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하곤 미팅도 안했는데 결혼할땐 둘째 아들이었던 남편이 결혼 후 형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졸지에 장남이 되고 난 덩달아 맞며느리가 되었다. (무슨 개같은 경우람!) 제사가 결혼 5년 동안엔 9번, 그 다음 5년 동안은 5,6번으로 줄더니 최근엔 2번으로 줄었다.
맞며느리 자리? 한마디로 힘들다.
딸이 맞며느리로 가느니 혼자 살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 결혼 전엔 라면도 끓여보지 못한 사람이다. 친정이 부자(?)라 식모두고 산데다 심약해서 늘 골골되느라 일하곤 담싸고 살았다. 시모 표현대로 ‘부잣집 막내딸이 가난한 집 맞이로 시집왔다.‘ 그러니, 첨에는 정말 시모 쳐다보기도 무서웠고 시모가 큰소리라도 치면 그날 밤 경끼해서 남편과 시형제들 잠 다 깨워났다.
그러나, 순전히 타의에 의해 앉혀진 맞며느리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나 자신 강해지고 인격적으로 성숙했으며, 기능적으로 유능해졌고, 조선시대 남편과 시어머니를 계몽(?)시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당장 불세례라도 받을 것처럼 벌벌 떨던 시어머니 입에서 제사 확 줄이란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혼자 한 건 절대 아니고 사촌 동서들과 시집 안 간 사촌 시누들, 심지어는 시동생과 사촌 시동생들까지도 성원해 주었다. 수 많은 시행착오와 수 많은 반발과 수 많은 오해를 견디며 이룩해 놓은 개혁(?) 이 자랑스럽다.
무슨 묘책이 있었냐고요? 없었습니다, 없었고요....
첨엔 멋모르고 다 참고, 다 했고 ,
그 다음엔 제일 힘든 거 하나 정해서 고치려고 투쟁했고 (시숙모들에게 음식 한가지씩 해오라고 시켰음다. 한 3년 졸랐더니 해옵디다. 일이 반으로 줍디다.)
그 다음엔 먼 조상 (고조부모) 제사를 폐기하자고 졸랐습니다. 시삼촌들이 엄격해서 제사에 불참하면 불호령 떨어집니다. 바쁜 와중에 매번 참석하기 곤혹스러워 하는 사촌 시동생들부터 구워 삶았죠.
담엔 증조모부 제사 ...순으로 없앴습니다. 지금은 시부와 조부모 제사, 두번만 지냅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방법, 각기 개성에 맞는 전략, 전술 강구하기 ....등등을 배웠고, 패배감과 승리감을 번갈아 맞보고, 이혼도 수없이 생각하고 .......
그러다 시모랑 같이 늙어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비교적 시집살이에 성공했다 자부하지만
아직도 시모랑 오순도순 얘기하다가도 ....이 논넨 언제나 죽을고 ? ...하는 심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군여. 또한,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 왜 울 집에만 껌처럼 붙어 있는지? 하는 원망도 어쩔 수 없구여. 인간이면 괴로움 피하고 싶은 거 인지상정이니...... 다른 사람에게 이기적이니 뭐니 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나 맞며느리 자리 ...그런데로 할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 형제잖아요. 때론 시모랑 한패되서 남편을 공격하기도 하고, 시모 모신다고 생색도 내고, 당신, 처가에 잘안하면 시모 구박한다고 은근히 협박하기도 하고 ...울 남편, 처가에 무지 잘합니다....무엇보다도 애들 교육상 좋고 .....
그러나, 처녀 여러분!!!
맞며느리 자리를 골라 가진 마시기를!!!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시기를!!!
그러나 운명적으로 장남과 결혼했다면, 그리하여 더 이상 피할 자리가 아니라 판단되면 최선을 다하시라. 하나하나, 차근차근 ,스텝 바이 스텝으로 ..성급하지 않게..... 뭔가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란 게, 갓 시집 온 새댁에겐 절대로 주워지진 않더군요. 와신상담...힘을 키우며.... 때를 기다리며.....때론 곰같이 때론 여우같이.... 그러다 보면 바위도 조금씩 부숴지더군요.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네요.
해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날이 반드시 있다고 격려하고 싶지만 그것까진 장담 못하겠네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