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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녀는 하늘을 날 수 없다 上

정상규 |2013.05.25 20:21
조회 562 |추천 3
한 여름의 하늘은 매우 파랬었다. 일요일 낮의 후미진 골목에 있는 동네는 평화로웠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골목에서 내려오면 차도로 통하는 바로 뒷 쪽에 새를 전문으로 파는 작은 애완동물점 하나가 있었다. 이 애완동물점의 이름은 '역시 애완'이었다.

'역시 애완'의 주인장은 머리숱이 많이 빠지고 술을 달고 살았었는데, 그런 그에게도 올해 9살 난 딸 하나가 있었다. 주인장의 '역시 애완'은 인테리어 탓인지, 음침해보이는 탓인지는 몰랐지만 장사가 전혀 되지가 않았고 그와 딸은 항상 가난에 찌들어 살았었다.

가게 안을 들어오면 코를 찌르는 새 들의 분(糞) 냄새와 짹짹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왠지 모를 위압감과 거부감을 몰려 오게 했고, 가게를 찾아 왔다가 다시 발 길을 돌리는 손님도 여럿 있었다.

"빌어쳐먹을 것들! 왔으면 사 갖고 가야지!"

주인장이 항상 냄새를 맡고 돌아가는 손님들에게 하는 소리였다. 주인장은 장사가 되지 않는 원인을 대강 알고 있었지만 원인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귀찮은 것을 굉장히 싫어했기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고차원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주인장은 뭐, 새 하나쯤은 팔리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술만 마실뿐이었다.

"끄윽. 어디서 돈 떨어질 일 없나......"

그가 항시 하는 말이었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썩을년...... 어디서 뭐하고 지내나...... 끄윽."

주인장이 때가 탄 탁자위에 올려져 있는 액자를 집어, 술 한 병을 부리나케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액자 속의 사진에는 젊어 보이는 여성 한 명이 나무 뒤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이 여성은 15년 전, 이 집에서 도망간 주인장의 아내였다. 항시 반복되는 남편의 폭력과 여성으로서의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야반도주 해 버린 것이었다.

주인장은 아내가 도망간 후, 그 화풀이 대상을 딸에게로 돌렸는데 참으로 몹쓸 짓이었던 것이다. 고왔던 딸의 피부에는 시퍼런 멍이 군데군데 들기 시작했고, 밝았던 딸의 표정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었다.

"야! 술 떨어졌다! 가서 사와!"

주인장이 텅 빈 술병의 안을 살짝 들여다보고는 탈탈 턴 뒤, 바닥에 내팽겨치고는 가게 안 쪽에 딸린 방을 바라보며 외쳤다.

소리가 나자마자 방 안에 있던 딸이 미닫이 문을 드르륵하며 열었고, 겁에 가득 질린 눈빛을 지으며 자신의 아버지인 주인장을 바라보았다.

"네...... 아빠."

풀이 가득 죽은 목소리였다. 쥐가 내는 찍찍소리보다 더 작은 목소리였다. 게다가 딸의 용모는 깔끔하지가 않았었다. 언제 입었는지도 모를 검은 때가 잔뜩 낀 원피스, 떡이 잔뜩 져 심하게 엉킨 긴 생머리, 많은 멍이 사라졌지만 군데군데 남아있는 크고 작은 멍들. 한 때는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수척해져 생기가 없어 보이는 얼굴.

이 모든 것은 소녀의 아버지, 주인장이 원인이었다.

"항상 사오던 대로."

주인장은 기름진 바지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진 천원짜리 세 장을 꺼내 소녀가 있는 곳으로 집어 던졌다.

"아, 민증도."

처참한 표정으로 돈을 줍고 있는 소녀에게 주인장은 다시 한 번 얼룩진 바지 주머니에서 여기저기 찢어진 지갑을 꺼내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집어서 소녀에게 휙 날렸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소녀의 초점 잃은 동공이 먼산을 향하였고, 떨어진 민증을 푸석해진 손으로 주워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할 뿐이었다.

"어어. 그래. 빨리 갔다와! 딴청 피우다 걸리면 디질줄 알어!"

주인장의 윽박지름에 그의 딸인 소녀는 고개를 숙이고 뒤로 돌아 애완동물점의 녹슨 유리문을 삐걱하고 열었다.

그렇게 해서 소녀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소녀의 손에는 그의 아버지가 준 술값을 위한 더러운 삼천원과 이를 증명하기 위한 빛바랜 민증이 있을뿐이었다.






하늘은 지독히도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었으며, 날씨는 검은 아스팔트가 뻘뻘 익을 정도로 정말이지 더러운 날씨였다.

소녀는 땀을 흘린다. 그러고는 투명하고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창공에는 이름 모를 새 두 마리가 자유롭게 비행하고 있다. 소녀는 새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창공과, 대지와 주변 사람들의 공기를 들이 마신다. 새 두 마리가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전, 소녀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는다. 마치 새가 되고 싶다는 듯 말이다.

그러나 그 바람에, 소녀의 손에 들고 있는 천원짜리 지폐 석 장이 살랑살랑이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

소녀는 실수한 듯, 짧은 한탄을 내뱉는다. 그러고는 몸을 숙이고 천원짜리 지폐를 천천히 줍는다. 지폐를 줍는 소녀의 손은 무기력해 보인다.

모든 지폐를 주운 소녀는 다시 몸을 일으켜 천천히, 아주 천천히 후미진 골목에 있는 동네 슈퍼로 향한다.






"애기야, 오늘도 소주니?"

동네 슈퍼 아주머니가 소주를 카운터에 올리는 소녀를 바라본다. 표정에 의문과 걱정되는 낯빛이 가득하다.

"네. 아버지가 김치찌개하는데 필요하대서요."

소녀는 아버지의 민증을 내민다. 아주머니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미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안다. 알아. 하지만 너 같이 이렇게 어린애한테 술 심부름을 시키는 것부터가 이상하단 말이야...... 오늘은 그냥 보내준다만, 다음부터는 아버지가 직접 오시라고 하거라."

아주머니가 소녀가 내민 삼천원을 받고 거스름돈 600원을 건네준다. 아주머니의 말에 소녀의 얼굴이 회색빛으로 변한다.

"그건...... 안돼요."

아주머니가 소주 두 병을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던 손을 멈추며, 소녀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왜니?"

소녀는 아주머니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손을 배배 꼰다.

"그건......"

소녀는 고민한다.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어떻게 이 시간을 지혜롭게 넘어갈 수 있는지를 말이다. 소녀의 심장은 쿵쾅쿵쾅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소녀의 두 손은 떨리기 시작했고, 소녀의 몸에는 땀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어이구, 전화가 왔네? 이제 그만 가보렴."

때 마침, 슈퍼 안의 전화기가 따르릉거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소녀와 아주머니 모두가 전화기에 집중했고 방금 사건은 묻혀버렸다. 아주머니는 수화기를 들고 나서 소녀에게 손짓을 하며 가보라는 신호를 보냈고, 소녀는 인사를 하고 슈퍼를 나왔을 뿐이었다.


슈퍼를 나온 소녀는 스멀스멀 배어나오는 땀을 닦아내고 두 손에 술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조심스럽게 들고 걷기 시작했다.

동네의 높은 언덕을 내려올 때, 소녀 앞에는 담배를 문 고등학생 여럿이 있었다. 소녀가 그 들 옆을 지나갈 때,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소근대더니 소녀를 불러 세웠다.

"애기야!"

소녀는 흠칫하고 멈춰섰다. 그러고는 학생들을 쳐다 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 술 우리 주면 안될까?"

소녀는 그 말을 듣자 마자 무시하고는 고개를 뒤로 돌려 다시 제 갈길을 가려고 했다. 그 때, 여학생 하나가 담배를 비벼끄며 온화한 어조로 소녀를 불렀다.

"대신 네가 원하는 소원 한 가지 들어줄게!"

소녀는 다시 흠칫 하고 뒤로 돌아섰다. 이번에는 완전히 학생들을 향한 채,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순수함이 가득 찬 채 말이다.

"정말요? 정말로 이 술을 주면 소원을 들어줄거예요?"

학생들은 저들끼리 낄낄하며 웃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지. 자, 말해봐. 소원이 뭔데? 뭐든지 다 들어줄게!"

소녀는 낄낄거리는 학생들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고서는 눈을 감았다.

"항상 내가 꿈꿔왔던 소원은......""

소녀는 눈을 뜨고 잔혹할 정도로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새 한 마리가 되어 창공을 나는 상상을 한다. 육지에서의 속박과 고통을 모두 떨쳐내버리고 자유로워진다. 두 날개로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 상쾌한 바람이 부드러운 깃털을 기분 좋게 간질인다. 동료 새와 즐겁게 수다를 떨며 먹이를 낚아챈다.

고통도 없고 더 이상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래, 자유로워져서 하늘을 날고 싶다.

"하늘을 날고 싶어요!"

소녀가 비닐봉지를 든 두 손을 꽉 쥐며 우렁차게 대답한다.

"얘, 뭐라냐. 낄낄......"

학생 하나가 중얼거리며 소녀를 비웃는다. 그러나 제일 힘 써 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제지하며 소녀에게 다가온다.

"그래. 들어줄게."

소녀는 활짝 웃는다. 소녀는 들고 있던 술이 담긴 비닐봉지를 남학생에게 바로 건넨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

남학생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소녀의 바로 앞에 갖다 댄다. 소녀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뭔데요?"

소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너 하늘을 날고 싶다고 했지?"

소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내일 이 시간 쯤에, 새들을 잡아서 여기까지 가져와. 최대한 많이. 먼저 하늘을 날려면 새가 필요해서 그래."

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남학생은 웃음을 참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소녀는 지금의 말의 모든 부분을 곧이 곧대로 믿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순수함이 너무나도 컸기에. 그녀의 마음에는 거짓이란 악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그녀는 지금 속고 있었다. 너무나도 잔인한 현실인 것이다.

"네. 갖고 올게요."

소녀는 큰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그 결심을 비웃는 학생들은 잔인한 거짓으로 얻은 술의 뚜껑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 학생들을 뒤로 한 채, 소녀는 아주 아주 기쁜 마음으로 집을 향해 뛰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소녀는 '역시 애완'의 녹슨 유리문을 열고 다녀왔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나 가게 안은 새가 짹짹거리는 소리만 가득할 뿐, 아무도 없었다.

"어디 가셨지? 드디어 하늘을 날 수 있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드릴려고 했는데......"

소녀는 주인장이 없는 것을 보고 굉장히 아쉬워했다. 자신이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하면 분명히 자신의 아버지도 기뻐하실 것이고, 더 이상 자신을 때리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신뢰감 때문이었다.

소녀의 내면에는 순수함이 너무나도 평면적으로 되어 있었기에 자신 뒤에 숨어 있는 지독히도 끔찍한 현실을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의 아버지. 이 '역시 애완'의 주인장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그렇게 의심 없이 믿고 있었다. 자신을 상처주고 고통 받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인데도 소녀는 슬프게도 '순수함' 하나 만으로 주인장을 바라보았었다.

소녀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 역시 새의 분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지저분했다. 빛이 통하지 않는 작은 창문 하나와, 새 모이와 반찬이 같이 들어 있는 소형 냉장고 하나, 걸을 때 마다 쩍쩍 붙는 늘어진 마루. 언제 세탁했는지도 알 수 없는 더러운 이불 두 개.

이 모든 것이 소녀에게는 아무렇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말이다.

소녀는 기쁜 마음으로 소형 냉장고를 열어 랩에 씌인 찬 밥 한 공기와 오징어채 볶음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냉장고 옆에 눕혀져 있는 개다리소반을 바닥에 세운 뒤, 찬 밥과 오징어채 볶음을 올리고 숟가락 하나와 젓가락을 놓았다.

"잘 먹겠습니다."

아버지에게 항상 얻어 맞으며, 식사를 하던 소녀에게 뼛 속 깊이 새겨든 교육이었다. 누군가의 밥을 얻어 먹을 때는 꼭 '잘 먹겠습니다'라는 인사를 해야한다고 말이다. 소녀는 그 이후로, 식사 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먹을 때도 항상 '잘 먹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빼 먹지 않고 챙겼다.

영양가 부족한 식사였지만 소녀는 꼭꼭 씹어 먹었다. 정말로 맛있다는 듯이 말이다. 밥알 한 톨 한 톨까지 꼭꼭 씹어 먹었다.

심심했던 소녀는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구식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다. 텔레비전에서는 '동물의 천국'이라는 다큐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한 새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었는데 소녀는 그것이 굉장히 흥미로워 계속해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민물가마우지는 대부분 해안에서 생활하나 큰 강이나 호수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크기가 큰 종류는 몸길이가 70㎝ 이상이고, 가마우지 중에서 가장 크고 흔한 종은 바로 이 민물가마우지로, 뺨이 흰색이고 몸길이는 약 90㎝입니다. 둥지는 나뭇가지와 해조류를 이용하여 절벽의 바위턱에 만들고요. 가마우지는 물 위에서 헤엄을 치면서 먹을 물고기
를 찾습니다. 물고기를 발견하면 물 속으로 잠수하여 물갈퀴가 달린 발로 힘차게 헤엄을 쳐 물고기를 잡죠. 잡은 물고기는 물 위로 가지고 올라와서 먹습니다.)

"저 새는 참 특이하구나. 먹이를 잡을 때 날지를 않는다니. 그럼 자유롭지 못할거야."

소녀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다가 텔레비전의 전원을 끄고 밥먹기에 전념했다.

"나는 꼭 날거야. 무슨 수를 쓰든. 나는 내일 꼭 날거야. 내가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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