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며 방사능 피폭 작업을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들, 그리고 공익신고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아버지. 그러나 부자에게 돌아온 것은 군 복무를 440일이나 더 하라는 통보였다.
< 아들의 정의를 응원해준 아버지, 하지만 냉혹한 현실 >
진혁(가명)이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거실에 있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진혁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제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앞에 앉았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덮어도 머리가 복잡한 건 마찬가지였다. 진혁은 며칠 전 440일 연장 복무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의무복무 제대를 앞두고 있던 터였다. 진혁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하지만 진혁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병무청의 통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경찰 출신인 아버지는 평생 ‘정의’를 가슴에 두고 살았다. 진혁에게도 자랑스러웠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요즘 아버지는 진혁을 마주보지 못한다. 진혁이 공익신고자가 된 이후부터였다. 진혁이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업체의 내부 비리를 고발할 것인지를 두고 갈등하고 있었을 때 가장 먼저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이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고뇌는 깊었지만 길지 않았다.
“정의롭다면, 네 뜻대로 해라.”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진혁은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뿌연 안개를 걷어냈다. 일반인이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방사능 피폭을 당하도록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다. 진혁은 졸업 후 산업기능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했다. 산업용 정전기제어장치를 생산하는 업체였다. 처음 근무를 시작하면 서 기획실에서 일하라는 상사의 지시를 받고 진혁은 망설였다. 공익근무요원(소집 대상 보충역)이 생산과 제조 분야에서만 근무하도록 규정되어있는 병역법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말했지만 모든 것은 회사가 책임지니 회사의 결정에 따르라는 말만 들었다.
< 정의로운 신고, 440일 연장 복무로 돌아오다니 >
얼마 후 진혁은 방사선으로 전기를 없애는 제품의 성능을 검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문제는 거기서 생겼다. 방사능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어떤 안전장비도 없이 방사능을 다루는 것을 보고 진혁은 경악했다. 산업안전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온 몸이 가렵고 극심한 두통이 왔다. 급기야 같은 일을 하던 동료가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방사능 피폭 때문이었다. 진혁은 상사에게 방사능 차단 작업복 착용을 건의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망설여졌다. 그때 아버지가 진혁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진혁은 업체의 위법사실을 관계기관에 신고했다. 쉽지는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화살은 예측을 한참 벗어난 곳에서 날아왔다. 신고를 받은 조사관은 조사도 나오기 전에 진혁의 신고사실을 업체에 알렸다. 사건 관계자에게 신고를 철회할 것을 은근히 요구받기도 했다. 진혁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조사 결과 진혁의 신고 내용은 사실로 밝혀졌다. 해당 업체는 과징금과 과태료 처분을 받았고 진혁은 용기 있는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아 국민권익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그 후 진혁에게 돌아온 것은 440일의 군 복무연장 통보였다. 역시 기획 파트에서 일한 몇 개월이 문제가 되었다. 진혁은 밤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상식을 말하는 게 왜 이리 힘든가. 자신을 가운데 두고 온통 세상이 불의에 젖어있는 것 같았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만난 구원의 손길 >
어느 밤 진혁은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숨 죽여 고통을 삼키는 그 울음이 누구의 것인지 진혁은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진혁에게 더 이상 ‘정의’를 행하라고 차마 북돋아 주지 못했다. 불의에 눈 감으라 말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그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게 틀림없었다. 진혁은 자신이 과연 옳은 일을 한 것일까, 처음으로 후회했다. 창문을 열어젖혀 새벽 공기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때 퍼뜩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동료였다. 진혁은 깨달았다. 다시 결정해야한다 해도 다른 선택이 없었다. 동료를 구해야만 했다. 진혁은 이제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길 바랐다 . 진혁은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해당기관에 군 복무 연장처분의 감경을 권고했다. 소용없었다. 공익침해신고와 관련한 공익신고자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440일 군 복무 연장은 행정처분이기 때문에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책임감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진혁은 막다른 길에 갇힌 기분이었다. 진혁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삼키고 습관처럼 노트북을 열었다. 행여 관련 뉴스가 있을까 꼼꼼히 들여다봤다. 진혁의 눈길을 사로잡는 헤드라인이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익신고자의 책임감면 범위를 행정처분까지 확대하고,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대상 법률을 기존 180개에 서 280개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현재 정부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계류 중이었다. 자신이 절망에 빠져있을 때 세상 어디선가 그런 진혁을 구해주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애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진혁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버지의 방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진혁은 이제 자신이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때란 걸 알았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께 알려드리고 싶었다. 아버지의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았던 ‘정의’는 아직 아들의 가슴 속에 그대로 있다고,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고, 진혁은 말하고 싶었다.
< 사례 자세히 보기 >
군복무 대체근무로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던 D씨는 업체가 방사능 피폭 작업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신고했고, 업체는 과징금과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하지만 관련법 위반사항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D씨가 대체복무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분야에서 근무한 사실이 확인되었고, 이로 인해 ‘440일 복무연장 처분’을 받았다. 권익위는 사업주의 지시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므로 감경해줄 것을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에는 행정처분에 대한 책임감면을 요구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권익위는 공익신고자 보호를 강화하고 신고범위를 확대하기 위하여 「공익신고자 보호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