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 중순의 해질녘, 남자 박씨는 친구 김씨의 모친상 장례 참석을 위한 채비를 하고 있었다. 머리를 가지런히 정돈하고 검은 정장을 입고 향기 좋은 스킨을 발라 피부를 윤택하게 하였다.
박씨에게 친구 김씨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죽마고우였는데, 사자성어 그대로 그들은 어릴때부터 서로의 알 것, 모를 것을 모두 공유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런 친구 김씨가 모친상을 당했다니 박씨 그로써는 얼마나 통곡할 일이었겠는가.
채비를 다한 박씨는 초상을 치를 김씨집으로 가기 위해 자기의 차에 올라탔다. 그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고 기어를 설정한 뒤 엑셀을 밟아 출발했다.
김씨의 집은 경기도 박씨의 집에서 몇 리 떨어진 보은이었는데 차로 달려 족히 2시간 이상은 걸리는 거리였다.
박씨가 이차선 도로에 진입해 고속도로를 달릴 쯤 그의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첫번째는 친구 김씨의 모친상과 관련된 일이었으며, 두번째는 지금의 정적과 무료함을 달래줄만한 무엇과 관련된 일이었다.
지금 여기서 당신이 생각하는 바른 정답은 박씨의 친구, 김씨의 모친상이 그 따위 무료함과 정적보다 굉장히 더 중요한것이라고 결론을 내릴것이다. 물론, 당신이 내린 결론의 정답은 상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생각해봐도 맞다.
하지만 박씨는 지금 친구 모친상 장례를 가는 도중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핸들을 잡고 있는 왼손의 반대인 오른손으로 라디오를 켰고 라디오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흥미로운 뉴에이지 음악이 흘러 나올뿐이었다.
박씨는 음악과 어느 DJ의 말을 들으면서 핸들을 잡고 있는 한 손을 마치 흥겨워하는듯이 리듬에 맞춰 흔들거렸고 엑셀을 밟고 있는 왼발의 반대인 오른발을 북을 치듯이 둥둥거렸다.
그의 만행은 라디오의 프로그램 하나가 끝날때까지 계속되었고 보은의 톨게이트가 보였을 때 비로소 그만두게 되었다.
남자 박씨의 차가 흙밭길을 가로지르고 다리를 건너 풀내음나는 어느 마을, 즉 친구 김씨의 자택에 왔을때 박씨는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며 차에서 내렸다.
김씨의 마당에는 수백만원 상당의 잉어가 가득차있는 1급수의 인공호수와 고급잔디, 야경이 보이는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당에는 김씨의 지인들이 곳곳마다 가득차 조문을 구하고 있었고 조문금을 담는 유리박스는 하얀 종이봉투가 가득차 넘쳐나고 있었다.
박씨도 정장 안주머니에서 종이봉투를 꺼내 유리박스안의 봉투들과 동화시켰고 그와 아는 어떤 지인에게 다가갔다.
"조여사, 오랜만입니다. 허허, 이게 몇년만이지요."
"아이구, 박가 오랜만이네요. 그 때 일로 만난것 이후로 정말 몇년만인가요? 호호호."
조여사는 박씨의 직장 거래처였는데 50대의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고운 피부와 앳된 얼굴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박씨가 조여사와 몇몇의 담소를 더 나눈후 인사를 했다. 그러고서는 친구 김씨를 만나기 위해 북적북적한 사람들을 뚫고 현관을 열었다.
김씨의 집에서는 그의 친가들이 핏줄을 잃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침묵의 도가니가 퍼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런 박씨가 보기에 핏줄을 잃은 고통을 겪고 있는 죽마고우 김씨의 친가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것은 벽과 각 곳곳마다 있는 호화로운 장식품들이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온몸에서 피가 솟는 기분이었고 머리를 거대한 에밀레종으로 강타당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박씨가 알 수없는 기분에 빠져있을때 상복을 입은 김씨가 다가와 박씨의 어깨의 손을 올렸다.
"친구, 왔는고?"
"그래. 모친에 대해서는 깊은 조문을 표하고 있네."
"고맙네."
친구 김씨의 표정이 어둠의 야경처럼 상당히 어두워졌다. 박씨는 그런 김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아, 요즘 구해준 일 잘되어가는가?"
김씨는 일년전 실직한 박씨를 도와줘 지방에 있는 제약회사에 취직을 시켜주었는데 지금 박씨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어? 음, 그렇지 뭐. 아무튼 그 점에 대해서는 고맙네."
박씨의 말에 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씨의 초상이 끝나고 저녁식사를 할 쯤, 박씨가 김씨 옆에 육개장을 내려놓고 털썩 앉았다.
"차린건 없지만 많이 먹고 가게나."
"아닐세. 먹을게 참 많구먼."
그렇게 몇 술을 뜨던 박씨는 친구 김씨의 집 곳곳마다 걸려있는 호화로운 장식품을 다시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김씨, 난 자네를 볼 때마다 참 존경스럽게 느껴진다네."
김씨가 박씨의 의도를 몰라 숟가락을 들던 손을 멈췄다.
"그게, 무슨 소리인고?"
박씨는 실소를 지으며 몸짓을 했다.
"자네가 이렇게 큰 부를 쌓은것 말이네.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도 있고, 지인으로부터도 큰 신뢰감을 받고 있지 않나."
"그렇다고 존경할 것 까지는 없네."
김씨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박씨가 이어서 말했다.
"자네에 비하면 난 값어치 없는 골동품에 불과하지."
"허! 친구,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요즘 힘든가본데, 더 도와줄것이 있으면 말해보게나. 기꺼이 도와주지."
친구 김씨의 말을 들은 박씨는 가슴 한 쪽에서 전기같은 것이 팟하고 튀는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아마도 욕망의 불꽃이었으리라고 생각했다.
"친구, 그럼......"
초상이 끝나고서의 박씨가 차에 올라탔을 때,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봅세. 자네가 와 줘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 그럼 잘 가게나."
그리고 박씨의 차는 친구 김씨의 집을 떠나 거리를 유유히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