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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이웃 *

irish15 |2014.11.06 09:32
조회 244 |추천 0

 

 

 

 

000 할머니께

 

 

근래들어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새벽 신문배달 일을 나서기 전 가벼운 겉옷을 걸치고 보니 어느새 완연한 가을 한복판에 와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일을 마치고 이른 아침 집 대문 앞에 돌아올 때면 요즘도 늘 습관적으로 저의 시선이 현관문 앞에 머뭅니다. 할머니께서 사시던 제 바로 옆집 현관 문을 말이죠.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항상 어김없이 저를 반겨주시던 할머니의 환한 미소가 아직도 눈 앞에 선하네요. 그 푸근하고 다정하신 모습에 피로가 눈 녹듯 씻기는 상쾌한 기분을 매일 아침 저에게 선물해 주신 분. 할머니는 저에게 가족 같은 분이셨습니다.

 

안녕하세요, 000 할머니. 작년까지 망우3동 옆집에 이웃해 살던 00 입니다. 그 동안 별일 없이 건강하신지요? 할아버지의 허리는 좀 어떠신가요? 지금도 함께 마실을 다니고 계신지요? 평소 집에서 신문지를 깔고 채소를 다듬으실 때나, 길에서 신문배달 오토바이를 보실 때면 제 생각이 문득 나신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니면서도 이웃이란 그저 가까이 지낼 때나 친숙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는데, 할머니께서는 이사를 가신 후에도 제게 곧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주셨죠. 마치 살가운 자식을 대하 듯이 말이죠. 그런 이웃이 저에겐 처음이라 한편 놀랍기도 해서 어쩌면 특별한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웃해 살 때 그렇게 저에게 많은 것들을 베풀어 주셨으면서도 멀리 계시는 지금까지도 마음 써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지난 겨울이었던가요. 제가 배달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밤새 내려 쌓인 눈을 할머니께서는 묵묵히 쓸고 계셨죠. 평소 무릎도 안 좋으시면서 그 긴 골목길을 이른 아침부터 치우고 계셨던 거지요. 제가 달려가 할머니를 만류하며 “할머니, 제가 할 테니 이리 주세요!” 라고 말하자, 할머니께서는 “아녀, 밤새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 어여 들어가 쉬어.” 라고 하시며 되려 저의 등을 떠미셨죠. 그리곤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제가 눈길에 미끄러져 손등에 조금 상처가 나자 “아이고, 이걸 어째. 많이 아플 텐데.” 하시며 손수 연고를 가져다 발라 주셨죠.

 

잠시 후 된장찌개를 가져다 주시며 “이거 우리 아저씨가 좋아해서 또 끓여 봤는데 맛이 괜찮을래나 몰라. 혼자 사니까 끼니 잘 챙겨야 돼. 아프면 세상 뭐든 소용없어.” 하시며 제 손등을 어루만져 주셨죠. 제가 “지난번에도 아주 맛있었는데요 뭘.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그리고 앞으로는 마당 그만 쓰세요. 춥고 힘드시잖아요.” 라고 말씀 드리자 할머니께서는 슬며시 웃으시며 “옛날부터 일어나면 마당을 쓰는 게 습관이 돼놔서.. 눈이라도 쓸어야 마음이 편해. 마치 내 마음을 쓰는 듯해 기분이 참 좋아지거든.” 하고 말씀하셨죠.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따뜻한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내내 그 말씀이 제 머리 속을 맴돌았습니다. 저렇듯 타인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시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듯 이웃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할머니의 정 많고 온화한 인품에 그만 감동받고 말았죠.

 

그리고 어느 날인가 제가 감기몸살이 걸려 앓아 누웠을 때죠. 기진맥진한 몸으로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주방을 지날 때, 주방 작은 창문 턱 위에 놓여 있던 노란 냄비를 보게 되었죠. 직접 만든 전복죽이었습니다. 잠결에 어렴풋이 들려오던 현관문 두드리던 소리가 할머니의 걱정스런 마음의 표시임을 비로소 떠올리게 되었죠. 식은 전복죽을 먹으며 울컥한 심정에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분이셨죠. 할머니께서는.

 

함께 이웃해 계시는 동안 할머니께서는 저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고, 그러면서도 저의 사생활을 세심히 헤아려 지켜주시고 존중해 주셨죠. 그 점이 저에겐 참으로 감사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많이 배웠습니다.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정겹고 따뜻한 이웃의 존재가 어떠한 의미인지를 말이죠. 할머니께서는 저에게 삶의 깊이와 의미는 대단한 위인이나 심오한 책에서만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의 가까운 이웃들에게도 얼마든지 감화 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두 분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늘 건강 주의하세요. 할머니의 가족들 또한 모두 편안하고 행복하시길 바래요. 앞으로도 두 분 모두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할게요. 000 할머니, 다시 한번 감사 드려요.

 

 

2014년 9월 17일  0 0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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