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김활란 출생 : 인천 학력 : 컬럼비아대학원, 이화여자대학교 경력 : 이화여대 명예총장(1961), 한국여학사협회 회장 (1959), 대한민국여성단체협의회 조직(1959), 기독교방송국후원회 회장(1955), 코리아타임즈 사장(1952), YMCA연합회 이사장(1949), 이화여대총장(1945) 일제의 침략전쟁에 지원을 호소하는 김활란의 여성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신세대, 1942년 12월 김활란)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중략) 이제 우리에게도 국민으로서의 최대 책임을 다할 기회가 왔고, 그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감격을 저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내려진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내몰았던 한국인 강제 징용자와 위안부의 규모는 워낙 광범위해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 탄광촌으로 끌려간 조선 징용자들... 그들중 반 이상은 영양실조와 폐병 그리고 각종 사고로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사진) 세계 유래없는 :위안부"라는 군일들을 위한 성 노예제도를 만든 일제... 당시 조선 총독 마이런와 결탁한 김활란은 같은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해 위안부 모집에 탁월한 효과를 내쓰며 그 누구보다 앞장섰다. (사진) 일본군을 찬양하며 한국인 징병을 종용하는 김활란... 거룩한 대화혼을 명심 -적 결말에 일로매진 (1943년 8월 7일 매일신보 논문 김활란) 우리는 배속으로부터 대화혼의 소유자가 되어야한다... 존엄하옵신 황실을 받들어 모시고 생사를 초월하며 대군을 위하여 순국 봉사하는 그 마음 오직 우리 황국신민만이 특히 제국 군민만이 경험할 수 있는 바이다. 이렇듯 여성과 어린이들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유린하고 학살한 그 당시의 일본군을 찬양하고 한국인들을 전쟁터, 위안소를 내몰은 민족의 반역자 김활란은 역설적이게도 여성인권을 위한다는 한국여성단체들에게 추앙받는 존재이며 여성해방운동의 대모라 불리고 있다. 한국여성단체 연합에서는 매년 -김활란 여성지도자상- 을 여성운동가들에게 수여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이화대학교에는 김활란 동상이 세워져있다. (사진) 이화여대의 김활란 박사 동상. 매년 수천명의 이대 졸업생들이 그녀의 동상앞에서 졸업사진을 찍고있다. (사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