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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의 대나무숲에 올라온 <제제>관련 글을 보고.

arete |2015.11.09 05:37
조회 164 |추천 9

서울대생의 대나무 숲에 올라온 글을 보고.

 

1. 문학, 예술.

“문학작품의 해석과 변용에 대해 어느 누구도 권위적으로 이래야 한다. 이러지 않아야 한다며 추태를 부려서는 안 된다.” 이하의 문장들에 동의한다.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또 독자의 수만큼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자체 내적 요소로 감상하든, 혹은 작가의 생애에 초점을 맞춰 감상하든, 사회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감상하든, 독자 자신에게 미치는 감동에 초점을 맞추든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을 독자들은 ‘자유’롭게 감상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보다 본질적으로 들어가 보자. 현재 교육되고 있는 교육과정 내에서 ‘문학’이란 ‘가치 있는 것을 형상화한 언어예술’이라고 정의 되고 있다. 여기서 ‘가치 있는 것’이란 ‘삶의 진실’을 의미한다. 문학이 허구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유는 문학이 가진 ‘허구성’이라는 속성에 ‘진실성’이 더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같은 경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에 더해져, 지구 수많은 곳에서 ‘제제’와 같은 아픔과 슬픔을 공감할 수 있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고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예술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예술이 예술일 수 있는 이유, ‘감동’을 줄 수 있는 본질은 ‘진실성’이다.

지금 다수의 사람들이 불쾌해 하고 있는 이유는, 위와 같은 이유로 아이유의 <제제>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가진 예술성을 추락시키며 자신만의 ‘예술’을 표방하고 있는 이중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제’를 끌여들여오지 않고 순수하게 창작된 본인만의 ‘무엇’을 가지고 가사의 표현을 지금과 비슷하게 했다면, 그 ‘애매함’ 또한 이렇듯 논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것의 ‘이중적’ 속성에 매력을 느꼈다던 그 부분이 아이유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즉 아이유의 ‘진실성’이 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그 성질을 투영한 대상이 왜 하필 ‘제제’여야 했을까? 아이유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라는 한 편의 문학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고전이 될 수 있었던 예술로서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시각을 덧 씌었기 때문에 원작에서 청출어람한 ‘예술’은 탄생하지 못하고 한낱 저속한 ‘상업음악’이 탄생했을 뿐이다. 고전을 끌어올 때는 그에 걸맞은 책임감 또한 있어야 한다. 고전을 일차적 이미지로 차용하며 그에 따른 상징적 효과로 득을 보려 하면서, 사실은 그 고전의 가치를 추락시키고 있는 것에 따른 대중들의 불쾌감. 지금의 비난은 ‘아이유’가 지고가야할 책임이라 생각한다.

 

2. 소아성애, 섹슈얼한 코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뮤직비디오’에 대해서는 그냥 짧게 언급만 하고 넘어가자면, 문학이 작가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창작하고, 그 후에 독자들의 다양한 감상이 있을 수 있듯, 창작물의 과정은 다 똑같다. 문학이든, 뮤직비디오든, 영화이든, 모든 예술작품들의 창작의 시작은 생산자의 ‘표현욕구’ 즉 ‘의도’가 있는 것이다. 지금 많은 영상관련 창작자들이 말하듯, 뮤비의 의도는 명백하다. 영상공부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은 사람들도 좀만 관심 있으면 알 수 있거니와, 영상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명백한 클리셰들이다. 장면 하나하나에는 생산자의 ‘의도’가 들어가기 마련이므로. 관습적인 클리셰들이 너무나 명백하다. 물론 본인이 그 ‘의도’를 ‘말하느냐’ 하는 것과는 별개이겠지만.

 

진짜 말하고 싶은 부분은, ‘아이유의 <제제>가 섹슈얼한 코드를 사용해 조제의 <제제>를 원용함에 있어서 원작을 곡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확정했을 때 도대체 어떤 피해가 발생하였는가?’ 라고 묻고 있는 부분이다. ‘롤리타 콤플렉스’를 다룬 여타의 다른 작품들이 아동성범죄와 연관 짓는 유의미한 보고가 어디에도 없다고?

먼저, <제제>를 <은교>나 <롤리타>와 같은 여타의 다른 작품들과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보고 있는 듯한데, 명백히 다르다. 위 작품들은 ‘소아성애’란 자극적인 단어 하나로만 표현할 수 없는 삶의 총체적인 여러 모습들을 다룬 서사물이다. 인물, 사건, 배경과 서술 등의 여러 요소를 통해 그 총체성과 인간의 복잡한 내면 심리를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1과 같은 논리로 말하자면 삶의 ‘진실성’을 담고 있어 그 총체적 양상으로 인해 독자에게 어떤 미적 쾌감, 혹은 지적 쾌감, 혹은 윤리적 깨달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예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제>는 어떠한가? 반복되는 몇 마디 후렴구와 가사는 자극적인 ‘애매모호함’ 혹은 ‘예술인 척’하는 ‘상업성’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물’로서 집약된 하나의 총체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제제’를 그런 식으로 섣불리 차용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 ‘아이유’의 본질은 ‘아이돌여가수’이다. 철저하게 기획사의 시스템 아래서 ‘대중’들을 상대로 이윤을 취한다. ‘대중’들 중에서도 특히 ‘청소년들’을 상대하는 대한민국 탑여아이돌이기도 하며 청소년들에게 ‘아이돌’의 영향력은 지배적이다. 대중은 한낱 노래 가사에 발기하지 않는다고? 그 전제의 ‘대중’이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충분히 성숙하여 합리적인 사리판단을 내릴 수 있는 대중’일 것이다. 청소년기를 괜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할까? 성인들조차 제대로 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성숙한 인격을 ‘제대로’ 형성하려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또 그렇지 못한 성인들도 많은데 하물며 떨어지는 낙엽에도 울고 웃는 청소년기는 어떠할까? <제제>와 같이 교묘한 상업적인 노래가 학생들의 의식을, 그리고 무의식을 ‘윤리의식의 무감각’의 상태로 물들이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언어의 힘, 그리고 무의식의 엄청난 효과에 대한 연구,보고,책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수두룩하다.

아이유가 아니더라도 너무나도 자극적인 시대이다. 표현은 물론 자유이다. 책임 없는 자유에는 비난도 자유이다.

 

 

* 이 글 또한 하나의 시각, 의견으로 보아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어줄 지는 모르겠지만, ‘서울대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지식인’의 의견을 대표하는 양, 이 또한 무의식의 영역에서 청소년들에게 미칠 영향을 염려한 사람이 급히 써 올리는 글입니다. 급히 쓰느라 혹시 문맥에 안맞거나 논리상 생략된 부분이 있더라도 양해부탁드립니다. 난생처음 인터넷 공개된 공간에 글을 다 올려보네요. 그만큼이나 안타까운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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