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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을 넘긴나이.

후아 |2013.08.04 01:09
조회 2,387 |추천 3

내 나이 26살... 이뤄진것도 모아진것도 없다

방탕과 방황에 빠져 살았던 내 잘못이라 하지만,

이리 허무하고 쓰레기 처럼 살았던게 후회 스럽기만 하다.

내 잘못이 얼마나 컷는 지를 알려주듯 몸은 내 원하는대로 따라주지 않고 그 몸하나 살려 보겠다고 병원을 가도 구멍에 기스 까지 나버린 통장에는 한숨만이 가득하다.

10년전 16살 사춘기가 접어든 나는 아버지를 잃고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그 우울증은 접하기 힘든 나이였지만 알콜중독으로 스며들었다.

 

동생과 나를 키워보려 애쓰는 어머니는 내 눈에는 가시였다.

응급실을 갈때도 친구를 때려 유치장에 들어가있을때도 컴퓨터 전과 찍는다고 지문을 스켄할때도 어머니는 없으셨다. 내 옆에 아무도 없었다

아니 멋모르고 어울리는 친구들 뿐이였다.

 

그러다 16살 후반쯤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를 만나고 인생은 완전 뒤엉켜버렸다.

본드와 술뿐이 모르는 남자...

그의 옆에 있을 때는 니스냄새에 속이 뒤엉켜왔다.

그 남자와 어의 없는 말도 안되는 동거를 하면서 그 나이 가출하고 갈곳이 없어서...

아이를 가졌다.

만삭의 되서야 아이가 내 뱃속에서 숨을 쉬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지우기엔 너무 늦었고 내 몸의 일부가 되버렸다.

 

그 남자는 임신한 나에게 본드를 가르켰고 그 본드로 인해 엄마의 마음속에 수없는 난도질을 했다

정신 나간년 마냥 술과 본드에 떡이되서 집에 들어와 화단을 뒤집어 엎고 소리치고 아랫층 주인집과 싸우고 울고 미친듯 살았다.

그 당시 난 어쩔수 없었다.

내가 그리 죽이고 싶은 그남자가 수없이 나를 폭행했다.

내 행동을 신고하면 너와 니아이는 죽는다. 너 본드빠는 년이라고 소문낸다 등

무서웠다 지금도 거울을 보면 부러진 코뼈에 그 기억이 고스란히 보인다.

 

내 아이는 딸이였다 d하d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여자아이였다.

날 닮은 딸이였다..처음으로 어머니가 병실로 오셨다..

손을 잡아준다 미안하다고 우신다 엄마가 죽일 년이라며 목이 메서 우신다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그 모습이..몽롱했다

 

그러다 본드에 취해사는 남편과 나는 주민 신고를 받았다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려요 여자 비명소리가 들려요 신고내용..

아동복지센터에서 아이를 대려갔다

 

그후 나는 더 방탄해졌다..아이를 업고 주유소에서 알바를 하며 살았는데 그 아이 내 딸하나만 보고...엄마에게 마음을 열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이가 떠난후 나는 술을 미친듯먹고 눈에 보이는 소주병이든 면도칼이던 (일회용 면도칼은 면도날과 분리가 된다) 손목을 미친듯 그었다.

 

죽지 않았다.

 

그후 엄마가 신고를 하여 서구에 있는 페쇄병동에 입원 시켰다.

미웠다 그 나이 19살 엄마가 미웠다. 내가 죽겠다는데 왜 이런데 입원시켜?

엄만 그런다 널 살리고 싶어서야 내 딸이니까 살려야지 맞고 살고 싶지 않자나 여기있으면 맞지도 않고 경찰에 신고도 할수있고 너 편한대로 할수있어.

 

그 후 아이 아빠가 그남자가 날 빼냈다 보호자라는 이유로

...그후 엄만 돈을 130만원 탈탈 털어 대구로 도망을 유도하듯 보냈다.

100만원 보증금에 18만원 월세...

 

그러다 외로움에 인천으로 다시 왔다

내 몸은 병신이되었다.

몇년간 얻어맞고 몇년간 본드를 하고 몇년간 술에 찌들고

지독한 정신병원약을 먹어가며 커왔던 내 몸은..

 

내위는 쓰레기가 되버렸다

일을 하다가도 피를 뱉으며 일을 했다. 한푼한푼 모아 병원비라도 대보려고,

위내시경 그거 하나 받아보려고 미친듯 일을 했다 물론 치료비도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 모았뒀던 돈도 친구에게 빌려주고 연락두절인 상태다 4년이 지난 이시간까지..

 

피뱉는 사람을 누가 일하라고 쓰겠는가?

 

의도치않는 백조가 되서 살고있다..

 

세상에서 제일 마음아프고 미안한 사람들..나,엄마,이제 8살이된 우리딸,,,

추천수3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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