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 의식. 하루를 마치 종교적 의례처럼 여기는 엄격한 태도이다. 일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유용한 도구,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반복적 행위.)
자신의 작업 습관을 경계한 습관의 동물
전기 작가 필립 데이비스의 표현에 따르면, 장편과 단편을 가리지 않았던 소설가 버나드 맬러머드는 “시간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맬러머드의 딸은 아버지를 평생 “철저하게 강박적으로 시간을 지키던 분”으로 기억했다. 이 같은 강박적인 시간관념은 작가로 일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더구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평생 교사로 일했기 때문에 시간을 철저히 관리하지 않았다면 글을 쓸 시간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맬러머드는 자제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제력은 자아를 성취하기 위한 이상적인 수단이다. 예술에서 뭔가를 이루어내고 싶다면 자신부터 단련하라!”고 말했다.
멜러머드는 1940년, 다시 말해 스물여섯 살이 된 해부터 진지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 직후 브루클린의 야간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야간학교 수업은 저녁 6시에 시작해 10시에 끝났다. 따라서 맬러머드는 낮에 다섯 시간 동안 글을 쓸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글을 썼지만, 12시 30분에 점심 식사를 위해 중단했고 그 후에는 면도하고 독서하며 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꼬박 8년 동안 이 시간표를 따랐다.
1949년 맬러머드는 오리건 주립대학교의 교수직 제안을 받아들여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이주했다. 당시까지 맬러머드는 단 한 편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았으나, 그 후 10여 년 동안 네 편이 소설을 발표했다. 한층 여유로워진 시간표 덕분이었다. 월요일과 수요일과 금요일은 강의와 채점과 학교 업무에 충실했고, 화요일과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장편과 단편을 집필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또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일요일에도 잠깐잠깐 글을 썼다.”
오리건에서 지낼 때 글을 쓰는 날이면 맬러머드는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10분 동안 운동한 후, 서둘러 아침 식사를 끝내고 학교 연구실에 9시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아침 내내 작업해도 겨우 한 페이지, 잘해야 두 페이지를 채울 뿐이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아침에 작업한 글을 수정하고, 4시쯤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서 잠깐 낮잠을 잔 뒤 집안일을 처리했다. 6시 15분에 저녁 식사를 끝내면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때로는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었다. 아이들이 잠든 후에 맬러머드는 세 시간가량 책을 읽었다. 절반의 시간은 소설을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가 집필하던 소설과 관련된 논픽션을 읽는 데 할애했다. 그리고 자정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멜러머드는 습관의 동물이었지만 자신의 작업 습관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걸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1975년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나는 나일 뿐, 피츠제럴드도 아니고 토머스 울프도 아닙니다. 글을 쓰려면 그냥 앉아서 쓰면 됩니다. 특별한 시간이나 장소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자신의 기질이나 성격에 맞는 방법을 택하면 됩니다. 어떤 작가가 철저히 시간을 지키며 작업한다고, 그 사람이 어떻게 작업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제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방법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비결이 있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소설을 쓰는 겁니다. 시간은 훔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글로 표현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결국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한마디로, 깨야 할 진짜 미스터리는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 409p~411p
- 버나드 맬러머드 (1914~1986) 미국의 소설가. 러시아계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나 유대계의 미국 이민 생활을 우회적으로 다룬 작품들을 썼다. 대표작으로 [수선공]. [내추럴]. 단편집으로 [마법의 통]. [렘브란트의 모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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