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집 왔을때
그는 이미 미국으로 들어 간지 20년이 지난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을 싫어 하고,
백인 친구랑 놀며,
전문직을 가져 수입이 높아 백인 지역에 산다 한다.
아주 가끔 한국에 나와서
성공한 사람의 대접을 받으며
온 시집 식구들이 떠받들어 모셨다.
그는 젊은 날을 미국식으로 살았고
한국의 어른들에게 어른 대접을 하지 않고 편히 젊은 날을 보낸 사람이다.
한국의 아랫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이제 그도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요새 부쩍 한국에 자주 나오고
전화도 자주 한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 사극을 자주 본다 한다.
아직 한국이 유교의 지배하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 한다.
한국의 유교학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지만
조선후기의 시대상을 아랫사람에게 요구하지는 아니 할 것이다.
그는 철저한 한국의 어른으로 변해 가고 있다.
한국에서만 살고 있는 노인네 보다 더 완고한 어른이다.
얼마나 어른 노릇을 받고 싶어 하는지
그앞에서 실수 할까 걱정이 되어
전화가 오면 나는 얼어 버린다.
미국에 사는 어떤 조카는 카드에 dear란 단어를 썼다고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나는 모르겠다.
젊어서 미국식으로 산 사람이
왜 나이가 드니 한국식으로 살고 싶은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