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얻고도 영혼을 잃은 남자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제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라디오에서 광석형님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난 나의 서른 살을 상상하곤 했다. 세상을 더럽히고, 고루한 생각을 하는 당시의 어른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어른이 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세상은 확실히 지금보다 더 나아진 곳이 될 것이고, 세상의 악행은 납득 가능한 형태로 정리가 될 줄 알았다. 20살의 나는 항상 머리가 맑고, 매사 분명하게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나와 같은 젊은이들이 서른 살이 된다면 세상은 분명 바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서른 살을 코앞에 둔 지금 세상은 나아졌는가. 저녁뉴스를 1시간만 봐도 세상이 틀려먹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쟁은 여전하고, 빈부격차와 인종차별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터넷이라는 악성 바이러스가 등장해 사고를 단순화했고, 감성에 젖었던 눈을 비탄에 빠지게 했다. 무엇보다 두려운 사실은 내가 점점 더 어릴 적 한심하게 여겼던 고루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수동적인 세계관으로 중무장한 꼰대가 된 내 모습을 자각하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체게바라의 평전을 읽고, 켄 로치의 영화를 동경하며 자란 내가 한 달에 한번 지급되는 월급을 위해 눈과 귀를 닫게 될 줄이야.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를 들으며 기성세대와의 간극을 즐겼던 시대의 젊은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긴 여전히 정치권에는 학생운동을 하며 세상의 개혁을 꿈꿨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세상의 개혁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그들이 한 것은 또 무엇일까. 그들이 원하는 개혁이란 사회적 기득권이라는 칭호 앞에서 무색해져 버린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여전히 아픈모습으로 아른거린다. 더더욱 우려되는 점은 요즘 젊은 친구들이 일말의 낙관마저도 믿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고개를 숙인 체 인터넷 커뮤니티 안에서 스스로의 자위권을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정체된 서른 살의 나는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영화 킹메이커 (The Ides Of March, 2011)
조지 클루니가 감독한 영화 <킹메이커>엔 스티븐이라는 전도유망한 정치 신인이 등장한다. 민주당 차기 대선후보가 유력한 마이크 모리스의 선거캠프의 홍보담당관으로 일하는 그는 마이크의 연설문부터 정세분석까지 도맡아하는 오른팔이다. 그야말로 승승장구. 그러던 중 경선이 코앞에 닥친 민감한 시기에 상대편 후보 진영의 톰 더피가 스티븐에 접근한다. 톰은 스티븐에게 자신의 진영으로 오라며 스카우트 제안을 하지만 마이크에 대한 충의가 깊었던 스티븐은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다. 그리고는 선거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 만남을 비밀에 부친다. 하지만 이 만남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면서 스티븐과 그의 선거진영은 큰 위기에 봉착한다. 지지율이 떨어진 마이크는 스티븐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 그를 해고하고, 스티븐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버린다. 한편, 선거캠프에서 만난 젊고 아름다운 인턴사원 몰리와 사귀게 된 스티븐은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던 중 그녀와 마이크 사이에 부정이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혼란에 빠진 스티븐은 자신의 정치적 몰락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직감하고, 반격을 다짐한다.
전형적인 정치스릴러인 이 작품은 조지 클루니의 영민한 연출력과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력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고 총명한 시대의 젊음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의해 더렵혀지는지 그 과정을 실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생극장이기도 하다. 내가 이 영화를 마음을 빼앗긴 지점은 아마도 젊고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라이언 고슬링과 세상 다 아는 미소를 지닌 꽃중년 조지 클루니를 대비시키는 연출에 때문이었다. 영화는 은연중에 스티븐이 경력을 쌓고 나이를 먹어가면 마이크와 같이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시선을 보낸다. 정치판이라는 시스템의 희생자, 인생이라는 고된 수난의 변절자.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젊고 유망한 배우의 찬란한 미래 역시 조지 클루니의 현재 모습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기도 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세상의 시스템이 어떤 이상과 열망을 가진 젊음을 어떤 방식으로 전형화 시키는 것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감정적인 퇴락은 곧 그 시스템의 순응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지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무언가를 얻고, 이상을 꿈꾸며 언젠가 그 이데아를 향해 전진할 것이란 동력으로 젊은 시절을 보내지만,결국 세상이 만들어놓은 틀 안으로 들어가면 그저 그런 어른으로 규격화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지독한 불안감을 느끼고 절망한다. 나 자신이 나를 신용할 수 없는 상태, 곧 그것이 광석이 형이 말한 서글픈 서른 즈음에가 아닐까 요즘 생각한다. 나의 일상을 챙기기에 급급해 무력한 아침 어떠한 목적도 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일상을 담담하게 견뎌내는 것이 과연 내가 바랐던 인생인 것일까.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일까. 총명했던 스티븐의 눈망울에 탁한 연기가 스쳐 지나간다.
조지 클루니가 가진 이면의 매력
이런 얘기를 쓸 마음이 든 이유는 아마도 정치에 관한 흥미로운 영화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킹메이커>는 담담하게 진행하는 이야기 속에서도 정서적으로 감염되는 염세적인 기운이 강렬하게 온몸으로 뻗혀오는 영화다. 근사한 미소를 지닌 조지 클루니라는 남자는 언제나 타임지가 뽑는 섹시한 남자로 선정되었지만, 내가 봤을 때 그의 매력은 세상을 단순화 시키며 영화라는 매체를 호락호락하게 넘겨버리는 여타 다른 스타출신의 감독과는 다른 숙고하는 지식인의 회의적인 측면이 미소 이면에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독한 회의가 눈에 번뜩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