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문숙이 30년 만에 고백하는 “23세 연상 고 이만희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가슴 아픈 이별…”
▲문숙이 주연을 맡은 이만희 감독의 유작 ‘삼포 가는 길’의 한 장면과 이 감독의 촬영 모습.이 감독은 한창 창작열을 불태우던 60년대 여러 차례 검열과 삭제에 시달리며 고초를 겪었다. 지난 63년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으로 제3회 대종상과 제l회 청룡상을 수상하고, 66년 ‘만추’로 제3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감독상을 받는 등 전성기를 누렸지만, 65년 ‘7인의 여포로’가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아 구속되고, 이후 만든 ‘천국의 사랑’은 제작 정지, ‘휴일’은 개봉 불허 조치를 받는 등 부침이 심했던 것이다. 자신의 예술을 번번이 가로막는 사회에 불만이 많던 이 감독은 문씨에게 영화 창작에 대한 견해, 불합리한 사회, 이념, 도덕 등에 대한 의견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때때로 문씨의 눈을 들여다보며 “너는 알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라고 묻곤 했다고. 문씨는 “우리는 서로의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는 현재와 과거를 막론하고 굳이 얘기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며 묻지도 않았다. 나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확하게 이미 알고 있는 듯 느껴졌고 그가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이해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만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세상과 이상을 초월한 운명적인 연인이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문씨는 영화 ‘태양 닮은 소녀’의 촬영이 마무리될 무렵 이 감독 집을 찾아가 그의 자녀들도 만났다고 한다. 당시 이 감독은 이혼한 뒤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상태였는데, 문씨는 그날 이 감독과 그의 막내딸인 배우 이혜영씨 사이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그것이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보낸 밤이었다고.
“얼마 전 오랜만에 이혜영씨를 만났어요. 제가 라면을 끓여주던 게 기억난다고 하더군요. 제게 이혜영씨는 약간 수줍은 듯하지만 눈빛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정이 많아 보이는 귀여운 아이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이 감독은 ‘태양 닮은 소녀’가 개봉될 즈음, 문씨에게 ‘문숙’이라는 예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당시 이 감독은 “나는 같이 일했던 여배우들에게 ‘문’자가 들어간 이름을 지어주는데 그 ‘문’에 본명 ‘오경숙’ 중 한 자인 ‘숙’을 더해 ‘문숙’이라고 부르면 어떻겠냐”고 물었고, 문씨는 바로 승낙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한참 후에야 이 감독이 말한 ‘문’자를 넣어 이름을 붙여준 배우가 문희, 문정숙씨 등이며 특히 문정숙씨와는 오랫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저 이전에 그분에게 다른 여자들이 있었다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됐어요. 우리가 만난 이후 ‘이 사람은 오직 나를 위해 태어난 남자’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태양 닮은 소녀’로 문씨는 그해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을 수상했고, 세상은 차츰 유명 영화감독과 촉망받는 신인 배우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눈치 채기 시작했다. 둘 다 배우자가 없었으므로 불륜 관계는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나이 차 때문에 사랑을 드러내지도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해 가을 두 사람은 조그마한 절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금반지를 한 개씩 나눠 꼈다. 그와 오지명이 함께 주연을 맡은 ‘삼각의 함정’ 촬영을 막 끝내고 이 감독의 유작이 된 ‘삼포 가는 길’ 제작을 준비할 무렵이었다.
서울 토박이로 평소 서울 뒷골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샅샅이 알고 있던 이 감독은 서울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영화 소재로 삼곤 했다고 한다. 문씨에게 술집 작부 출신인 ‘삼포 가는 길’의 주인공 ‘백화’ 캐릭터를 생생히 설명하기 위해 그를 종로3가 뒷골목 술집에 데려가 그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과 술자리를 갖게 하기도 했다.
“그분은 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제 안의 어떤 면을 찾아내 영화 속에 살려내곤 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함께 영화를 찍는 게 즐거웠고 무척 편안했죠. 또 이미 머릿속에 모든 콘티가 완벽하게 들어 있어서 나머지 사람은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됐어요.”
문씨는 사방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세상과 고립된 듯 느껴지던 강원도 산골에서 이 감독, 배우 김진규·백일섭 등과 함께 ‘삼포 가는 길’을 촬영했던 그해 겨울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순간 순간이 도저히 잊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기만 했던 그때, 문씨는 그것이 두 사람이 함께 연출한 짧은 사랑의 마지막 무대였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촬영이 끝나고 서울에 돌아와 편집작업을 지휘하던 이 감독이 갑자기 쓰러져 75년 4월 세상을 떠난 것이다. 병명은 급성 위출혈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