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S는 윤리관이 희박한 사람이다.
성실하지 않고 변덕도 심해서 한달에 세번이나 직장을 옮긴 적도 있다. 하지만 S는 모델이라고 해도 다들 믿을 만큼 날씬하고 키가 큰데다 스타일이 좋았다. 같이 놀러가면 여자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언제나 S였다.
어느날의 술자리에서 다들 꽤나 취했을 무렵 S가 별안간 이런 말을 했다.
"나 결혼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S의 말이었기에 다들 코웃음을 쳤다. 까칠한 성격의 K는 대놓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그래도 S는 요지부동. '드디어 만났다'는 말만 반복해서 되내일 뿐이었다.
며칠 뒤 S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마누라 보여줄테니까, 한번 만나자."
이번엔 '진심인가' 싶어서 약속장소인 술집으로 나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친구들 모두 별 말도 없이 심각한 얼굴들이었다.
S 옆에서 고개숙여 인사하는 자그마한 아가씨를 보자마자,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I다.
S가 고교시절 그토록 쫓아다녔던 여대생, I. 아담한 체구에 긴 생머리를 지녔던 I에게 S는 홀딱 빠져있었다. 하지만 I에게 S는 한낱 장난감이었던 듯, 반년에 걸친 연애기간 동안 S는 I의 애완동물처럼 지냈다. 이윽고 I는 모 유명대학의 의대생과 바람이 나면서 S를 냉정하게 차버렸다.
우리는 이따금 S가 저렇게 된 건 다 그 수건 탓이라며 그녀를 안주거리로 삼곤 했다.
눈 앞의 아가씨는 I와 정말 흡사했다.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새내기로, 이름은 J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I와 같은 여대에 다니고 있었다. 수줍음을 타는지 말수는 적었지만 청초하고 귀여워서 술이 몇잔 들어가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자 모두들 그녀를 대단히 마음에 들어했다.
이렇게 어린 친구랑 어떻게 결혼을 할까 싶었지만 막상 질문을 하기는 꺼려졌다. 결국 용감한 K가 총대를 맸다.
"그런데 두 사람, 정말 결혼하려고?"
J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작년에 돌아가신데다가, 외동딸이었기 때문에 형제 자매도 없다고 했다. 대학에는 붙었지만, 학비가 없어서 휴학계를 냈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천애고아였던 S와는 처지가 비슷했다. S 역시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동생과 떨어져 산데다가 삼년 전 부친이 타계한 후 홀로 살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통금시간에 늦겠다며 J가 일어서고, S 역시 그녀를 바래다 주기 위해 자리를 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닮을 수가 있느냐"며 모두들 웃었다.
그런데.
그 이후 S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수다스러운 성격이라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하는 S였기에 다들 이상하게 여겼다.
S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친구들 소개 좀 시켜달라며 반강제로 J의 번호를 따냈던 K가 J에게도 전화를 해보았지만, 그녀의 폰 역시 꺼져 있었다.
반년이 지났을 무렵, 자고 있는데 새벽에 K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메일을 보내니까, 첨부 동영상 파일을 한번 보라는 이야기였다.
"아닌 밤 중에 무슨 홍두깨같은 소리냐"며 화를 냈지만 K는 심각했다.
"퇴근해서 딸이나 치려고 직캠 동영상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S가 찍혀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반신반의하면서 동영상을 하드에 옮겼다.
제목은 [마약먹고 섹스, 쌍욕, SM, 암캐]라는 원색적인 것이었다.
그다지 선명하지 못한 화질에, 은은한 조명을 가진 모텔 방의 전경으로부터 시작했다.
방안을 돌던 카메라는 이윽고 침대로 방향을 돌린다.
안대를 한 속옷 차림의 여자가 침대 위에 앉아있다. 앞으로 모은 두 손에는 빨간 밧줄이 칭칭 감겨 있다.
"좋지?"
화면 밖 카메라의 주인일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는 움찔하며 고개를 숙인다.
대답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별안간 화면 밖에서 팬티차림의 건장한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성큼성큼 다가가 여자의 뺨을 갈겼다. 비명 소리와 함께 여자가 울기 시작하자, 남자는 머리채를 휘어잡고는 뺨을 마구 갈기더니, 곧 힘으로 여자를 짓누른다.
장면이 바뀐다.
이번에는 섹스 중에 촬영한 듯, 카메라가 여자의 벌거벗은 몸을 훑고 있다. 남자는 계속해서 여자에게 좋냐고 묻고 있다.
여자가 좋다고 하면
수건니까 좋겠지하고 아주 경멸스럽다는 듯이 욕설을 퍼붓는다.
또 싫다고 하면
그래서 바람을 피웠냐면서 때린다.
결국 여자는 쩔쩔매면서 좋고 싫다를 반복할 뿐이다.
또 장면이 바뀐다.
이번에는 침대 옆 탁자 위에라도 올려놓았는지 화면이 고정되어 있다.
사정이 가까워오자,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부른다.
"I야! I야!"
여자는 "네 아빠" 하면서 말을 받다가, 별안간 목이 졸린다.
동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틀림없는 S다.
그리고 상대는 아무래도 J같았다.
K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이 동영상을 보냈다.
모두 모여 협의한 끝에,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이 동영상이 언제 어디서 처음 올라왔는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고민끝에 J가 다니는 여대에도 문의를 했다. 그러나 알려줄 수 없다는 쌀쌀맞은 답변만 돌아왔다. XX월드 같은 곳도 뒤져보았지만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그 후 더이상 S가 나오는 동영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삼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