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안고사는 트라우마에 대해서 털어놓고 싶은게 있어요.
저와 같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제가 지금 자다가도 생각나는 이 치욕과 원망을 어떻게 해야 다스릴 수 있을지 답해줘요
좀 주저리주저리 하더라도 그냥 쓸게요.
저는 중학생 때 어딘가 보통은 아닌 아이였습니다. 그 나이 또래에 여성스러움이 없었고 멋부릴줄도 몰랐고 그 흔한 입술 틴트 하나 바르는 것도 묘한 죄책감에 시달렸던, 어쩌면 화장에 익숙했던 흔히 노는 아이들에겐 이상하게 보였던 아이였습니다. 처음엔 친구들과 잘 지냈죠. 그 반에서 주가 되는 무리에서 웃고 떠들고 그랬습니다. 저와 절친이 되고 싶다며 다가오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여자아이들 사이에선 베프가 최고의 칭찬인 것 마냥 서로가 미숙했던 나이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는 아무리 장난쳐도 화를 내지 않는 성격 좋은 아이에서 호구, 아무리 괴롭혀도 울지도 않고 웃는 아이, 괴롭혀도 되는 아이로 전락해 갔습니다.
어느새 반 내에서 제 위치는 불쌍한 애, 왕따는 아닌데 그렇다고 친구는 아닌, 그 무리 내에서 놀림받는 아이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당시 8명 정도 되었던 무리에서 말이죠. 처음 득세를 해서 놀린 아이는 A양이었습니다. 바가지머리에, 목소리가 높아 쟁쟁하게 울렸던 태평소 같은 아이였죠. 그 아이는 흔히 일진들과 친한, 좀 유치한 단어지만 2진정도 되는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인 B양이 등장합니다. B양은 제가 다 억울하게도 공부는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자기 몫은 욕심 내서 다 챙기는 현실적이고 절대 손해 안보는 타입이었죠. 처음엔 그 아이와 사이가 괜찮았어요. 어느 순간 그 아이가 저를 업신여기기 시작한 건. 제가 외모를 꾸미지 못했던 그 순간부터였을 겁니다. A양이 저에게 심한 장난을 치기 시작한 후로 B양은 덩달아 저를 괴롭히는 장난에 가세했습니다. 우습게도 야생의 힘의 논리처럼 사자가 득세하니 그 밑 하이에나가 득세하고 하이에나가 득세하니 그 밑의 사슴까지 덩달아 기고만장해지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2진 A양, 그 밑의 반쯤 모범생인 B양, 그리고 공부도 못하고 일진도 아니었지만 저를 우습게 보기 시작한 C양.
C양은 참 기억에 남는 게 얘는 정말 어떤 계기도, 구실도 없었는데 나를 깔아뭉갬으로서 자기가 우위에 있다는 걸 체감하고 싶어하는 아주 악질적인 애였다. 친오빠와 성관계 했다는 아주 굴욕적인 소문도 얘가 냈다. 장난을 가장해 내게 물수건를 휘둘러 머리에 맞추고도 똑같이 갚아주니 죽일 듯 노려보며 B양과 A양을 옆에 끼고 한적한 곳으로 나를 불러내 싸움을 걸기도 했다. 다행히 이 C양은 머리가 나쁜지 말빨이 딸려 결국 역관광으로 내가 그애를 울린 격이 되었지만 아무튼 심보가 고약하다는 게 너무 절절히 느껴졌다. 당한 일이 A양과 B양에 비해 엄청 많았다. 악연이라면 악연인 이 C양은 얼굴이 여드름 투성이에 광대가 두툼했고 언니가 아주 예뻐서 자신의 못생김이 두드러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정말 그랬다. 내가 얘를 굳이 못생겼다고 기억하는 건 C양에게서 받은 괴롭힘이 가장 악질적이었고, 그 애의 마음이 가장 추했기 때문이다.
A양과 B양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소문도 안 냈고 가끔 과한 장난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 뿐이었지만 C양은, 이상한 피해망상을 하는 건지 내가 자기를 우습게 보고 괴롭힌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아니, 어차피 못된 년들 등급 나눠서 뭐하나 싶기도 하지만 B양이 가장 두려웠고 C양이 가장 증오스러웠다. 막상 시발점은 제공했지만 그 이후로 크게 손쓰지 않은 A양보다도 이 둘이 가증스러운 건, 타인을 내리찍으면서 자존감을 채우려는 그 아둥바둥하는 모습이 가엽고도 징그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얼굴도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고 일진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이렇게 써도 봐줘요. 난 정말 많은 치욕들을 당했어요.)
C양은 지금 소식을 모른다. 간절히 찾아서 이 오랜 증오의 끝을 맺고싶은데 이름이 촌스럽다며 개명한 후엔 이름이 흔해져서 찾지도 못하겠네요. 불행히도 2학년은 같은 반, 3학년은 옆 반이 되었던 C양. C양은 2학년 때 겉돌았다. 사자와 하이에나였던 A양과 B양이 없어지니 사슴이 된 것이었다. 그리곤 또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내가 자신의 뒷담을 까고 다닌다는 피해망상. 또 여기엔 아주 엿 같은 D양이 튀어나온다. 말이 길어지니 끊겠지만 이 D양 덕분에 학생부 체험을 하고 새로 사귀었던 정말 좋은 친구들과 연이 끊길 뻔 했다. C양의 피해망상과 D양의 유언비어 덕분에 나는 왕따 가해자가 되어 담임선생님과 면담까지 해봤다. 나름 모범생이었던 내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 중학교 때 인간관계는 언제나 끝이 그랬다. 나를 절친으로 삼고 싶다며 다가온 아이들과 뒷담과 소문에 파묻혀 배신당하는 결말. 그리고 그 소문의 시작은, 그 악순환의 시작은 C양이었다.
김나현? 아마 그렇게 이름을 개명했을 것이다. 지금은 연락이라도 하고 싶다. 그땐 왜 그랬냐고. 넌 왜 그렇게까지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느냐고.
저의 중학교 1학년은 그렇게 유사 왕따체험으로 끝났습니다. 말을 걸어주고 밥도 같이 먹고 놀러다니는 친구들은 있었지만 그 세명 덕분에 저는 그들보다 반 단계 아래에 있는, 그런 쉬운 아이였습니다.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는 상세하게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들은 ‘장난’이라는 명목하에 그런 일들을 저질렀고 저는 ‘장난’ 이라며 웃어넘겼습니다. 지금 보면 바보같지만 소문을 듣고 1대 1 면담을 해오신 선생님께 절대 저는 왕따가 아니고 괴롭힘도 아니며 장난이라며 웃어넘겼습니다. ㅎㅎ. 제가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고 했을 때 제발 저려서 달려온 네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내가 웃으면서 절대 괴롭힘 당한 적 없다고 말했다고 했을 때 네 표정, 거기엔 한 치의 죄책감도 없이 네 그 잘난 학생부가 깨끗하다는 거에 대한 안도감만 가득했지.
그리고 저는 그 아이보단 못했지만 공부를 안 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과학고, 외고 급은 아니었지만 도내에서 손꼽히는 명문고에 진학했는데 최악이라면 그 아이와 같은 학교가 된 것이죠. 중 2 이후로 저는 지옥 같은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새로운 친구들은 사귀었으나 어딘가 지나치게 밝은 아이가 되었죠. 성격자체가 변한 거에요. 겉으로 티 안 나게 굉장히 소심해진 것도 한 몫 했죠. 인간관계가 무서웠습니다. C양도, B양도, 처음엔 저와 정말 친했으니까요. 오히려 그쪽에서 제가 좋다며 다가왔었죠.
그리고 B양은, 저를 괴롭혔다는 자각이 없는 것인지 고등학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동창이라며 제게 인사를 건네왔습니다. 끔찍했죠. 그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어요. 제게 B양은 너무 큰 트라우마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악랄하고 비열했던 C양보다, 처음 시발점이 되었던 A양보다 더 B양이 증오스러운 것은 그 아무렇지도 않았던 B양의 얼굴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이라도 묻고 싶었습니다. 대체 왜 그랬어? 넌 왜 나한테. 지금도 왜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그래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문과인 그 아이를 피하다시피 이과를 선택하고 저는 꽤 괜찮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도 제게 극복되지 않는 트라우마 입니다. 친구와 트러블이 생기면 아직도 제 잘못이 없는데도 무조건 숙이고 들어가죠. 중1 때 그랬거든요. 혼자가 될 까봐, 나를 완전히 왕따시킬 까봐, 괴롭히는 장난이 더 심해질 까봐. 그리고 그 어두운 트라우마를 감추려고 저는 오늘도 더 밝게 한 톤 더 밝게 웃고 떠듭니다.
B양, C양이 이 글을 본다면 저를 기억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B양은 중1학년 복도의, 그 저열한 무지 속에 사는 거겠죠. B양, 일진이 되고 싶다던 B양, 나를 깔아뭉개는 것으로 자존감을 꼬박꼬박 채우던 B양. C양, 언니가 예뻤고 넌 못생겼다고 말하던 C양, 이름까지 바꾼 C양. 잘 지내? 난 아직도 너희들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악몽이야. 너희가 부디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너희는 이렇게도 한 사람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노라고. 너희가 내가 당한 것만큼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 안 해. B양, 넌 영리하고 주변은 언제나 네 편이어서 뒤에서 욕을 한 아이들은 많았어도 네 앞에서 욕을 한 아이는 없었지. C양, 그때의 넌 나를 괴롭혔지만 너무나 치졸하고 어리석고 생각이 짧은 게 바로 눈에 보여서 가여울 정도였다. 세 명이서 나를 몰아세웠던 급식소 옆의 벤치에서도 네가 전혀 무섭지 않았어. 심보는 고약한 게 머리는 나빠 말 빨이 딸려서 되려 울음을 터뜨렸던 네가. 신기하게도 우습고 하찮기만 했지. 네가 증오스럽기만 할 뿐 두렵진 않다. 그냥 네가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넌 깨끗하지 않은 아이라는 걸, 그러니 다시는 복도에서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환하게 웃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는 지금은 잘 지냅니다. 꽤 좋은 대학도 다니고 있고 전액 장학금에 지원도 엄청 빵빵하게 돈 걱정 없이 말이에요. 그래도 인간관계는 깊이 유지 못하겠습니다. 언제 제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깊이 박혀있네요.
저는 정말 B양과 C양을 찾고싶어요. 그런데 그 둘을 찾으려면 저도 드러나야하고 이제야 안정된 제 생활이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제 만나야 무엇하나 싶어요. 중학교를 졸업한지 벌써 5년 남짓이니까요. 그래도 지울 수 없는게.
B양은 그저 죄책감이 없던 그 표정에 대한 화만 미지근히 남아있지만 제 중학교 학교생활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C양 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제 가슴 한 구석에서 까맣게 타고 있어요. 그만 털어내고 싶어도, 당한 것들이, 그 치욕스러움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찾아낸다면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용서라는게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