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인터넷 익스플로러나 크롬이 아닌 이야기, 새롬 데이타맨 등이 주 접속 매개체 였으며, 광섬유를 통한 랜선 혹은 광 통신망이 아닌, 집 전화의 연결선을 뽑아 컴퓨터 모뎀에 연결하는.. 삐삐삐 하는 모뎀 소리로 접속하던 시절이었다.
내 첫사랑은 그 시절 그렇게 다가왔다.
학교에서 무료 교육 통신이라며 일괄적으로 학생들에게 가입을 하라 하였던 에듀넷.
그 곳에서 나는 어떤 동호회에 들었고, 한 여성을 만났고, 그 여성을 사랑했으며, 눈물과 함께 헤어졌다.
그녀는 나보다 1살 많았었다. 동호회에서도 조용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활동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를 처음 만난건 동호회 정모 였다.
정모도 첨에 딱 아무생각 없이 나갔는데, 그녀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 전까지 그녀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라던가, 신경이 쓰인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를 보았을 때, 첫 눈에 반한다 라는 느낌이 이런거구나 라고.. 망치로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여자를 좋아한다 이런 느낌을 갖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흔히 말하는 쑥맥이었으니까.
근데 그 정모에서 한 살 많았던 그녀를 보고 완전 반해 버린것이었다. 무얼하든 그녀부터 생각나고, 괜히 밤에 부모님 몰래 atm0 의 명령어로 모뎀소리 죽여가면서 접속하고, 그녀가 접속해있나 확인하고.
괜히 정모가 또 안잡히나, 정모에 그녀가 언제쯤 나오려나 하고 기다리고. 동호회에서도 일부러 그녀랑 더 이야기 하고.. 그녀가 정모에 나온다고 하면 무조건 나가고.
그렇게 한 2달 쫓아다녔던가?
그녀도 그런 내 열정에 결국 승낙 했고 사귀기 시작했다.
참 순수하게 사랑했었다. 그저 얼굴만 봐도 좋았었다. 손만 잡고 있었어도 내 심장은 미칠듯이 쿵쾅거렸고, 헤어져 집으로 보내야 할 때가 되면 괜히 심장이 덜컥덜컥 내려 앉는 느낌이었다. 그래, 정말로 반해있었고, 정말로 빠져있었던거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것저것 재지 않고 좋아했기에, 더 그렇게 좋았던것 같다.
그녀는 당시 예고생이었고, (나는 중3, 그녀는 예고1년생) 게다가 성악과였다. 그녀는 목소리가 정말 예뻤고, 노래도 정말 잘 불러서, 노래를 잘 못부르는 나는 그녀보고 항상 노래 불러달라고 조르고, 그녀는 싫다, 부끄럽다 하면서도, 결국에는 불러줬었다.
그녀가 불러주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지금 내가 이곳에 있음에 감사했고, 그녀가 내 여자친구임에 감사했다.
대상은 상관없었다, 그저 그냥 고마웠고 또 고마웠으니까.
그렇게 한 3~4개월 정도 만났었다. 학생이었기에 직장인인 지금처럼 비싸고 맛있는 집을 갈 형편은 안되었지만, 서로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스파게티도 먹고, 피자집도 가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갑자기 대전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하더라. (그녀는 서울, 나는 성남)
그래서 나도 자주 내려가겠다고, 그녀도 자주 올라오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렇게 그녀는 대전으로 이사를 갔고, 나는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지금이야 대전 왕복은 쉬운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도, 번갈아가며 대전과 성남 혹은 서울에서 만났었고, 그 때마다 더욱 손을 꼭 잡고 다녔다.
그녀와 처음 키스가 아닌 수줍은 뽀뽀를 한 것도 4개월이 좀 넘은 그 시점에서, 성남으로 올라갈 버스를 기다리던 대전 터미널 안에서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순수했었다.
그렇게 이쁘게 연애하고, 오래오래 갈 거 같았던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긴건 4월 쯤 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연락이 안되기 시작했다.
진짜 너무 걱정되서, 고1때 쉬는 시간 마다 그녀의 삐삐(핸드폰이라기보단 PCS가 내가 중3~고1때 나오기 시작했다. 내 학창시절은 폰보단 삐삐가 대세였다)에 연락하고 기다리고 하고 했다. 당시 나는 부모님의 교육 방침이 '대학 전 까지는 삐삐나 PCS, 핸드폰은 없다.' 였기 때문에 그저 나는 삐삐 남기고, 학교가 끝나면 그 사이에 집으로 전화올까, 잽싸게 집으로 가서 자기 전 까지 집 전화기 앞에서 있는게 일상이 되고 있었다.
그랬는데, 내가 그녀를 알기 훨씬 전 부터 그녀를 알던 친한 형이 할 이야기가 있다더라. 그 형이 그런식으로 이야기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진지한 분위기였고, 그 분위기를 통해 뭔가 내가 듣기에 안좋은 이야기가 있구나 라고 짐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짐작은 현실이 되었고, 누군가를 위해서 우는 방법을 배운 바탕이 되었다.
그녀는 가정사가 별로 안 좋았었다. 편부가정이었으니까. 물론 모든 편부 편모 가정이 안 좋다고 이야기 하려는건 아니다. 다만, 편부가정에서도 특히나 그녀는 안 좋았을 뿐이다. 어쨌든, 그런 그녀가 진로 문제로 아버지랑 싸우다가, 아버지가 던진 재털이에 목을 맞았고, 성대가 완전히 나가서 미국으로 수술 받으러 갔다고. 그걸 형한테 편지 한 통 남기고 갔다고 이야기 해주더라.
처음으로 그녀가 미웠다. 참 많이 원망했고, 그렇게 만든 그녀의 아버지를 수도 없이 욕하고, 그 와중에도 너무나도 걱정이 되서.. 혹시라도 pc 통신으로 메일이라도 보낼까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에듀넷으로 들어가 메일을 확인하고, 그녀의 접속을 확인했다.
참 정신없이 울었다. 불과 반 년 정도였지만, 그녀가 없을 때 어떻게 내가 살았었는지를 잊어버렸고, 세상이 다 미웠다.
내가 좋아했던 그녀의 얼굴도, 그녀의 목소리도, 그녀의 작은 손도, 부드러웠던 그녀의 입술도.. 내가 지금 확인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참 힘들더라.
그러던 어느날, 그녀에게서 에듀넷 메일이 왔다. 정말 그 날은 기뻤고, 그렇게 가끔씩 그녀랑 이메일 주고 받는게 그녀와의 의사소통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었다.
그저, 그녀가 돌아와주기만 한다면, 그 기약이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2년좀 안되게 보냈다.
내가 고2 12월달에, 점심시간에 학교 전산실에서 그 동호회에 가서 글쓰고 놀고 있었는데, 그녀가 접속해있더라.
그래서 귓말로 오랫만이라고 어디냐고 물었더니, 제주도라고 하더라.
한국 왔냐고 물으면서, 목 괜찮냐고. 지금 말 할 수 있겠냐고, 하니까 말을 하면 숨소리나 쇳소리 비슷한게 나온다고.
크게 목소리가 안나온다고. 그래서 내가 좋아했던 그녀의 노래를 못 불러준다고.
학교 전산실에서,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울어버렸다. 펑펑.
그러나 그녀에겐 알리고 싶지 않아, 그저 서울언제 오냐고.. 오면 만나자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나서 1월말쯤에 만났었다.
서울에서, 처음 손을 잡았던 혜화역에서.
오랫만에 본 그녀는 정말 많이 야위어있었다. 원래 좀 마른 사람이었는데 진짜 뼈밖에 없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에서 입에도 안맞는 밥 먹으면서 성대 수술하고, 수술도 여러차례 했다고 하더라.
그러니 거의 2년 가까이 미국에서 수술 받았던거였고.
추운 날씨였지만, 정말 따뜻하게 하루를 보냈었다. 그리고 그 데이트는 그녀와 마지막 데이트가 되었다.
그녀가 헤어지기 전에 그러더라.
'나는 정말 너에게 걱정만 끼치고, 폐만 끼치는구나. 근데, 정말 큰 폐를 하나 더 끼치려고해.'
대충 짐작은 했지만,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미안. 우리 그만 만나자.' 라고 말해버리던 그녀.
왜냐고 물었을 때 해준 이야기가, '너랑 만나서 정말 행복했었고, 정말 즐거웟었다. 그런데, 너랑 만나서 함께 즐거웠던 반년보다.. 널 혼자 기다리게 한 2년이 나에겐 더 힘들었다. 완전히 회복 되었어도 미안해서 만날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했는데, 목소리도 잘 안나오고, 음악도 못해. 그 때 이야기 했지만, 너가 좋아했던 노래도 못들려줘.' 라고.
지금의 나라면, 뭔가 반박할 거리가 정말 많은데.. 그 당시에 어떻게 단 한 마디도 이야기 할 수 없었는지.
결국 그녀는 그렇게 지하철 입구에서, 내 손에 편지 한 장 쥐어주고 떠났다.
내가 그녀보고, 정말 쥐어짜내듯이, 어떻게든 이야기 해보고 싶어서 '우리 행복했었던거 맞지?' 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정말.
내가 그녀를 만나는 동안 봤던 그 어떤 미소보다도 해맑고,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웃어줬다.
그걸로 끝.
그녀는 그 동호회도 탈퇴했고, 아이디도 삭제했다.
이 후 만난적도 없었고, 난 고3 1년동안 정말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보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진지 벌써 12년이 다 되가지만, 아직도 그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보면, 아련해진다.
지금 다시 만난다면, 그 때보다 훨씬 더 재밌게, 훨씬 더 많이 웃게 해줄 수 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누군가 그러더라.
첫 사랑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너무 순수해서,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상대를 위하는 법도, 오로지 내 기준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상대와 내가 다름을 알기 전에, 그저 사랑한다는 맹목적인 감정밖에 없는 그 순수함 때문에,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잡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그녀가 헤어지자고 이야기 했을 때, 지금의 나라면 더욱 믿음을 줄 수 있을까? 그녀의 그런 아픔까지도 감싸 줄 수 있을까? 라고 혼자 되뇌이지만, 그럴 때 마다 내 대답은 한결 같다.
여자가 남자의 군대 2년을 기다리듯, 나 또한 그녀의 투병 2년을 기다렸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그 시절 보다는, 조금 더 성숙해졌고, 조금 더 성장해졌고, 조금 더 세상을, 여성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