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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여자, 뭐하고 지내려나.

이별2개월 |2016.03.23 21:45
조회 11,750 |추천 16

나는 그녀와 사귀지 않았을 때도 생면부지 처음 본 그녀가 걱정이 됐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위태위태해 보이는 여자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저 누나는 왜 이렇게 불안해 보이고, 조심스럽고, 남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지?’

솔직히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20대에 언제나 자신감 넘치던 나,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가냘프고 약해보이기만 했기에,

어느 순간 이 여자, 내가 꼭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녀가 외로움을 많이 탈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무렵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한동안 나름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것 같지만,

얼마 후 실패했다는 소식을 직접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위로를 해주려고 했다.

나는 이성과의 대화가 익숙하지 않았고, 나 자신의 감정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것 또한 익숙하지 않기에.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표현하기가 무서워, 간략하게나마 위로의 말 몇 마디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 그녀에게서 자기가 좋아한 남자가 ‘너 같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말을 들었고,

나는 단순해서 그럼 차라리 나는 어떻겠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난 바보였다.

그 순간 그녀가 나와 사귀게 된 것이 정말 내가 좋아서였을까? 그녀는 그저 외로움의 킬러 역할을 해줄 대상이 필요 했을 뿐, 정말로 나라는 사람이 좋아서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에 힘들어 하는 사람한테 구애하는 것, 지금은 누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말리고 싶다.

물론 그렇게 해서 오랜 기간 사랑하고 결혼할 수도 있지만,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할 때 그러는 건 그다지 좋은 행동이 아닌 것 같다.

 

25살의 봄, 그렇게 연애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복사본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 그렇기에 나는 원본이 되고 싶었다.

복사본이라도 중요한 내용을 직접 기록하면 그것은 원본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연애했다.

나 자신의 한계가 느껴질 정도로 내 몸을 혹사시켜가며, 피로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날이었지만, 나의 마음은 복사본이 아닌 원본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언제나 활기찼다.

 

어느덧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3년이 지난 후의 나는, 처음 내가 생각한 원본이 아니었다.

복사본에 빼곡이 무언가가 적혀있고,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 부분 부분 묻은 얼룩, 네 귀퉁이가 뾰족하지 않고 닳아서 뭉툭해진 보잘 것 없는 A4용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날 떠났다.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헤어진 마당에도 나보다 그녀가 더 걱정이 됐다.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나이기에, 앞으로의 인생이 너무나 걱정이 됐다.

 

그녀가 떠나고 나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다시 날이 선 모습으로, 자신감 넘치던 그 모습으로...

 

이제는 그녀가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진짜 사랑을 시작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추천수16
반대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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