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관될 글 보기를 하니 기독교 신의 진화과정에 대해 쓰신 분이 있든데.. 여기서 빠진 내용이 하나 있어서 보충하면 왕국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뭐 글 쓰기 전에 아시겠으되 저는 유치찬란한 신화 드립을 믿는 경우는 아니니 참고 하시고, 단지.. 예전부터 개신교의 주장과는 달리 애초에 기독교나 유대교는 유일신 종교가 아니고, 사실은 다신교였다가 유일신화 되는 진화의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말해 보려고 합니다만...
이는 바빌론에 끌려가기 이전부터도 사실 아마 회자되던 논리였을 듯 하고, 결론적으로 볼때 판테온을 재정립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고, 사실은 왕국시대까지 그닥 힘이 없던 신이 바로 기독교가 믿는 그 신이었다는 점...
이걸 좀 써 보려고 합니다만.
일단 열왕기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답이 있습니다. 솔로몬 왕의 경우 신이 무쟈게 축복을 했어도 이교도의 신들이 끼어 들어와 있었다고 되어 있죠.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데... 과연 신이 엄청난 축복과 능력을 주었다는 전설속의 그 대왕이 이교도의 신을 용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뭐 실질적인 이유는 부족국가의 특성상 원래 힘이 없었다는 진짜 이유가 있는데, 진짜 이유 안에서 후대에 왜 계속적인 우상숭배 전통이라고 개신교인들이 드립치는 그 일이 연속되는 상황이 오는지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바로 부족간의 서열 다툼에 의한 권력 이동의 문제라는 것.
사실 열왕기의 내용을 보면 왕권을 위해 중앙 집권을 시도까지는 했다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던 왕들의 내용이 나오고 이 왕들에 대해서는 뭐 예언자가 등장하네 어쩌네 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이는 후대에 짜집어 지기는 했으나, 나름 역사적 내용인 부족신에 의한 주신의 권력이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수 있는데, 다분히 이집트적인 전통이기도 하지요. 즉 왕이 바뀌면 그 왕의 수호신이 권력빨 세우는 경우는 흔히 있었고요.. 또한 중앙집권화 되지 못한 국가의 특징상 부족국가, 부락단위로 섬기던 서로 다른 신의 문제가 반드시 발생할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와중에서 여러 전승을 보면 '아나트와 결혼하여 팔레스타인 신들의 왕이 된 아도나이'의 이야기 등등이 나타나는데, 결론적으로 볼때 이 풍습을 생각해 보면 결국 다신교적 풍습이 남아 있었고 이 신들이 서로 돌려먹기를 하면서 너님은 우상이네 뭐네 싸워댄 전적이 고스란히 드러나긴 하죠. ㅉ
그럼 이 기록이 왜 남겨졌을까? 여기엔 사실 좀 묘한 답이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의 천사의 이름을 보면 타 민족의 신에서 뒷쪽에 접미사를 쳐서 천사형으로 붙여 부르는 이름이 많습니다. 물론, 메타트론, 산달폰과 같은 이름도 있기는 하지만 천신을 의미하는 엘을 붙여서 하늘의 존재임을 주장하게 한 경우가 꽤 많았다는 점...
즉, 실제적으로 콩가루 상태인 부족들에게 유대인의 종교로 하나로 일치된 민족성을 구가할 종교를 체계화 하는 태스크는 실상적으로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고 결론적으로 사용한 방법이 바로 '귀의의 형태로 타신을 자기네 판테온에 유입시키는 방법' 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타종교의 신들은 유대교 내에서는 천사가 된 것이지요. 뭐 이걸 조로아스터에서 배웠을 것이라는 점은 다들 예상하기 쉬운 과일 것이고...
사실 이런 짓은 후대에 한번 더 자행되게 됩니다.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 로마제국의 중심권에 가까운 동부지역과 일부 지역은 그럭 저럭 할만했는데, 문제는 서쪽의 저 게르만과 노르만, 그리고 앵글로 색슨 무리들은 도통 말을 안 들어 쳐먹고 반란질을 일삼을 기미가 보였다는 거고, 이들을 실제적으로 건드릴 힘이 부족한 로마는 나름대로 제국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타협을 보게 됩니다.
즉, 부족이 믿는 신을 카톨릭의 성자로 서품하여 천사와 같은 권위를 줄 테니 기독교로 개종하고 동맹의 형태를 유지하자는 식의 일종의 회유책이라면 회유책인 셈이지요.
사실 기독교인들의 흔한 착각이, 이미 유럽은 4세기 이후 급속하게 기독교화 되었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인데, 실은 10세기가 다 될 때까지 기독교화 되지 않은 나라들이 상당수 존재했습니다. 즉, 샤를 마뉴 대제의 신성로마 제국 영토권 내에서나 기독교가 어느정도 살아 있었지 북부유럽과 동부유럽의 상당수 국가는 기독교와 타종교가 병행되어 있어서 종교를 기독교로 규정하기 힘든 상황이었고요.
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등장으로 인해서 합스부르크 왕권이 전 유럽에 펼쳐지고, 러시아에 정교회가 성립하면서 동부 유럽을 석권하게 되던 시절 이전까지도 계속 되었기 때문에 실상 유럽이 기독교권으로 변모한 것은 실제로는 15세기 까지에 걸쳐서 일어난 일로 봐야 옳다고 보입니다. 즉. 과거 유대인들의 상황과 비슷했다는 점을 바로 알수 있게 되죠. ㅉㅉㅉ
결국 개신교가 주장하는대로, 사실 유대인들은 '유일신을 믿던 민족'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실은 신들을 믿던 부족들의 집산이었고, 이런 부족 국가들에게서 순수 혈통을 주장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긴 합니다. ㅋ 실제로 히브리인들과 가나안인들은 같은 유전입니다. 이건 노아 개드립 따위와 관계 없이 동일한 시대에 죽은 히브리인의 유골과 가나안인의 유골을 유전자 분석해서 돌린 결과 나온 답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민족보다는 부족 다툼'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한 것으로 생각되는 바이고...
토라내의 여러 기록이나 혹은 열왕기의 기록은 사실 그 일면을 왜곡하여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콩가루 집단이 공동의 목적에 묶여서 발전하는 과정 중에서 생긴 '주신의 위치를 가지는 신의 변천사'를 드러내는 셈이 되지요. ㅋ
추가: 사실 이런 것은 다른 민족신화에서도 많이 드러나는데, 북유럽을 예로 들어 보면 처음에는 오딘 발리 베의 신화가 일반적이다가 나중에는 오딘 토르 로키의 존재가 더 부각되게 됩니다. 이 3의 지칭은 사실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편으로 수비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성이 있지만, 주목해 볼 만한 부분은 결국 시대에 따라 신의 위치가 변하더라는 겁니다.
이것은 사실 요일 지칭에서도 알수 있는데, 수요일, 즉 웬즈데이의 유래는 보탄으로도 불리우던 오딘의 날이라는 것이고, 목요일의 경우는 토르의 날, 금요일은 프레이야의 날이며, 화요일은 티르의 날로 고려되어 왔습니다. 즉, 막판에 가서는 저 네 신이 가장 중요한 신으로 지칭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이런 이동은 사실 부족간의 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 거고...
같은 중근동 지역에서는 이난나 여신이 나중에 이슈타르 여신과 합쳐지는 경우를 볼수 있는 등 신들은 때때로는 서로 결합하여 다른 모습들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사실 예수와 미트라의 관계도 이와 같은데, 이외에도 많은 결합을 가진 것이 바로 호루스입니다. 뭐 이유라면 이시스가 생각보다 인기가 있던 신이었던 관계로... ㅋ
개신교는 자기네가 이런 구습을 타파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웃기는 소리입니다. ㅉㅉㅉ 실제로는 그들은 창씨개명을 한 것과 진배없는 짓을 한 거고 스스로의 근본을 저버린 셈이 되는 패륜을 저지른 건데.. 하긴 뭐 개신교 역사에서 패륜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옵션이니 알만 하지요. ㅋ 그 할애비뻘되는 종교인 유대교를 박해하는데 가장 열심인 종교도 개신교고 애비뻘인 카톨릭과는 피터지게 수세기간 싸웠지. 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