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과 많은 형제들 속에서 내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여자는 이름만 쓸 줄 알면 된다는 할머니의 지론으로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서울에 와서 보니 다른 세상이었다. 배우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겨우 취직을 해 공장에 다녔는데 다른 사람들이 ‘공순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사람을 무시하고 낮추는 말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배움에 대한 갈증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하지만 배운다는 것이 어찌 그리 쉽겠는가. 배울 기회가 있어도 또다시 여러 가지 이유로 좌절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를 포기하고 대리 만족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두 아이에게 모든 걸 걸었다. 첫째 아이가 딸인데, 내가 딸이라 배우지 못한 억울함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열심히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원주부학교를 알게 되었다. 무조건 입학을 했다.
처음에는 마냥 신나고 즐겁기만 하더니 조금 지나고 나니 한자와 영어를 비롯하여 이것저것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공부가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 때쯤, 한자 6급에 합격하니 교장 선생님께서 상도 주시고 칭찬도 해 주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듯, 선생님들의 칭찬에 힘입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길에서나 지하철에서 한자를 외우고 또 외우며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해서 어디에다 써먹을 거냐.”며 헛고생하지 말라는 주변의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 “힘든 공부하느라 수고한다. 대단하다.”고 말해 주면 용기가 생겼다.
얼마 전에 직장 후배가 찾아와서 “공부 좀 돼?” 하고 물어보았다. 어제 배운 것도 기억이 안 난다면서 힘들다고 했더니, 후배는 “언니, 그거 알아요? 언니가 말할 때 많이 유식해졌어요.”라고 한다.
나는 배운 게 머리에 남아 있지 않아서 걱정이었는데, 콩나물시루에서 물이 빠져나가도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나의 배움이 계속 자랄 것이라 믿으며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 배움이 가져다준 나의 행복들을 놓치지 않고 즐겁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양원주부학교 02-704-0153(이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