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기에..
이순신이 임진왜란시 한 일은 희박하다
그는 그저 오는 적선을 맞이하여 싸운것 외엔...
왜란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실이 없다
하지만 권율은
참모총장(당시 도원수)에 임명되어도
과히 모자라지 않는다
당시 조선의 총 병력은 정말 적었다
당시 육군의 총 지휘자격이던 권율이 거느린 병사는 고작 수천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2만이 넘는 병력으로 한산도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선조로선 정말 뚱줄이 탈 지경이었다
난 어릴적 독서를 무척 좋아했는데.. 읽을 책이 없어 드뎌 그 난중일기까지 읽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
난중일기는 어디까지나 -보이기 위하여- 쓴 엣세이다
그런 모습을 보았을때
그는 무척 꼼꼼한 성격인지를 안다
하나 하나...
뺴 놓지 않고 기록하는 성격.. 치밀함
*조선과 왜의 수군 비교
한마디로 왜는 조선 판옥선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그것은 조선은 당시 포가 있었고 왜는 왜란이 끝날때까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판옥선이란
건조하기도 힘들고 마치 성과 같은 2층 누각 구조였지만
왜는 유람지 노 젓는 보트 같은 구조였다
왜의 함선이란 건조하기도 쉬웠고
전투를 벌릴 배의 구조가 아니었다
그저 상대 배에 접근해서 상대 배에 올라타 노략질.. 그 정도의 배였다는 것이다
판옥선은 적어도 200여명의 수군이 승선해야 움직였지만
왜는 그저 2,30명만으로 족했다
그러니 왜의 배 침몰은 말 그대로 헤엄쳐 다른배에 올라타면 그만인 침몰이란 표현도 어색한 배였다
또한 근접전 전투에 임 했을때
왜는 그야말로 완전 노출되어 화살 세례를 그대로 받았지만
판옥선 구조는 그야말로 성과 같은 구조다
왜가 가꺼스로 판옥선에 배를 대고 기어 오른다해도
성에 오르는 느낌이었으며 너덧대가 배를 대고 동시에 기어오르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소총이 있다한들..
물에서 싸우는 전쟁이라 화약이 눅눅해지는 소총이 무슨 역할을 하랴~
그리고 판옥선과는 달리 흔들리는 왜의 배에서(핀옥선은 밑이 평평하여 안정되어 있어 조준 활 사격등이 가능하지만 왜는 밑이 뽀족하고 크기도 작아 심하게 흔들리는 편임)
어떻게 조준이 가능하랴
여기서 거북선 애기를 하고 가자
이순신은 치밀한 성격에
근접전에 대비해 거북선을 발명하였다
포가 없는 왜로선
도무지 거북선을 깨트릴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거북선은 그 철갑으로 말미암아 속도가 엄청 느렸다
노 젓는 이들은 아마도 개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또한 거북선은 그리 쓰임이 많지 않았다
3대까지 만들어 두섯 전투에 등장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 후론 거북선은 건조되지 않았다
이유는
이순신은 근접전을 펼치지 않았단 애기다
어릴때...
난중일기를 읽는중..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서
적선은 수십척 깨 트렸는데
우리쪽은 고작 1명 부상이란 애기가 나온다
정말 의아했다
전투면..
아무리 대승을 하여도 필경 이쪽도 사망자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래서 내린 결론
이순신은 대도록 근접전을 하진 않았으며
전투마다 나오는...
"도망가는 적을 쫒지 말라"
그러면 가능한 애기다
즉 멀리서 포만 쏘다가
적이 도망가면 그것으로 끝~
여기서 세계 처음으로 학익진에 대해 고증해 보겠다
이순신은 연구가다
그는 무엇보다 왜는 포가 없고 우리는 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것 바로 학익진이다
왜의 배는 언제나 몰려서 다가온다
그것은 고기때와의 생리가 비슷하다
우선 또 하나 밝힌 사실은 내가 포병 출신.. ㅎㅎ
하지만 조선은 포가 있다한들 조준이 하늘에 별 따기다
잘 않 맞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인진이 왜 유리한가?
학인진으로 본다면 왜를 둘러싼 조선배와의 거리는 어느배에서나 일정하다
감이 오냐??
일단 한 대가 사격을 해 본다
여러번 해 본 다음 맞는 거리...
그 각도를 다른배에게 지시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배들도 포를 그 각도와 위치에 대고서 쏜다면...
일명 개 박살이란 것이다
적들이 다가오면 편대를 유지하면서 물러났다가
물러서면 대형을 유지하면서 다가가고
학인진 대열이 흩어지지 않는한 한 대의 포가 맞으면 다른 배들도 그 각도로 조정하여 포를 쏘고
더구나 판옥선의 포는 최 전방에 있어 치명적이다
전쟁은 언제나 싱겁게 끝났다
왜가 다가오다가
그렇게 포에 몇척이 당하면
다른 방도가 보이지 않는한 그렇게 물러나면 그만인 것이다
무엇보다
왜는 그렇게 수군전을 펼칠 이유가 없었다
따 먹을 땅이 있는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에 가시같은 존재일 다름이다
이순신을 그냥 두면 그만인 것이다
조선이나 왜가 크게 걱정하던것은
이 조선 수군이 부산으로 올라와 보급로를 치는 것인데
조선 수군은 전혀 그런 낌새가 보이질 않았다
이순신의 업적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것은 남해와 서해로 잇는 왜의 보급로 차단이다
그런데 그게 실제일까?
왜는 지리상 남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서해로 올라가면 된다
혹여 남해를 거치지 않으면 명과 충동할 위험이 있지만
당시 명은 왜와 전쟁중이 아니었다
또한 남해를 경유한다한들
레이더도 없는 너른 남해에서 왜의 함선을 찾아낼리 만무하다
또한 부산으로 모든 보급품은 충당하였고
왜란시 왜가 보급품이 없어 남하한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선조와 조정은 올라오는 장계마다 홍길동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진 이순신이 왜 부산을 치지 않는지 참 의아해했다
매번 독촉했지만
그때마다 온갖 핑계로 미루다가
한산도대첩에서 대승이란 장계에 발목 잡히여 할수없이 같은해 부산에 이른다
왜선 수백척을 깼다고 하지만 하루만에 그만한 성과를??
왜를 공격하는 방식은 이러하였다
마치 병사 하나 하나씩 전장을 뛰어가 안전지대로 숨듯이...
배 한척씩 부산항에 포를 쏘면서 안전지대로 빠자는 모습이다
그렇게해도 당시 조선 수군의 피해는 막대했다
왜가 육상에서 조준 사격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대첩에서
이순신은 100여척을 깨 트렸다고 하나
왜의 인명 손실은 크게 없었다
다만...
깨트린 배를 건조하기 위한 조선민들의 피 땀만 자아냈을 다름이다
부산대첩의 장계가 올라갔으나
왜가 동욜든지 별다른 반응이 없자
선조는 더 이상 이순신을 재촉치 않았다
그는 그대로 유유자적
선조와 조정은
그동안 단 한차례도 없었던 정규군이 이겼다는 홍보용에나 이용...
그래도 선조는 이순신을 크게 믿었다
백성이 궁궐을 불사르고
중신들은 허준외엔 다 도망가고
백성들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일어선 지경에서 선조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비록 명군이 와서 서울(한양)을 구해주긴 했으나
그때까진 조선 정규군의 승전은 진주성 단 한곳뿐
이순신이 아니었더라면 선조는 체면 유지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나마 선조가 눈에 가시같았던 의병들..
즉 골라잡은 김덕령 의병장을 때려 잡고 백성들에게 본보기를 보였던것은
이순신과 권율이 그를 살려줬기 때문이다
(80년 광주나 임진년 김덕령이나 아님 그 시조격인 장보고나...
언제나 본보기는 늘 전라도임)
선조도 그를 삼도 통제사로 임명해 보답해 주었다
늘어진 이순신은 통녕에 기지를 짓고 첩실과 유유자적할수 있었다
사돈좋구 매부좋구...
그런데 사달은 정유재란이었다
왜가 온다는 첩보를 입수한 조정에서
그렇다면 그토록 잘 싸우는 이순신을 부산 먼바다로 내보내
만일 바다에서 왜를 전부 수장시켜 준다면..
임진왜란 시마이~란 것이다
그런데 역적 이순신이 가지 않았다
<<이게 역적이지...>>
핑계는
부산 가는 곳곳에 암초등.. 많고
곳곳에 매복...
이순신은 현명했다
한 마디로 대~가리 186나게 굴렸단 것
하지만 왕명이라면 죽을 자리라도 가야만 했고
혹 왜가 흘린 미끼용 기밀이라 할지라도
왕명이라면 토 달지말고 가는게 맞다
만일 몰려오는 왜~를 바다에서만 깨 준다면
정말로 임진왜란 시마이란 것..
그때 이순신이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원균처럼 미련하게 매복에 걸려들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한번쯤은 임진왜란에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고
말 그대로 임진왜란을 종식시키지 않았을까?
치밀한 이순신은 계급장 때~일것 알았고
그래도 죽이진 못하리란 것 알았고
원균 깨질것 알았고
어쩔수 없으면 자기 또 기용한다는 것 알았고
다시 복직한 이순신...
조정에서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하라고 했을때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이라고 하면서 똥 고집 부렸다
야!
바다라면 배터량이잖아
그리고 바다라면 전쟁도 그렇게 없고
필살...
우린 포가 있고
그런데.. 육지가서 개 죽음 하느니..
나라도 육지 안 가겠다
명량은
이순신에게 정말 한 표 주겠다
전술등 험 잡을때가 없다
그런데 울독목...
물길 언제 바뀌나?
세 번이나 가 보았는데 똑 같은 방향으로 흐르던데...
그리고 울둑묵 그 물길로 배가 들어서남?
목선 박살날 것 같은데...
*** 이순신의 죽음'
이순신은 아마도 진린에게 아부를 톡톡히 했던것 같다
암튼 진린은 이순신을 너무 잘 보았다
그래서 얻은 것은??
맞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선조보다 더 높은 계급을 명나라에서 하사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 말을 개긴 이순신을 눈에 가시처럼 보고 있는데...
이순신은 철두철미한 성격이다
그의 지휘 자리앞엔 거대한 방패가 가리워져 있는데
그곳을 벗어나고 그런 덩벙대는 성격이 아니다
그리고 하필 마지막 해전에서 죽었다는 자체도 이상하다
그렇다면?
선조의 밀명을 받은 누군가가 왜군을 가장한 암살이라면 가능하다
전투 중인데..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그건 작가들이 지어낸 애기같다
선조가 이순신이 원망스러웠다는 추정은
선조 그의 왜란 공신록 책록에도 나온다
1등 권율
2등 이순신
3등 아무런 활약이 없고 패배만 한번 기록한 원균
(원균을 세움으로서 이순신을 깍아내려는 의도..아니면 약삭빠른 이순신보다 그의 말에 복종한 원균을 생각한..)
그 외엔 없다
이순신의 자녀들에겐 별다른 특혜를 주지 않았다
당시 선조가
얼마나 살벌했는지 곽재우를 보면 안다
그는 모든 벼슬을 함정이라 여겼는지 운둔했다
<<요즘 테크노 단지로 땅 값이 10배나 뛴 현풍 지역에 가문을 일궈 형풍 곽씨의 시조가 되었다>>
선조를 의병을 관군에 포함하려 했지만 실정 관군이 된 의병은 크게 없다
그 또한 선조에 대한 항변이기도 했다
노량전
진린과 짜고 쳤는 고스돕인지
실정 득실은 하나도 없다
3만의 왜병은 도망 갔으며
어쩌면 노량전은 쑈~였는지 모른다
성에 갖혔던 3만의 병력이 배에 타고 도망 갔다면
온 바다가 까맣게 뒤 덥였을텐데...
개~네들 포위하고 있다가
적선이 다가오니 개네들 도망치게 놔~ 두고 해전하러 갔다??
그를 모른다는 건 또한 무리가 아닐까?
"조선의 국토를 짖 밟은 왜군을 한 명이라도 살려 보낼순 없다!"
이 애기 듣고 받아적은 이도 없고...
다 도망갔는데... 누굴 죽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