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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묻은 슬픔, 희망의 빛이 닿다<보따리상 할이버지 출국금지 해제 의견표명 사례>

김남영 |2014.03.24 15:51
조회 124 |추천 0

  중국 농산물 무역업자의 보따리 운반상, 일명 ‘따이공’으로 살아온 김씨 할아버지. 과거 사업 실패로 인해 수형 생활을 하고, 뇌졸중 후유증으로 고생하며 근근히 살아온 김 씨 할아버지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내려졌다. 출국금지 조치로 인해 그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따이공’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따이공 할아버지들의 고단한 삶 >
  부산댁이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돼지국밥을 천 씨 앞에 내놓았다.

“부산댁은 부산 놔두고 왜 여그 군산까지 와서 국밥을 팔고 있는가? ”
돼지국밥에 부추를 그득 넣으며 천 씨가 실없이 물었다.
“뭐라 카노? 밥이나 묵어라.”
살다보면 여기서도 살고, 저기서도 살고, 바닷물에 떠밀려 다니면서도 살아지는 게 인생이다. 일주일에 세 번, 중국과 군산을 오가며 농산물을 대리 통관시켜주고 일당 6만원을 챙기는 천 씨가 그런 삶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안부를 묻듯 가끔 서로들 물어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대답 대신 괜한 어깃장을 놓는 게 부산댁의 말본새다.
“김씨 할배는 와 저카고 있는데?”
부산댁은 아까부터 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선착장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김씨 할아버지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중국행 배는 오후에나 나가는데 아침나절부터 선착장에 나와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전에 들어온 배에서 내린 것 같지도 않았다. 천씨가 한참 늦은 점심을 먹는 이 시간까지 아직 그 자리다. 김씨 할아버지는 천 씨와 함께 따이공 일을 한다. 따이공으로 사는 이들은 예순 살은 아주 젊은 축이고 대개 일흔 살이 넘은 할아버지들이 많다. 사업에 실패해서 가족과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배에서 먹고 자고 하다 보니 배숙자라고도 한다. 따이공이니, 배숙자니, 보따리상이니, 어떻게 불러도 다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침 9시에 보따리를 들고 배에 탄다. 군산에서 중국 석도까지 15시간. 배에서 먹고, 자고, 빨래도 한다. 다음 날 오후 6시 배가 뭍에 닿으면 보따리를 가지고 내린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다시 보따리를 들고 배에 탄다. 그게 그들의 삶이다. 손에 쥐는 건 몇 만원뿐이 지만, 먹고 자는 게 해결되기 때문에 또 배를 탄다.

 


< 마지막 생계수단마저 빼앗겨버린 설움 >
  “김씨 배 못 타.”
부산댁의 물음에 천씨가 국밥을 크게 한 술 떠서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와?”

부산댁의 눈이 커다래졌다. 김씨 할아버지가 배에 못 타게 됐다면 정말 큰 일 중에 큰 일이었다. 소문으로는, 김 씨 할아버지는 소싯적에 건축업을 하며 사업을 크게 벌였다가 부도를 맞았다고 했다. 그때 가정도 풍비박산 나고 몇 년 감옥살이도 했다.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는데 지금은 그나마 많이 나아진 거라고 했다. 신용불량자에 몸도 성치 않아 다른 일거리를 잡을 수 없는 김 씨 할아버지에게 따이공은 마지막 생계수단일 것이다. 배에 못타게 되면 먹고 잘 곳이 없어지니 집이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고, 돈 한 푼이 아쉬운데 그마저 끊기면 정말 굶어 죽을 판 아닌가.
“아, 출국금지 됐다잖여.”
김씨 할아버지가 출국금지가 된 것은 김씨가 20년 전 부도를 맞을 때 세금을 체납해서였다. 재산을 해외로 유출하거나 국외로 도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세무서에서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감옥이라도 갔으면 좋겠다고 그러드만. 하루 세 끼는 해결된다면서. 바닷바람 오래 맞으면 병난다고 억지로 들여보냈는데 또 저러고 있네. 같이 밥한술 뜨자고 해도 말을 안 듣고.”
천씨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뚝배기가 말끔히 비었다.
“김씨 할배가 무슨 재산이 있겠노? 한 달 70만원 벌이가 빠듯할낀데. 한국에서도 기댈데가 없는데 중국까지 가서 뭘 한다고, 출국금지가 가당키나 하나” !
부산댁이 공연히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걸 알지만 세무서나 법무부나 그런데서는 믿어주질 않아서 문제지…. 조금씩이라도 틀림없이 갚을 테니 출국금지 해제 해달라고 세무서에 8만원을 들고가 사정, 사정했다드만”.

< 출국금지는 풀렸지만, 바다에 묻은 한은 여전히 >

  김씨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부산댁이 밖으로 나가 할아버지 손을 끌고 가게 안으
로 들어왔다. 천 씨 옆에 억지로 앉히고 뜨끈한 돼지국밥을 말아 할아버지 앞에 내놓았다.
“어데 사정 얘기를 좀 해볼 데는 좀 없어예?”
부산댁이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마주 앉았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 말을 들어준다고 해서 찾아갔다우”.
김씨 할아버지가 어눌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그래, 거기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뭐라 카데요?”
“내 사정을 잘 봐줬어. 출국금지가 당장 생계에 큰 고통을 주니까 출국금지해제 요청을 해달라구, 그렇게 의견표명을 했다는구먼… 잘 될거래… 배도다시 탈 거구….”
“하이고, 고마워라. 천만다행이네예. 그런데 바다에는 왜 나와 있었는데예?”
김씨 할아버지는 숟가락을 뜨다 말고 아무 말 없이 먼 바다를 내다봤다. 부산댁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세상천지 발붙일 데가 없어서 겨우 발을 붙인 곳이 바다였을 것이다. 바다에 토해낸 설움과 울분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 바다를 떠나서 김 씨 할아버지는 갈 곳이 없었을 것이다. 부산댁도 김씨 할아버지를 따라 바다를 바라보았다. 천 씨도 괜한 헛기침을 하며 코를 훌쩍였다. 세 사람 모두 바다에 많은 것을 묻어두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 사례 자세히 보기 >
C씨는 일명 ‘따이공’으로 고용되어 6만원 정도의 일당을 받아 근근히 생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과거 부도로 인한 국세 체납을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 출국금지 처분이 내려져, 생계가 어려워지자 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접수했다. 권익위는 C씨가 교도소 수형 기록과 뇌졸중 후유증을 겪고 있어 일반적인 취직이 불가능해 사실상 ‘따이공’이 유일한 생계수단임을 고려하여, ‘불가피한 사유로 출국금지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고 판단하고 C씨의 출국금지를 해제하도록 의견을 표명했다. 권익위의 의견표명은 수용되어 C씨는 현재 출국금지가 해제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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