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동안의 일을 일기처럼 남겨봅니다.
장문입니다..
토요일이다..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나는 인건비라도 아끼고자 주말엔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 직접 가게를 본다.
전날 새벽 두시에 깬뒤로 잠을 못잔 여파로.. 피곤하고 피곤하다.
밀려드는 초딩들의 압박을 꾸역꾸역 참아내며 오후 3시, 교대시간까지 버텼다.
날씨도 좋고,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갔으면 요 몇 일 우울한 내 기분이 좀 풀렸을지도 모르는데, 불행하게도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집에오자마자 세수만 하고 침대에 뻗었다. 땀을 흘려 찝찝한 몸둥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피곤했는데.. 오후 4시에 잠들어서 6시반쯤 깻다.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미투데이, 네이트.. 매번 보는것들..
눈 으로는 모니터를 보면서 머릿속으로는 복잡하다.
"그래도 주말인데, 여자친구 퇴근할때 맞춰서 고기라도 구워 먹고 이야기라도 좀 하고 들어올까?"
평소처럼 대충 카톡으로 퇴근때 수다 좀 떨고 피곤하니까.. 게다가 여친은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까..
그냥 그렇게 각자 집에서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근래, 계속해서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여친..
어깨도 신경통으로 아프고, 몇 년전에 다쳤다는 손목은 비만 오면 시리다고 하고..
잔병을 달고 산다는 걸 알기에, 얼굴이라도 보자 라는 마음에 샤워하고 옷을 입고 퇴근 시간에 맞춰 나섰다.
계획은, 일하는 마트 앞에서 미리 기다리다가 짠~ 하고 나타나서 같이 집으로 돌아오는거 였지만..
집에서 아버지 핸드폰에 작업을 좀 하느라 늦어져버려서 집근처 지하철 역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여친 퇴근~!"
평소처럼 카톡으로 이모티콘 담아서 수고했다고 퇴근 메세지를 보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지하철 탔냐고 물었다.
탔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먼저 도착할꺼 같아서 미리 지하철역 출구쪽에서 기다리기를 20분..
30분..
이상하다, 그때탔으면 벌써 올라왔어야 하는데..!?
혹시 먼저 도착했나?
40여분을 기다리고 안되겠다 싶어서 여친 집으로 향했다.
1층인 여친 원룸.
불이 꺼져있다.
안왔구나 싶어서 다시 대문밖으로 나와서 집앞 슈퍼에서 빈둥빈둥..
아무래도 다시 지하철역으로 나갔다간 엇갈릴수도 있겠다 싶어서..
10시 퇴근인 여친은 11시가 넘어도 집으로 오질 않는다.
그 와중에 카톡이..
집에 도착했다고
집에 기르는 고양이가 또 어질러 놓았다고 치우느라 바쁘다고..
뭐냐..?
집안 불은 아직 꺼져있고 아무도 들어가는 걸 못봤는데..?
이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잘 보이는 정면 오피스텔 1층 주차장 기둥쪽에 숨어 있었다.
11시..
12시..
12시가 훌쩍 지나도 집에 올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 와중에 카톡은 계속 오지..
정리 다했다.
씻는다.
요즘은 퇴근하면 너무 피곤해서 계속 드라마도 못보고 바로 기절해서 잠든다..
남친은 뭐하고 있느냐..?
심란한 마음에 그래도 완전 거짓말은 하고싶지 않아서 바람쐬러 동네 한바퀴 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는 이제 잔다고, 나보고도 얼른 들어가서 자자고 한다. 혼자 돌아다니는거 생각하니 마음아프다고..
참 고맙네..
답답한 마음에 예전에 우리 매장에서 일했던 누님에게 문자로 물어보았다.
도대체 남친에게 거짓말하고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않는 여자들의 심리는 무엇이냐고.
한 번 만난적이 있는 누님은, 그럴 여자로 안보였다고, 믿고 기다리라고 한다.
내가 답답해하니 전화해서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데..
여자만 촉이 있는게 아니지, 남자도 감이라는게 있거든..
왠지 전화를 하면 왜 나를 못믿느냐는 둥, 이것저것 잔소리에 오히려 내가 말릴거 같았다.
집에 도착했다는 거짓말 빼고는 아무것도 확인한게 없기도 했고..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이 정도 시간이면 누군가와 함께오든 혼자 택시타고 오든 차를 이용하겠다 싶어서
차 소리가 나면 기둥에 붙어서 앉아 숨기까지 했다.
새벽 1시쯤
여친집 골목앞에 왠 차가 들어와서 주차를 한다.
바래다주는거면 주차까지 하겠나.
아니나 다를까 조수석에서 내리는 사람이 여친이다.
왠 남자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집쪽 골목으로 들어간다.
나도 모르게 숨어있던 몸이 따라나와서 주차된 차 근처까지 왔지만 다시 생각해봤다.
혹시라도 그냥 아는 지인인데 바래다주러만 온거라면 아마 바로 나올꺼다.
다시 주차장으로 가서 숨어 있기를 5분..
시간은 5분정도 인거 같은데 30분은 되는거 같은 기분에 못참고 집으로 찾아갔다.
다행히 대문이 열려 있어서 뒤쪽 창문가로 숨어들어가봤다.
거실 창문이 열려 있어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이런저런 이야기들 다 귀에 제대로 박히지 않는 와중에 한마디가 들려왔다.
남자가 여친에게 자기야 어쩌고 저쩌고..
그 뒤로 이어지는 웃음소리들..
순간 미치는 줄 알았다.
배신감, 모욕감, 이루 말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
와.. 이래서 살인도 하는 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음같아서는 더 기다렸다가 결정적일때 아예 창문가에 얼굴 드러내고 부르고 싶었다.
누구누구야 하고..
돌아 나오면서 전화를 걸었다.
안받는다.
카톡을 보냈다.
옆에 있는 자기야 조용히 시키느라고 전화 못받나?
대문밖으로 나오면서 전화를 두번 더 했다.
여전히 안받는다.
무심코 봤는데, 그 남자의 차 앞창문에 부재중 전화알림판이 내가 면허 취득하고 선물로 받은것과 같은 디자인이었다.
그냥 잘지내라고 카톡 보내고 가려고 했는데, 그거보니 도저히 안되겠더라..
전화를 걸면서 다시 집앞 현관문으로 가서 노크를 했다.
참.. 신사적이지..
두번..
세번..
노크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었다.
분명 집안에 있는거 확인했고, 노크하는 순간에도 안에서 부스럭거리고 뭘 하는지 인기척이 들리는데 안나오다니..
나도 모르게 주먹으로 있는 힘껏 세번 쳤다.
그제서야 나오더라.
나오자마자 현관문은 잠그더니 나가서 이야기 하자고..
할 이야기 없다고, 다시 들어가라고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왔다고 하고 바로 돌아서서 나왔다.
그래도 졸졸 따라 나오네..
나오면서 그 남자 차 앞 전화번호판을 가르키면서 한마디 해주는것도 잊지 않았지..
잘지내라고 말한마디 던지고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보니 멀찍이서 보고 있더라.
그때부터 집까지 계속 걸었다.
천천히 걸으니 1시간정도 걸린거 같다.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온 몸에 열이 올랐다.
억울하고 분했고, 배신감에 실망이 물밀듯 밀려왔다.
하고 싶지 않았는데, 분한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야 했냐고 이유라도 알고 싶어서..
첫번째 안받아서 다시 걸으니 전원이 꺼졌단다.
하고싶은 말 다 퍼붓듯이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끝에는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잔병도 많은데 아프지말고 잘 지내라고
그 동안 고마웠다고.. 그냥.. 어쩔 수 없게 좋게 써버리고 말았다.
그 문자 보내고나니 그 동안 연애하면서 다녔던 여행이나 데이트들이 어쩌니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지..
대로변 걸으면서 쪽팔리게 훌쩍거렸다.
그나마 사람이 별로 없는 길이라 다행이지..
집근처 편의점에서 연애중에 싸우고 화해할때마다 마시던 삿뽀로 맥주캔을 습관적으로 사고 말았다,
아파트 앞 벤치에 털썩 주저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데
참.. 모든게 허무하고.. 허무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림판에 이 글을 적고 있다.
원래는 미투데이에 이미지로 올리려고 썼으나.. 쓰다보니 이게 뭔짓인가 싶기도 하다.
지인들과 술이라도 한잔했다면 지금 이 내용을 아마 술자리에서 하고 있었겠지..
어떻게든 정리를 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속이 터져버릴거 같아서..
83년생인 나.
또 새롭게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아니 사람을..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만 들고 있다.
글을 마무리짓고 컴퓨터 주변을 둘러보니..
받은 선물은 또 왜이렇게 많은지.. 왜이렇게 눈에 걸리는지..
당분간 꽤 방황할듯 싶구나..
어찌되었든.. 힘든 시기이지만, 잘 이겨내고..
잘이겨내자..
살면서 네이트판에 처음 글을 남겨봅니다.
이 난리를 치루고 오니 벌써.. 새벽 4시가 다되어 가네요.
여러분,
사랑은 믿어서 하는겁니까.. 믿기 때문에 사랑 할 수 있는 겁니까..?
(이 와중에 친구 한넘이 자기도 심란하다고 한잔하자네요.. 그래도 왠지 나가면 안될거 같아서 거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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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써놓고 틈틈이 댓글만 봤습니다.
본문은.. 다시 보면 겨우 노력중인데 계속 상기될 거 같아서요 ^^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슷한 사연이 많다는게 더 놀랍군요.
방황은 좀 하겠지만.. 댓글로 해주신 말씀처럼 힘내서 다시 시작해봐야죠 ^^
지금 저처럼 힘드신분, 힘드셨었던 분들 모두 부디 행복하시길 바랄께요!
보란듯이 잘 사는게 뭔가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거 같으니까요 :)
- 7월 3일 새벽. 장마철 장대비와 천둥소리를 벗삼은 pc방의 새벽입니다. ㅎㅎ -
(금연법 때문에 손님이 떨어져서, 조용한 새벽이 여러가지로 힘들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