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과 이광수 등은 비열한 민족반역자들인가? 그들을 속죄양으로 만드는 것은 정의로운 행위일까?
한국 역사학자 100명과 일본 역사학자 100명에게 묻는다면 어떤 판결이 나올지 궁금하다.
조선말 한반도는 아수라장이었다. 극심한 흉년과 탐관오리들의 등살로 치안이 마비될 정도였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시달리던 농민들이 봉기했다. 조선정부는 관군, 청나라군, 일본군을 동원하여 그들을 몰살시켰다.
당시 고종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일본이 영국에게 산 군함을 고종은 비싼 값으로 구입했다가 헐값으로 되팔았다. 막대한 국방비의 낭비였다. 당시 조선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본 정부에 막대한 부채를 진 조선은 치안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군인과 경찰에게 모래가 잔뜩 섞인 쌀을 급료로 줄 정도였다. 치안이 마비된 사회는 아수라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만일 한일합방이 없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빠른 시일에 일본의 부채를 갚고 급속히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의문스럽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었다. 우선 조선에 치안을 유지하는데 굉장한 비용이 들었다. 굶주림과 질병에 허덕이는 절반 이상의 조선인들을 먹여살리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그들이 얻은 것은 동양척식회사를 통해 무식한 조선인들의 토지를 수탈했을 뿐이었다.
조선에 금을 캐러왔던 일본인들은 거의 모두 알거지들이 되었다. 값이 싼 조선쌀을 일본으로 수출했던 일본 미곡상들은 일본 농민들의 반발로 곧 쌀 수출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과 태평양 전쟁을 벌린 일본인들은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우며 조선인들을 징용과 징병으로 끌어갔다. 굶어죽을 정도가 된 상태가 되자 급료를 받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원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최후의 발악으로 조선에 공장들을 세워 군수품들을 생산해냈다. 턱없이 싼 노임이었지만 어쨌든 조선인들은 일자리를 얻게 되었고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패망해서 물러갔을 때 조선인들은 빼앗겼던 토지들을 되찾고 그들이 두고간 재산까지 차지할 수 있었다.
당시 상황으로 조선이 독립국가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일본보다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더 좋았을까? 중국은 자신의 나라를 지킬 힘조차 없었다. 미국은 조선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일본은 뜻밖의 횡재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결사반대했지만 박정희가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을 할 때 조금이나마 배상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은 독립군들에게 군자금을 보내는데 적극적이었을까?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은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비적(匪賊)질을 한 적이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