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일본 유학 당시 난 집에서의 원조가 전혀없는 상태였기에 학교-알바-집의 지겨운 생활을 이
어갔다. 첫 일본에 도착했을때는 비싼 야칭(월세)때문에 2명이서 방을 함께써야 했지만 1년이 지
나갈때쯤 러브호텔 청소나 한국음식점등에서 알바하며 틈틈히 모은 돈으로 학교 근처 4평 남짓한
독방에 주방과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항상 둘이 방을 쓰다 좁긴
하지만 내방이 생겼다는 기쁨에 그 좁아터진 방꾸미기에 엄청 열을 올렸던게 기억난다.
원체 좁으니 큼지막한 가구는 들일순 없지만 작은 화분이나 소도구등으로 말이다.
이사한 후 얼마정도 지났을 때 집 근처 조그마한 공터에서 장이 열렸다.
어차피 그날은 알바도 쉬는 날이기에 시간도 때울겸 혹은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 하며 인테리어 장
식으로 쓸만한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심경에 구경을 가게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기이한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 그림은 무언가 매력적이었으며 슬프고 애잔한 장발을 길게 늘어트린 동양 여성의 초상화였다.
이전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선생이 보여주었던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와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이었
다.
<오필리아>
그때 무슨 생각에 그런건진 모르겠지만 난 결과적으로 이 그림을 샀다. 3000엔이라는 가격이 조금
은 부담이 됐지만 이 그림이 왠지 내 방의 쓸쓸함을 조금은 덜어줄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빈 공간에 걸어두고 혼자 흐뭇해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기분나쁘지 않냐며 타박도 했지만 그냥 무시해버렸다.
뭐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하는 심정 또는 괜한 반발심 같은 치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난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그 집에서 근 1년간 생활하며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살면서 가끔 가위에 눌리기도 하고 늦은 새벽에 일 마치고 들어와 방안에 발을 들일때 기분나뿔정
도로 소름이 돋는 일이 있어도 설마 하는 마음에 무시하며 지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국에 귀국하는 날..
약간의 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짐은 택배를 통해 한국으로 보내게 되었지만
한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여인의 그림....
이 그림을 가지고 돌아가는게 고민이 되었다.
사람 얼굴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태우기도 뭐해 다른방 사람들에게 주려 했지만 누구도 원칠 않
았다. 그렇다고 트렁크에 넣기는 그림이 상할듯 하여 결국 방안에 있던 조그만 벽장안에 넣어놓은
채 바삐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 후 친구만나랴 입사지원하랴 1년간 백수짓 하던 내가 다행히 어느 조그마한 무역회사에 입사
하게 되었다.
그 회사는 주로 일본과의 무역을 하는 회사로 일년에 2~3번에 출장을 보내주는 곳이었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일본,,학생 시절 알바하던 곳에 정장차림으로 찾아가 한 사람 몫의 일꾼으로서
인사드리러 갔을때의 그 뿌듯함이란...
일과를 마치고 난 예전에 살던 기숙사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기숙사 주인은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여 기숙사를 차린 나이차이가 크지않은 유쾌한 형님이었다.)
간단한 통화 후 그 형님과 둘이 술을 한잔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세상사는 얘기며 당시 사귀던 여친얘기며 시시콜콜한 이야기꺼리가
바닥날때즘 형님의 입에서 뜻밖에 소리가 나왔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고 얼마지나지 않아 기숙사에 이상한 소문이 돌아 학생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단다. (총 1,2층 8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 저택으로 지금은 3개방만 들어와 있고 나머진 들
어와도금방 나가버린다고 하는 것이다.)
그때 스치듯 느껴지던 껄끄러움...
이유를 물어보았다.
한 학생이 흐느낌과 같은 이상한 소리를 들린다고 소문이 나면서 근처 학교 학생들이 기피하게 되
었단다. 그래서 지금 사는 사람들도 근처 회사에 다니는 독신 회사원뿐 이란다.
주인형님은 며칠을 묵어보며 생활해봐도 들리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고 혹시 손만 뻗어도 닿을
거리인 옆집에서 난건 아니었나 확인해봐도 그런일이 없었다고 하니 참 알다가도 모를일이라며
쓴 웃음만 지었다.
순간 난 매우 당황스러웠다.
이유는 알수없지만 마음속에 지워졌던 그 그림이 떠올랐고 강하게 뛰는 심장은
확인이 필요하다고 소리쳤다.두려움 보다는 강한 호기심이 계속 나를 자극했다.
결국 난 별 시덥잖은 소리 다 한다고 늦었으니 그 집에서 하루밤 재워달라고 졸라댔다.
형님도 마침 기숙사에 볼일이 있었는데 잘 됐다고 하며 기숙사에서 한잔 더 하자고 흔쾌히
허락했고 어차피 회사업무도 끝났으니 내일은 비행기 시간 맞춰 돌아가면 되기에 큰 문제는
없을듯 했다.
헌데..
기숙사가 가까워짐에 따라 비틀거리던 정신은 점점 또렷해지고 용기는 서서히 어둠으로 사라졌다.
혹시?설마.를 반복하며 고민해 봤지만 사실 이전 살면서 크게 피해를 입은기억이 없기에 마음
을 다 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12시가 조금지난 시간에 우리는 기숙사에 도착했다 ...
막상 문앞에 서니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내가 간이 이렇게 작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형님이 주섬주섬 열쇠를 꺼내 문을 열때까지 잠시 기숙사를 살펴봤다.
이미 늦은시각이어서 그런지 불빛이 하나 없는 주택은 괴기스러움 그 자체였다.
문이 열리고 형님이 얼른 들어오라고 손짓으로 부른다.
복도에 불이 들어오고 1층 주방을 지나 2층 내방 앞..난 일단 확인 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형님은 1층 냉장고에 안주꺼리를 찾는다고 내려가 버렸다.
만약..만약이지만..그 그림이 벽장안에 남아있다면..
그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난 결심을 굳히고 방 문을 열었다.
고요한 어둠..
중앙에 달린 줄을 잡아댕기자 불이 들어왔다.
아무것도 없는 다다미 방 그리고 닫혀있는 벽장.
애써 덤덤하게 벽장을 열었다.
....
영화처럼 뭐라도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냥 텅빈 공간이었다.
안도감이 몰려왔다..
무언가 누명이 벗겨진거 마냥 기쁜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밤 늦으시간이라는 것도 잊은채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뛰어서 1층으로 내려왔다..
헌데 형님은 없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주방이 이상했다.
사람이 한둘이라도 살면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건만
건조한 식기 몇개와 물기도 없는 싱크대..
뭐지? 하는 마음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온기가 없는 집..2층 방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사람이 사는 구나..하는 생각과 동시에..
문자가 왔다..
이번엔 제대로 챙겨가라..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