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영화 행복한 사전 : 시간을 마주하는 서로 다른 태도

박민진 |2014.06.17 18:40
조회 21 |추천 0
P {MARGIN-TOP: 2px; MARGIN-BOTTOM: 2px}

난 성격이 조급하다.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운전하거나 밥을 먹을 때 가장 분명하게 느낀다. 낭비라고 생각되는 시간들을 어떻게든 빨리 넘겨버리려는 욕구로 난 밥 먹을 때 되도록 후딱 먹어치운다. 물론, 고급 레스토랑이나 예의를 지켜야 하는 선배나 상사와의 식사시간은 예외다. 하지만 일상의 식사시간에서는 거침이 없이 넘겨버린다. 덮밥이나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이유도 빠르게 내 것만 먹어치울 수 있는 간편함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먹는 속도가 엄청 빠르다. 좀 빠르게 먹는다는 사람도 내 속도를 당할 수 없다. 천천히 식사를 즐기는 분들에게 내 섭취속도는 아마도 야만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정해진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 난 운전하는 시간도 즐기지 못한다. 그래서 차라리 지하철은 탄다. 지하철 내에서는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생각도 자유롭다. 하지만 운전할 땐 신경이 곤두서고 조급해진다. 이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차선변경과 과속을 일삼는다.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되도록 즐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무언가 낭비되는 시간이라고 여겨지는 행위에는 인색한 것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며 분명히 고쳐야 할 내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엔 이야기마저도 지체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난 예술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감상하는 시간만큼은 아끼지 않는 사람인데, 최근엔 극의 흐름이 더딘 이야기를 점점 더 참지 못하는 것 같다. 과거에 영화의 공란은 생각과 사유를 위한 몰입의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딴 생각을 하며 영화관을 나선 이후를 생각한다. 계획하고, 일정을 짜는데 진력한다. 가끔 이런 내가 너무나 싫어질 때가 있다.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을 넘겨야 하는지 가치판단이 잘못된 것인지, 인생을 낭비하고 살아서 더 이상 무언가에 지출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는데 난 나를 다독이며 묻고 싶어진다.



얼마 전 읽은 소설 <배를 엮다>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행복한 사전>은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영화였다. 호흡이 길고, 대사가 느릿느릿하다. 소설 중에서도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용납할 수 없는 긴 호흡을 가진 이야기였다. 영화의 소재 자체가 사전을 편찬하는 부서의 이야기인데, 이 부서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딱 나와 정반대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끈기 있게 오랜 시간동안 반복되는 작업을 신중하게 실수하지 않고 단어를 찾고, 용례집을 만들고, 수정사항을 파악하여 수 년 동안 작업해야만 사전을 만들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 마츠다 류헤이(지루하게 생긴 배우)가 연기한 마지메라는 남자는 은둔형에 기인으로 꼽히는 남자다. 일본의 한 대형출판사의 영업부서에서 일하는 마지메는 느릿느릿하고 성격답게 시간이 곧 돈인 부서의 특성상 능력 없는 놈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그런 그의 성격을 눈치 첸 사전편찬부의 마사시는 그를 스카우트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대도해’라는 이름의 국어사전을 편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이야기는 이 도시에서 느린데다가 사회성 부족한 녀석이라도 자신의 특성에 맞는 사전편찬부에서 일한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그는 단어의 바다 안에서 모두들 익사하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대도해를 이끌고 순항한다. 장장 15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연출 자체도 서두름이 없다. 행복한 사전은 멀티태스킹도 잘 하지 못한다. 요즘 영화 대부분이 몇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하여 관객의 관심을 끈다. 하지만 행복한 사전은 이야기를 하나씩 진행시킨다. 마치 사전의 완성을 위한 하나의 절차라도 되는 것처럼, 부서의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사연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나른한 류헤이는 연애와 결혼마저도 더딘데 영화는 재촉하지 않고 그의 사랑을 기다린다. 외향적이고 화려한 동료 마사시가 부서를 그만두고, 다른 부서로 가는 과정까지 감독은 류헤이의 속도에 맞춰버린다. 그리고 모든 고비를 넘겨 대도해는 이렇게 2010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고 공표하는 것이다.

 

난 영화의 시작부터 이 더딘 진행에 좀이 쑤셨지만, 어쩐지 모르게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푸근하고 개운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 영화 중에 이처럼 모든 절차를 밟고 나서 영화의 결론을 말끔하게 지었던 적이 있었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사전편찬’이란 독특하고 고루한 작업에 대한 애정과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원작소설의 설정들을 하나씩 붙잡아서 매듭짓고 가는 그 꼼꼼함이 내 동경심을 자극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사전에서 모르는 단어를 찾다가 침대에 누워 그 옆의 단어를 읽어보고, 어느새 몇 장씩 읽어 내리며 용례를 파악하고, 모르는 단어에 밑줄 그어놓는 것이 재밌었다. 하지만 요즘엔 포털사이트가 사전을 대신하다보니 딱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전을 보는 경우가 없다. 시대의 속도전에 내가 부합해서 얻어낸 것은 무엇일까. 정말 우리는 딱 원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위해 인생을 바치고 있는 것일까. 부차적인 것이 주는 의미는 과연 버려 마땅한 자투리일까. 난 요즘 인생의 과업을 선택할 때 많은 것이 헷갈려 주저한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고루하고, 내 생각대로 하기엔 내가 배운 게 없다. 선택을 못하고 주저앉은 나의 조급증은 나을 기색이 없다.

 

단 10분의 시간이라도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걷기라도 해야 하는 나는 어쩌면 남들이 다 보고 지나치는 몇몇 순간들을 놓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단어를 다루며, 그 누군가에게 닿을만한 글을 쓰길 희망하면서도 결국 마음을 붙잡는 세심함을 가지지 못한 건 내 조급증이 원인이 된 건 아닌지 불안하다. 그렇다 많이 불안하다. 그 사람은 아마도 생각할 것이다. 내가 당신을 외롭게 했다고, 내가 모든 순간들을 스쳐 지나가 하나에 집중할 때 소외된 그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난 순위에서 밀려 부차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대단한 인생을 살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일상의 풍경들을 스쳐 지나쳤을까. 내게 상처받은 시간 모두 잊고, 세심하게 모든 것을 챙겨줄 사람을 만나 그가 행복하다면 비로써 나는 후회하고 있을까. 아마 아직은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