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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거나 기묘하거나 8

미녀 |2013.03.29 14:41
조회 1,824 |추천 8

 

 

- 기억

 

 

 

 

평소처럼 고된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밤 11 : 50분. 나는 길을 잃은 나그네처럼 멍하니 서있다. 주위는 깜깜한 암흑 속이다. 비록 불을 훤히 켜놨어도 어둡다. 홀로 서있는 지하철 역사가 을씨년스럽다. 몸이 절로 움츠러든다.

차갑게 녹음된 기계음이 열차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나는 지하철 너머로 왼발을 사뿐 내딛는다. 아무도 없는 역사에서 내 이름이 들린 것도 그 순간이다. 하지만 이 열차는 막차다. 고개를 돌려 잠시 뒤를 바라보았지만 그뿐이다. 잘못 들었겠지, 생각한다. 역사가 멀어져가고, 달리는 지하철은 잠에 빠져든다. 하루 종일 팽팽히 조여져있던 나의 의식과 함께.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꿈속으로…….




*




배가 고프다. 아침밥도 먹지 못해서 요동을 쳤다. 나는 고된 작업으로 뻐근해진 허리를 뒤로 재끼며 스트레칭을 했다. 눈앞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조금만 쉬었다 하면 안 될까. 밥 먹을 시간도 된 것 같은데. 나는 온몸이 내지르는 고통을 두 눈에 가득 담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눈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소설가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나도 언젠가 좋은 글을 쓰고 싶단 마음을 가졌다. 나름대로 국내 3대 명문대라고 불리는 Y 대학의 국어국문학과 졸업에 대학원 과정까지 수료했다.

그런 내가 왜 이런 공사판까지 전전하게 된 건지 이야기 하자면, 사연 참 구구절절하다.

우리나라 소설가는 정말 돈 안 되는 직업이다. 언젠가 결혼정보회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체격, 나이, 학벌 모든 걸 다 듣고는 만족하던 상담원이 직업이 소설가라는 얘길 듣자마자 ‘실례 했습니다’ 얘길 하면서 전활 황급히 끊어버리더라는 선배의 얘기는 그래도 꽤 사치스럽다. 그걸 알면서도 시작한 일이지만, 현실은 상상을 보기 좋게 넘어섰다.

어느덧 내 나이 35살. 같은 학교를 졸업한 종혁이는 검사로 잘 나가고 있고, 강호는 의사가 되어 개인병원을 냈고, 번듯한 사업을 하는 영수는 아르마니 양복을 즐겨 입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천만 원을 넘는 빚과 징그러운 빚쟁이들, 그리고 병원에 누워서 겨울의 추운 날씨도 봄이 오는 풍경도 볼 수 없는 어머니 한 분 뿐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나는 담배를 빼어 물었다. 빨간색 곽의 던힐 라이트, 담배를 피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 핑계만큼 휴식을 철저히 보장해주는 것은 없었다.

허리가 휜다는 말,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표현에서 진정성을 찾을 수 없을 것이었다. 느껴본 사람은 확실히 다르다. 독한 담배를 연거푸 핀 것처럼 하늘이 핑핑 돌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엇보다 정신이 멍해지면서 귀에 이명이 들리는데, 상황이 그 지경까지 이르면 마약을 한 것처럼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었다. 그 세상이란 게 사람마다 다르겠지마는, 나 같은 경우는 속세에서 초탈한 도인처럼 몸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감각을 느꼈다. 구름도 만질 수 있고, 바람을 끌어안을 수도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또한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나는 그때 있었던 일의 바로 뒷이야기가 기억나지 않았다. 눈을 뜨니 주변이 온통 하얀 응급실이었다. 미지의 세계를 놓쳤다는 아쉬움과 함께 더 날아가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지금의 나는 그때 그 감각을 맛보기 직전이었다. 지나치게 어지러워서, 사물이 고장 난 TV가 비춰주는 영상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뿌옇게 보였다. 이대론 큰일이었다. 나는 소장에게 말을 하고 황급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사실 그렇다고 집에 오자마자 당장 누워서 쉬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뾰족이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우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습관처럼 한글 2007을 실행시키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글을 쓰지는 못했다. 머릿속에 죽은 표현과 언어들이 둥둥, 하천에서 죽은 물고기처럼 눈을 발랑 까뒤집고 떠올랐다. 그 가운데, 쓸 만한 것은 없었다. 몸을 많이 쓰다보니까, 머리에까지 근육이 굳어버린 것인지 싶었다. 암세포가 전이되고, 감기는 전염되는 것처럼 육체를 향한 자극이 머리로 올라가 충격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나는 웹 서핑을 했다. 신문을 보고, 온라인 쇼핑몰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그것들은 나의 소소한 취미였다. 물론 실제로 구매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내 온 몸을 팔아서 벌어들이는 돈이라고 해봤자 푼돈이라, 병원비와 이자를 갚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나는 그저 이미지를 사들이고 있었다. 어떤 옷이 나와 어울릴까. 이걸 입으면 어떨지, 또 저걸 입으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즐거워졌다. 그런 행동에 난 묘하게 중독되었다. 예술작품과 같이 아름다워질 수 없으면서도, 그것을 창조하고 모방하려 드는 인간 심리의 발로.

나에겐 남들에겐 자랑스레 밝히기 어려운 취미가 또 하나 있었다. 지금 켜놓은 창들을 다 종료하고 내 컴퓨터의 C 드라이브를 열었다. 거기엔 확장자가 avi로 설정된 파일들이 여러 개 있었다. 흔히 말하는 야동이었다.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내 두 손이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죄책감과 패배감에 머릿속이 뿌옇다. 하지만 욕망만은 북극성과 같이 단 하나의 징표라도 되는 듯 보다 선명하게 내 마음을 움켜쥐고 있었다. 사랑하던 그녀와 헤어진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었다. 아니, 헤어졌다는 건 나만의 생각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를 너무 사랑했지만, 친구들은 집착이라고 말했다. 너는 상대방을 강제로 줄로 옭아매고 끌어당기고 있다고. 그래도 난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하는 주위의 시선들 쯤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녀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 지금 그녀의 핸드폰과 집엔 다른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화를 걸 수도, 찾아갈 수도 없어 답답했다.

나는 영상 속의 주인공에 나와 그녀를 대입했다. 그 속에서 그녀와 재회하고, 그녀를 가졌다. 후우, 시간이 갈수록 숨 헐떡이는 소리가 내 귓가에 점점 크게 들렸다. 먹이를 눈앞에 둔 짐승의 숨소리처럼, 내 입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귀에 거슬렸다. 물을 며칠 동안 마시지 못한 것처럼, 입안이 텁텁하고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절정에 이르자, 나사가 빠진 것처럼 몸이 축 늘어졌다. 잔뜩 지친 나는 책상에 상체를 납작 엎드렸다. 내 방은 참 좁았다. 컴퓨터 한 대와 책상 하나, 그리고 딴에 작가랍시고 책장에 진열된 책들, 그게 전부였다. 키가 큰 것도 아닌데 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서면 천장이 머리에 닿았다. 거기서는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원래 다락방이었는데 주인의 임의대로 공사를 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그랬다. 마치 내 방은 감옥과도 같이 느껴졌다.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조차 허리를 숙이고 까치발을 들고 내려가야 했다. 마찬가지로 방안에서라고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낼 수 있겠는가. 답답함이 무겁게 날 짓눌렀다. 이 방은 벗어날 수 없는 내 현실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소리 없이 태운 다음에 책상 위에 다시 몸을 엎드렸다. 일상에 지친 몸이 노곤했다. 잠이 소리 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




곤히 잠든 나를 깨운 것은 핸드폰의 진동음이었다. 디리링, 디리링 아직 잠에 반쯤 취해있던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휴대폰의 액정을 봤다. 모르는 번호였다. 폰을 살짝 들었다가 다시 놨다.

나는 전화를 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소설을 쓰고, 마땅한 수익원이 없어 이자도 갚지 못하고 있을 때 내 핸드폰은 하루에도 수 십 번 씩 울었다. 카드회사에, 빚쟁이들이 지독하게도 달려들었다. 그들은 노련한 사냥꾼이었고, 나는 노루 새끼였다. 두려움과 나약함으로 이리저리 쫓겨 다녔다.

다행히 지금은 그때완 달리 일정한 수입이 있으므로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있었다. 전화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몸에 배인 습관과 마음에 남은 흉터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 무슨 용건이 있는지 전화를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걸어오고 있었다. 받지 않는 전화에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갈팡질팡 하는 사이 기기가 잠잠해졌다.

이것으로 끝인가. 조금만 더 길게 울었어도 전화를 받았을 텐데, 하고 새삼 아쉬워졌다. 왠지 나를 부르는 간절함이 느껴졌는데 말이다.

내가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한바탕 늘어지는 기지개를 켜고 있을 때, 다시 그곳에서부터 미미한 떨림이 느껴졌다. 불을 꺼둔 어두운 방에서 노란 불빛이 한 줄기 타오르고 있었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무음인 핸드폰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서둘러 액정을 열어보았다.




- 현우야, 잘 지내냐. ...전화 안 받네. 나는 재범인데, 기억하지?..




***




그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나의 단짝이었고. 우리는 항상 옆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고, 그 탓에 금방 친해졌다. 함께 공부를 했고, 시험이 끝나면 아무도 몰래 방에서 술을 홀짝거렸다.

우리는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성적이 대개 좋았다. 나와 그는 쉬엄쉬엄 했을 때조차 전교 10등 바깥에 서지 않았다. 나는 축구를 잘 했고, 그는 말을 잘 했다. 나는 남자애들과 친했고, 그는 여자애들과 친했다. 그는 내가 친구가 많다고 부러워했고, 나는 그와 팔짱을 끼고 다니는 여자가 매일같이 바뀐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의외로 우리 둘 다 문학이란 코드에서 마음이 맞았다. 서로 다른 우리가 그렇게까지 친해진 건 그 탓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재미있었던 책을 교환하며 낄낄거렸다.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면 나는 그때부터 글을 썼고 그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지내던 우리였는데, 대학에 진학할 때는 너무도 쉽게 갈라졌다. 나는 글을 위해 국문학과로 진학하길 원했고, 그는 경영학과로 진학하고 싶어 했다. 같은 학교였지만 과가 달랐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같은 과끼리도 수업이 맞지 않으면, 보기 힘들었다. 다른 과인 우리는 자연스럽게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연락도 처음에는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이더니, 어느새 한 달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서로 싸우거나, 안 좋은 감정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강물이 본디 하나로 흘러가다가도, 갈림길을 만나면 둘로 갈라지듯이 그렇게 서로 멀어졌다.

나는 이제껏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그가 먼저 날 찾아주어서 기쁘긴 했다. 강물이 다시 하나로 모일 시간인지도 몰랐다.

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훤칠한 키에 뽀얀 얼굴이었다. 코도 뾰족하고 눈도 큼지막했다. 학창시절 때, 여자애들이 그 눈에 반했다고 했다. 그 눈은 투명하고, 깊이가 깊어서 그 눈에 빠진 여자애들은 벗어나지 못했다. 정말 내가 봐도, 잘 생겼다.

그에 반해 나는 키도 땅딸만하고 얼굴은 탄광 노동자처럼 새까맣다. 특히 요새는 뜨거운 여름 햇볕을 쬐면서 일을 하다 보니 그게 더 심한 것 같았다.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내 뺨을 손등으로 훔쳐내면 새까만 기름이 묻어나올 것 같아 조마조마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몸에는 흉터도 여기저기 있었는데, 특히 이마 위를 가로지르는 꼬불꼬불한 지네 같은 상처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감을 느끼게 한단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왜냐면 내가 볼 때조차 그랬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네, 자식! 잘 지냈냐.”

“나야 뭐, 잘 지냈지. 너도 잘 지냈나보네.”

“응? 그래 보이냐. 하하. 다행이네.”



그는 잠시 과장되게 웃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것이 그에게도 어색한 모양이었다. 하늘은 까만 색깔이었는데, 네온사인들이 여기저기 정신없이 빛을 내뿜고 있어서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다. 남자끼린 술이다, 나는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어차피 주변에 온통 술집과 노래방과 클럽, 그리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디로 가든 간에 쪽박 찰 일은 없어보였다.

그는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더니 내가 먹었다고 하자 따라오라며 성큼성큼 앞장섰다. 이 복잡한 거리에 자주 와본 눈치였다. 한참을 걷던 우리는 어느 허름한 간판의 가게를 찾았다. 그곳은 2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하나 없고 올라가는 계단은 꼬불꼬불하고 좁아서 영 불편했다. 성인 남자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에도 힘들었다. 이 시간, 이 도시에 사람이 무척 많을 법한데, 가게 안은 무척이나 한산해보였다. 주인이 턱을 괴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텔레비전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개미 새끼 하나 없네.”

“앗,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이쪽 자리로 오세요.”

“여기가 그래도 조용하고 차분해서 좋아. 그리고 안주가 저렴하고 맛있더라고. 이모, 여기 맥주 삼천에 닭 한 마리랑 과일 좀 해주세요.”

“네, 주문 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와 그는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여태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이야기 나누며 술을 홀짝거렸다. 내가 소설을 쓰고 있노라, 얘기하자 그는 자기도 읽어보았다고 얘기했다. 도주였지? 그런데 왜 다음번 소설은 쓰지 않는 거야, 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싱겁게 웃으며 출판사가 부도가 나서 다음번 책이 계약이 되지 않느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살짝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진작 연락 하고 싶었는데, 번호를 몰라서 여태까지 못했다며 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냐고 서운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금 이 번호도 고등학교 동창회를 나가서 알아낸 것이라고 했다.

그는 광고회사에서 광고기획자(AE) 노릇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에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광고주들 뒷담을 했다.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며 힘든 나날들을 하소연하듯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뿐, 마음에는 이야기가 와 닿지 않았다. 그의 말은 주변에서 뱅뱅 맴돌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너무 부유해 보였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지만, 그는 롤렉스시계를 차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그의 시계 살 돈을 빚으로 지고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양복은 어디? 아르마니 꺼군. 몸에서 은은히 풍기는 향기는 돌체 & 가바나 것 같았다. 그는 내가 갖고 싶어 했지만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다.

그런 내 표정이 지루해보였던 탓일까. 그는 갑자기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며 전보다 한층 더 가라앉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너 소설가지? 내가 소설도 아닌데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무슨 얘긴데?”

“사실 오늘 널 부른 것도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어서였는데, 잘 들어봐.”




****




나는 그 날도 광고주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폭탄주를 한 사발쯤 마셨다. 언제나 그렇듯 술을 마시면 세상이 빙빙 돌았다. 오늘은 마누라에게 술 안마시고 일찍 집에 들어가겠노라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할 모양이었다. 더럽다. 나는 길모퉁이에 또 나도 모르게 구토를 했다.

병원에서는 위염이라고 했다. 이제 내 나이 35살, 한참 일할 나이에 무슨 위염이냐고 하니까 몸은 50대나 60대라고 의사가 지그시 말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술을 하루가 멀다 하고 마시고 운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큰일 나는 수가 생긴다고 굳은 얼굴로 경고도 했다.

하지만 변명일진 몰라도 나는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게 아니었다. 계약을 하나라도 성사시키려면, 강아지처럼 꼬리 살랑살랑 거리고 손바닥을 파리처럼 비벼도 부족할 판이었다. 그러니까 술 따위라면 얼마든지 마셔줄 수 있었다. 내 아내는 얼마 전 아이를 가졌다. 재범 주니어 2세를 위해서라도 나는 부지런히 돈을 벌 의무가 있었다.

그 날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주 나가는 대리운전 비용도 무시할 게 못 되었다. 비틀비틀 바람에 휩쓸린 듯이 정신없는 내 몸을 또렷한 의지력으로 버티려고 하며 나는 지하철역으로 몸을 옮겼다. 시간은 23 : 40분쯤이었다. 변두리 역인 데다 막차 시간이라 그런지 지하철역엔 나 혼자밖에 없었다.

야간에는 지하철이 10분 간격으로 왔다. 막 지하철이 떠나고 혼자 남겨지자 나는 혼자서 커다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노래를 해주렴……. 나의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가 다 끝나갈 때쯤에, 한 소녀가 뚜벅뚜벅 계단을 걸어 내려와 내 옆에 섰다.

그녀는 고등학생인지, 남색 체크무늬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름이 이지혜……? 굉장히 평범한 이름이었다. 얼굴은 아직 채 무르익지 않은 복숭아를 닮아 뽀얗고 여려보였다. 그렇게 상처입기 쉬운 얼굴에, 조금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지하철 역사의 적막함을 뚫고 그녀의 말이 들려왔다.



“아저씨, 술 많이 마셨지요?”



하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머리가 너무 어지럽기도 했고, 굳이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입에서 지독하게 폴폴 풍길 술 냄새 걱정도 있었다.



“아직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데……. 아저씨 술 좀 사주시면 안 돼요?”

“학생은 술을 먹는 게 아니야.”



나는 갑자기 울컥해서 그녀에게 한 차례 그것에 대해서 강연을 늘어놓으려고 하다가 그만 입을 다물었다. 사실 조금 웃겼다. 나도 고등학생 때 얼마나 뻔질나게 술을 마셨던지. 하지만 장담컨대, 그것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

발랑 까져가지곤…….



“알아요. 저도 그런 건. 하지만 기분이 너무 우울해요. 그거 마시면 기분이 되게 좋아진다는데요.”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나는 단호한 어투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잠시 지하철이 들어오고 나가는 그 깜깜한 통로를 멍하니 응시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른들은 다 그래요?”

“그게 무슨 얘기야.”

“전 오늘 정말 우울해서 처음 보는 아저씨한테도 용기를 내서 말을 거는 건데요.”

“그래서?”

“……아니에요. 아저씨는 잘 생기고 친절하게 생기긴 했지만, 착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짐짓 소녀의 말을 듣지 못한 척했다. 지하철이 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한 2 ~ 3분가량. 기분이 귀신에 씌인 것처럼 묘했다. 조용한 지하철 역사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단 둘, 그녀와 나. 왠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어보였다. 그녀는 어리고 예뻤다. 남녀 사이란 게 원래 그런 거지. 지금이라도 그녀의 초대를 응하는 건 어떨까.



“아저씨, 물망초의 꽃말이 뭔지 아세요?”

“Forget me not? 나를 잊지 마세요 잖아.”

“맞아요. 제가 갑자기 사라지면 사람들이 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저씨두요. 제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지하철이 전역에서 막 출발했다는 방송이 지하철 역사에 낭랑히 퍼졌다. 나는 그제 서야 그녀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갑자기 사라지다니, 어디로 말인가. 가출? 혹은 비밀 여행? 아니, 그보다는 뭔가 좀 더 비밀스럽고 위험한 냄새가 풍겼다. 그녀는 지금 지하철이 다가오고 있는 통로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지하철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한 발짝, 두 발짝 번쩍 뛰면 닿을 수 있을 거리로. 왠지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은 긴박감을 느꼈다. 나를 몽롱하게 채우고 있던 술기운은 그것에 다 타버린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보들보들한 복숭아에 이슬이 맺힌 것처럼 그녀의 눈물이 비치고 있었다.



“그럼 안녕.”

위이이잉 -

그녀가 하늘을 날았다. 조금 잘못된 방식으로 지하철은 그녀를 높이 태웠다. 아직 정차를 채 시작하지 않은 지하철은 속도를 낮추긴 했어도 여전히 인간에겐 무서운 살인병기였다. 그녀는 마지막 말을 남긴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인간으로서의 흔적을 영원히 감추었다.

끼익, 역에 몸을 끼워 맞춘 지하철의 문이 열리고 사람 한 두 사람을 토해냈다. 그들은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하철에서 내린 머리가 새하얀 노인 한 분이, 젊은 사람이 이렇게 될 때까지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되겠냐며 나를 부축했다. 나는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할아버지의 몸에 필사적으로 엉겨 붙었다. 그날 나는,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




소녀는 인근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성적도 좋았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에도 순종하는 편이었다. 집에서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엔 세상살이가 정말 무료하다고만 적혀있었다. 그런 것도 죽을 이유가 되나 싶었는데, 어쨌든 정말로 죽어버렸다.

나는 쉽사리 죄책감을 벗어버리지 못했다. 회사도 그만두고, 한 달 가까이 술만 마시며 지냈다. 하지만 마누라의 배에서 내 아기가 태어나고, 그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나는 간신히 그 무게를 떨쳐낼 수 있었다.

전에 일하던 회사와는 다른 광고회사에 경력사원으로 들어가고 나의 생활이 간신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줄 알았던 그때부터였다. 내가 일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심지어 샤워를 할 때조차 누군가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겨울날 한참 동안 바깥에서 서서 울먹이던 아이의 손길처럼 그 차가운 간절함이 뼛속 깊이 스며들 뿐이었다.

소름끼치고 섬뜩했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이지혜라는 이름을 영원히 떨쳐버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다.




******




“지금도 그래. 차가워.”



나는 그가 겪고 있는 증상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흔히들 트라우마라고 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그것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는 그녀에게서 자신이 죽는 듯한 사고를 경험했고 그것에 의해 지금 병증을 경험하고 있었다. 착각 또는 환각 현상은 트라우마의 대표적인 증세였다.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

“가봤어. 의사의 말대로 치료도 하고 있고.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예전엔 그런 거 믿지 않았는데 지금은 귀신이 있고 사후세계가 있다는 걸 믿어.”

“말도 안 돼. ……치료가 아직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리고 네가 겪은 일이 준 충격이 충분히 컸을 테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두렵다. 그 손이 언젠가는 발목이 아니라 내 목을 움켜쥘까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큰 사고를 겪은 뒤엔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그의 등을 토닥거리며 맥주를 한 잔 부어주었다. 그런 문제 따윈 다 잊어버리고 지금은 기분 좋게 술이나 마시자구, 하며 건배를 했다.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술이 더 진득하게 취해갔다. 얼굴이 뜨겁고, 나는 부끄러움을 잊어갔다. 다시 한 번 그의 아르마니 양복과 롤렉스시계가 탐이 났다. 이 싸구려 술집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움이었다. 혀가 꼬여갔고, 그나마 하나 둘 있던 주위의 손님들도 자리를 하나 둘씩 비워주고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나도 고민거리가 하나 있거든.”

“뭔데? 말해봐.”

“너, 돈 좀 있냐.”



*******




나는 친구가 빌려준 돈과 부지런히 일을 한 돈으로 몇 달 지나지 않아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지금도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긴 하지만 그때보단 한층 즐겁고 힘이 났다. 요새는 글도 조금씩 썼다. 친구가 해준 얘기를 소재로 멋들어진 글을 한 편 써볼 생각이었다. 만약 이 글이 크게 성공한다면, 친구에게 진 빚도 다 갚을 수 있을 테고 집도 옮길 수 있을 것이었다.

뭘 해도 흥이 났다. 고생을 할 만큼 했으니 이젠 편히 쉬란 뜻인지도 몰랐다. 얼마 전 어머님이 손가락을 꿈틀 움직였단 소식도 들었다. 찾아가 뵈니 평소처럼 평안한 얼굴로 누워계셨지만, 나는 왠지 모를 생기를 당신에게서 맡았다.

이젠 담배도 끊었다. 새롭게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머리도 새로 깎고 컴퓨터에 저장되어있던 야동도 싹 지웠다.

나는 오늘 친구들과 술을 오랜만에 마셨다. 기분이 좋아서였다. 정신을 놓을 정도로 걸하게 마신 것은 아니고, 목만 축일 정도였다. 시간은 11 : 50분이었다. 나는 길을 잃은 나그네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주위는 깜깜한 암흑 속이다. 비록 불을 훤히 켜놨어도 어두웠다. 홀로 서있는 지하철 역사가 을씨년스러워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차갑게 녹음된 기계음이 열차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나는 지하철 너머로 왼발을 사뿐 내딛었다. 아무도 없는 역사에서 내 이름이 들린 것도 그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열차는 막차였다. 고개를 돌려 잠시 뒤를 바라보았지만 그뿐이었다. 잘못 들었겠지, 생각하며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오늘의 신문을 펴들었다. 저녁에 신문을 읽는 것도 참 웃긴데, 나 같은 경우는 지나치게 일찍 일어나야 되는데다가, 몸이 피곤해서 아침엔 오히려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신문엔 오늘도 여러 가지 소식이 실려 있었다. 촛불 시위 얘기, 전기료 가스료가 인상된다는 얘기, 부산서 30대 男자가 외삼촌을 토막 내서 죽였다는 끔찍한 얘기 등등이 조그마한 칸에 담겨 있었다. 나는 그런 신문 기사의 타이틀을 보고 대충대충 중요한 내용만 보면서 흘려 넘기다가 한 가지 기사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무덤이 된 부산 지하철역




○월 ○일, 오후 1시 부산 신평 역에서 30대 중반 이 모 씨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 모씨는 사고 한 달 전쯤 회사에 나갔다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해마다 지하철역에서 자살하는 인원이 증가하고 있으며 자살자는 연령별로…….




나는 문득 지하철을 타기 전 나를 불렀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재범이와 연락이 되지 않은지 한달 정도 되었다. 핸드폰에 번호를 꾹꾹 눌러서 전화를 돌렸다. ‘전원이 꺼져있으므로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나는 문득 내 발목을 양손으로 쓰다듬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차가웠다. 추위에 내몰린 어린아이의 간절함처럼 뼛속깊이 스며들었다. 아무래도 담배를 다시 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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