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몇일이지...? 방을 훠이훠이 둘러봐도 날짜를 알수 있는 표식이나 숫자가 없다. 쉽게 말해서 달력이 그 어디에도 없다.
아...젠장...우리집에는 달력이 없지...짧은 소파에 다리를 접고 누워있던 나는 다리에 쥐가 나 거실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충전기에 꽃아놓은 휴대폰으로 간다. 매우 똑똑하여 그 이름이 스마트폰인 네모난 기계를 집어들고 손가락을 갖다 대면 달력을 보여주는 아이콘이 눈에 안띄어 이마에 주름살을 깊게 지으며 찾아헤맸다.
원래 첫 화면에 있던걸 못보고 지나쳐 도무지 무언지 알수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백여개의 아이콘들을 노안화된 시력으로 눈을 비틀며 거의 1분을 헤메어 모두 해독한 이후에야 다시 원점으로 와서 달력 아이콘을 찾아 클릭하니 달력화면이 얼굴만한 전화 화면에 휘리릭 뜬다..
손의 움직임에 월별 달력이 휘리릭 지나가는게 참 생각할 수도 없었던 신기한 세상에 살고 있기는 하다. 날짜를 누르면 그날의 일정들도 저장하여 나중에 확인할수 있으니...얼마나 편리...하기는 개뿔... 난 저장해놀 일정이 하나도 없다. 부모님 제사때가 되면 늘 그랬듯이 형수에게 문자를 보낸다... 올해는 몇일이죠? 와이프 생일, 기념일,,,등등 머리로 외우면 편한거고 못 외운거는 물어보는거다... 물론 가끔...잊고 지나기도 한다...... 그리고 뒤지게 욕먹고...욕먹은 후에도 기록은 안한다 그게 인생이지 머..
내가 어릴적 나란 나란히 줄선 까맣고 윤기나던 기와들 밑으로 방두개가 나란히 부엌과 붙어있고 그 앞에 세월의 때를 입어 반짝반짝 빛나던 툇 마루 그리고 고양이가 개의 꼬리를 베고 햇빛을 받으며 골골거리며 자던 토방. 그리고 앵두나무밑으로 철마다 상추랑 부추, 호박을 심고 김장독을 묻던 앞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는데.
그 툇마루에는 기둥이 있었다. 서까레를 받치고 있던 네모난 기둥.
그 기둥 중간쯤에는 늘 달력이 걸려 있었다.
하루 하루 날짜를 넘기는 비치는 듯한 얇은 종이 그때 우리가 습자지라 부르던 그 종이.
신문지 반쪽만한 큼직한 달력...이 아닌...일력이라고 불렸던 그 하루에 한장씩 넘기거나...찢는 달력 아니 일력...
그 일력을 여기저기 미리 부탁하고 이렇게 저렇게 어렵게 구해서 연말에 기둥에 걸어놓을때면 아버지의 표정은 항상 뿌듯해보였다.
장날이면 집에 오는 손님들이 그 달력을 부러워할때마다 서울에 있는 아들이 어쩌고 저쩌고...
먼 달력하나에 사연이 그리 긴지.. 그때는 달력하나를 구한데도 사연이 많고 자랑할 거리가 있었다.
그 일력의 종이는 떡이나 부칭개같은 음식을 싸는데 썼고 지금의 크리넥스보다도 더 등급이 높은 화장실용 휴지였다. 이종이의 화장실에서의 함정은 부드러운 반면 종종 손가락이 종이를 뜷는다는데 있었다. 뜷은 이후에는..... 상상에 맡긴다.
그리고 아랫목 때묻은 벽지위에는 국회의원의 얼굴이 인쇄된 12개월 달력이 한꺼번에 나온 요즘의 다이어리 첫페이지 같은 느낌의 포스터 달력이 부터있었다. 나는 어린마음에도 저 달력은 왜 걸어놓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검은 양복을 입고 어색한 미소를 지은 국회의원이라는 그 어른의 사진이 늘 보기에 불편했다.
그리고 까만 글씨로 큼직한 숫자만으로 인쇄된 하얀 달력이 안방의 또다른 벽에 걸려있었는데 이 달력밑에는 항상 무슨 종묘사 이런 상호가 박혀있었다. 안방에 이웃하여 장지문으로 연결되어 붙어있는 웃방에는 세계의 명화나 유럽의 고성같은 전형적인 달력그림들이 인쇄된 번드르르하고 빳빳한 아트지 달력이 걸려있었다.
이런 달력은 책을 싸는데 썼고 빠닥빠닥 한 달력은 딱지를 접기도 하였다.
그리고 옆집에 놀러가면 내 어린가슴을 뛰게 하는 달력이 있었으니 바로 연예인 수영복 달력이었다. 뒷집의 이장집에 걸려있는 연예인이 한복을 입고 절을 하는 달력은 별 느낌 없었느나 옆집 형네방에 고즈넉히 걸려있던 그 달력의 여인들은 내가 살고 있는 3차원의 세계에서 그녀들이 살고 있는 2차원적인 그 달력안으로 어서 들어오라고 나를 바라보는것 같았다. 그때 나는 왜 사진을 보는데 침이 넘어가는지 생리학적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것 같다.
어쨌든 그 때 너댓 식구가 살던 우리집엔 달력이 7개정도 걸려있었던 것 같다. 그때 달력은 액자의 노릇, 터진벽을 감춰주는 시트지 책포장지, 선물종이, 뒷처리 휴지, 정말 많은 용도로 쓰였던거 같다. 물론 그 큰 글씨의 날자옆에 이것저것 기록해 놓는 화이트보드의 역할이 젤로 큰역할이었겠지만.
하지만 지금 우리집엔 벽에 걸린 달력이 없다.
매우 똑똑한 전화가 있다.
가끔 눈돌리면 시야 가득 들어오던 그 큰 숫자들이 그리울때가 있다.
그래도 나나 와이프나 벽에 그 큰 글자의 달력을 걸진 않을것이다.
와이프는 액자 사이트에서 벽에 걸 작고 예쁜 액자 세트들을 찾고 있고.
나는 와이프가 일하러 나갈 날, 시간을 계산하여 혼자 뻘짓하러 나갈 수 있는 날을 스마트한 손전화속에서 계산하며 킬킬 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