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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권] 눈을 감으면

 

 

 

 

 

 

 

「들리지 않았던 소리, 보이지 않았던 희망, 잡을 수 없었던 사랑이 있다, 눈을 감으면」

 

저자 : 황경신

출판사 : 아트북스

출판일 : 2013년 04월

 

■ 무언가를 들으려 하면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게 된다. 무언가를 말하려 하면 말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눈을 감으면, 보고 싶으나 볼 수 없는 무엇, 사람이라거나 사랑이라거나 희망 같은 것들이 보인다. -안쪽표지

 

■ 단 한 번이라도 걱정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인생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 혹시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것이 걱정이다. 당장 코앞의 걱정거리가 없으면 십 미터, 백 미터, 천 미터 거리에 있는 걱정거리를 수소문하여 품는 것이 걱정 많은 사람들이 즐겨 하는 일인데, 굳이 천 미터까지 가지 않아도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이 또 걱정거리이므로, 걱정에 대한 걱정만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걱정 많은 사람들의 유일한 기쁨인지도 모르겠다. -p.37

 

■ 무언가가 지나갔지요. 그것이 계절이든 방황이든 삶의 한 절이든. 당신은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잃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 지나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시간이 왔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어딘가에 보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보관한다는 건 기억하는 것이고, 기억한다는 건 간직한다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함부로 내다버리기도 곤란하지요. 그건 한때 당신을 이루었던 무엇이었으니까요. -p.65

 

■ 나는 슬픔을 몰랐다. 내가 속해 있던 세계는 어둠밖에 없었으므로, 어둠 자체로 완벽했으므로, 슬픔이 스며들 여지가 없었다. 슬픔이란 아름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슬픔이란 낯선 관념일 뿐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원할 수 없고, 모르는 것을 갈망할 수 없다. -p.89

 

■ 내가 아는 건, 인생이란 견디면서 기다리는 거라는 거야. 기다리는 게 온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지. 그래, 이전에 나는 잊기 위해 글을 썼네. 무언가를 끝내려고. 아니면 기억하기 위해 글을 썼지.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p.103

 

■ 힘을 내서 세상과 맞싸워, 너는 할 수 있어. 모든 이들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는 것을, 그녀는 막 깨달았다. 감은 눈 안쪽이 뜨거워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채와 존재하지 않는 모든 색채가, 감은 눈 안에서 명멸했다. 눈을 감은 그녀의 모든 감각이 퍼덕였다. 눈을 감으면, 아득히 멀어지고 아득히 가까워진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진짜 삶이다. -p.133

 

■ 어느 날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언젠가의 그 시간을 되돌아볼 때. 내가 그에게 후회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아픔이거나 슬픔이거나 갈증이거나, 그러한 아름다움까지는 아니더라도. -p.204

 

■ 그 모든 '있음'들 뒤에, 모든 '없음'들이 온다. 그러니까 그 '있음'들 대해, 일일이 이름을 붙여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후회라거나 슬픔이라거나 사랑 같은 이름들. 다만 그저 이렇게, 이 하나의 문장으로, 마침내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려 한다. 그가 여기 있었다. -p.232

 

리뷰

 

캐나다 출국을 앞두고 요즘 영어원서책들 본다고 한동안 한글책들은 멀리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릴 땐 그렇게도 늦다가, 마음 먹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구마구 쏟아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따끈따끈한 신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유혹해온다. :)

결국 참지 못하고 사버린 황경신 작가님의 에세이집은 아련한 감수성을 불러 일으키는 제목과

하얀 눈꽃이 내리는 아름다운 봄날의 풍경을 담은 표지가 너무너무 예쁘게 다가왔다.

4월말인데도 여전히 바람이 찬 요즘, 책을 통해서나마 따뜻함을 느껴보고 싶었고,

그동안 황경신 작가님의 책들이 내게 주었던 아련한 그 느낌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이 책은 모두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별' 이야기로 시작하는 책은 '슬픔'과 '성장'을 거쳐 결국 '사랑' 이야기로 끝이 난다.

벌써 세 번째 그림 에세이라는데 나는 이런 구성의 글이 처음이라서 읽는 내내 참 새로웠다.

책에 실린 그림 하나하나에는 어쩌면 이 그림을 그린 화가도 몰랐을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언뜻 그림을 봤을 때는 모를말한, 정말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을 생각해내서

그림 하나하나마다 사연을 담아주고있다. 결국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그림을 보고 나서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눈을 감고서 떠오른 것들에 관한 것이다.

그림이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들, 그림이 끝끝내 숨겨놓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황경신 작가님의 감은 눈을 통해 이렇게 책이 된 것이다.

 

르누아르의 밝고명랑한 그림 <우산>을 보고 작가는 서로 성격이 맞지않는 두 연인의 이야기,

그리고 결국 이별을 결심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윌리엄 메릿 체이스가 그린 <녹색 옷을 입은 여인>을 보고 질투에 마음이 휩싸여버려

결국 혼자 절망하고 마는 여인의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것처럼,

그 순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자기 식대로 그림을 해석하고 그 그림에 담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면 나에게 소중하고 의미있는 '나만의 그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눈을 감으면, 보고 싶으나 볼 수 없는 무엇, 그런 것들이 보인다고 했다.

책을 읽은 여운이 고스란히 마음 속에 남아있어서

오늘은 조용히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고 싶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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