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디부터 이야기해야할까요.누구나 다 어려운일이 있었듯이 저또한 어릴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힘들게 지냈었죠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자유분방하게 나쁜짓만 시고 그 외에 하고싶은거 하도록 냅두는 스타일이셨는데 그게 지금 많은 도움이 된것 같아요.
이러한 기초바탕으로 재밌는 추억은 가득했지만 상고 진학한 것은 후회없는 선택이였지만 정말 공부를 안하고 못했네요. 대학 안가고 부모님 장사하는거 이어받으려고 꿈도없이 살려느데 부모님의 권유로 그냥 제가살고있는 도시의 대학에 진학하게되었네요. 예체능계열로가서 수학영화없는 과를 선택하여 20살 1학기 허송세월보내고 군대다녀왔죠. 조교로 발탁되어 재밌게 군생활하고 전역해보니 적극적인 마인드가 강하고 학비로 뽕을빼야겠다는 생각이 드면서 철이 들더라구요.
그 때부터 학교에서 할수있는 취업캠프 전액장학금 반액장학금 학교지원 해외프로그램 봉사동아리 방송동아리 등등 많은활동을 했네요. 그러다 보니 4학년때 교수님 추천으로 편집기사로 취업했네요.
월급 110 첫 직장 성남에서 시작 바퀴벌레나오는 월세로 시작. 돈이 백만원이 커보였음. 하지만 3개월만에 남는것이 없는 생활이라는것을 자각. 그동안 방송외주제작일을하며 배운 제작기술과 인맥으로 프리랜서 피디로 이직. 서울서 활동. 월급150 그래도 피디 . 재밌었음 남들은 명함내밀면 멋지다고함. 나또한 너무 즐겁고 후회없었음. 하지만 그때 2년 사귀던 경기남부살던 여친 나보다 월급많음. 사랑했었음. 결혼생각 하였음. 하지만 돈이 내앞길을 막을줄 몰랐음. 연봉이 꿀리니 자존심도 꿀림. 연봉높은 직업 과 상관없고 토익 없는 조건으로 검색. 사촌형이 제약회사 다님 추천해줘서 국내제약사 취업도전. 3개월간 면접 50번은 본듯 서류 100번냄. 국내상위사 운좋게 최종까지감.과감히 사랑했던 방송일 그만둠. 최종도 떨어짐. 멘붕.
졸지의 실업자 계속 면접봄. 정말 이게 취업의 벽이 높다는 현실에 부딫힘. 신세한탄. 자신감결여.
대충 주변소개로 병원 들어가서 남자가할수있는일을함. 이때 26살 어느새 2년지났는데 모아논돈도 그닥없고 병원서 근무하는데 내근업무 맞지않아 힘들어함. 일하면서 제약사 취업 계속도전 결국 5개월 근무하면서 취업도전이 결국 성공 국내상위사. 바로 병원 그만두고 그 회사감. 트레이닝받고 제약영업사원의 삶이 시작. 쉽지않았음. 사람상대하는일이 정말어려웠음. 하지만 방송 기술이 큰도움이되고 나만의 특이 이력및 스킬이 됨. 서서히 길이 보임. 월급도 막오름. 수습끝 인센티브도 받아봄 여름부터 제대로 적금시작. 한달에 170 적금 25연금 실비보험, 핸드폰비, 소액적금, 청약등등 월급세팅 끝. 어릴때부터 부모님의 월 용돈 제도가 지금 와서 큰도움된듯 그렇게 1년이 넘게 흐름. 적금 깬적없고 인센티브로 부모님께 돈꿔서 샀던 차 더 얹어서 1200이상으로 쪼개서 갚음.
그러다가 외국계 제약사가 겁나 가고싶음 아직 어림. 도전 7개월간 외국계제약사 서류100번 하지만 면접의 기회는 많지 않았음 약10번? 운좋게 7개월만에 이직 성공. 연봉더 오름 4000이상 됨. 외국계 근무 여건 좋음. 연봉이 저거지 상여금인센 뺀거임 나도 아직 감이 안옴. 물흘러가듯 주변광역시로 발령.
요약
군대다녀와서 정신차리고 취업의 높은벽을 실감하였으나 포기하지않고 될때까지 경험으로 터득해가며 수정해가며 시도하다보면 결국 한번만 붙으면 된다는 이치를 깨닫고 그 이치가 취업까지 연결되는 것같음.
자랑같이 들리거나 겸손하지 못한부분이 있을 수있습니다만. 다들 포기하지 말고 될때까지 한번만 붙으면된다는 마인드로 다들 잘됬으면 해서 글쓰게되네요. 물흘러가듯 살다보니 좋은날도 오네요.
ㄴ다들 화이팅 힘든 우리 20대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