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불화로 비행 청소년이었지만
하나님이 아빠가 돼달라는 엄마소원을 들어주셨어요
- 이나미 권찰 (동경타바타만민교회)
이나미 권찰 (동경타바타만민교회)
엄마 최정순 권사(왼쪽)와 다정한 포즈를 취한 이나미(시미즈나미) 권찰
저는 일본 도쿄 인근 사이다마 현에 살고 있는 29세 가정주부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10년 동안 저를 괴롭히던 질병을 치료받지 못한 채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치료해 주시고 영적인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시금 힘을 얻곤 합니다.
✦가정불화로 비행 청소년이었지만
저는 문제아였습니다. 부모님의 이혼과 가정불화 등으로 성격이 반항적으로 변해 중학교 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걷잡을 수 없는 길로 빠져들었지요. 중학교 1학년때 퇴학을 당해 학교를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퇴학을 당했습니다.
엄마 최정순(시미즈지혜) 권사님은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돈 벌러 일본으로 오셨습니다. 사춘기 때 딸이 학업을 도중하차 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요.
마침내 1998년 10월, 엄마는 한국에 있던 저를 일본으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저는 일본에서 17세에 중학교 1학년부터 다니면서 새 삶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23세에 전문대 비서학과에 들어갔지요. 1학년 말에는 대기업인 파나소닉에서 한국어 통역 및 번역 업무도 담당했습니다.
일본에 살면서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엄마의 기도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늘 안쓰러워서 무엇이든지 해 주려고 애를 쓰셨고, 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지요.
"하나님! 제 딸 나미가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아빠 없이 자란 불쌍한 아이입니다. 하나님이 아빠가 되어 주세요"
✦ 자궁내막증으로 기흉까지 겹치면서 엄마의 사랑을 깨달아
2000년, 고등학교 때부터 생리통이 심했으나 다른 애들보다 좀 심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수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3년 뒤 진단한 결과, 자궁내막증이었습니다. 왼쪽 난소가 부어 있는데, 더 심하게 부으면 왼쪽 난소를 잘라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때는 생리통만 견디면 살만 했지요.
2008년 12월이었습니다.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는데 가슴이 아팠습니다. 검진 결과 기흉(氣胸: 흉부 부상 또는 결핵, 폐렴 등으로 폐의 표면에 구멍이 생기는 것이 원인이며, 폐가 수축해 호흡 곤란 증상이 나타난다)이었고 오른쪽 가슴 부위에 구멍을 뚫고 튜브를 삽입해 공기를 빼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기흉도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매달 기흉이 재발했지만 가슴을 열어 큰 수술을 해야 하며, 그럴지라도 완치는 보장하지 못하고 너무 큰 흉터가 남으니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그 외의 치료법은 생리를 끊어 버리는 것인데 그때는 아직 미혼이라 좀 더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생리통과 기흉으로 한 달이면 보름간을 고생했습니다. 생리 시작 일주일 전부터 몸이 무겁고, 뼈마디가 쑤시고 아팠지요.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음식을 좋아했던 제가 임산부가 입덧을 하는 것처럼 냄새에 민감하고, 밥을 입에 대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배가 너무 아파 기어서 화장실에 가야 했습니다. 직장에도 이틀씩은 출근을 못했지요. 뱃속의 위와 장을 누군가가 빨래 짜듯 짜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 고통스런 생리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면 기흉이 재발했습니다. 한 5일 정도는 오른쪽 허파에 공기가 새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운동은 물론, 걷는 것조차도 삼가야 했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몸이 아프면서 철이 들었나 봅니다. 어느 날, 엄마가 떠오르면서 진한 사랑이 밀려왔습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연이 얼마나 많으셨을까…' 저는 엄마가 불쌍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고마워. 이제 잘할게, 엄마!"
✦『지옥』 단행본을 읽고 삶이 변화되니
2004년 1월, 엄마는 동경타바타만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엄마의 소원은 제가 교회에 나가는 것이었지만 선뜻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엄마는 저를 위해 기도하셨고, 수년 동안 제게 교회에 갈 것을 권유하고 또 권유하셨습니다.
2009년 8월경, 마침내 엄마에게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 『지옥』 단행본을 받아 읽은 뒤 제 삶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세상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을 잘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 뒤 동경타바타만민교회에 출석했습니다. 막상 교회에 가니 평안했습니다. 마침 그 시기에 당회장님께서 '지옥' 설교를 하셨기 때문에 더 깊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또한 당회장님을 통해 나타나는 성경상의 기사와 표적, 치유 역사를 보면서 참믿음을 깨우치기 시작했고, 말씀대로 행하는 영적 믿음을 소유하고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설교 말씀을 통해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니 제 마음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지요. 몸도 조금씩 호전되어 갔습니다.
✦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모든 질병을 치료받아
2009년 4월, 저는 한국인 모임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해 10월, 정경태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손수건 집회 때였습니다. "믿음이 강해지면 몸도 건강해진다"라는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저는 '믿음과 성결을 주세요'라는 소원을 품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뒤 자리로 돌아와 기도를 드리는데, 그동안 지은 죄와 허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통회자복을 했습니다. 그 뒤 그토록 고통스럽던 생리통과 기흉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 아무렇지도 않네! 밥이 먹고 싶어요, 밥이!"
입맛이 돌고 통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저는 엄마와 정 목사님께도 말씀드렸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얼마나 기뻐해 주셨는지요.
지금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함께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주일이 가장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저는 주일 저녁예배 전과 다니엘철야 시 찬양할 때 가사를 불러주는 가사 도우미를 하고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가사를 부를 때 지난날을 생각하면 저를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우리를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해 주시는 당회장님의 진한 사랑에 감동을 받습니다.
찬양 가사 한 절 한 절의 깊은 뜻을 음미하노라면 어느새 벅찬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 섬기니 물질축복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 (주)라임인슈 임낙홍 대표
(주)라임인슈 임낙홍 대표 물질축복 간증기 (1)제 나이 29살이었던 1997년, 청년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린 후 좌담회가 있었습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는 축복의 비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꿈과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당회장님! 저도 언젠간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교회와 목자께 힘이 되겠습니다!"
✦ 뱃속 태아가 다운증후군이라니!
2000년 11월, 꽃 배달 서비스업체 '플라워 일사천리'의 대표로서 입지를 굳혀가던 저는 아내 김혜숙 집사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저희의 신앙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여보, 오늘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결과가 안 좋으니까 빨리 와 보래요"
2001년 7월 초, 급히 병원에 들렀더니 의사는 보통 임신 16주쯤에 하는 기형아 검사 결과, 태아가 다운증후군 확률이 높아 위험하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 순간 자녀 문제는 부모 잘못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이 떠올라서 제 자신을 돌아보니 회개할 것이 많았습니다. 결혼 전에는 바울선교회(31세 이상 미혼 남성으로 구성된 선교회) 연합회장으로서 회원을 돌아보는 일에 힘쓰며 뜨겁게 달려갔는데 결혼 후에는 하나님 일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즐거워했고, 중심을 다한 기도를 하지 못했음을 깨달아 회개했습니다. 그 뒤 7월 말에 남선교회 하계수련회에 참석했는데, 교육이 끝난 후 당회장님께서는 전 회원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때 아내는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치료의 확신이 왔다고 합니다.
✦ 권능의 기도로 정상아 출산
저희는 2박 3일간의 하계수련회를 마치고 보라매 병원에서 한 양수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어간에 선교비와 성전 건축헌금을 정성껏 준비해 믿음으로 심고 당회장님께 축복기도를 받았습니다.
며칠 후, 아내는 당회장님의 꿈을 꾸었는데 태아를 위해서 손을 얹으시고 기도해 주셨다고 합니다. 같은 날, 저는 사업터에 축복받는 꿈을 꾸었고 5일이 지난 후 검사 결과를 보려고 보라매 병원에 갔는데 얼마나 가슴이 쿵쾅거리던지요.
"지금 태아는 정상입니다!"
마침내 2002년 1월 6일, 건강한 아들 성민이가 태어났고, 사업터에도 꽃 배달 주문량이 급증하면서 순풍에 돛을 단 듯 만사형통했습니다.
✦ 무리한 대출로 사업에 어려움이
창업 초기에 저는 사소한 것이라도 기도해 응답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제 생각대로 하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수금이 잘되도록 기도로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등 무리하게 대출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업이 마냥 잘될 것 같더니 주문량이 현저히 줄어들고 결국 수천만 원의 빚을 안은 채 내리막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무엇이 잘못 됐는지 알지 못했지요.
저희 부부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할수록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 것에 의존했던 모습들이 발견됐고, 또한 물질로 인해 쉽게 변해버린 제 자신에 대해 회개했습니다.
그 당시 수입은 카드 대금과 대출금 이자를 메우기에 급급했으며, 오히려 빚은 늘어만 갔습니다.
"여보! 힘내세요. 당신은 꼭 성공할 거예요"
아내는 아무리 어려워도 한마디 불평 없이 저를 믿음으로 바라봐 주었고 이런 아내가 저는 항상 고마웠습니다.
✦ 보험 설계사로 전업, 믿음의 행군
2003년 5월, 신한생명 남서울지점을 오픈하신 분의 권유로 보험설계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는 '이 일이 마지막이다. 더 이상 갈 곳도 없다'라는 마음으로 입사를 결정하고 8월에 꽃 배달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보험설계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굳은 일념과 함께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변개치 않을 것을 다졌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제가 오늘은 어디를 갑니다. 누구를 만나구요"
아침 일찍 출근해 책상에 앉자마자 하루 일과를 기도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양복 안주머니에 당회장님 기도를 받은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을 가슴에 품고 고객에게로 향하곤 했지요.
"안녕하세요? 하시는 일은 잘되시는지요?"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때때로 상대가 차갑게 거절한다고 해도 오직 섬김으로 대했습니다. 오히려 문전박대를 하는 곳이라면 더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 결국 고객으로 만들고야 말았지요. 사람을 만날 때도 업무적으로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듣고 이해해 주며 경우에 따라 신앙상담도 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지요.
그 결과, 직장 동료들이 성사시키지 못한 대규모 기관이나 회사에서도 놀랄 만한 계약 실적을 올렸습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곳에서 수시로 계약이 이루어져 입사한 다음 달부터는 지점에서 1등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2004년 3월에는 입사 10개월 만에 160만 원 이상 십일조를 드리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 변개치 않고 기도에 힘써
2005년 10월, 저는 생명보험인 신한생명에서 손해보험인 메리츠 화재 보험회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주변에 많은 분이 수입이 괜찮은데 왜 보험사를 옮겼는지 의아해했지요. 그 당시 사무실 내에서는 실적을 위해 지방 영업을 위한 출장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출장을 가면 다니엘철야를 온전히 하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기도는 내 생명줄과 같은데 어쩌지?"
당장 수입은 적은 듯 해도 제게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왜냐하면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하면서 하나님만 의지하며 변개치 않을 것을 다졌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저는 보험사를 옮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수입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루 일과를 체크하며 원인을 분석해 보니 오전은 회의와 영업 준비로 분주하고, 또 계약 한 건을 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돼 계약 효율성이 낮았습니다. 이 일은 제가 직접 보험대리점을 운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