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축구에 비유해 보자.
연애는 마음을 주고 받는 것이라고들 한다.
공 = 마음 이라고 가정해보자.
이제 깊게 생각해보라. 정말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보라.
내가 한사람과 공놀이를 해야 한다면, 당신은 누구와 해야 할까?
어떤 사람은 메시와 같은 화려한 발재간을 가진 사람이 있을거다.
보는 것만으로도 내 눈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런 발재간은 언제나 자신의 발에 공이 있을때 빛이 난다.
어떤 사람은 사비와 같은 패스를 연결할 수도 있다.
비록 메시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아름답게 공을 당신에게 전달할거다.
그는 공을 짧고 간결하게 다루지만, 당신이 어디로 가든 피해갈 수 없을만큼 휘어지고 감아져서 정확히 공을 전달한다.
어떤 사람은 세자르와 같아서 당신이 어떻게 던지는 손에 접착제를 바른듯 다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있겠다. 그는 비록 공을 길게 다루지만, 당신이 정확히 공을 차지 못하더라도 받아낼 능력이 있다.
하지만 당신이 이런사람을 만나야 할까?
아니, 뒤집어서, 이런 스페셜리스트가 평범한 당신과 공놀이를 하면 즐거울까?
당신은 잠깐은 즐거울지도 모른다.
춤에 비유하면 권지용이나 비와 춤을 추는 기분일거고, 원빈의 보호를 받는 여자의 기분을 만끽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당신은 그 스페셜리스트와 당신이 동등한 위치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아. 내가 그와 같이 놀고 있는것이 아니라, 정말 그가 나와 놀아주고 있는거구나.
우리가 하는 공놀이는, 상대방을 배려해서 공을 잘못차도 열심히 뛰어가서 주워올 수 있는, 상대방을 배려해서 더 없이 투박하지만, 더 없이 정석대로 정확히 인사이드로 밀어차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최대한 공의 템포를 죽여서라도 최대한 공의 각도를 줄여서라도, 차는 그 순간에도 끝까지 긴장하면서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는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을까? 그 공이 비록 당신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지언정,컨트롤 미스로 공의 소유권을 놓칠지언정, 그렇게 꼭 당신과 공놀이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지 않을까?
그게 어떻게 차더라도, 공이 당신에게 닿는 사람보다,
그게 어떻게 보고만 있어도 공이 저절로 그의 발에서 떠나지 않는걸 보는 사람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도 사람이라 사람은 보이는걸 더 먼저 생각한다.
그 결과 요즘은 전달력과 표현력, 화려함이 연애의 성패를 좌우하는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진심을 보겠다는 사람도, 자신의 진심 전달만큼이나 타인의 전달력과 표현력의 미숙함을 인지하지 못하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