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션>의 예수회 유적지 San Iganacio Mini
남미 자연풍광은 참 아름답다.
Chile 남부, Argentina 거의 전역, 아마존하면 바로 연상되는 Brazil등 거의 모든 남미 나라가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들은 Peru처럼 문명과 관련된 유적은 거의 없고, 있다한 들 식민지 시대 종교적인 것과 연관이 있을 정도다.
그 기준은 지극히 교과서적으로 UNESCO에 등재된 여부로 판단을 하는 게 적합할 듯 하다.
앞서 언급한 칠레 Chiloe 섬 지역 교회건물들이 인류유산으로 등재된 배경에는 예수회와(Jesuit 제수잇)-스페인어로 Jesuita(헤수이따-와 연관이 있지만 Argentina 이과수 근처의 마을 지명은 아예 예수회 창시자 산 이그나시오 로욜라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 교황 이름만 보면 <프란시스코>수도회 소속일 거라 오해들 하는데 그도 전직 예수회 출신이다.
이과수에서 그정도면 근거리이니 폭포를 본 후 시간이 여유롭다면 종교적인 데 관심이 없을 지라도 예수회 유적지 San Ignacio(산 이그나시오) 이 마을을 한번 주시해볼 필요가 있을 성 싶다.
아무리 유능한 역사선생이 역사적인 어떤 배경을 설명한다고 하여도 울림깊은 영상보다 더 효과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Paraguay중심 지역 <과라니>족들과 수도사들의 실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미션>은-1986년도에 상영-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겹 reed 악기 Oboe의 음색과 멜로디로 입혀진 주제음악이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나중 그 테마 기악곡은 <Nela Fantasia>라는 성악곡으로도 많이 애창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어떤 수사는 <미션>영화를 보고 사제의 길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사람의 일생을 바꾸기까지 한 이 영화는 당시 많은 이들의 화제가 되었는데 그 주 촬영지가 바로 산 이그나시오 일대이다.
영화는 원주민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나는 것을 조명하고 있지만 사실 그 공동체의 몰락은 예수회 추방과 가장 큰 관련이 있다.
그 사건은 남미 포르투갈령(Brazil)과 스페인령-여타 남미국가들- 모두 동시에 이뤄졌는데 정치적으로 수도회의 세력과 경제적인 힘이 막강한 것을 견제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조치였고 여기에 같은 공동체 교회에서도 역학적인 관계 때문에 방조 내지 묵인함으로 이뤄진 결과물이다.
사실 세상 어느 것 하나 정치에서 자유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추방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딱히 이거다라는 분석이 어려운 것 같다.
다만 포르투갈은 식민지에 대학을 세우는 스페인 정책과 달리 지식층이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 교육시설에 별반 신경도 안 쓴걸로 여겨진다.
거기에다 그나마 교육을 담당하던 예수회 수도사들을 추방함과 더불어 그들이 소장한 서적들마저 불살라버렸으니 이 시기부터 식민지 교육의 단절이 더 심화된 것이다.
이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는 세바스치앙 조제 지 카르발류 이 멜루(Sebastiãbo Joséde Carvalho e Melo)-흔히 폼발이라고 불리우는-후작의 식민지정책과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는 국가 내에 또 다른 왕국으로 보이는 예수회 척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것 같다.(1759년)
포르쿠갈령 Brazil을 제외한 스페인령 식민지에서도 그 현상은 마찬가지였다.
영토내에서 일어난 일련의 부족 반란들이-Uruguay, Chile Chiloe등-예수회와 모종의 연결고리가 있을 거라는 판단을 한 식민지 위정자들은 포르투갈의 방식을 따라 예수회 추방을 몇 년 후 바로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교회의 수장인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나서 1773년 아예 예수회 자체를 폐지해버렸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보는 유적지들의 현 모습처럼 그렇게 쉬 폐허가 진행되었을까?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시 열강이던 스페인 포르투갈의 땅따먹기 분할의 결과로 공동체의 퇴장을 요구하는 국가권력과 이에 불응하였던 원주민 항거는 필히 공동체의 붕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미션>영화에서 살아남은 몇 아이들이 밀림으로 잠적하고자 배를 타고 들어가는 종결부는 이런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
물론 국가가 특별히 지정하기 전까지 대부분 방치된 역사적인 유적들이 그렇듯 지역민들의 주춧돌이나 건축자재로 쓰여졌다는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몇 되지 않는 유적물이지만 Iguazu 여행을 떠났을 때 조금의 시간여유가 있다면 버스로 4시간여 거리로 한번 다녀올만한 위치에 이 유적이 있으니 방문함이 어떨지.
Buenos Aires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출발하는 개인 여행자라면 더 찾아가볼만하다.
터미널에서 San Ignacio라는 지명을 대면 어느 회사 버스가 그곳에서 정차하는지 알려준다.
만약 시간적인 여유가 있고 이런 종교적 유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의 세계여행 원조인 중앙일보 <김찬삼> 기자가 거의 볼거리가 없다고 여겼는지 여행기에서 아예 건너뛰다시피 한 Paraguay땅에 들어가 지역부족과 예수회의 흔적들도 더 살펴보자.
과라니족 후예들은 누가 뭐라해도 바로 Paraguay 사람들이고 그들의 붉은 흙과 땀 냄새를 더 가까이서 맡을 수 있으니말이다.
물론 다른 나라들처럼 유적보존이 잘 되었을 거라는 기대는 접어두자.
본인 박우물도 혹 여건이 맞으면 다시 Paraguay의 더 산재되고 정돈되지 않은 예수회 유적들을 한번 찾아보려 고려중이다.
San Ignacio Mini라는 의미는 스페인어로 더 크고 중요하다는 뜻의 Mayor(Major) 폐허들이 과라니족의 땅에 더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따로 의도를 가지고 순례를 한 건 아니지만 Bolivia 예수회 유적지인 Trinidad을 Peru와 마찬가지로 Amazon 비포장 순환도로를 따라 움직이면서 한번 접할 기회가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이곳 주 이름을 지도상에서 살펴보면 이름 자체가<Misiones>이다.
추방에다 폐지까지 당했던 예수회가 그나마 이런 식으로라도 보상받았다 할지 모르지만 여타 지명에 비해 기억하기는 좋을 성 싶다.
참고로 종교기관들중 예수회는 무엇보다 교육에 열심을 내어 100여개 국가에 4000여 기관을 설립한 것으로 통계에 나와있다.
그중 한국에서는 서강대와 광주 카톨릭대학이 거기에 속한다.
이과수 근처의 땅은 거개가 붉은 색이다.
한국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도 황토 보다는 적토에 가깝지만 이곳에 비할바는 못 된다.
그래도 유년시절의 친근함이 느껴져 복귀하는 터미널로 이동시에는 부러 비포장 붉은 길을 따라 움직였다.
Onda Corea
Rail Art 박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