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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장과 같은 스케일

공미니 |2014.05.11 13:37
조회 4,563 |추천 16

전설의 한강다리 폭파사건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우리 국군 용사들이 인민군에 맞서 용감히 싸우고 있습니다."




이 라디오 방송을 들은 서울 시민들은 정부와 군을 믿으며 하나둘씩 피난 행렬을 멈추기 시작했는데..

(라디오 방송은 실시간 방송이 아니라 이승만이 녹음해 놓은거)




그러나 이 방송은 모두 거짓이였습니다

서울에서 일방적으로 북한군에게 털리고 있었죠



더 어이없는건


1950년 6월 27일, "이승만 대전 도착"

국민들한테는 안심하라고 방송해놓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남쪽으로 피신했던겁니다.




하루 뒤 1950년 6월 28일, 북한군 서울 점령

라디오 방송만 믿고 있던 시민들은 피난도 못가보고 북한군에게 그대로 노출됨


그러니까 따져보면


27일 새벽, 이승만 피신

27일 오후 2시, 신성모(국방장관) 피신

28일 새벽 2시, 채병덕(육군 총참모장) 피신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다리 폭파

28일 오후, 서울 점령당함


이 시간동안에 라디오에서는 주구장창 방송이 나왔던거죠.

국군이 잘 막고 오히려 반격에 나섰다라는 거짓말도 했던걸로 알고있습니다.





이렇게 다리가 폭파됨으로써



정부 방송만 믿다가 뒤늦게 피란길에 오른 시민들

전선에서 싸우던 주력 부대들


모두 후퇴하지 못하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버렸음


다리 위에있던 600-800명의 민간인이 폭파와 함께 사망하고..

전선에 있던 국군들은 모두 와해되서 흩어지고 지리멸렬


이때의 병력 손실때문에 북한군은 별다른 저항도 안받고 서울에서 낙동강까지 진격하게 됨






이승만 동상이 김일성 동상보다 크기가 컸다고 함


대통령이 국민의 대리자가 아니라 왕이라 생각하는 클라스는 여전.. 




이승만 생일날의 흔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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