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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모터스 : 가상으로서의 예술

민진 |2013.04.08 02:47
조회 12 |추천 0

거짓을 진실로 믿어버리는 시대

 

얼마 전 뉴스보도를 보니 사람들은 SNS를 통해 거짓말을 유포하고, 자신이 올린 게시물을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 착각하고 산다고 한다. 현실로 지각되는 정보들을 조작하여, 새로운 나를 만드는 작업이다. 시각적인 겉보기가 가장 중시되는 시대의 씁슬한 단면이다. 나 역시 SNS를 통해 내 일상을 전시한다.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며 포장해내면 마음을 안위한다.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내 인생의 가치가 정해진다는 보잘 것 없음은 인정하기 싫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허황되고, 거짓되지만 번지르르한 내 이미지를 노출시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끝도 없이 치솟고 있다. 어쩌면 가장 쉽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접촉에 밀도가 없을 나타내는 방증이다. 하루 종일 풀 메이크업을 한 것처럼 피곤한 역할놀이를 통해 밥벌이를 한다.


 

기이한 가면극 놀이

 

영화 <홀리 모터스>의 내용은 그런 의미에서 이런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한 듯하다.(그는 물론 부정할 테지만) 사업가 오스카의 일상은 고급 리무진을 타고 도시를 종횡무진 하는 것이다. 이 리무진의 이름은 홀리 모터스다. 이 성스러운 자동차에는 유능한 비서 셀린과 스스로 분장을 하는 배우 오스카가 있다.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파리 곳곳을 누비며 유능한 사업가, 가정적인 아버지에서 광대, 걸인, 암살자, 광인에 이르기까지 쉴 틈도 주지 않고 연극놀이를 수행한다. 그의 경제적 상황으로 볼 때, 이 역할놀이는 무척 돈벌이가 잘되는지 그의 사업은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의 무대가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연극판으로 두고,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춘다. 그와 연기를 하는 상대 역시 프로 배우들로서, 한 편의 연극이 끝나면 다음 스케쥴로 이동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짜일까.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이 영화가 말하려는 ‘가상’ 假想 , Illusion이란 주제와 같이 생각해본다.


 

형이상학과 가상으로서의 예술

 

가상을 말하기 전에, 형이상학에 대해 알아야 한다. 형이상학은 세계의 궁극적인 근거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술가는 항상 이 세계에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해 생각하기에, 형이상학과 예술은 감출 수 없는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가상은 무엇일까. 가상의 어원은 라틴어 illudere이며, '속이다·가장하다'를 의미한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 주관적인 판단을 객관적인 판단으로 해석하는 행위다. 즉, 예술가는 형이상학이라는 목표로 창작을 하지만, 그것은 인간들의 눈을 가리는 속임수인 가상이다. 무언가에 도달하려는 예술적 가치의 목표는 결국 거짓된 정보를 흘려 넣어 감각기관에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홀리 모터스>의 예술가이자 사업가인 오스카는 연기라는 거짓을 통해 인간들의 삶을 완성한다. 니체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예술가적 능력은 고통을 주는 세계에 형식과 질서를 부여하여 '아름답게' 만든다고 하였다. 결국 인간의 삶은 바로 이런 인간의 예술가적 능력 덕분에 감당할 수 있게 된다고 정의한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가상으로서의 예술

 

오스카가 먹고 사는 가면놀이는 니체에 말에 의하면 순수한 예술가적 목표를 통해 피어난 아름다움이다. 오스카는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며 인간의 삶을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고, 절망에서 야기되는 죽음의 가능성으로부터 구출하며, 더불어 인간에게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인간 삶과 세계는 단지 예술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이 영화의 고급 리무진이 왜 ‘holy’라는 단어를 달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의 감독이자 기인인 레오스 카락스는 영화와 연극 그리고 예술이자 속임수인 오스카의 창작활동을 인류의 구원이자 종교의 기능으로 이해한 것 같다. 니체에 의하면 예술은 아름다운 환상인 가상을 만드는 기술, 즉 삶의 추한 면과 고통스런 면을 가려주는 베일을 만드는 기술이다. 예술은 가상이며, 예술 활동은 가상 만들기가 된다. 이 아름다운 가상에 의해 인간의 삶과 세계는 견뎌 낼 수 있게 된다. 성스러운 그의 주행은 그래서 미학적으로 무척 기이하지만, 아름다운 괘적을 그리고 나아간다.


 

가면놀이의 한계.

 

처음으로 돌아가 그렇다면 우리가 SNS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보여 지려는 노력은 그저 허세일 뿐인가. 그건 아마도 나를 내보여 나를 구원하려는 예술적 활동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수준이 너무도 질이 낮아, 아무리 보아도 소름끼치게 끔직하여 두고 볼 수 없다. 결국 우리의 수많은 트윗 멘션들과 페이스북 게시물들은 예술적 가치가 전무한 쓰레기일 뿐이다. 예술의 본디 기능인 형이상학적 구현이 상실된 자기위안의 홍수인 것이다.

홀리 모터스는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오스카의 모습을 따라가다가 문득 이상한 씬을 하나 삽입한다. 바쁜 스케쥴 속에서 짬을 내어 어느 폐건물로 들어간 오스카는 과거의 연인었던 진을 만나 가면 뒤의 자신을 표출한다. 진은 오스카를 보며 과거를 소화하듯 우린 누구였냐며 울부짖듯 노래를 부른다. 예술적인 구원을 위해 시작한 가면놀이가 나를 잠식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한 매우 적절한 은유. 그 구슬픈 노랫소리가 인상적이다.

 

홀리 모터스의 첫 장면을 기억한다. 방에서 잠옷 차림으로 일어나 벽을 열고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카락스의 모습. 과연 하루의 일상 속에 내 모습을 진실되게 보여주는 시간은 언제일까. 과연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아주 오랜만에 만난 레오스 카락스의 이 성스러운 영화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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