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같고 내일과 같을 평범한 날입니다. 긴 시간동안 참아왔던,
몇 번이나 다독이며 홀로 삼켜온 말들을 해야만 하는 평범한 날입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어떠신지요.
당신이란 대상을 입 밖에 꺼내고 있는 제가 원망스러우신지요. 한 때 나는 당신의 사랑이였고 당신은 나의 사랑이였지요. 오래전 그 날도 오늘같은 평범한 날 이였습니다. 나는 당신이, 제가 하려는 말을 저를 만나기 전 이미 저에게서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짧은 시간동안 제 손을 그렇게 꼬옥 쥐고 마지막 걸음을 옮기기 전에 제 볼에 입을 맞춰주셨던 건가요.
그것은 제게 주신 마지막 기회였을 수도, 마지막 인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셨다시피 저는 끝내 당신손을 놓아버렸습니다. 한동안 내 것이였던, 당신이 주셨던 그 손을 영영 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지만 한번도 제가 했던 선택이 후회된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이 곳에 서서 지나가는 시간들을 바라보며 정지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연하게 알고 있던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다른건 몰라도 사랑만은 영원해야 되는 것이며 그건 변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입술을 삐죽이던 어린 날의 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아내와 남편들은 무슨 힘으로 평생을 함께 살아가느냐고, 변하지 않는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는 부부는 어떤 존재가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으며 그것은 참 슬픈 일 일거라고 생각했던 저. 하지만 사랑은 원래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알 수 없는 씁쓸함에 온 몸이 젖어들었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사랑은 영원불멸의 감정이며 대상이엿습니다. 가장 특별한 말이였고 세상 모든 언어적 표현들이 알고 싶었던 가슴 벅찬 말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슬픈 일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슬픈이야기라 믿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믿지 않았던 사랑호르몬에 대해서 알아보았으며 이 땅을 떠나 머나먼 미국 땅에서 만난 노부부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으며 프랑스에서 만난 바텐더에게 사랑을 믿느냐고 물어봤습니다. 다행히도 모두 제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고, 불행히도 저는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게 됐습니다. 그렇게 더 이상 사랑의 부재라는 이유로 외롭지도 않았고 세상에 모든 연인들을 유효기간을 달고 있는 것과 같은 슬픈 존재들로 바라보며 사랑을 용인하지 않는 제가 현명해 보였습니다. 사랑이라 불리우는, 끝내 소멸 해 버리고 마는 감정에 너무 많은 노력과 공을 들이는 사람들의 무지에 연민조차 생겼습니다. 당신에게도 이 못난 모습이 보여질까 부끄럽습니다만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주신 사랑에 보답하지 못한 제 감정에 스스로 벌을 내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제게 축복이였고 행운이였으며 다시 보지 못 할 빛이자 절망입니다. 변하지 않는 당신의 사랑에 반해 아무런 사소한 이유도 없이 이미 바닥나버린 제 사랑을 보면서 참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던 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건 숨이 막혔고 당장이라도 죽고 싶었습니다. 변해가는 제 모습에 당신은 홀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고 얼마나 아픈 가슴앓이를 하셨습니까 이기적이고 못 된 말이지만 그런 당신을 지켜봐야만 했던 하루하루가 저에게도 참 긴 시간이였습니다. 이런 구차한 변명을 말하는 저에게 욕이라도 실컷 해주실런지요.
다시 긴 시간이 지난 뒤 오랜시간의 고민 끝에 저는 제가 당신을 향했던 사랑보다 더 사랑을 줄 수 있는 상대를 찾아야 된다는 결론을 얻었지만, 그건 당신에 대한 배신이겠지요. 남녀간에도 의리라는 게 있는데 그래선 안 될 말입니다. 제 안에 이런 못난 제가 얼마나 더 숨을 쉴 진 모르겠습니다만, 억지로 숨을 거두진 않을 겁니다. 돌이켜 보면 그리 긴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군요.
그렇게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당신에게 받았던 사랑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텅 빈 가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다른 많은 것들로 불행했던 저에게 과분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지금의 제가 존재하며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행복했던 과거가 존재하게 됐습니다.
제 몸은 이미 당신이 주신 없어지지 않을 사랑의 조각들로 곳곳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제게 주신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생기실테지요.
나는 압니다. 당신이 맹목적으로 주셨던 사랑만큼의 사랑을 줄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걸.
그래서 제 가슴은 영원히 차오르지 못할 것이며 적어도 저라는 사람에겐 영원히 사랑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
가끔 우리가 거닐었던 길들을 걷다보면 어린 날들의 우리가 걸어가는게 보입니다. 함께 즐겨먹었던 아이스크림 하나를 산 뒤 그들 뒤를 천천히 따라가봅니다. 저들은 저렇게 영원할테지요. 낮에는 함꼐 쇼핑을 할테며 가끔씩은 해변을 거닐 것이며 저렇게 꼭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을테지요. 그렇게 함께 발을 맞출테지요. 그렇게 영원히 순수하겠지요. 저 시간속에서만 사는 저 남자는 영원히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저 여자를 울리지 않을테지요.저는 그렇게 깨닳았습니다. 저에게 사랑은 다신 없을지도 모르지만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영원하다는 걸. 그 누구도 모르게 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숨을 쉬고 있을 거라는 걸.
그 날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며, 홀로 흐느끼는 눈물을 훔치고 가슴이 아프더라도 당신이 눈물로 단념 할 수 있을 모진 말을 다시 할 것이며, 지금처럼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이 세상이 공평하다면 당신에게 참을 수 없는 쓰라린 상처를 줬던 저는 벌을 받아야 할 것이며 이 세상은 공평해야겠지요. 혹시라도 아직 저를 향한 원망이 끝나지 않았다면 제가 가지고 있떤 사랑이 바닥나 당신께 더 줄 수 있는 사랑이 없는 빈 껍데기였다고 이해해주시겠습니까. 당신에게 감사했고 지금도 감사하며 앞으로도 감사할 겁니다.
사람 마음을 한낱 언어로 다 표현 해낼 수 있겠냐만은 이정도로 하고 다시 책장을 덮을까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좀 더 세상을 살다보면 저 조차도 변할테고 당신도 변할테지만, 당신이 주셨던 사랑만큼은 제 가슴속에 영원할 겁니다. 아마 당신은 보지 못할 것임을 알지만 2년전에 썼던 글을 오늘에서야 말해봅니다.
이 모든 것들로부터 당신은 이미 자유로워졌을지도 모르지만, 사랑을 사랑으로 보답않고 가슴 아린 눈물로 안겨주어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지금의 당신은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