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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횡성에서 찾아야 할 것들 (3)

뿌찌빠찌뽀찌 |2015.10.29 23:00
조회 144 |추천 0

3화 푸른 먼지

 

 

 

그녀는 운전면허를 딴 이후 처음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았다. 약간의 저항감이 있었지만, 분노의 발목은 강했다.

 

보닛에서 흘러나오는 헤비메탈 음악은 주미를 더욱 흥분시켰다.

 

‘저 선수 별명이 폭주기관차라고.’

 

언젠가 축구경기를 보던 차희가 했던 말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래? 나쁜 놈아!”

 

‘쾅’하는 굉음이 차희에게 들렸다. 주미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 소리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기 때문일까? 오히려 바닥을 긁어대는 타이어 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충격도 의외로 심하지 않았다. 안전벨트를 해서일까? 사실 박기 직전에 주미가 발목에 힘을 풀었단 건 자신도 알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낀 거였다. 만일 무의식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다음날 뉴스에 나올뻔했다.

 

차희의 자동차는 오른쪽이 조금 찌그러졌을 뿐이다. 폭주기관차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소한 어떤 자동차인지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만!”

 

뒤늦게 차희가 뛰어왔지만, 그녀는 다시 돌격 중이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엔 트렁크가 박살이 나고 말았다. 당분간 골프가방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녀는 차를 돌려서 그의 애마 앞부분에 세웠다.

 

“뭐야, 저 진상은?”

 

차희가 골키퍼처럼 앞을 막는 꼴이 조금은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잘못한 거 아는데, 자동차가 무슨 죄가 있어?”

 

주미는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앞차에 욕을 하려는 택시기사처럼.

 

“경고하는데, 그쪽 다리 부러져도 몰라.”

 

차희는 굴하지 않고 주차장에 뿌리를 내릴 기세였다. 중립 기어를 넣고 페달을 밟아대는 그녀와 그의 신경전, 승자는 누구일까?

 

‘제까짓 게 나를 치겠어?’

 

그의 자만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자동차가 앞으로 튀어나오자 그는 옆으로 몸을 굴렸다.

 

차희의 애마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앞범퍼가 떨어져 나가고 보닛이 접혀버렸다.

 

주미의 차도 성치 못했다.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부서진 범퍼는 폐차장에서 볼법했다. ‘덜렁덜렁’거리는 전조등은 만화캐릭터가 놀랄 때 튀어나오던 눈알 같았다.

 

“이거 완전히 미친년이잖아?”

 

차희는 심각함을 느끼고 자동차 리모컨 키를 눌렀다.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자동차로 달려가 문을 열려고 했지만, 꿈쩍도 않았다.

 

“젠장!”

 

찌그러진 차 문은 ‘덜컥덜컥’거리기만 할 뿐 열리지 않았다. 차희는 살인마에게 쫓기는 공포영화주인공처럼 부단히 손을 움직였다.

 

‘아야!’

 

검지 손톱이 부러지고 나서야 거친 숨소리가 멎었다.

 

그때 그의 시선이 흔들리고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미의 냉혹한 확인사살은 그의 애마를 복구불능으로 만들었다. 당장 불이 붙어 폭발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이다.

 

“어머, 그쪽 차가 다 부서졌네요?”

 

다시 능청스럽게 말하는 주미를 째려봐도 소용없었다. 이미 엉망이 되고 만 차를 봐도 소용없었다. 주미는 차에서 내려 손을 내밀었다.

 

“어쩌라고?”

 

차희는 바닥에 주저앉아 주미를 째려봤다.

 

“차키 내 놔.”

 

차희는 차 키를 내던졌다. 주미는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감독님한테 다 불어버리고 쓰지 말라고 한다?”

 

차희는 그제야 천천히 움직여 차 키를 주었다.

 

“무릎 꿇고 두 손으로!”

 

그날 주미는 집에 가지 않고 차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얼마 후 그 마을에는 하나의 괴담이 떠돌았다. 금요일 밤이면 스포츠카에서 울고 있는 처녀 귀신이 있다는 괴담이…….

 

 

이른 아침, 그는 이슬을 먹어 축축해진 나무 대문을 열었다. 꽤 넓은 2층짜리 전원주택은 꽤 오래됐고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여기저기 허물어진 외벽과 깨져버린 유리창, 음산한 기운도 감도는 게 드라큘라 백작이 잠들어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사는 동네가 이렇구나. 여기서 횡성은 가까울까?’

 

그의 예상과 달리 그곳은 도시가 아니었다. 주변엔 산과 국도만 보였다. 얼마 없는 이웃집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구름에 가린 햇살이 뭐가 그리 밝은지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천천히 뒤로 돌아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전원주택을 향해 인사를 한 남자는 멀리 있는 도로와 주차장을 번갈아 봤다. 주차장엔 독일제 중형세단이 검은 빛깔을 자랑했다.

 

“운전할 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남자는 문득 이웃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시한부의 사진관주인일까? 아니면 카사노바 같은 수의사가 살고 있을까? 어쩌면 지하실에 갇혀있는 아이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는 집에 들어가면 안 돼.’

 

지금까지 드라마를 들어온 그의 경험을 보자면 밖은 꽤 삭막한 곳이었다. 그밖에 양복 차림에 덩치가 큰 남자, ‘예수를 믿어라!’고 외쳐대는 사람은 특히 조심해야 했다.

 

“조심, 또 조심.”

 

남자는 중얼거리며 가죽으로 된 캐리어가방을 끌고 길을 나섰다. 그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면 좋은 사람을 만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적한 길가엔 젖은 낙엽이 붙어있는 화물차가 몇 대 서있을 뿐이었다. 옆으로는 논밭이 있고 다른 쪽은 언덕으로 막혀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엔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아, 배고파.”

 

잠에서 깬 주미는 바로 허기를 느꼈다. 목도 마르고 온몸이 뻐근했다. 어제의 일이 현실이 아니길 빌었지만, 터졌다가 쭈그러든 에어백을 보고야 말았다.

 

“이게 뭐야. 지금까지 엄한 놈한테 뭘 한 거냐고!”

 

그녀는 다시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현실에 맞닥뜨리자 분노가 걷히고 슬픔이 밀려왔다. 바닥에는 새벽 내내 눈물을 닦은 휴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속은 먹먹한데 배는 고프고.”

 

그녀는 코가 빨개질 정도로 울면서 공복을 느꼈다.

 

“뭐야?”

 

백미러에 비친 남자를 본 주미는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눈물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는 정상이 아닌 듯했다.

 

“안됐다, 아직 어린 거 같은데. 그래도 씻고는 다니나 보네?”

 

그녀의 눈에 비친 남자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조그만 얼굴, 제 몸집보다 훨씬 커 보이는 옷의 조합은 우스꽝스러웠다.

 

“제발 지나가라, 지나가.”

 

아니, 괴상하다는 게 맞을 것이다. 도시괴담의 주인공은 순진한 남자에게 겁을 먹었다. 그는 ‘덜그럭’거리는 캐리어를 끌며 주미의 차를 향해 오고 있었다.

 

“엄청나게 큰 건물이다!”

 

남자는 아파트를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생애 처음으로 본 12층짜리 건물이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건 주미가 타워팰리스를 처음 본 주미의 반응과 비슷했다.

 

그다음 눈에 들어온 건 신기하게 생긴 자동차였다.

 

“뭔가 멋진데?”

 

그는 본능적으로 날렵한 차체에 끌려갔다. 주차장에 있던 자동차보다 조금 작았지만, 모양은 얼추 비슷했다.

 

한편 차 안에서 남자를 지켜보던 주미는 불안해졌다. 먼 곳을 훑어보다가 비명을 지르고 갑자기 이쪽을 향해 웃는 걸 봤기 때문이다.

 

“뭐야, 멀쩡해 보이는 애가…….”

 

그녀는 수상한 거지를 경계했다. 남자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동차 앞에 멈춰 섰다.

 

‘안에 사람이 있어!’

 

남자는 부모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갓난아기 때 많은 사람을 봤었다고 해도 그의 기억엔 없었다. 지금은 유리창 너머로 자신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여자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남에게 부탁할 땐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해야 합니다.’

 

남자는 언젠가 사회예절에 관한 프로그램을 들은 적이 생각났다.

 

“깜짝이야!”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한 남자는 자동차 유리를 두드렸다. 주미는 용기를 내 그의 말소리가 들릴 정도로 유리를 내렸다. 틈새가 그녀의 새끼손가락만큼 작을지언정 그에겐 거대한 성벽이 허물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입술이 떨렸다.

 

“감사합니다. 죄송하지만,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남자는 공손했고 가까이에서 보니 제법 멀끔했다. 썩은 냄새가 날 것 같은 옷도 깨끗했고 향긋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일단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사람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도를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단 안전해 보였다.

 

“그럼요.”

 

“여기에서 버스터미널로 갈려면 어떡해야 하나요?”

 

“미안해서 어쩌나?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겠는데.”

 

“그렇군요……. 그럼 실례했습니다.”

 

그는 실망한 듯 돌아서다가 고개를 돌렸다.

 

“참, 혹시 저 건물에 먹을 걸 파는 곳이 있을까요?”

 

“뭐라고요?”

 

주미는 황당하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아파트엔 상가가 있고 식당도 있는 게 상식 아닌가? 게다가 아파트를 건물이라고 하다니.

 

‘좀 모자란 애구나? 대학교 때 헌옷수거함 앞에서 저런 애들 많이 봤었는데.’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무래도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남자가 고개를 숙였을 때 주미는 그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잠깐만!”

 

남자는 얼음이 돼버렸다. 그때 주미가 오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이거 받아요.”

남자는 어리둥절했다. 저 여자가 왜 저걸 주려고 하는 건지 궁금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미는 지폐를 흔들었다.

 

“돈 처음 봐요?”

 

그제야 남자는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이 집을 나올 때 가져왔던 게 돈이었다는 것도 말이다.

 

“그거 돈이 확실하죠?”

 

남자가 되묻자 주미는 어이가 없었다.

 

“그럼 뭐겠어요?”

 

“가지고 오길 잘했다. 그럼 그걸로 밥도 살 수 있고 집도 살 수 있는 거죠?”

 

“밥은 살 수 있어도 집은 못 사요. 모텔에서 하룻밤 묵는 건 몰라도.”

 

남자는 주머니에서 지폐를 몇 장 꺼냈다. 제법 두둑했지만, 당장 살 집을 구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그걸로도 못 사거든요? 그보다, 훔친 건 아니죠?”

 

“아니요, 엄마한테 받았어요.”

 

“혹시나 해서요. 하여튼 저기 가면 편의점이 있을 거예요. 버스터미널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알 테니 그쪽으로 가 봐요.”

 

“편의점이라면 먹을 것도 팔죠?”

 

“네, 그럼 이만 갈게요.”

 

주미는 시동을 걸고 출발했고 바닥엔 새까만 기름이 흥건했다. 남자는 떠나가는 스포츠카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자동차는 십 분도 안 돼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몇 차례 나더니 멈춰 섰다.

 

“이건 또 뭐야? 짜증 나 죽겠네!”

 

핸들을 내리친 주미는 다시 시동을 걸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이윽고 뒤에서 경적이 울리고 몇 사람이 고개를 내밀고 손가락질을 해댔다. 주미는 머리가 뜨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보세요, 지금 차가 고장 났는데요. 누가 박은 건 아니고…….”

 

그때 뒤에서 경적이 커졌고 고함도 들렸다. 주미는 차 문을 세차게 열었다.

 

“아, 진짜! 급하면 피해 가던가!”

 

한을 품은 여자는 꽤 살벌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조용해지고 유리창을 닫았다.

 

“까불고 있어.”

 

문을 닫으려던 그녀는 사람들의 침묵이 떨어져 나간 문짝 때문이었다는 걸 알아챘다.

 

 

 

“고객님, 저 같으면 폐차시키고 새 차를 사겠어요.”

 

정비원은 혀를 내둘렀다. 차는 생각보다 더욱 엉망이었다.

 

“구동축도 나갔고, 라디에이터도 완전히 먹었고.”

 

“고칠 수는 있나요?”

 

“고칠 순 있는데,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고 차도 예전 같지 않을 거예요.”

 

“아…….”

 

후회가 주미의 가슴을 후벼 팠다. 주미는 손톱을 깨물며 자동차를 지켜봤다.

 

“그냥 폐차시킬게요.”

 

“그럼, 차는 여기에 맡기시고 내일모레까지 서류 가져오세요. 지금 당장 자동차 필요하시죠?”

 

“네, 횡성에 가야 해서…….”

 

“그럼 저쪽에 가셔서 렌트하셔야겠네. 다만, 고객님 과실이라서…….”

 

주미는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서울로 놀러 갈 때 버스 안에서 수다도 떨고 모자란 잠을 잤던 기억이 말이다. 그때 봤던 창밖 풍경도 다시 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그녀는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렌트는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횡성에 가신다면서요?”

 

“버스 타고 가면 되죠. 버스에서 자는 잠이 꿀이거든요.”

 

 

 

편의점에 들어간 남자는 점원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모자란 말투와 후줄근한 옷차림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콜라와 햄버거를 고른 남자는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을 물었다. 점원은 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관해 설명했지만, 남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 세상에 숫자도 모르는 사람이 있나? 됐고, 저 길 따라가면 큰 도로 나오거든요? 거기서 택시 잡고 버스터미널로 가달라고 하던가.”

 

“그렇군요. 택시라면 사람을 데려다주는 자동차를 말하는 거죠?”

 

“네, 지붕에 네모난 게 달린 거요.”

 

점원은 포기가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가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였다. 남자의 몸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요동쳤다. 캐리어도 ‘덜컹덜컹’거리며 흔들렸다. 점원의 눈엔 그가 앞으로 튕겨 나갈 거 같았다.

 

“어, 캐리어가 망가졌나?”

 

남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캐리어 바퀴를 만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점원은 공포에 휩싸여 공황상태가 됐다. 방금 본 움직임은 사람의 힘으로 흔들린 수준이 아니라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적어도 그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어디 불편하세요?”

 

하얗게 질린 점원을 본 남자가 물었다. 점원은 그에게 딱히 원한이 없지만, 이 남자를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니까, 얼른 나가요.”

 

“네?”

 

비틀거리는 점원이 걱정된 남자는 가까이 가려 했다. 점원의 감각세포가 비명을 지르고 허리가 굳어버렸다. 그는 정신없이 편의점에 비치된 곤봉을 잡았다.

 

자신이 이걸 잡을 일이 없길 바랐지만, 날은 오고야 말았다. 차라리 강도였다면 이렇게 떨리진 않았을 거다.

 

“내 말이 안 들려? 나가라고!”

 

두려움에 젖은 방어는 꽤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와 다툼 한 번 해본 적 없던 그도 겁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나, 나갈게요!”

 

까딱하면 곤봉이 자신의 머리를 향할 거라는 생각에 남자는 소름이 돋았다. 점원의 눈빛은 정상이 아니었고 검은 곤봉은 위압적이었다.

 

그는 유리문을 부술 기세로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엄마 말대로 바깥은 무서운 곳이었어.’

 

남자가 헐떡거리며 편의점을 봤을 땐 점원이 소리를 지르며 문을 잠갔다.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칭찬하는 게 아닌 건 확실했다.

 

 

 

택시를 잡는 건 수월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트렁크가 열리고 택시기사는 뒤로 손짓했다.

 

“버스터미널이요.”

 

택시기사는 과묵한 편이었고 남자는 말을 걸 용기가 나오지 않았다. 편의점사건 때문에 사람이 두려워졌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버스터미널 근처는 복잡하지 않았다. 정차한 택시가 많아서 그럴 뿐, 도로도 넓은 편이었다. 고층건물은 없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음식점, 전자상가나 편의점 말이다. 남자는 봉변을 당했던 편의점과 똑같은 간판을 보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일자리 얻으러 온 거 같은데, 저기 있는 인력사무소에 가보지그래?”

 

공사현장이 많아서일까? 그의 말대로 주변 건물엔 인력사무소가 들어서 있었다. 택시기사의 눈엔 남자의 모습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부류로 보였다.

 

“네.”

 

남자는 만능단어로 대답했다. 난처할 땐 무조건 ‘네’라고 말해야 한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터미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기본적인 약국과 패스트푸드점이 있을 뿐, 아주 평범한 버스터미널이었다.

 

“어쩌지?”

 

그의 진짜 시련은 지금부터였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부분 사람은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렸다.

 

“저 네모난 장난감은 뭐지?”

 

남자는 그들이 보고 있는 스마트폰을 보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그에겐 편의점에서 일어난 일이 꽤 충격이었나 보다. 어느새 그는 겁쟁이가 돼버렸다.

 

어딘가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가 늘 듣던 오디오 소리가 아닌 생생한 소리가 말이다.

 

“저쪽이다.”

 

남자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엔진 소리로 시끄러운 버스승차장 근처였다.

 

“우와!”

 

가슴을 울리는 묵직한 연주에 남자는 전율을 느꼈다. 위층에서 새어 나오던 음악이 아니라 바로 앞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이었다. 기타, 색소폰, 드럼, 피아노, 악기를 처음 본 그는 입을 닫지 못했다.

 

기분 좋은 하모니는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진짜 음악이다!’

 

아침마다 자신을 깨우던 재즈가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일 줄 몰랐다. 그는 음악방송에서 진행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재즈 연주에 사용되는 기타는 다른 기타와는 조금 다르죠. 우선 평평한 통기타와 달리 거북이 등껍질처럼 볼록 튀어나왔죠.’

 

‘저게 기타라는 건가 보다.’

 

남자는 귀를 열고 악기의 생김새, 연주자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흘러나왔다.

 

“엄마, 저 형이 울어.”

 

“이상한 사람이니까, 신경 쓰지 마.”

 

옆 사람의 따가운 시선 따윈 잊은 지 오래였다. 며칠 전에 일어난 불행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연주자 앞에 있는 돈바구니로 다가갔다.

 

그는 끔찍한 악몽을 잊게 해준 대가를 치르려 한다.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

 

“배고파.”

 

그녀는 허기가 밀려왔다. 계속 울어대고 소리치느라 배가 텅텅 비어버렸다.

 

‘제대로 된 밥은 고향에 도착해서 먹고.’

 

버스터미널로 들어간 주미는 도넛 전문점을 발견했다. 커피와 곁들여 먹는다면 현실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디자인 작업하면서 많이 먹었는데.’

 

머리와 가슴에 열정이 가득 찬 시절이 그리워졌다. 밤을 새우고 공방으로 가도 멀쩡했던 젊음이 그리워졌다는 게 맞을 거다.

 

“아메리카노하고 같이 포장해주세요.”

 

도넛은 핸드백에 넣고 주미는 커피를 마시며 매표소로 갔다.

 

“횡성이요.”

 

“직행은 없고 원주에서 갈아타셔야 되는데.”

 

“네.”

 

“곧 있으면 출발하니까, 미리 승차장에 가세요.”

 

 

 

구경을 마친 그는 편의점에서 사려던 것과 똑같은 음식 사진이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편의점에서 도망치다가 떨어트렸기에 미련이 남은 참이었다.

 

글을 읽을 수 없던 그는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켜야 했다.

 

“저걸로 주세요.”

 

기다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고기버거 세트 주문하신 고객님.”

 

남자는 메뉴판을 멀뚱멀뚱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저기요?”

 

남자는 그제야 햄버거 세트를 받아갔다. 한동안 식사를 하지 못했던 그는 정말 미친 듯이 먹었다. 양상추 쪼가리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감자튀김 부스러기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입가와 손엔 소스와 기름이 뒤엉겼다. 계산대에 좀 모자라 보이는 미소와 지저분한 입가를 주시하는 시선이 있었다.

 

“내쫓을까요?”

 

“아니야, 일단 지켜보자고.”

 

자신을 향한 험담을 알지 못한 채 남자는 식사를 마쳤다.

 

“저기 버스를 타려면 어떡해야 하나요?”

 

“아, 저기에 매표소가 있어요.”

 

매니저는 재빨리 험담을 멈췄다.

 

 

 

“원주행이라고? 그럼 얼른 타야지!”

 

버스 기사의 닦달에 남자는 캐리어를 끌며 미친 듯이 달려갔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매표소를 가고 원주행 버스를 찾는데 시간을 지체해버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남자가 연신 사과하자 버스 기사는 인상을 풀고 짐칸을 열었다.

 

“표는 나한테 주고 큰 가방은 여기에 넣어.”

 

남자는 버스 기사에게 버스표를 건네고 캐리어를 조심스럽게 넣었다.

 

“어?”

 

그는 버스에 올라타고 있는 주미를 발견했다. 밖으로 나와서 처음 본 사람이자 가장 다정했던 그녀를 말이다.

 

“저기요!”

 

남자가 손을 흔들며 크게 외쳤지만, 그녀는 듣지 못하고 버스로 들어가 버렸다.

 

“여자친구라도 돼?”

 

“그건 아니지만…….”

 

“이상한 젊은이네? 일단 들어가자고.”

 

남자는 서둘러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버스 안은 보따리를 들고 탄 노부부와 군인 한 명, 주미가 앉아있었다.

 

군인은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는 것 같았다. 그는 생지옥으로 가야 하는 현실 때문에 과음했는지, 사단장이 흔들어도 깨지 못할 정도로 잠들어 버렸다.

 

노부부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얘기하기 바빴다. 집으로 가면 찬거리는 무엇을 살 것인지, 아직 장가 못 간 아들의 걱정이라든지, 평범한 대화였다.

 

이 와중에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던 주미는 창밖을 응시했다. 황금빛 햇살이 그녀를 비추고 있는 걸 본 남자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귀에 꽂고 있는 건 뭐지? 오다가 몇 번 보긴 했는데.’

 

그때 따가운 시선이 느낀 주미가 그를 알아봤다.

 

‘그 이상한 애잖아?’

 

주미는 그저 신기한 반응이었지만, 남자는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버스 기사는 시동을 걸고 머리를 매만졌다.

 

‘아니, 쟤는 굳이 여기로 오려는 거야?’

 

남자는 웃고 있었다. 집을 나온 이후로 한 번도 웃지 않던 그가 웃었다. 그럴수록 주미는 진땀이 흘렀다.

 

‘이번 달은 최악이구나.’

 

그녀가 얼굴을 찌푸리던 순간 남자가 바로 앞에 나타났다. 절대로 한 번에 올 수 없는 거리를 단번에 온 거였다. 우사인 볼트라도 그건 불가능했다. 그가 지나간 공간은 푸른 먼지 같은 것이 휘날렸다.

 

잠깐이지만, 그는 확실히 사라졌다.

 

‘순간이동?’

 

그의 뒤로 푸른 먼지가 날리는 모습이 몽환적이었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모습 같았다. 그보다 그가 순간이동을 한 게 중요했지만 말이다.

 

길거리마술사? 그건 절대 아니었다. 보통 마술사라고 하면 자신의 마술을 미리 설명하기 마련이다. 그보다 저런 마술이 가능할 리가 없다.

 

“반가워요. 그땐 고마웠어요.”

 

남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웃었다.

 

“꺅!”

 

그녀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남자를 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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