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을 만났고 하루 아침에 헤어졌습니다. 사소한 말다툼이 냉전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이별 수순을 밟았죠. 보이지 않게 서로 참고 쌓였던 감정이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어 터져나온 거라는 걸 이제 알겠어요.
처음 봤습니다, 나한테 냉정한 그 사람의 모습을요.
냉전기를 마무리하고 싶어서 서로 만났지만, 그 일주일을 사이에 두고 달라졌더군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서 이 사람의 마음이 변했고 나와 끝났다는 것이 실감이 났어요.
그래서 저도 헤어지는 데 동의했습니다. 어찌본다면 예의바르게 이별해준 게 고마울 정도로 순탄한 이별과정을 거쳤어요.
헤어지고 난 뒤 일주일 정도는 제가 집에도 찾아가고 연락도 했습니다. 그 사람 만났던 정이 있는 만큼 신사적으로 받아줬어요. 저도 그 사람이 참 착하고 바른 사람인 걸 알고 있었고, 그 사람 또한 제 성향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정리되는 과정이라 이해해줬습니다.
헤어지고 한달이 되기 전 제가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면 새롭게 시작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연락했어요. 그 사람 며칠을 고민하더니 그렇게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 한달 동안 저는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울고 술 마시고 울고 술 마시고 이런 생활을 반복했었고요.
내가 매달릴 수록 단호한 모습으로 우린 아니라고 끝이라고 말해주는 그 사람을 보면서 조금씩 정신이 들었어요. 해볼 수 있을 때까지 해보라는 건 미련이 그만큼 삭감되기 때문이겠죠. 저는 그 사람의 단호함을 보면서 점점 더 마음을 추스렀던 것 같아요. 어찌보면 그 남자도 많이 힘든 상황인데 절 위해서 그렇게 해준다는 것도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이제 이별한지 삼개월째입니다. 한달 동안 바닥을 쳤더니 올라오는 일 밖에 없더라고요.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고 눈물이 멎으면서 일상생활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고, 주말에도 개인적인 일로 몸을 바쁘게 했더니 어느새 자존감과 자신감이 향상되었습니다.
이제야 이성적인 판단이 조금씩 들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연애 시절의 내 모습이 보입니다.
연애시절의 저는 행복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안에서 저는 늘 조급했고 불안했습니다. 그 불안정한 상태가 그 이전에는 없었던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했어요. 충동구매를 조절하지 못해서 사지 못하면 미칠 것 같기도 하고, 큰 돈을 쓰는 건 아니지만 하루에 하나씩 핸드폰 케이스를 구매하기도 했어요. 카카오톡 테마도 미친듯이 바꿨고요. 어딘가 부적절한 상태였던 거죠.
그런 행동들이 그 남자와 이별하면서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요. 신경도 쓰이지 않습니다. 마음은 공허하고 아픈데, 마음 한구석은 참 편안하게 느껴져요.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떠안고 가야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저는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그 남자가 나빴다거나 저를 힘들게 해서가 아니었어요. 제가 그 남자한테 맞추기 위해 맞지 않는 노력을 해서 그렇게 되었던 걸 압니다. 자기한테 맞는 옷을 입어야 빛나보이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야 삶이 윤택해지는 거겠죠.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명품옷이 아무리 좋아도 어울리지 않으면 가치를 발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더 좋은 여자를 만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와 만나고 좋게 변화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고, 원망은 조금도 하지 않아요. 다만 헤어지고 난 후 제가 울면서 부디 저와 그 사람이 인연이기를, 그래서 다시 꼭 재회하기를 바랬던 기도만큼은 아직 유효합니다. 모순되지만, 마음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요. 미움과 사랑이 공존하는 만큼 이성적 판단과 감정적인 그리움이 여전히 뒤섞여 있어요.
내가 좋은 사람이 된다면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 사람과 제가 인연이라 만약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그때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죠. 그걸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에 동기부여는 되네요.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죠. 그리고 사랑했던 만큼은 꼭 아파야 그 시기가 지나가는 것 같아요. 여전히 마음이 저리고 그리워요. 눈물이 이전만큼 나지 않지만 얼굴 이면에는 울상을 짓고 있는 제가 보입니다.
헤어지고 눈물이 나는 이유는 그 사람과 행복하게 웃었던 시간들이 있어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꼭 울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울지 않으면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마음에 묻혀 한이 되어버리고 마니까요.
헤어진 뒤 저는 그 사람이 없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무서웠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지 못해 두려웠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연애하는 동안 내가 나를 잃었기 때문인 게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연애도 감기와 같아서, 연애하는 동안 좋고 달달한 마음에 취약해져버려서 이별한 뒤 몸살을 앓듯이 앓아야만 다시 튼튼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이별한 뒤 헤다판을 보면서 위안도 얻고 공감도 하고 하소연도 하면서 마음을 달랬어요. 현실적으로 친구들한테 말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고, 어느 순간에는 징징거리는 사람처럼 보여서 하소연도 할 수 없었거든요.
괜찮다고 말해도 그 순간만 버틸 수 있을만큼 괜찮은 게 헤어진 후더라고요. 아마 다른 누군가 생기기 전까지, 아니면 내 자신이 온전해지기 전까지 헤어지는 중인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저에게 집중하면서 그냥 지금 이 모든 순간이 저라고 생각해요. 아주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벗어서 가볍게 만들자, 이렇게 감정을 정리하고 있어요. 그 사람의 이름을 지워가면서 앞만 보고 가야하는 거겠죠.
이별하신 모든 분들의 심정을 이제야 제가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아마 그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수도 있겠죠. 저를 보다 성숙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저는 고마운 마음을 갖기로 했습니다. 이 남자와 헤어진 건 마음 아프지만 잃는 게 있는만큼 얻는 것도 많았으니까요.
기운이 나지 않을 때는 기운 안내려고 해요 저는. 바닥을 쳐야 올라갈 수 있잖아요. 아플 땐 실컷 아파해야만 그 아픔에 미련두지 않고 떨쳐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맞네요.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충분히 아파하지 않으면 시간은 약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해지는 게 마음을 회복하는 최선의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긴 글이 되어버렸지만, 이건 제가 저를 위해 쓰는 글이기도 해요. 저도 이렇게 해소하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니까요.
살아있으니까 살아지네요. 헤어지고 나서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순간, 딱 한 달만 더 버텨보고, 두 달까지만 참아보고, 그래도 죽고 싶으면 죽자! 고 스스로를 달랬는데, 이젠 죽고 싶은 생각 따윈 전혀 안들어요. 이젠 그냥 열심히 살아서 행복해지고 싶어요.
혼자라는 사실은 조금 공허해요. 그러나 내가 튼튼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을 만나도 저는 이전에 불안정했던 모습을 다시 갖게 되겠죠. 저는 튼튼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연애도, 앞으로의 미래에도 제 모습이 밝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내가 만족한 사람이 되면 저와 어울리는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죠.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잖아요.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 본다고 저는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