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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수 없는 조선야화

믿거나말거나 |2013.07.21 14:33
조회 29,404 |추천 15

ㅋㅋㅋ 기담님 글을 보고 저도 제가 아는 한도내에서 없는 글재주에 한번 끄적거려 보겠습니다.

 

욕은 하지 마시고 무한 태클 환영합니다.

 

- 숙종과 인현왕후 그리고 장희빈(장옥정) 경종 -

 

숙종은 조선시대 19대 임금이고 인현왕후는 2번째 계비이며

 

경종은 얼마전에 끝난 드라마 장옥정과 숙종의 아들입니다.

 

장희빈과 인현왕후는 서인과 남인들의 희생양입니다.

 

숙종은 뒤 늦게 후사를 본 경종을 빨리 세자로 봉하고 그 덕택에 장희빈도 한때나마 인현왕후를

 

몰아내고 왕비가 됩니다. (장희빈으로 전해지는 이유는 다시 왕비에서 빈으로 강등 되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숙종은 이 계기를 통해 후궁이 왕비가 될수 있는 길을  폐지시켜 버립니다.

 

숙종이 인현왕후를 그리워 해 다시 왕비로 책봉하고 장옥정은 빈으로 내려 오게 되자 그 뒤에

 

계속 무한 저주 및 무당을 불러 인현왕후가 죽기를 기다립니다. 근데 그 방술이 통했는지

 

인현왕후는 결국 병사하게 되는데요. 여기서 속설이 또 있습니다.(인현왕후는 병이 걸려 죽은

 

것이 아니라 사가에 몇년간 거주할떄 항상 습기가 가득한 방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몸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졌고 곰팡이균에 의한 질병으로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죽고 장희빈은 자신이 세자를 낳았기 때문에 다시 왕비가 될꺼라고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우연히 숙종은 장희빈이 꾸민 계략을 다 간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세자의 어머니라서 참형을 하지는 못하고 사사(사약을 먹고 죽는 형벌)을 내리는데요

 

장희빈은 끝까지 저항을 합니다 죽기 싫다고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

 

데요. 그래서 세자를 부르고 조금 이야기 하다가 이제 형을 집행 하라고 하는데 그때 장희빈이 세

 

자의 중요한 부위 즉 낭심을 있는 힘껏 잡아 당겨버리는데요 이 부분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수

 

없지만 실제로 경종은 후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의 아들 영조가 왕위에

 

오를수 있었던 거구요 그렇게 장희빈은 죽음을 맞이 합니다.

 

저는 여기서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연산군의 어머니가 사약을 받고 죽어서 결국 연산군은 어미의

 

복수를 한다고 사화를 일으켜 수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경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억울하게 죽음을 많이 하는데요 (왜냐면 정치적 희생양이 었으니까요. 서인과 남인의 싸

 

움) 그러나 그는 복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경종은 장옥정을 부모로써 사랑하지 않았던것

 

같아요 오히려 인현왕후를 더 많이 따랐으며 같이 있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낳은 정 다르고 기른 정이 더 깊다고 어렸을때부터 보살펴 주어서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게 정이

 

떨어 졌을지도 모르지요..

 

너무 글이 정신이 없고 제 맘대로 쓴 경향이 있던거 같은데..

 

모든 태클 다 환영합니다. ㅎ

 

추천수15
반대수33
베플준수귀요미|2013.07.22 03:48
실록에 신당을 차려놓았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시는 분들은 밑에분 말씀대로 실록을 보면 신당으로 차려놓고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내용나옵니다. 이 신당으로 인해 장희빈이 죽게되는 것은 다들 잘 알 겁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처럼 장희빈이 숙종을 너무 사랑해서 자결한것보다는 숙정이 자진을 명하고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네요.. 무고의 옥이죠.. 근데 글쓴이 말대로 장희빈이 경종의 그것을 잡아당겼다는 말은 정사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은 부분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장희빈은 못된년이고 인현왕후는 불쌍하고 착한왕비라는 이미지는 지어진 것 입니다. 사씨남정기나 인현왕후전에서 그렇게 묘사되어진것이지 실록을 보면 인현왕후는 장희빈이 왕자를 낳을때도 축하하지않고 질투하는 면모를 보입니다. 또한 경종이 장희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경종은 장희빈이 자결 명령을 받들자 석고대죄를 하였고 후에 왕이되어서는 옥산부대빈으로 추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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