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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마다 남자를 받는 여자

검객 |2015.08.01 20:42
조회 66,759 |추천 790




나는 1922년 10월 25일 평안남도 용강군 지사리에서 태어났다. 내가 5살 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우리 모녀들은 얼마 안되는 밭을 가지고 일하였으나 도저히 가난을 이겨낼 수 없었다. 

 

내가 18살 때인 1940년 10월이었다. 우리가 사는 지사리에 있던 지주가 한 일본인과 함께 집에 찾아와 밥벌이 좋은데가 있으니 일본사람과 함께 보내자고 꼬이었다. 
어머니가 못보내겠다고 하자 일본인은 발로 어머니의 얼굴을 걷어차고 나를 강제로 화물차에 태운 다음 평양역전으로 끌고 갔다. 이 때 일본인의 발길에 채여 어머니의 앞니 두대가 부러졌다. 

 

나는 역에서 3명의 조선처녀들과 함께 군마를 싣고다니는 어둑침침한 유개화차에 실리었다. 차칸마다 모두 조선여성들이었다. 
어떤 처녀들은 울며 불며 야단을 쳤고 또 어떤 처녀들은 울다가 지쳐버려 멍하게 앉아있기도 하였다. 화차의 문을 밖으로 잠그었기 때문에 어디로 실려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3~4일이 지나 기차는 중국 목단강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10여리 떨어진 일본군 병영으로 끌려갔다. 

 

나는 평양역에서부터 같이온 조선여성 3명과 함께 2층으로 된 건물에 들어갔다. 1층에는 4개의 방이 있었는데 각기 한방에 1명씩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방에 들어가자 밖으로부터 자물쇠가 걸리었다. 매방의 크기는 너비 2~2.5미터, 길이는 3미터 정도였다. 바닥에는 나무판자가 깔려 있었다. 

 

그날 밤 긴칼을 차고 누런 견장을 단 일본장교 1명이 내방에 들어왔다. 그는 "이제부터는 일본장교들에게 절대복종하라. 그것이 일본천황의 명령을 잘 받드는 것이다. 조선여자들은 우리말을 듣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라고 지껄이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놈의 손을 깨물며 항거하였는데 그놈도 나의 왼손 2지를 물어뜯어 손가락의 한마디를 못쓰게 만들었다. 내가 계속 항거하자 그는 나의 두팔을 비틀어 뒤로 묶은 다음 꿇어앉히고 사정없이 허벅다리를 걷어차고 때리는 것이었다. 
그 놈은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다음 수욕을 채웠는데 그날 밤 몇놈이 왔었는지 알 수 없었다. 새벽에 깨어나보니 팔이 그냥 묶여 있었다. 

 

이렇게 매일 저녁 8시경부터 새벽까지 강요당하였다. 내옆방에 명옥이가 있었고 그 옆방에 봉녀가 있었는데 그들도 나처럼 강요당하였다. 봉녀가 음부가 찢어져 피가 났으며 저녁마다 사람살리라고 비명을 지르고 신음소리를 내었다. 
우리 넷의 방에는 장교들만 들어왔는데 하루 저녁에 10~15명 때로는 20까지 쓸어들었다. 들어와서는 보통 30~40분씩 있었는데 더 빨리 나가면 그만큼 더 많은 인원수를 상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입고간 옷은 선자리에서 칼로 찢어버리고 두루마기같은 것을 입으라고 강요하였으며 "봉사" 시간이 되면 그 옷마저 걷어갔다. 
방문에 작은 뙤창문을 내었는데 장교들은 그 창문으로 조선여성들이 능욕당하는 것을 들여다보며 히히덕거리기도 하였다. 
처녀들이 반항하거나 응하지 않으면 밖에 끌어내다가 숱한 장교들이 있는 앞에서 가죽채찍으로 후려쳤으며 칼등으로 갈비대를 꺾어놓기도 하였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일본군이 패주하게 되자 나는 주변에 살던 한 조선사람의 집에서 돈 2원을 여비로 얻어가지고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 후 과거의 치욕으로 인하여 10여년동안 독신으로 살아오다가후처로 시집갔으나 아이도 낳지 못하였다. 또한 그 때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허리와 다리, 손가락을 제대로 쓰지 못하여육체적 고통을 받고 있다. 
일제 침략자들에게 빼앗긴 나의 청춘을 생각하면 원통하여 견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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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위안부 피해자인 노현화 할머니의 증언입니다. 



아직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자발적 매춘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충분한 배상을 했다고,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고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서경덕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일본이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에 충분히 배상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지성이라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정도이니

전체 일본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안 봐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올해에만 벌써 7명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한국에 남은 생존자는 48명입니다. 

추천수790
반대수12
베플|2015.08.02 03:11
반대2명뭐야미친잘못눌럿기를바란다
베플솔직한세상|2015.08.01 23:16
민족반역자들이 나라 팔아 부를 축척하고 그 부로 자녀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그렇게 그들이 권력을 대물림 하고 있죠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정당하게 만들려면 대한민국을 평가 절하 해야 겠지요 그러니 끝 없이 역사 왜곡을 하려 합니다 ------------- http://pann.nate.com/talk/327854327 ------------- "박근혜 정권, '국민 몰지각화'가 목적인가" [단박 인터뷰]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친일 · 군부 계승자가 통치, 파렴치하다 "'눈물 닦아 준다' 말하지 마라" "증오 정치 조장하는 지도자" "'천안함, 북한 폭침' 언급이 종북이다!" "자칫 '200년 전쟁' 될까 암담하다" 임헌영이 존재하는 '리영희'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5405&ref=nav_search --------------- 식민지근대화론과 역사 쿠데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47374.html --------------- 역사전쟁 포진 끝낸 보수…이승만 미화, 공세 예고 이인호 KBS이사장의 현대사학회 등 핵심 역사연구기관 모두 장악 … “친일 조상 옹호 - 이승만 옹호 - 박정희 찬양으로 이어질 것” 정부와 여당 전폭적 지원 받아 국민을 역사변혁 주체로 인정 안 해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201410071519561&pt=nv -------------- 프랑스의 식민지 근대화론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2766.htm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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