀다. 꽤나 친했던 터라 선후배 치고는 편하게 지내는 관계였다.

 

"올해 너가 조장해라."

"네? 전 XX 동아리 회장 이번에 됐는데요... 여기 조장도 엄청 바쁘고 거기 회장도 엄청 바쁜 걸로 아는데 봐주시면 안되나요?"

"아놔. 이놈보게. 너 지금 선배의 말을 거절했네? 오늘 친구들 불러야겠네"

"오케오케. 알았어요 ㅠㅠ"

"선생님! 이놈이 이제부터 조장한답니다!"

 

그렇게 울며 겨자먹기로 조장이 되었다. 그리고 동아리 임원 첫 모임이 있는 날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박XX 입니다. 이전 조장님 덕분에 울며 겨자먹기로 조장이 되었지만 그래도 맡은 만큼 열심히 하겠습니다!"

 

누가 들어도 상투적인 소개. 난 그런 걸 좋아한다. 이렇게 몇명의 소개가 끝나고, 그녀와의 "첫 만남"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XX 입니다. 이번에 총무를 맡게 되었구요. 잘 부탁드립니다."

 

짧은 인사. 짧은 시간. 내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간다. 그 이름..이XX...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아..그 탑 3 중 한명. 그녀구나. 귀엽다. 정말 귀엽다. 하얀 얼굴. 조그마한 강아지를 닮은 그녀. 모든 소개가 끝나고 임원 회의를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 종일 빙글빙글. 집에 가서도 잊혀지지 않는 그 짧은 소개와 그녀. 하루종일 두근거린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런 적은... 어머니의 심부름을 가는 동안에도 몸은 목적지를 기계처럼 향해가지만 머리는 온통 다른 생각이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단 한가지...

 

"남자가 일생에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여도 영광스러울 수 있는 여자를 몇 만나지 못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인연이면 모든게 순조롭다 했던가. 어느날 그녀가 내게 말을 건다.

 

"조별 예산을 짜야하는데 너희 조 인원이랑 필요한 것 좀 알려줘"

 

기회다. 지금이다. 이런 기회에, 정말 할 말만 딱 해버리고 10초만에 그녀를 돌려보낸다면 나에게 또다시 기회는 없다.

 

"그래? 그럼 지금 당장은 내가 알아봐야 하니깐, 내일 알려줄께"

 

그리고..그리고..아. 입 속에서만 계속 맴돈다. 내일 저녁 같이 먹으면서란 말이...해야 하는데. 이 말을. 아 이게 뭐 어렵다고.

 

"그래. 최대한 빨리 말해주라~"

"알았어"

 

아! 안돼는데. 이게 아닌데. 그녀가 돌아선다. 에라이 모르겠다!

 

"XX야. 내일 저녁 먹으면서 얘기할까? 너랑 평소에 말도 못해보고 해서 이제 1년동안 자주 보며 일할텐데 친해지기도 싶고. 아 꼭 그런거 아니라도 얘기가 길어질거 같기도 하고"

 

바본가? 몇명. 필요한거 뭐뭐 말하는데 1분도 안 걸릴텐데 얘기가 길어져... 뇌가 없나... 핑계도 그런 핑계를..

 

"음.. 그러자. 내일 어디?"

 

잉? 말도 안되는 거짓말에 속았나? 별 반응 없이 오케이네?

 

"진짜? 그럼 내일 학교 앞에서 5시에 보자. 내가 내일 쏠께!"

 

오늘도 하루 종일 머리 속이 빙글빙글. 하지만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빙글빙글이랑은 다르다. 빙글빙글 하지만 막막함은 없다. 온 종일 설레이지만 불안함은 없다. 1단계 성공이구나!

 

다음날, 다행이 우리는 약속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만났다. 처음 나누는 대화도, 굳이 머리를 써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하지 않아도 이미 몇년 전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처럼 술술 풀려갔다. 아니 어쩌면 정말 진부한 사는 곳, 취미, 학교생활 하면서 일어난 해프닝, 누구랑 친하니 이런 질문과 대답들이 상대가 그녀이기에 나에겐 술술 풀려나간 것처럼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 지도 모르게 진부한 얘기를 2시간 넘게 나누고 나왔다. 여전히 나의 용기는 가상했다.

 

"배가 너무 부르다. 너무 많이 먹었나봐. 강가에 가서 바람 좀 쐬다 들어갈까?"

 

이렇게 추운데? 차라리 커피숍을 할껄...

 

"그럴까? 그런데 너 이렇게 입고 안 춥겠어?"

"난 괜찮아! 너 안 추울까?"

"나 두껍게 입어서 그렇게 춥진 않아"

"추우면 말해. 난 이 후드티 벗어도 안 추울 거 같으니깐. 헤헤"

 

지겨울 만큼 보던 강가가 오늘 유난히 아름답다. 사람들도, 강도, 차들도, 심지어는 어두컴컴한 다리 밑도. 모든게... 밥먹을 때와는 다른 묘한 분위기다. 난 분위기에 따라 밥먹을 때와 다른 주제를 꺼낸다.

 

"나 처음 봤을 때 어떤 인상이었어?"

"음..뭐 그냥 친하게 지내야지 하는 느낌? 실은 너랑 친한 김XX, 나랑 친해. 걔가 너 칭찬 많이 하더라. 착하다고"

"오~ 그래? 아. 내가 언제 한번 거하게 보답해야겠는데? 실은 나도 너 이름 너무 많이 들었어. 탑3. 하하."

"그러니깐. 그거 엄청 부담스러워. 내가 뭐라고..."

 

아... 역시 보이는 것처럼 그런 걸 즐기는 성격은 아니구나.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다. 귀엽고 착하고...

그래. 지금 내가 이 여자를 보지 않으면 미칠 것 같고 죽을 것 같은데 더 시간 끌 이유가 없다. 시간을 끌면 끌 수록 내 수명이 짧아지는 것 같다. 용기를 내자!

 

"아 이렇게 추운데 왜 내가 너랑 같이 있자고 했을까?"

"그러게. 왜?"

 

잠깐의 침묵. 괜히 혼자 긴장해서 오버한다. 순간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그녀에게 말로 하는 대답 대신 문자를 보냈다.

 

-- 너가 좋으니깐. 너랑 같이 더 오래 있고 싶어서. 너만 매일 생각해

 

띡, 띡, 띡. 3초 후 그녀의 폰에서 문자 알림이 들린다. 그녀가 문자를 본다. 그러고는 굳어지는 그녀의 표정. 가슴이 쿵쾅거린다. 어지럽다. 이 추운 날씨에 찜질방에 들어온 마냥 땀이 난다. 휴우... 갑자기 날 쳐다보는 그녀... 알 수 없다. 그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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