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3년도 7월 7일에 정말 너무나 사랑하는 그녀를
저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원래 제 꿈이 작가였는데 그녀가 생전에 제 꿈을 그렇게
이뤄주고 싶어했거든요. 그래서 그녀와의 추억을 되새겨볼겸
그녀와 저의 사랑 이야기를 글로 써내려가봤습니다.
예쁘게 봐주시고 이렇게 떨어져서 살아 갈수 밖에 없는
그녀와 저에게 힘을 주세요.
잠이 너무 와
요즘 피곤해서 그런가봐
푹 자고 일어나면 좀 괜찮아 지겠지
머리도 안 감고 잠든 것 같은데
몰라, 일단 잘래
하늘에는 눈부신 해가 떠있지만 날씨는 많이 쌀쌀했다. 나는 걷었던 셔츠의 팔 부분을 내리며 파스구치매장 창문에 비치는 내 모습을 곁눈질로 보며 걸었다.'부쩍 살이 쪄서 턱 선이 신경 쓰여.'
나는 필요이상으로 남들을 의식하며 매장을 완전히 지나칠 때까지 몇 번 씩이나 반복해서 내 턱을 힐끔힐끔 보았다. 심호흡도 크게 한번 하고 신발도 한번 씩 쳐다보며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약속장소였다. 문을 열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찾았다. 그녀는 기이한 패턴의 원피스에 코트 차림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대로 그녀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가자 그녀는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웃어보였다.
“빨리 왔네?”
그녀는 아주 활짝 웃으면서 말했지만 말투는 그게 아니었다. 무서운 여자다.
“아 미안, 조금 늦었어. 벌써 커피마시고 있었네. 배고프지? 일어나자.”
나는 민망한 표정을 감추려고 애썼다.
첫 데이트부터 지각이라니 무슨 약속이든지 10분 일찍 가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필 실수한 날이 오늘인 것이 다.
나는 그녀 앞에 놓인 커피를 들며 그녀 손을 잡고 일으켰다.
“조금밖에 안 늦었는데 참~미안한가봐 뭔가 급해 보이네?”
내 생각에 그녀는 확실히 화가 나 있는 거다.
“아니야, 너 면 좋아하잖아? 우리 쌀국수 먹으러가자. 여기 맛있는데 있어.”
그녀는 활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조금 무서운 면이 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쌀국수 가게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걸으면서 내 주특기인 곁눈질로 그녀를 몇 번 보았는데 그녀는 무표정으로 쭉 걸었다. 초반부터 기분이 상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가게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역시 쌀국수는 외식메뉴 중에 그다지 인기 종목은 아니다.
우리는 가게의 정중앙에 위치한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여기 처음 와보지? 엄청 맛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게야.”
“응. 나는 면이라면 다 좋아해. 맛있을 것 같아.”
그녀는 가식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거 먹고, 커피마시면서 얘기 좀 하다보면 영화시간 딱 되겠다. 그치?”
“원래 나 커피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하루에 두 잔이나 먹게 만들려고?”
나는 사실 이 여자가 이렇게 비꼬는 걸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아, 커피... 그래 그럼... 음... 스무디 괜찮지 않을까?”
“응, 스무디 좋아.”
그녀는 혀를 쏙 내밀며 그렇게 또 활짝 웃었다. 자기가 귀여운 외모인지 아는 것 같다. 자신의 외모를 잘 이용하는 여자는 매력적이다.
나는 순간 이상하게 행복했다.
어느 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나왔다. 그녀는 젓가락을 꺼내 내 앞에 놓아주고 있었다.
“원래 이런 것은 남자가 해주는 거야. 밖에서는 여자가 여왕이어야지.”
나도 젓가락을 꺼내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
“음, 그런가? 근데 그럼 안에서는 남자가 왕이라는 거지? 결혼하고 집에서 여자만 부려먹으려는 남자들 심보 아니야? 밖에서는 잘해주고 안에서는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그런 의미인가?”
그녀는 무섭다. 정말 내 생각을 읽은 것 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정확히 맞췄다.
“근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밖에서는 안에서든 난 내 남자가 왕이었으면 좋겠어. 안에서 아무것도 안 시킨다고 약속하면 밖에서도 내가 다 해줘도 되지?”
그녀는 이번에 숟가락을 내 앞에 놓아주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먹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면을 입에 끌어넣었다.
“왜 그렇게 못 먹어? 맛이 없나?”
나는 내가 내 그릇을 다 비울동안 반절조차 먹지 않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커피 마셔서 그런가봐. 너무 맛있는데 배불러서 못 먹겠어.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녀는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소변이 급했나보다. 뒤도 안돌아보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한참 뒤 돌아온 그녀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근데 너 눈이 빨개. 울었어? 변기가 울렸니?”
“힝... 그런 농담 재미없어. 그냥 렌즈 바꿔 끼웠을 뿐이야.”
그녀는 더 이상 먹지 않겠다는 표현인지 그릇에 담겨있던 젓가락을 빼서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못 먹겠으면 먹지 마. 스무디는 먹을 수 있으려나?”
“응. 스무디는 먹을 수 있어. 시원한 거 빨리 먹고 싶다. 빨리 먹으러가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빌지를 들고 일어났다. 나는 앉아있다 깜짝 놀라 일어나 빌지를 빼앗아 들었다.
“밥은 보통 남자가 사는 거야. 네가 커피를 사. 우리 역할 분배를 확실히 하자고.”
나는 가게 문을 열어 그녀를 먼저 내보내고 계산을 한 후 가게를 나왔다.
“계산은 아무나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무슨 기분이 나빠. 그냥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한 것뿐인데. 자자, 올라가자.”
가게에서 나와 나는 그녀 손을 잡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온통 금연인 커피숍뿐이 없어서 한참을 걷다 흡연이 가능한 커피숍을 찾아 들어갔다. 우린 또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정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았다.
“플레인 스무디 2잔이요. 재떨이도 2개 가져다주세요.”
그녀는 스무디와 재떨이가 오자마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나도 그런 그녀를 따라 담배를 입에 물었다.
“결혼하면 담배 끊어야하는데 걱정이야.”
그녀는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담배 피는 여자는 섹시하다. 나는 우리나라도 길거리에서 여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태울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 중 하나다. 뭐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이야기겠지만...어쨌든 우리는 담배를 다 태우고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녀가 물었다.
“너는 내가 왜 좋아?”
그녀가 아주 형식적인 질문을 던진 것에 나는 굉장히 당황을 했다.
“예쁘잖아. 나는 예쁜 여자가 좋아.”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민망한 대사를 뱉었다.
“나는 예쁘지 않아. 조금 귀엽게 생겼다고는 생각하지만 예쁘게 생긴 얼굴은 아니지.”
그녀도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대사를 쳤다. 그래서 나는 한술 더 떴다.
“여자는 눈, 코, 입이 전부 예쁘면 좀 그래. 그럼 그게 예쁜 거냐? 잘생긴 거지. 너처럼 눈, 입이 예쁘고 코는 좀 못생겨야 여성스럽게 예쁜 거야.”
그녀는 갑자기 울상을 지었다.
“코... 내 코 싫어... 나도 코가 너 같았으면 좋겠어.”
“안대. 이런 코면 여성스럽지 못해.”
“우린 눈썹 진한 것도 비슷하고 꼭 남매 같아. 난 동안이니까 네가 오빠. 근데 있잖아. 내 동생은 나랑 닮지 않았어.”
그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 내 동생은 친동생이 아니야. 우리 부모님은 재혼하셨고, 나는 엄마 딸, 동생은 아빠 아들이야. 처음에는 동생이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내 동생이 제일 좋아. 내 동생이 최고야. 내 동생 잘생겼어. 너랑은 다른 잘생김이랄까 어쨌든 잘생겼어 내 동생. 나중에 보여줄게. 친하게 지내 동갑이잖아.”
“응. 그래야지.”
나는 이런 중요한 얘기를 듣는데 이상하게 동생한테 질투심이 생겼다.
“그럼, 여기서 질문. 동생이랑 나랑 둘이 있어. 한명만 선택해야해. 누구를 선택할 거야?”
나는 정신병자 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도 난 왠지 모르게 이게 굉장히 중요했다.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말을 못하고 고민했다. 나는 확실하게 들어야했기에 보채기 시작했다.
“뭐야, 누구야 누군데 빨리 선택해.”
그녀는 여전히 울상인체로 대답했다.
“둘 다 필요해. 내 동생도 있어야하고 너도 있어야대. 고르기 힘들어.”
“그럼 1,2위라도 정해 당장.”
“너 1위 시켜줄게. 근소한 차이지만 네가 1위야.”
나는 근소한 차이라는 말만 없었으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괜히 찝찝했다. 그래도 내가 1위라는 말에 기분은 좋았다.
“나는 지금 사촌오빠랑 내 동생이랑 살고 있어. 엄마, 아빠는 따로 살아. 사촌오빠도 피가 섞이진 않았어. 어떻게 하다 보니 어려서부터 같이 살게 된 친 오빠 같은 사람이야.”
다시 중요한 얘기로 돌아왔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다르다. 내가 생각했던 거와는 다르다.
그녀의 이미지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책임감 있고 정숙한 첫째 딸 같은 그런 여자다.
그런데 재혼한 가정이었다니, 내 동생, 내 동생 노래를 부르던 내 동생님이 친 동생이 아니라니,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다니, 거기에 사촌오빠까지. 피가 섞이지 않은 남자 둘이랑 한 집에서 살고 있다니, 나는 그 사실들이 충격적인 게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 사람을 정말 잘 알아본다고 자부한다. 나는 정말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하나 없이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편부모 가정이나 가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티가 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그런 부분을 감지하지 못한 나는 이런 얘기를 듣고 조금 당황했다. 그녀가 갑자기 대단해 보였다. 뭔가 결여된 부분이 티가 나지 않도록 자랐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친 아빠를 찾아보려고 생각 했는데 의지가 별로 없었나봐. 생각만 하다가 그만뒀어.”
“그렇구나, 나도 뭐 굳이 찾아 볼 필요 없다고 생각해.”
“응. 나는 지금 행복해. 너무 착한 내 동생도 있고, 잘생긴 남자친구도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
“주책이네. 잘생긴 남자친구라는 말은 너무 크게 하지 마. 남들이 욕 한다 진짜.”
“어때? 정말 잘생겼는데? 키는 좀 작아도 괜찮아. 나도 작으니까.”
“키는 말하지 마. 내 키가 180만 넘었어도 이렇게 살지 않았어.”
“아, 그래? 그럼 나를 안 만나줬겠지. 아주 굉장한 여자를 만났을 거야 그렇지? 네 키가 작아서 천만 다행이야.”
“내말은 그게 아닌데. 어마어마하게 꼬고 드네?”
“헤헤, 나 잘 꼬아.”
그녀는 예쁘기도 모자라서 이렇게 말도 잘하는 최고의 여자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책임감은 정말 너무할 정도로 없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우리 엄마는 무서운 사람이야. 나는 엄마한테 항상 착한 딸이어야만 했어. 엄마가 사실 너무 미워. 너무 피곤한 사람이야. 나는 엄마한테 일부러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복수야. 엄마한테 상처 주면 나는 마음이 편해져.”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건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그런 부분은 완전 어린애네? 네가 어머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잘못 된 거야.”
“아닌데,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아. 엄마는 날 버리기도 했었어. 그러다 다시 돌아왔지.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야. 그냥 날 사랑하는 척, 스트레스만 주고 내 마음은 보려고 하지 않아. 무엇보다 엄마는 나를 절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아. 나한테 가족은 내 동생뿐이야. 널 만나기전까지 난 내 동생이 전부였어. 이제는 너랑 내 동생 두 명이 전부야.”
“부모가 자식을 이해해야할 의무 따위는 세상에 없어. 난 그렇게 생각해.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잖아? 부모는 아무리 못난 자식도 틀린 자식도 이기려고 드시지 않아. 뭐든지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로 다 져주시는 거야. 비슷해. 부모는 낳아준 것만으로 감사해야할 존재들인데 그것에 명분 따위는 필요 없어. 모든 것이 결국 어머님만의 사랑 방식이고 너는 그걸 받아드리고 감사해야해.”
“그럼 나를 한번 보지 않는 친 아빠도 날 사랑하는 건가?”
“세상에는 예외라는 말이 있지.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게 있잖아. 그건 뭐니? 피가 섞이지 않아도 길러주셨을 때의 얘기지? 그럼 반대로 피가 섞였어도 기르지 않으면 부모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 되잖아. 어쨌든 요점은 어머님은 너를 사랑하셔. 자신을 괜히 혼자서 불쌍하게 만들지 마. 사랑 많이 받고 있으면서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해? 그거 엄청 피곤하다. 내가 예전에 해봐서 알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너는 서울대, 연대, 고대 같은 곳에 들어갈 거야. 그리고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다닐 것이고 남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어른이 될 거야.’ 라고 항상 말했었어. 근데 막상 어른이 되니 현실은 그게 아니었지. 난 내 현실을 부정 했었어. 엄마가 나에게 괜한 희망고문을 했다고 생각했었어. 너무 큰 꿈과 미래를 그려줘 놓고 아무것도 현실화시켜주지 못했다고 원망했어. 내가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것은 다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나는 엄마한테 꿈과 희망이었어.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큰 꿈과 미래가 그려진 그림을 선물해주셨던 건데 내가 그 그림처럼 자라나지 못한 거였어. 지금은 그래서 오히려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게 생각해.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려고 하고 있어.”
“음...잘 모르겠어. 네 말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닌데, 잘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아닌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볼게. 너를 이렇게 잘 키워주신 어머니 정말 뵙고 싶다. 의외로 무서울 것 같아. 어머니한테 나는 예쁨 받을 수 있을까?”
“당연하지. 뭘 물어. 나도 어머님을 뵙고 싶어. 어쩜 이렇게 예쁘게 키우셨는지 대단한 분 같아.”
나는 시계를 보았다. 영화시간이 다 되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는 첫사랑에 관한 멜로물이었다. 엄청 지루한 내용이었지만 중간 중간 코믹스런 장면을 넣어 지루함이 그나마 덜했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커피숍으로 향했다. 둘 다 별로 입맛이 없어서 밀크 티 하나만 시키고 마주보고 앉았다.
“영화 볼만 했던 것 같아. 시간 늦었는데 조금만 앉아 있다가 집에 가자.”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알았어. 아, 행복해. 고마워. 내 앞에 나타나줘서. 네가 너무 좋아. 나는 널 만나기 전까지 남자 복이 너무 없어서 죄다 못난 놈들만 골라서 만났던 것 같아. 나는 사실 네가 나한테 과분한 남자 같아. 벌써부터 불안해. 네가 언젠가 나를 떠날까봐 너무 불안해.”
나는 이런 얘기를 매우 싫어한다. 모든 일에 부정적인 생각들을 먼저 해버리는 것이 싫다. 내가 예전에 자주 그랬었는데 지금 그녀가 그런 것 같아서 뭔가 짜증이 난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구나. 왜 그런 생각을 해? 부족하긴 뭐가 부족해. 너는 좋은 여자야. 오히려 나한테 과분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그런 생각 안 해.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일 것만 같아.”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타일렀다. 그녀에게 긍정바이러스를 옮겨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하자가 많은 사람이야. 건강도 안 좋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야.”
시작됐다. 원래 부정적인 생각 다음은 자기비하다. 이건 세트로 붙어 다닌다.
“또 발동을 거시네.”
그녀는 목소리까지 떨어가며 말했다.
“정말이야. 난 칠삭둥이로 태어나서 몸이 약해. 아픈 곳도 많고, 임신도 그냥은 할 수 없어.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된다고는 하는데 확실한 것도 아니야.”
그녀는 ‘이런 나라도 정말 괜찮아?’라는 말을 몇 번 했었던 것 같다. 분명 우리는 서로 첫눈에 반하여 이미 꽤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둘 다 어리지만은 아닌 나이이기에 진지하게 미래를 함께 해 나아가 보기로 결심한 후 만남을 시작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는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나에게 절대 부족함이 없는 여자였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결혼해도 어쩌면 아이를 못가질수도 있어. 인공수정은 나라에서 세 번까지는 지원금이 나온다더라. 그 세 번 까지만 시도하고 그 이상은 시도 안할 거야.”
그녀는 새침때기처럼 말했다. 내가 뭐 다섯 번은 해보자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혼자 괜히 꼬라지가 난 것처럼 세 번 이상은 안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혼을 너랑 나랑 둘이 하는 거지. 애랑 하는 것이 아니잖아. 남녀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데 아이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겠지. 그래도 분명 아이가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해. 나한텐 선택사항이야. 쉽게 낳을 수 있는데도 안 낳고 사는 사람들도 있는 세상인데 뭐. 내 생각은 그래. 뭐 내가 나중에 결혼하게 돼서 임신 될 때까지 괴롭힐까봐 미리 밑장 까는 거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정말 괜찮았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다. 내 미래의 반려자가 식물인간으로 사는 것 까지 생각해 본적이 있다. 이 정도의 사실에 놀라거나 걱정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녀의 표정과 말투 속에 ‘평범하고 싶다. 나도 예쁜 애기를 꼭 가지고 싶다.’ 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마음이 아파왔다.
“나는 아빠도 좋아하지는 않아.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들은 좋아할 수가 없어.”
“동생이라도 좋아하는 게 천만다행이구나.”
“응. 내 동생은 너무 착해. 내 동생만 있으면 대.”
나는? 이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녀와 나는 계속해서 서로가 성장해온 얘기, 행복했던 얘기, 상처받았던 얘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그렇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시계를 보니 벌써 날이 바뀌어 있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자.”
“응. 근데 나 집에 안갈 거야. 너랑 같이 있을래.”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나는 거부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도 그녀와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밤새 함께했다. 마주보며 웃고, 떠들고 사랑을 나누고 그렇게 밤새도록 우리는 사랑했다. 나는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찝찝해
온 몸에 힘이 없어
일어나기 귀찮아
전화기가 어디 있지
그냥 좀 더 자야지
“여기 닭갈비 2인분이요.”
나는 평소와 같이 일하고 있다. 전화기가 울린다. 내가 딱히 원칙주의자는 아니지만 손님을 상대할 때만큼은 전화기를 잡지 않는다. 한 테이블에 음식이 완전히 나가고 나는 전화기를 보았다.
그녀한테서 전화가 와있었다. 나는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주, 바쁜가보네? 요즘 계속 전화해도 바로 안 받고 나중에 전화하네? 마음이 변해 가나봐?”
그녀의 목소리는 사랑스럽다. 다만 애교를 제거하면 엄청 듣기 싫은 목소리가 된다. 지금 딱 그렇다.
“무슨 소리야. 가게인거 뻔히 알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중에 한가해지면 전화할게.”
나는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불편하다. 어린애들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기도 하다.
그녀에게 단점은 없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것뿐이지. 단점이라고는 한구석도 없는 그런 완벽한 여자다.
하루 장사가 끝이 나고 가게 문을 닫고 집에 올라가며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끝났어. 이제 집에 올라가는 중이야. 뭐하고 있었어?”
“나 그냥 있었어. 근데 여보 나한테 요즘 너무 소홀한 거 같아.”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사랑스러워졌다.
“왜 그래 이쁘니, 뭐가 문제야? 한번 말해 봐요.”
“여보는 내가 여보 곁에 있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그녀는 훌쩍대며 말했다.
“응. 당연하지. 내가 여보 곁에 있는 것도 여보가 내 곁에 있는 것도 다 당연한 거잖아.”
그녀는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뭔가 끊는 속도가 빨랐다. 아니, 대화 흐름 상 끊을 타이밍이 아닌데 끊은 거다. 항상 그녀가 먼저 끊도록 전화기를 쳐다보고 있는 나지만 지금은 좀 짜증났다.
나는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누웠다. 그녀한테서 문자가 왔다.
‘여보 내가 여보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 마.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되는 거야. 꼭 알아줬으면 해.’
나는 문자를 보며 생각에 빠졌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갑자기 오늘 왜 이러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너무 피곤한 상태여서 나는 알았다며 대충 답장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그녀를 만나러 나갔다. 어느 때와 같이 우리는 커피숍에 들어가 흡연석에 앉았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내가 말을 먼저 꺼냈다.
“여보, 뭐가 문제야? 내가 정말 변했다고 느껴?”
그녀도 담배에 붙을 붙이며 대답했다.
“응. 여보가 변했어. 나는 자기사랑이 필요한데 자기는 나한테 사랑을 주지 않아. 그냥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해버리는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서 화를 내 버렸다.
“아니 그게 말이야? 사랑을 주지 않는다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번이라도 말 안 해준 적 있어? 내가 전화기가 한번 꺼져 있기를 했니, 아니면 전화를 일부러 안 받은 적이 있니, 보이지 않아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도록 항상 말해주잖아. 그게 사랑이야.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다 보이는 게 그게 사랑이라고. 당신도 내가 보고를 잘하는 남자라 너무 좋다고 했었잖아. 귀찮지도 않느냐고 적당히 해도 된다고 했던 건 오히려 당신 쪽이었잖아?”
나는 열변을 토했다. 나는 정말 그녀를 사랑한다. 나는 그저 지금 일과 사랑의 경계에서 그녀가 길을 잃은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서럽게도 울었다.
“여보, 울지 마. 왜 울어? 아직도 불안해? 일을 해서 자주 못보고 그런 거 내가 다 미안해. 나도 알고 있어. 내가 매일매일 만나서 같이 밥 먹고 놀아도 될 만큼 능력이 안대는 거에 대해 너무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는 내가 여보를 만나기전에 왜 더 경제적으로 여유를 확보하지 못했을까 후회한 적도 있어.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나랑 결혼한다며. 밖에서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나서 밥 사먹고 커피 마시고 놀고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나한테는 없어. 그거 다 알고 있잖아? 너무 미안한데 여보, 그런 것은 우리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아. 나중에 연애하는 것처럼 결혼생활 하면 된다고 여보가 그랬잖아. 지금은 서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주말에 만나서 같이 놀면서 일주일치 충전하고 그렇게 해야지 어쩌겠어. 나도 너무 미안하게 생각해, 나도 남들처럼 평일에 일 끝나고 만나서 같이 마주보며 대화하고, 함께 걷고 그러지 못해서 너무 속상해.”
그녀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알아. 다 알아. 내말은 그게 아니야. 처음에는 내가 전화하면 한번 울리면 받고 문자 답장도 엄청 빠르게 해줬었는데 요즘은 안 그러잖아. 그게 변한거지 뭐야? 전화도 컬러링이 다 끝나가야 받고 받아도 일하니까 조금 이따 전화 한다 그러고 문자도 보고도 한참 이따 보내고 이게 뭐야. 나는 더 사랑받고 싶어.”
그녀는 말을 마치고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자기가 왜 이런 걸로 슬퍼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존심 상해서 죽을 것 같다고 아주 통곡을 했다.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그녀는 애정결핍이다. 안쓰러웠다. 내가 변한 게 아니다.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풍처럼 잘 익어간다. 단풍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분명히 색깔은 변해간다. 처음과 나중이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여보, 여보는 진짜 사랑 안 해봤다고 했잖아. 3개월 이상 만나본 남자도 없다했지. 우리는 진짜 사랑하잖아. 우리 만난 지 시간도 꽤 흘렀어. 여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있잖아. 자 머릿속에 그려봐. 거실에서 여보는 컴퓨터로 일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어. 나는 바닥에 뒹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고 있어. 그러다 눈이 마주쳐. 그리고 웃으면서 또 각자 할 일을 자연스레 하지. 굳이 눈이 마주치지 않아도 대. 그냥 내 사람이 저기 있다, 무엇을 하고 있다,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해.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언제나 다 알고 있다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같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떨어져있어도 그 사람이 하고 있을 행동들이 눈에 선하다면 그건 너무 행복한 사랑이 아닐까? 나는 우리가 정말 행복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나는 정말 여보를 너무 사랑해. 정말 못 느끼겠어?”
그녀는 울음을 그쳤다. 다행이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우리 연애초반에 여보가 나한테 전화한 횟수가 몇 번이나 되니? 요즘에야 자기가 먼저 가끔 하지. 그리고 문자도 낮에만 보내다가 저녁시간에는 여보가 어머님 만나러 간다하고, 일한다 해서 잘 하지도 않았잖아. 내가 한가한 시간에만 연락 했었잖아. 근데 지금은 뭐야? 나는 남들 밥 먹고 노는 시간에 일하는 사람인데 그 시간에 전화하고 문자해놓고 무슨 내가 변했다고 징징 거리는 거야?”
그녀는 가만히 듣다가 혀를 내밀고 웃었다. 그녀는 저거에 내가 약하다는 걸 잘 안다. 억울해서 열이 슬슬 오르던 참에 타이밍 좋게 저러고 있다. 저것도 능력이라 생각했다.
“여보 말이 맞는 것 같아. 우리가 만난 지 정말 꽤 시간이 흘렀나봐. 장기간 연애를 못해봐서 내가 잘 몰랐나봐. 나는 뭔가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 줄어서 섭섭하고 마음이 아팠는데, 여보 말 들으니까 마음이 편해졌어.”
“그래 여보, 내가 여보 굳이 귀찮은 거, 하기 싫은 거 뭐든 다 하려고하고 다 해주려고 하는 거 하지 말라했지? 그게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만들어. 사랑하니까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건 말도 안대.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은 바로바로 다 말하는 거야 그리고 그걸 사랑으로 덮어주는 거야. 뭐든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이해하고 이해하다보면 그냥 이해해만 하다 끝나버려. 나중에 사랑해가 되질 않는다고. 뭐든지 다 말해. 우리는 무작정 이해하려고만 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말자. 서로 뭐든지 얘기해서 안 맞는 부분들은 서로 양보하고 사랑으로 덮을 수 있는 부분들은 덮어주자. 나는 언제나 여보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어.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고 이렇게 말한 건 칭찬해줄게.”
“응. 섭섭한 건 그때그때 다 말할 거야. 근데 정말 몰랐는데 나 사실 요즘 너무 편안했어. 예전에 만났던 애들이랑 연애할 때는 항상 피곤하고 머리에 쥐가 다 났는데 너무 편안해. 정말 행복해. 행복해서 작은 것에도 불안해지고 그래서 그런가봐.”
“그래 그런 거야. 자기 없으면 못살게끔 만들려고 애를 쓰니까 피곤하지. 못된 정복심이 있어 아주. 불안해하지마.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여보가 떠날지도 모르니 잘하자고 항상 다짐하고 있어. 사랑하면 원래 불안한 거래. 결혼해도 끝이 아니지, 이혼당해서 홀 애비로 살면 뭐가되니? 죽을 때까지 불안해해야겠지 뭐. 그게 조금씩 무뎌지고 진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꽤 오랫동안 서로 때문에 불안해해야 할 거야.”
그녀 표정이 밝아져서 나는 만족스러웠다.
“응. 난 욕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담이는 욕심쟁인가 봐요. 근데 여보 말은 정말 청산유수야. 재수 없을 때가 가끔 있어. 알아요?”
“알지, 좀 재수 없지. 그래도 사람은 말을 잘해야지. 동물이랑 사람이랑 다른 게 말 할 줄 아는 거 빼고 뭐가 있다고.”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너무나 사랑스럽다. 내 모든 말을 잘 들어주고 사랑으로 덮어준다. 내가 틀린 것도 그녀는 맞는 걸로 바꿔준다. 이런 여자가 내 여자라는 것에 나는 정말로 너무 감사한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그만 말하고 사랑한다고 해줘 힝...”
그녀는 코알라를 닮았다. 그리고 코알라가 나무에 매달리는 것처럼 나한테 매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 우리 이쁘니, 너무 사랑함.”
나의 품에 안겨 예쁘게 웃는 그녀. 그녀처럼 웃을 때 예쁜 여자가 진짜 예쁜 여자다.
몇 시쯤 됐을까
눈뜰 힘이 없어
배도 안고프고 쉬도 안 마려
정말 여보를 만나고 잠이 많아지긴 했어
눈 떠질 때 까지 자버리자
“그래, 네가 담이 구나~”
“네, 어머님 안녕하세요.”
엄마는 따뜻해 보이는 미소로 그녀를 맞아줬다. 그녀도 엄마한테 지지 않을 미소를 날린 것 같다. 엄마는 속을 가늠하기 힘든 사람인데 일단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안심했다. 아버지는 ‘왔어요.’ 한마디하고 자리를 피했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다. 동사무도도 혼자 못가는, 엄마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부끄럼쟁이 아저씨다. 그래도 ‘왔어요.’는 정말 심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 거실에 앉아 엄마와 그녀, 나 이렇게 세 명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커피를 마셨다. 나중에는 나를 방으로 집어넣더니 둘이서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건 괜히 불안감을 조성한다. 답이 안 나오는 경우다. 방문에 귀를 대어봤지만 우리나라 아파트 방음은 매우 뛰어났다. 한참을 있다가 그녀가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님이랑 여보 욕 했어 헤헤.”
그녀는 가끔 이상할 때가 있다. 말을 생각 없이 내뱉는 버릇이 있다. 주의를 많이 줬는데도 자기는 이상한 생각을 안 한다며 절대로 고치지 않겠다고 한다. 나도 그 말이 맞다 생각해서 그냥 내버려뒀는데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그래. 잘했어. 무슨 욕 했니?”
그녀는 방금까지 해왔던 얘기를 무슨 10년 전 얘기 꺼내듯이 뜸을 들였다.
“그냥 뭐랄까? 여보는 싸가지 없는 새끼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 헤헤.”
그녀가 혀를 내밀고 웃는다. 혀를 손으로 잡고 싶다. 나이를 막론하고 여자들은 남 헐뜯기를 즐긴다. 그게 남자친구 혹은 아들이라도 별 상관없는 것 같다. 나는 무슨 얘기들을 나눴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여보 어렸을 때부터 막 다 얘기해주셨어.”
나의 어린 시절은 지극히 평범했다. 남들 다 담배 태울 때 쯤 담배 태우기 시작했고, 놀만큼만 놀았고, 싸울 만큼만 싸웠다. 21세기에 다른 나라로 유학을 다녀온 것은 특별한 케이스가 절대 아니다. 문제점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보 여자를 그렇게 많이 만났다며?”
나는 정말 두 사람이 생산적이지 못한 대화들을 나눈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웃고 있으니까 화가 나진 않았다. 나는 평생 큰 사고를 친 적은 결코 없다. 그러므로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잘했어. 어렸을 때 많이 만나야 나중에 늦바람이 안 들지. 잘했어. 우쮸쮸.”
그녀가 누워있던 내 품에 안겼다.
“나는 여보가 바람만 안 피면 대.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여보를 진짜 행복하게 해주는 꼴은 못 봐. 근데 그냥 잡년들이랑 가끔 놀아나는 것 정도야 사랑으로 덮어줄게.”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 아니다. 분명 저번에 들었을 때는 쓸 때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한 것 같은데 잘 생각이 안 난다. 나는 아무 대답도 안했다.
“싸가지 없는 새끼”
“나한테 왜 그래, 여보.”
“아니, 어머님이 그렇게 말하신 게 웃겨서 그래.”
그녀는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꺄르르’ 이런 느낌으로 웃어댔다. 하여튼 엄마와 그녀와의 만남은 그렇게 훈훈하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도 그녀에게 어머님을 뵙고 싶다고 했지만 그녀는 절대로 안 된다며 화를 냈다. 어머님이 나한테 모질게 대하면 그걸 자기는 참지 못하고 터뜨릴 거라며 죽어라 반대를 했다. 근데 나는 어른들에게 미움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대단히 오지랖이 넓어서 능구렁이처럼 친근하게는 못해도 어른한테는 확실히 예를 갖추고 진심으로 공경하는 마음으로 다가간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라 미움 받은 기억은 한 차례도 없다. 이런 저런 말로 그녀를 공략해보았지만 그래도 그런 게 다 필요 없다고 한다. 자기 남자친구라고 하면 자기랑 결혼한다고 하면 무조건 싫어하실 거라고 한다. 결혼하면 사위사랑은 장모라는데 내 얘기는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막연히 나를 좋아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녀의 부정적인 얘기를 계속 듣다보니 조금 무서웠다. 진짜 싫어하시면 그때부터는 어찌해야할까 고민했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측근들을 만나봐야 할 차례가 왔다. 드디어 내 동생님과 사촌오빠를 만날 차례가 왔다. 그녀도 내 하나밖에 없는 동생 준이를 만날 차례가 온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응. 안녕!”
만나자 마자 우리는 허겁지겁 같이 밥을 먹었다. 배고프다며 준이는 잘도 먹는다. 밥 먹는 동안 여보가 준이한테 몇 번이나 핀잔을 주었다. 준이는 여보한테 욕먹는 게 일상인가보다. 준이는 별 반응 없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 같은데 여보는 열심히 뭐라고, 뭐라고 떠들고 있다. 그냥 밥이나 먹지. 밥을 다 먹고 우리는 둘이 데이트하러 나왔다.
“여보...근데 저 외모가 어떻게 동생이에요.”
나는 진심으로 형 인줄 알았다. 준이는 노안이다.
“내 눈에는 어린데 남들 눈엔 아닌가? 아 근데 준이도 여보 예쁘다고 했어. 근데 살 빼면 이라는 말을 빼먹은 것 같아. 살 빼 여보, 그럼 여신이야.”
나는 잔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살 뺄 꺼다. 말 안 해도 웨딩 촬영할 때 예쁘게 찍으려고 알아서 하려고 했다. 짜증났지만 참았다. 살 빼면 여신인거 나도 안다. 그런데 준이는 듣던 거와는 다르게 바보 같지 않았다. 상협씨와 준이는 친형제도 아닌데 많이 닮았다. 여보의 말로는 오랫동안 같은 음식을 먹어서 닮아진 거라고 하는데 진짠가 싶다. 준이도 참 착하다. 나중에 내가 여보 없을 때 준이 생일까지 챙겨주면서 친해졌지만 처음에는 정말 친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애가 여보만큼이나 말수가 적어...
<그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응. 반갑다.”
내 동생님과 사촌오빠와 나. 아 어색한 조합이다. 그녀는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이다.
나도 가족들을 봐서 좋기는 한데 어색한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준비해둔 닭갈비를 모두 함께 먹기 시작했다. 정적이 흐르면 귀신이 지나간 거라는데 귀신이 내가 생각하기엔 100명은 지나갔다. 전투적으로 음식에만 집중들을 해서 금방 다 먹고 진정한 어색함이 찾아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식사를 끝마치고 동생분과 사촌오빠가 돌아갔다.
“어색해. 너무 어색해. 어색해도 너무 어색해.”
나는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사교성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진짜 너무 힘들었다. 말 빼면 시체인 내가 무슨 말을 꺼내면 좋을지 모르는 경우가 나에게도 찾아 왔던 것이다.
“내가 너무 말이 없어서 다들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셨을 거야. 어떡하니 진짜. 이런 건 준비를 해야 했어. 대충이라도 시뮬레이션을 했어야했다고 여보.”
“왜 말 잘 하든데. 여보는 원래 나한테 빼고는 말수가 적잖아.”
모르겠다. 난 기분이 매우 찝찝했다. 나중에 결국 동생분과 사촌오빠와 친해져서 그녀를 함께 말로 공격하기도 하고 재밌게 놀았지만 말이다.
숨쉬기가 힘들어
더웠다 추웠다 그래
아무래도 감기인가봐
여보가 감기에는 잠이 최고라고 했었는데
푹 자고 일어나면 멀쩡해 질 거야
“여보, 나 허리가 너무 아파서 걷지를 못하겠어.”
나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바로 택시를 타고 그녀 회사 앞으로 갔다. 회사 앞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를 않았다. 그래서 바로 사무실로 올라가려고 하는 순간, 반대편에서 그녀가 허리를 부여잡고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아프면 화부터 난다.
“왜 이제야 말해? 언제부터 아팠어?”
그녀는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괜찮다는 듯이 웃어 보일 뿐이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여보, 이거 근육주사 같은 거 맞으면 금방 괜찮아져. 그거 맞을래.”
“그런 거 맞으면 건강에 안좋은거 아니야?”
“아니야, 유명한 곳이 있어 나 다니던 곳. 거기로 가자. 그럼 확실히 안 아파.”
우리는 그녀가 말한 병원으로 가서 근육주사를 맞았다.
“성소담씨.”
이름이 불려서 안으로 들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나왔다. 멀쩡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크게 아파본 적이 없는 나는 우리나라 의술에 감탄했다.
“진짜 괜찮아? 저게 그렇게 좋아?”
“응. 비마취성이고 하여튼 좋아. 대신 좀 비싸지.”
“그래, 근데 이건 다 운동부족이라 그래.”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운동은 싫어. 여보가 좋아.”
나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운동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안심할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이다.
“여보보보, 담이 무릎 수술했어요. 이제 괜찮아요. 뽀뽀해 주세요.”
머리가 아프다. 허리에 이어 무릎이다. 그녀는 내가 화를 내려고 하면 상황에 맞지 않는 강한 애정표현을 원한다. 처음에는 그게 더 화가 났는데 하다보니까 아무리 화가 나도 억지로라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면 이상하게 내 기분까지 풀린다. 우리는 연인끼리 싸우지 않는 아주 좋은 예이다. 종합병동 그녀가 무릎 수술을 했다. 그래놓고 발에 뽀뽀를 해달라고 때를 썼다. 나중에는 빨리 뽀뽀하라고 소리까지 질렀다. 엄마가 병문안을 다녀왔다는데 다녀온 후에 그렇게나 울었다. 그녀는 강한 여자다. 그녀는 아프다는 말을 잘 안한다. 그래서 아프다고 하면 속이 내려앉는다.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싶은 마음에 너무 속상하다. 무릎 수술 후 두 달이 지나도록 계단 오르내릴 때마다 아파해서 내가 열심히 운동을 가르쳤다. 몇 주 후에 통증이 사라졌다고 너무 좋아했다. 운동은 역시 좋은 거란다. 그걸 이제 알았냐며 미친 듯이 시켰다. 운동을 취미로 안착시키기가 힘들다.
그녀의 무릎도 무릎이고 허리도 허리고 우리는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제한사항이 많아서 휴식을 주기적으로 취해줘야만 한다. 남들처럼 주구장창 돌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번 주 우리의 데이트 테마는 휴식이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맛있는 것도 해먹고 영화나 보면서 놀기로 약속한 터라 나는 아침부터 열심히 청소중이다. 청소를 마치고 컴퓨터를 켠 후 같이 볼 영화가 뭐가 있나 열심히 찾는 도중 집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여보...큰일났어...”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울상이 되어서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무슨 큰 일이 난거마냥 뛰쳐나갔다. 그녀는 세상 다 산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어머님이...나 담배 피는 거 아셨어...문자가 왔는데...저번에 담배를 가방에 넣어놨는데 가방 문이 살짝 열려있는데 그걸 보셨나봐...나 진짜 죄송해서 어떡해...”
그녀는 죽을상을 하고 침대에 쓰러져 버렸다.
“여보, 어쩔 수 없잖아. 천천히 끊자.”
“어머니가 담배는 여자한테 특히 안 좋으니까 피우지 말라고 하셨어...엄마가 사랑으로 지켜볼 거니까 이제 끊으라고...”
그녀는 잠시 고개를 들고 말을 하더니 다시 얼굴을 베개에 파묻어버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보 괜찮아, 끊으면 되지. 여보는 그게 그냥 취미생활이잖아. 다른 좋은 취미 찾은 후에 나쁜 취미는 버리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엄마도 이해하고 여보가 예쁘니까 말한 거겠지. 괜찮아, 괜찮아. 우리 이쁘니.”
그녀는 그렇겠지? 라고 하더니 배가 고프다며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주방에서 우당탕 하더니 금방 만들어냈다. 그녀는 김치볶음밥을 아주 맛있게 잘한다. 우리는 맛있게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먹고 있는데 그녀가 수저를 놓더니 화장실로 뛰어갔다. 한참 이따가 화장실에서 나온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잘한다. 이쁘니.”
나는 담배를 물었다. 저때 마다 속이 다 무너져 내린다. 위 수술은 한참 후에나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동안 저렇게 먹을 때 마다 토를 해버리니 우리는 어딜 가서 무얼 먹을 때도 이것을 먹으면 토를 할지 안할지 고민하고 먹는다. 나는 그녀가 먹어도 절대 토하지 않는 라면을 끓였다. 그녀는 라면은 언제나 잘 먹는다.
“미안해. 수술 가능할 때 바로 해버릴 거야. 걱정하지 마.”
그녀가 혀를 내밀고 웃는다. 그 미소가 나한테 안 통하는 건 그녀가 이럴 때 뿐이다. 나는 온갖 짜증을 내며 라면을 끓여줬다. 그녀는 토하지 않고 아주 맛있게 먹는다.
나는 그녀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을 꺼냈다.
“여보, 나는 그런 생각해봤어. 여보가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나.”
“응. 나도 그런 생각해봤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그녀에게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아니, 나를 홀 애비로 만들고 죽을 생각까지 했어?”
그녀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여보가 죽으면 어쩌나 생각했다는 거야.”
나는 그녀 앞에 앉아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래 내가 죽으면 어떻게 살 건지 한번 브리핑해봐.”
“음...나는 여보가 죽으면 그냥 엄마랑 둘이 살아야지 뭐.”
그녀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나는 여보보다 좋은 남자 만날 자신이 없어. 근데 여보도 그렇잖아? 나보다 좋은 여자를 어디서 만나니? 나보다 좋은 여자 만나면 결혼해서 살아. 자신 없으면 혼자 살던지 그냥. 나보다 못난 년 만나면 가만 안 있을 거야.”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 살게 될 나를 떠올렸다. 우울하다.
“어떻게 혼자 사냐? 여보도 시집가겠지 결국.”
“나는 안가. 엄마랑 둘이 산다니까. 여보니까 내가 엄마 의지를 꺾으려는 거지. 다른 남자랑 결혼하는 걸 허락받을 생각조차 없어. 여보 죽으면 그냥 엄마랑 둘이 살 거야.”
그녀는 어머님을 사랑한다. 나를 일방적으로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해서 그것 때문에 어머님이 밉다, 싫다 어쩌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똥고집부리는 거다.
“그럼 나도 혼자 살게. 여자애 하나 입양해서 살아야지. 이름은 연소담으로 할거다.”
“딸은 안대. 내가 낳아도 딸은 절대 안 낳아. 아들만 낳을 거야. 나보다 걔 예뻐하는 꼴 못 봐. 그럼 둘 다 저주할 거야. 정 그렇게 살고 싶으면 남자애 키우고 살아.”
“남자애 이름을 소담이라고 지을 수는 없잖아. 난 소담이라는 이름이 좋다고.”
“그럼 내가 지어줄게. 우리 아들 낳으면 외자로 지을 거야.”
“연씨는 외자가 안 어울려.”
“아니야! 있어봐 솔, 혁, 권, 진, 건이. 연건 오, 건이 좋다. 강해보이지? 그치? 여보, 맘에 들지?”
번뜩했다. 연건이라니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여보, 마음에 들었어. 그냥 내가 개명할까 연건으로?”
“쓸 때 없는 말 하지 말고...그래, 아들이름은 연건으로 할래.”
그녀는 자기는 꼭 쌍둥이를 낳을 거라며 둘째는 연혁으로 하자고 했다.
“근데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진짜 여보 몸 관리 잘해야 해.”
“알아, 나도 아픈 거 무서워. 감기 걸려서 응급실까지 간 적 있다니까 걱정 마.”
우리는 그녀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며 계속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참 대화가 많다. 가끔 쓸 때 없는 농담도 나눈다. 그녀와 대화하는 것은 참 행복하다. 물론 그녀도 그렇다고 했다.
나는 언제나 그녀의 건강이 걱정이다. 그녀는 진통제 없으면 6시간을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그녀가 말했다.
“나 여보 어렸을 때 살았던 곳에 가보고 싶어.”
“그래? 어차피 서울이니까 데이트할 겸 한번 가볼까?”
우리는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즉흥적으로 그렇게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곳으로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났다.
“여기가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내던 동네.”
20년이나 지난 내가 살던 동네는 참 많이 변해있었다. 나는 추억에 잠겨 그녀에게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해주었다. 그녀는 내 말을 들으며 웃어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거의 한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는 한참을 걸어서 거의 모든 곳을 다 둘러보았다. 마침 걷고 있는데 학교 다닐 때 먹던 냉면집이 아직도 있었다. 면 종류는 다 괜찮으니까 가게에 들어가서 앉았는데 그녀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여보, 미안해. 진통제를 안가지고 나와서 그냥 동네 약국에서 진통제를 샀는데 이게 좀 약한가봐. 너무 아파.”
“일단 집에 가자. 병원가도 소용없다니까 병원을 갈 수는 없잖아. 집에 가서 먹던 약 먹고 쉬자.”
나는 바로 그녀 손을 잡고 일어나 가게를 나가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가려했지만 그녀는 그 바로 앞에 길거리까지 걸어 나가는데도 휘청거릴 정도였다. 끝내 길거리에 주저앉은 그녀가 너무 가여웠다. 택시가 오는 데로 바로 타서 집에 도착 한 후 그녀는 허겁지겁 약을 먹었다.
“이것만 먹으면 바로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걱정시켜서 너무 미안해. 나는 내가 아플 때 마다 여보가 나 싫어져서 떠날까봐 너무 불안하고 슬퍼.”
그녀는 펑펑 울었다. 나는 그녀가 울면 화가 난다.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밖으로 나왔다. 담배 맛이 엄청 쓰다. 그녀는 젊다. 충분히 건강해질 수 있다. 내가 옆에서 도와주면 충분히 건강해 질 수 있다. 그녀는 꼭 건강해 질 것이다.
보고 싶어
어디야
내가 부르는데 왜 안와
꿈속에서라도 부르면 와준다고 했잖아
거짓말쟁이
“여보 나 할 말 있어!”
그녀는 갑자기 텐션이 급상승해서 소리를 질렀다.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뭔데? 한번 읊어봐.”
그녀는 혀를 내밀고 웃었다. 부탁할 것이 있나보다.
“우리 혼인신고하자!”
그녀는 다짜고짜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보, 혼인신고 그거 좋지. 근데 나는 어머님을 아직 못 뵈었어. 어머님 뵙고 그리고 나서하자. 결혼하기 전에 혼인신고 하는 거에 대해서는 나는 찬성이야. 우리 결혼 전에 혼인신고 미리 하자고 저번에 한번 얘기했었잖아. 다만 어머님 뵙고 허락받고 하자. 당장 결혼 허락을 받지는 못해도 우리 만나는 걸 긍정적으로만 봐주시면 그때 가서는 해도 된다고 생각해. 어때?”
그녀는 입이 툭 나왔다.
“허락 안 해. 엄마는 나 시집 안 보내려 한단 말이야. 내가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잖아. 진짜 그렇다니까.”
“아니, 난 이해 할 수 없어. 그게 말이 되니? 딸 시집 안 보내려고 하는 어머님이 어디 있어.”
“아 정말이라니까! 나랑 같이 살고 싶어서 죽어도 시집 안 보내려고 한다고!”
“아 됐어. 다음 달에 어머님 뵙는다고 했잖아. 그때 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한 달 밖에 안 남았잖아. 내가 무조건 어머님 마음에 들면 되잖아. 그럼 됐지?”
그녀는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진짜 허락 안 해. 내말이 맞아. 엄마는 내가 제일 잘 알아. 절대 허락 안 해.”
“엄마 싫다면서, 밉다면서 제일 잘 아는 건 또 우리 따님이네?”
그녀는 베개를 짚더니 그걸 나한테 던졌다.
“멍청이, 진짜라고! 여보가 엄마를 몰라서 그래. 진짜 둘이 비슷해. 내 말을 무시해.”
나는 베개를 집어 다시 침대 머리맡에 두었다.
“아이고, 그럼요. 뵙지를 못했는데 어떻게 알아요.”
그녀는 나를 껴안고 말했다.
“여보, 엄마 만나잖아? 그럼 엄마는 여보한테 모진 말만 할 거야. 상처 주는 말 할 거야. 나는 그럼 또 엄마한테 상처 줄 거야. 그렇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전에 혼인신고 해버리자. 응?”
나는 그녀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그래 여보, 그렇다 쳐. 그럼 내가 어머님이 무슨 말씀을 하셔도 상처를 안 받으면 되잖아? 간단하네? 그럼 딱 얼굴만 뵙고 하는 걸로 해.”
그녀는 나를 뿌리치고 의자에 앉았다.
“아 답답해. 여보는 내 말 하나도 안 들어줘.”
“여보, 진짜 나 자신이 있어서 그래.”
“백날 자신 있어도 안대. 엄마는 그런 사람이야.”
그녀의 똥고집은 정말 사람을 힘들게 한다.
“아니 그래. 봐봐. 내가 어머님을 뵈었어. 그리고 저 소담씨 남자친구입니다. 소담씨를 저에게 주십시오. 아니면, 저 소담씨랑 결혼 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이럴 것 같아? 절대 안 그래. 아니 그런 새끼한테 누가 딸을 주셔.”
그녀는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그럼 만나서 뭐하게? 그 말 안하면 할 말이 뭐가 있어?”
나는 그 반응이 더 황당했다.
“딱히 없지. 음, 안녕하세요? 이런 거?”
“아, 봐봐. 짜증나. 그럼 만나서 대체 뭐하게. 그럴 거면 만나지마. 지금 빨리 혼인신고 하러가.”
그녀는 진짜 나갈 기세였다.
“아니, 여보 들어봐. 생각을 해봐. 갑자기 어떤 놈이 나타나서 딸을 달래. 그걸 이해할 수 있는 부모님이 세상에 어디 있어? 내가 어머님을 뵙자는 거는 저란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소담씨랑 만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형식차원에서 뵙자는 거야. 그래, 막말로 말 한마디가 오고가지 않으면 어때? 어머님은 지금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시잖아. ‘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라고 알려드리자는 거야. 무슨 결혼 얘기를 해. 그러니까 여보, 딱 뵙기만 하고 혼인신고하자고.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어머님한테 예쁨 받도록 노력하면 되잖아.”
그녀는 이제 가방까지 들며 말했다.
“아, 안대. 절대 안대. 절대 예쁨 받을 수 없어. 나랑 결혼하는 남자는 우리 엄마한테 예쁨 받을 수가 없어.”
나는 진짜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었다. 세상에 무슨 이런 똥고집이 있나 싶다. 내가 그렇게 모질라 보이는 건가?
“아 그럼 묻자. 왜 이유가 뭔데. 왜 예쁨 받을 수 없는데?”
“나랑 결혼하니까.”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내 동생님한테 전화해서 왜 그런지 묻고 싶었다. 내 상식으로는 절대로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지금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며 졸랐다.
“동생도 그랬어. 쉽지 않을 거 같대. 근데 연습하고 가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댔어.”
“그래. 그럼 지금 그거 연습하자.”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응. 연습하자.”
그녀는 단순하다. 포인트 잡기는 조금 어려운데 잡기만 하면 대화 주제를 돌리는 건 쉽다.
“그래. 어머님을 뵈었어. 인사를 했어. 밥을 먹어. 인사를 또 해. 끝. 완벽하네. 그치?”
그녀는 표정이 굳었다. 다시 가방을 들었다.
“됐어. 지금 당장 혼인신고 하러가. 무조건 가. 나 오늘 혼인신고 할 거야.”
나는 그녀의 가방을 뺏어서 다시 내려놓았다.
“그럼 여보 이렇게 하자. 일단 뵙고 나중에 여보가 이렇게 말씀드려. 엄마가 허락하면 결혼하고 반대하면 결혼 안한다고 해. 물론 여보 시나리오라면 반대하시겠지? 그럼 알겠다고 결혼 안하겠다고 딱 말씀드려.”
“그럼 결혼 안 해?”
“아니 하지. 도망가면 되지 뭐.”
“뭐야 그게? 생각 없이 막 말하지 마. 나 그리고 엄마가 반대한다고 하면 폭발할 것 같아. 못해. 그리고 애초부터 내가 왜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해야 하는데?”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지금 이 상황을 넘기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니 그럼 뭐가 잘못 된 건데? 말을 해봐. 아니 왜 여보가 시집가는 걸 반대하시는지 알아야 뭘 할 것 아니야.”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한참을 고민 하더니 입을 열었다.
“엄마는 나랑 계속 같이 살고 싶어 해. 그래서 절대로 허락 안 해.”
나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이런 이유였다.
“그게 문제라는 거야?”
“응. 그게 문제야. 이번에 이사하는 것도 엄마랑 같이 살면 여보랑 결혼하는 거 허락 해줄 거 같아서 이사 결심했어.”
나는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해봤다. 대릴 사위.
예전에 일본어를 공부할 때 대릴 사위가 주인공인 일본드라마를 봤다. 나는 그때부터 대릴 사위에 대한 로망이 생겼었다.
“그럼 같이 살면 되지. 내가 대릴 사위로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역시 대릴 사위는 오버인가 보다.
“대릴 사위로 들어와서 엄마랑 같이 살겠다고?”
나는 그녀의 표정을 신경 쓰며 내 생각을 말했다.
“응. 괜찮지 않아? 우리 부모님은 결혼하면 제발 좀 나가서 살라고 하는 판국에 좋지 뭘.”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여보 그래도 괜찮겠어? 자존심 상하지 않아?”
“아니, 뭐가 자존심이 상해. 근데 표정이 굉장히 좋아 보이는데 좋은 일 있나봐?”
그녀가 활짝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신나게 웃기 시작했다.
“아니 여보. 대단해 여보. 진짜 그럼 엄마가 허락할 것 같아. 왜 진작 말 안했어?”
그녀는 신나했다. 겨우 이런 문제로 그렇게 골머리를 썩었다는 것에 허무했다. 보통 남자들은 다짜고짜 여자 친구 쪽 부모님이 결혼을 무조건 반대한다고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거기다 대고 ‘대릴 사위를 한다고 하면 찬성하실까?’ 라고 생각하는 미친놈은 분명 세상에 없다. 진작 같이 사는 것을 원한다고 말했으면 좀 좋았을까. 이걸로 대체 연애 초반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마음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말만 꺼내면 짜증을 내니 항상 나는 질문을 할 틈도 없었었다.
“내 동생도 들으면 확실히 좋다고 생각할 거야. 여보는 정말 대단해. 내 남자 최고다. 이거 진짜 되겠다.”
이후에 동생분과 형님도 이 얘기를 듣고 굉장한 생각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보다 그 두 사람의 의견이 나를 확실히 안심시켰다. 나는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 될 문제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막연히 어머님이 나를 좋아해주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근거도 이유도 없지만 그냥 그랬다. 그녀는 항상 어머님 얘기를 할 때 부정적인 말들만 늘어놨지만 나는 그게 부정적으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보 그럼 우리 이제 아무 걱정 없네. 엄마만나고 난 다음에 내가 그 얘기하면 허락해 줄 거야. 그럼 바로 혼인신고 하면 되겠다. 그치 여보?”
그녀는 나를 껴안고 기뻐했다. 나는 진짜 이게 그렇게 대단한 카드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실 대릴 사위한다고 하면 오히려 싫어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괜찮게 봐주시면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가 혼인신고 얘기를 또 꺼내 길래 알았다고 수긍했다.
“근데 엄마랑 같이 살면 군인 안했으면 좋겠어. 그냥 가게 하면 안대?”
나는 잠시 생각했다.
“생각해볼게. 그건 내가 꼭 도전해 보고 싶은 거라 말했잖아. 안 그러면 장기안하고 4년만 채워도 되잖아. 늦은 나이에 부사관을 4년만 하는 것은 미친 짓이겠지. 그래도 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해. 힘든 부분은 운동하는 샘 치면 되니까 문제없어.”
“응. 그럼 그렇게 해. 4년만 해. 안하면 더 좋고.”
“알았어. 생각해볼게. 근데 같이 살면 가게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힘들어지겠다.”
“응. 그러니까 말하는 거야. 나는 솔직히 여보가 사서 고생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든. 경제적으로 여유만 있으면 여보는 글 쓰고 싶다며.”
“그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아.”
“그럼 여보가 엄마 비서해. 운전기사 역할하면서 남는 시간에 글 써. 좋아하는 운동도 하고 그렇게 되면 너무 좋겠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해 할 수 없었다. 뭐 나한테는 너무 쉬운 일이지만 어머님 입장에선 민폐일 수도 있는 일이다. 좋아해주신다면 상관없지만. 저렇게 좋아하실 거라고 단정 짓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의 파란만장한 결혼 프로젝트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다음 달에 실행에 옮기기로 하고 우리는 마주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여보
나 일어나고 싶어
이제 그만 잘래
근데 몸이 안 움직여
너무 무서워
나는 솔직히 좀 놀랐다. 그녀의 말이 들어맞았다. 어머님을 뵌 우리는 정말 그녀가 말했던 데로 그렇게 허락을 받았고 그녀의 아버님도 뵈었다. 아버님도 우리의 결혼을 흔쾌히 허락하셨고 우리는 미리 혼인신고도 해버렸다. 우리는 이제 어엿한 부부다. 나는 직업 군인을 포기했고 나중에 어머님의 비서 겸 기사로 일하기로 했다. 어머님은 그녀의 말이라면 다 들어주시는 것 같다. 옛날 말에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사위사랑은 역시 장모다. 아버님이랑도 자주 식사를 함께 하며 우리는 서서히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부모님도 그녀를 너무 예뻐하신다. 아버지는 컴퓨터로 고스톱 칠 때 옆에서 나이스 아버님을 연발하는 그녀를 보며 그 보기 어려운 웃음을 자주 지으신다. 그녀는 어디가도 예쁨 받을 사람이다. 엄마는 그녀의 건강이 걱정 되서 아이를 굳이 낳지 않고 둘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겠다며 내 걱정을 덜어주셨다. 내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 임신일지라도 다시는 그녀에게 병원 문을 넘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나는 아이를 포기할 것이다. 준이는 그녀의 비서가 되었다. 준이가 언젠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형, 나는 내가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나는 그런 것 보다 큰 사람의 보필을 하는 것이 체질에 맞는 것 같아.”
준이는 분명 언젠가 자기 분야에서 큰 사람이 될 거다.
형님도 괜찮은 아가씨를 만나게 돼서 분위기가 좋은 것 같다. 얼른 장가를 가셨으면 좋겠다. 나의 처남이자 친구이기도한 내 동생님 연우씨도 현경씨와 곧 결혼 준비를 한다. 우리는 주말마다 조기 축구회에 함께 나가서 축구도 하고, 밤에 자기 여자들 몰래 게임도 하러 다닌다. 같이 술을 조금씩 먹다보니 요즘 술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녀한테는 물론 비밀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너무나 행복하다. 사지 멀쩡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밥 안 굶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녀는 위 수술도 잘 끝내고 건강한 몸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호수공원을 걷고 있다. 결혼하면 매일같이 호수공원을 거닐며 산책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하기로 했던 우리의 꿈들이 이루어졌다. 웨딩촬영 때문에 우리는 다이어트가 시급하다. 열심히 빼서 평생 남을 사진을 예쁘게 찍어야만 한다.
이제 내 옆에는 그녀가, 그녀 옆에는 내가 있다. 우리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걱정거리가 없는 그런 완벽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로 남을 것이다.
너무 아파
너무 너무 아파
여보, 내 동생
다들 어디 갔어
나 이제 그만 깨워줘
아주 행복한 꿈을 꿨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날은 정말 오랜만이다. 좋은 증조다. 위 수술을 끝낸 그녀는 지금 병원에 누워 사투를 벌이고 있다. 수술 후 장기에 문제들이 좀 생겨서 걱정했지만 의식은 한번 돌아왔었다. 현재 상태가 좋지 않아 중환자실에 누워있지만 문제없다. 그녀는 금방 건강해질 것이다. 왠지 오늘 내가 병원에 가면 눈을 뜰 것만 같다. 여보~ 하면서 나를 바라봐줄 것 같다. 나는 그런 희망에 차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중환자실 면회시간은 하루에 2번으로 한정되어있다. 하루 종일 옆에서 응원해주고 싶은데 제한이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일반 병실로 옮기면 하루 종일 옆에서 응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녀를 볼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면회 시간을 기다리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나는 손을 깨끗하게 씻고 그녀를 보러 들어갔다. 그녀가 누워있는 곳으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마치 드라마에서만 보던 광경이 내 앞에 있었다. 수많은 줄들이 그녀의 몸에 감겨있었고 그녀의 몸은 황달로 인해 노랗게 변해있었다. 몸은 주사로 인해 온통 멍투성이가 되어있었고 수액을 배출해내지 못한 몸은 퉁퉁 부어있었다. 나는 그녀를 불러보았다.
“여보, 나왔어. 일어나봐.”
그녀는 눈을 감은체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꾹 참았다. 나는 그녀에게 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거기에 꾹 참아냈다.
“여보, 나왔는데 왜 안 일어나. 내가 왔으면 일어나야지. 나중에 혼나 이러다가.”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온 것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가슴이 찢어졌다.
그녀가 내가 온줄 알아도 눈을 뜰 수가 없어 속상해하느니 나는 차라리 그녀가 잠이 들어서 내가 온지 모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어느새 짧은 면회 시간이 끝났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뽀뽀를 해주었다.
“사랑해 쪽쪽.”
나는 우리들만의 인사를 하고 그렇게 그녀를 두고 중환자실을 나왔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교수의 말을 들었는데 더 이상 나빠질 수도 없을 만큼 상황이 나쁘다고 했다. 나는 도저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담이가 중환자실에 누워있어.”
“담이가 왜? 왜 그런데 누워있어?”
엄마는 내 걱정이 되었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수술이 잘못 됐나봐. 엄마 얘가 내가 왔는데도 못 일어난다. 어떡하지......”
“아이고 아들아, 담이가 너 온 거 다 알거야. 좋은 얘기 많이 해줬니?”
“응. 많이 해줬어. 뽀뽀도 해주고 나왔어. 일어나겠지?”
“그럼, 일어나지. 일어날 거야. 집 걱정 말고 담이 간호 잘 해줘라.”
그렇게 엄마와 통화 후에 나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한다. 그녀는 강하다. 절대로 나의 기대를 저버릴 여자가 아니다. 연우씨도 있다. 나와 연우씨가 있는데 그녀는 눈을 감을 리가 없다. 나는 다음 면회를 기다리다 시간이 되어서 바로 그녀가 누워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그녀는 아까전과 다를 것이 없다. 나는 내가 왔다고 그녀에게 속삭이며 손을 만져줬다. 손이 퉁퉁 부어있다. 그 예쁜 손이 이렇게나 퉁퉁 부어있다. 그 예쁜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머리도 감지 못해서 기름기가 끼어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보며 혹시나 나한테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쓸 때 없는 걱정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여보, 어쩜 이렇게 예뻐. 이러고 있어도 예뻐. 그래도 빨리 일어나야지. 일어나면 내가 머리 감겨줄게. 힘내서 빨리 일어나 여보.”
그녀는 호흡기로 겨우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여보, 우리 결혼해야지. 이제 어머님 뵙고 혼인신고만 하면 되요. 힘낼 수 있지? 여보 사랑해.”
그녀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룩하고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나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슬펐지만 힘내라고 손도 주물러주고 살며시 안아주기도 했다. 나올 때는 잊지 않고 ‘사랑해 쪽쪽’도 해줬다.
어머님은 그녀가 누워있는 모습을 무서워서 보질 못하신다. 아버님은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신다. 연우씨는 담담하게 속으로 슬퍼한다. 형님은 그녀가 일어날 거라는 믿음 하나로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일어나길 기원한다. 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녀에게 힘이 될 것이다.
준이도 엄마도 병원으로 찾아왔다. 엄마가 그녀를 보고 나오는데 눈물을 흘렸다.
“엄마, 그래도 담이가 막 눈을 이쪽저쪽으로 돌려. 진짜 월요일에는 눈 뜨려나봐.”
“그래.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재밌게 놀면서 기다려. 그래야 약이 올라서 벌떡 일어나지.”
엄마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나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나는 엄마를 배웅한 후에 준이와 커피숍으로 가서 오랜만에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누나 일어날 거야. 누나 일어난다. 걱정 하지 마.”
준이는 내가 없을 때 그녀와 있었던 추억을 얘기해주며 나를 위로해줬다.
나는 그녀를 믿는다. 반드시 일어날 것을 믿는다. 그날 밤 나는 나를 보며 행복하게 웃던 평소와 똑같은 그녀를 떠올리며 잠이 들었다.
여보
이제 왔네
여보 나 일어 날거야
조금만 기다려줘
그런데 너무 무섭고 아프다
이제 곧 다음 주가 시작된다. 주말만 견뎌내고 다음 주가 되면 그녀가 눈을 뜰 것 같았다. 나는 막연한 기대 속에 면회시간마다 들어가서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일요일 저녁, 나는 이제 월요일이 다되어가니까 내일 면회 가면 그녀가 눈을 뜨겠지 하며 연우씨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가 지금 안 좋다는데 지금 병원으로 가야할 것 같아요.”
전화를 끊은 연우씨말을 듣고 우리는 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교수님이 나왔다. 교수님은 지금 상태가 너무 안 좋은데 심장마저 이제는 버텨내지 못할 거라고 했다. 얘기를 듣고 중환자실로 들어간 나는 그녀의 심장 박동 수치를 보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점점 내려가고 있는 수치는 이미 두 자리에서 한 자리로 향하고 있었고, 몇 분조차 되지 않아 끝내 심장박동수가 0이 되었다.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그녀의 심장은 다시 뛰어주지 않았다. 교수님은 심폐소생술을 중지시켰고 그녀의 심장은 이제 완전히 멈춰버렸다.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내 눈앞에서 그녀가 죽었다. 내 전부였던 그녀가 이렇게 나를 허무하게 떠나버렸다. 나는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눈물이 너무 흘러서 누워있는 그녀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여보, 왜 못 버텼어? 내일까지 30분도 안 남았는데 왜 그 30분을 못 버텼어? 왜 내가 왔는데 눈을 못 떠? 조금만 더 버텨보지. 힘들어도 조금만 더 버텨보지. 왜 이렇게 바보 같아. 이제 우리 혼인신고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바보같이 굴어. 여보, 나랑 행복한 가정 만들기로 했잖아.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어? 여보 일어나봐. 잠깐만 내말 한번만 들어봐. 내말 듣고 가. 나 한번이라도 보고가. 나 울어 여보, 내가 우는 거 그렇게 보고 싶다며. 봐봐 나 이렇게 울고 있어. 나 좀 봐봐.”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점점 식어가는 그녀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계속 울었다.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 너무나 차갑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내가 보고 싶었을까. 얼마나 일어나고 싶었을까. 오죽했으면 내려놓았을까. 그녀는 강한 여자다. 그녀가 버텨내지 못했을 때에는 그만큼의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 왜 자기를 지켜주지 못했냐고 소리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차갑게 식은 그녀의 손, 발을 한번 씩 움켜쥐고 두 볼을 쓰다듬어 준 후 입술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쪽쪽.”
나는 이제 어떡해야하나 싶었다. 그녀가 죽어버렸다. 나를 남겨두고 이렇게 떠났다. 이제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나는 복잡한 머리를 억지로 정리해야했다. 어머님은 그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님도 전부를 잃었다. 아버님도 너무 서럽게 눈물을 흘리셨다. 형님도 눈이 빨개졌다. 연우씨도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이제 바로 장례식을 준비해야 할 텐데 연우씨가 걱정이다. 상주로서 연우씨는 마음 놓고 슬퍼할 겨를이 없다. 슬퍼할 시간도 없이 정신을 차려야만 했고 그렇게 슬픔을 누르며 장례식을 진행해야하는 연우씨를 보고 또 눈물이 나왔다.
정말 책임감이라고는 없는 여자다. 결국 우리들을 이렇게 남겨놓고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가버렸다. 나도 마음을 가다듬고 엄마한테 그녀의 죽음을 알렸다. 엄마는 내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 엄마는 나를 가장 걱정했다. 좋은 데로 갈수 있도록 내가 옆에서 지켜줘야 한다고 했다.
분향실을 잡고 그녀의 영정사진을 배치하고 이런 저런 복잡한 절차와 장례식 준비가 끝났다. 연우씨는 담담하게 일처리를 잘 해냈다. 나만 편하게 마음껏 슬퍼하는 것 같아 너무나도 미안했다. 나는 분향실 안쪽에서 그녀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에 그녀는 너무나 예쁘다. 너무 예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한참동안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며 울었다.
그녀의 장례식은 조문객이 정말 많이 왔다. 꽃들도 너무나 많이 왔다.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그렇게 위로를 받았다. 그녀의 부모님이 나에게 연우씨와 함께 상주를 맡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너무나 감사했다. 내가 이것을 하지 않으면 그녀는 너무 슬퍼할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부모님에게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그녀가 혼인신고를 하자고 조를 때 안한 것이 그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장례식에서 남편이 아닌 볼품없는 남자친구 역할로 조문객들에게 절을 했다.
아버님은 조문객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사위될 뻔 했던 놈이라고 소개하셨다. 나는 아버님이 하시는 그 말씀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더 불쌍한 놈이 되었어야했는데. 나밖에 몰랐던 그녀를, 내가 전부였던 그녀를, 나는 그런 그녀를 내 아내라고 떳떳하게 말할 자격이 없는 한심한 놈이었다. 그녀는 지금쯤 나한테 엄청 화가 나있을 것이다.
조문객이 드물어지는 늦은 시간. 나는 분향실 중앙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보, 미안해. 여보는 내가 많이 울어주길 바라고 있지? 오래오래 힘들어하고 보고 싶어 하고 그렇게 해주길 바라지? 걱정하지 마. 내가 그렇게 할게. 여보 지키지 못한 죄. 내가 다 짊어질게. 그러니까 꼬라지내지마. 나 여보 없이 행복하지 않을게. 약속할게.”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정신없는 장례식 중 그녀가 이제는 염을 마치고 관에 들어갈가는 순간이 왔다. 나는 마지막 염을 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예쁘다. 내 사랑. 사랑해 쪽쪽.’
나는 염을 마친 그녀를 보고 부둥켜안고 입을 맞춰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그럴 자격이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 눈물이 났다.
그녀는 마지막 염한 모습까지 예뻤다. 참 예쁜 사람이다. 그녀의 차갑게 식은 얼굴에 하얀 천이 덮이고 그렇게 그녀는 관속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관에 들어간 후 제사를 지내고 장례식은 끝났다. 그녀에게 절을 하는데 온몸이 떨려왔다. 나한테 이런 잔인한 짓을 시키는 그녀가 너무너무 미웠다. 눈물이 또 왈칵 해서 입술을 깨물다 피 맛이 났다. 꼭 그녀가 흘린 피인 것 같아 또 눈물이 난다. 이제 영결식도 끝나고 그녀를 화장하기로 결정했기에 화장터로 이동했다. 관속에 누워있는 그녀가 이제 내 눈앞에 있는 저 화장터로 들어가는 순간 진짜로 세상에서 사라진다. 점점 관이 화장터 안으로 들어가고 끝내 문이 닫혔다.
모든 게 끝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녀가 저 뜨거운 불길 속에서 가루가 되어버린다. 그녀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 둘씩 대기실로 올라갔다. 그 곳에서 나와 그녀는 둘만 남겨졌다.
“여보, 무서워하지 마. 내가 다 지켜볼게. 마지막 데이트치고는 너무 슬프다. 여보는 이제 내가 보이지? 당신은 정말 매너가 더러운 여자야. 한 마디 말도 없이 이렇게 갔어. ‘사랑해 쪽쪽.’은 꼭 해주고 가야하는 건데 정말 너무한다. 근데 나도 혼인신고 못하고 보냈으니 할 말은 없어. 여보가 그렇게 하자고 할 때 했으면 여보가 힘내서 일어났겠지? 이거 다 나 때문이지? 여보, 정말 미안해. 내가 당신 소원 꼭 이뤄줄게. 늦어서 정말 미안해.”
나는 그렇게 그녀와 마지막 데이트를 했다.
그녀가 관으로 들어가서 가루가 되어 나올 때 까지 나는 그녀와 함께했다. 화장이 끝이 나고 정말 한줌의 재가 되어 나온 그녀. 이제 그녀를 절에다가 모시는 일만 남았다.
그녀를 모실 절은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그 절은 정말 경치도 좋고 우리가 함께 걸었으면 그녀가 너무나 좋아할만 한 그런 곳이었다.
납골함을 앞에 두고 다시 한 번 제사를 지낸 뒤 그녀는 그렇게 그곳에 영원히 잠들었다.
‘여보, 나중에 봐. 사랑해 쪽쪽.’
나는 그녀의 납골함에 인사를 하고 그렇게 절을 빠져나왔다.
나는 집으로 와서 바로 그녀의 짐을 정리했다. 바로 다음 날 이사를 하기 때문에 별로 정리할 것이 없었다. 그녀의 옷들을 집어 들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있어 도저히 옷들을 만질 수가 없었다. 나는 또 바보같이 울었다.
나는 그녀의 영정사진을 그녀 침대 머리맡에 두고 그 옆에 나란히 누웠다.
“여보. 나 이제 그만 갈게. 나중에 경치 좋은 산에서 만나. 그때 우리 함께 오래오래 걷자. 사랑해 쪽쪽.”
그렇게 하고 나는 집을 나왔다.
다음 날 나는 혼인신고서 양식을 준비해 놓고 정성스레 작성했다. 나중에 그녀가 있는 곳에 넣어주려고 한다. 그녀가 며칠 동안을 고민해서 골랐던 반지.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결혼반지도 넣어주려고 한다. 그 작고 평범한 소원을 이뤄주려고 한다. 그렇게 바라던 혼인신고를 앞두고 떠날 수밖에 없던 내 사랑. 소원을 못 이룬 것에 한이 맺혀 하늘나라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나를 원망하며 울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만 같다.
그녀는 내가 그녀 없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속 넓은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내가 그녀 곁으로 갈 때까지 그녀만 사랑하기를 바라는 귀여운 욕심쟁이이다. 그게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내가 많이 외롭지 않도록 정말 많은 추억 남겨두고 떠났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한 죄인으로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그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내가 그녀를 잊으면 그 날로 날 찾아와서 가만히 놔두지 않을 여자다. 그녀는 지금 쯤 내 마음을 다 읽고 흐뭇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알기에 그녀를 위해 오래오래 슬퍼해주고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세상에 죽기가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이제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천하무적이 되었다. 그녀가 없는 세상은 지루할 테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이제 그녀의 남편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나는 이제 홀 애비가 되었다. 되먹지 못한 짓을 해서 이혼당한 홀 애비도 아니고, 아내가 집을 나가 내팽겨 쳐진 홀 애비도 아니다. 나는 그저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 떳떳한 홀 애비다.
<하늘에 쓰는 편지>
여보, 나야.
여보가 없는 이 세상은 좀 거지같아.
여보도 없는 이 세상을 내가 등지지 않는 이유는 엄마 때문이야. 여보가 나중에 엄마한테 혼날까봐 못 그러겠어.
여보는 마지막 모습도 너무 예뻤어.
그 미모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더라고.
장례식은 정말 좀 힘들었어.
몸이 힘든 건 느끼지도 못했지만 여보 사람
많은 거 정말 싫어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는 거야.
슬픔은 나누면 반이라니까
먼 길 오신 분들에게 감사는 확실히 드렸어.
근데 여보가 다 필요 없으니까 나보고
'내 사진이나 붙잡고 울어!'
라고 하는 거 같아서 여보 사진보면서
그렇게나 많이 울었다.
여보가 진짜로 떠나는 걸 그렇게 보고 있는데
정말 돌아버릴 것 같이 슬퍼서 미친 듯이 울었거든? 근데 나중엔 헛웃음이 나오더라.
여보가 내 옆에서 웃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
고약한 여자야 정말. 반지는 어때?
여보가 고른 디자인인데 맘이 들지?
실제로 보니까 더 예쁘지?
그래, 여보도 나한테 미안하겠지만
나도 여보한테 참 많이 미안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항상 기다리게 해서
정말 너무 미안하다.
나도 자기관리 잘해서 나중에 멋진 모습으로 여보 곁으로 갈게 우리 그쪽 세상 사람들이 전부 부러워할 만큼 멋지게 살자. 울 엄마 나중에 가면 같이 내 욕하면서 놀고 있어.
보고 싶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
그래도 이제 안 울려고 해.
여보는 언제나 혼자 치사하게 날 보고 있겠지? 그거 열불이 나서 안 울어.
너무너무 사랑 한다. 우리 이쁘니.
사랑해 쪽쪽.
사랑하는 남편이.
<하늘에서 온 편지>
여보, 담이에요.
인사 한마디 못하고 그렇게 떠나서
너무 너무 미안해요.
마지막 담이 얼굴 볼 때 깨끗이 씻지도
못하고 화장도 못해서 너무 속상했어.
그래도 나 예쁘다고 해줘서 기분 좋았어요.
여보가 내 사진 앞에서 우는 거 다 봤다.
나도 너무 슬펐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눈물 참기가 힘들었지?
마음이 너무나 아팠는데 나 따뜻한 그곳에
들어갔을 때 우리 둘만 남았었잖아.
너무 행복했어.
그래, 나는 여보가 많이 울었으면 했어.
그렇게 서럽게 울어주니까 기분 좋던데?
여보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여보가 보이니까, 힝
나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여자잖아요.
더 울어라! 하고 웃어버렸어요.
근데 이제 울지 말아요. 내 걱정은 하지 마.
여보는 귀찮은 것 제일 싫어하는데
하나도 안 귀찮아하고 나 여기 올 때까지 끝까지 지켜줬잖아요.
여보가 만든 혼인신고서도 다 봤어요.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요.
우리 결혼반지도 잘 받아서 끼고 있어.
나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니까
여보도 행복하게 살다 와요.
천천히 와요. 여보, 기다리는 거
내 특기인거 여보도 잘 알잖아.
나 여보가 가르쳐준 운동 꾸준히 해서
살도 좀 빼고 피부 관리도 계속 열심히 하고 손톱도 예쁜 색으로 칠하면서 그렇게 하면서
예쁜 모습으로 여보 올 때까지 기분 좋게
기다릴게. 언제나 여보 지켜보고 있어.
무슨 일을 하던지 내가 다 지켜줄게.
너무 사랑해요. 나중에 봐요, 내 사랑.
사랑해 쪽쪽.
사랑하는 아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