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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얘기 좀 들어줘

ㅇㅇ |2016.05.24 00:00
조회 159,194 |추천 964
어디서부터 잘 못된 건지 모르겠다어릴 때는 시설에서 날 돌봐주셨던 분이 내 엄마인 줄 알았거든근데 사실 나는 고아였고 엄마인 줄 알았던 그 분은 시설 운영자셨고 한번 파양 후 현재 집으로 입양이 됐어엄마도 바꼈고 집도 바꼈고나랑 5살 차이나는 큰 누나,4살 차이 쌍둥이 누나,2살 차이 작은 누나도 생겼어집에서도 외가에서도 나 혼자 아들이다보니주위에서 '드디어 아들을 보네,아들이 생겼네' 하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었고엄마도 누나들을 부를 땐 이름을 불렀지만, 나한테는 '아들' 하고 불렀어
나는 이 집에 아들로써 왔고 내게 아들로써 바라는 환상도 기대도 많았어엄마는 "남자아이를 키우는 법" "아들과 친해지는 방법" 같은 내용의 책을 수시로 읽으셨고 나한테 관심을 많이 가지셨어그러니까 나도 부모님이 아들에게 바랐던 모든 기대사항들을 내가 다 만족시켜 드리고 싶었어또 버려지기 싫어서 엄마아빠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그대로 행동하려고 했어그랬더니 부모님이 어딜 가든 나를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역시 아들이다, 아들은 다르다 남자는 다르다 그런 얘기 엄청 들었어나중에는 누나들이 엄마한테 왜 쟤만 아들이라고 대우해주냐고 따졌는데나는 오히려 그런 누나들이 부러웠어그럼 내가 딸 할테니까 나도 엄마가 직접 낳은 자식이었으면 좋겠다,누나들처럼 나도 엄마랑 저렇게 티격태격 하는 사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누나는 엄마가 항상 나한테는 상냥하게 대하고 자기는 막 대한다고 불평했는데내가 느끼기에 엄만 나한테 상냥하다기보다누나들과 달리 선을 지키고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아서 거리감이 느껴졌어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중학교때 사춘기가 심하게 왔을 때중2병인지 갑자기 너무 외롭고 '아들' 하는 소리도 듣기 싫고 그렇더라생각지도 않았던 친엄마가 누군지 궁금해지고 왠지 지금의 부모님은 내가 나여서 좋아하는게 아니라아들이라서 좋아하는 것 같고 집에도 들어가기 싫더라그러던 중에 한 친구를 만나면서 집에 가기 싫을 때 얘랑 놀이터에서 밤새 있다 가고,어떨 땐 걔네 집에서 자면서 친해지게 됐는데갈수록 얘가 너무 좋아지는 거야. 세상에서 얘가 제일 좋은 거야걔가 나한테 "이상하다,너는 남자인데 이상하게 너무 좋다" 라고 하는 말이그게 가슴에 팍 꽂혔어얘는 내가 남자라서 좋아하는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 당시엔 이걸 동성애의 문제로 생각하기 싫었어말하려고 하니까 길어서 쓰지 못 하겠지만중3때 만나서 고1 들어가기 직전까지 만나다가 엄마한테 사이를 들키게 됐고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많이 받았어엄마가 나인척 걔한테 이상한 문자를 보내고, 직접 만나봐야겠다고 하며 화를 내고그러면서 애초에 사귀지도 않았지만 정신차려보니 걔랑 나는 남보다 못 한 사이가 되어있었어그 때는 이미 같은 학교 같은 반에 있던 상태였어서결국에 내가 못 견디고 전학을 가고 싶어했는데그 학교가 우리 지역에서는 꽤 상위권인 학교여서갑자기 내가 전학가는 것에 대해 주위에서는 내신 때문에 도피한다고 생각하더라엄마아빠는 나보다도 주위 그런 반응이 신경쓰이지 않냐고 하면서 전학을 못 하게 하셨어
이 시기부터 엄마아빠랑 갈등이 생겼는데엄마아빠는 내가 게이라고 했고 나는 게이가 아니라고 했어솔직히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게이인지 아닌지 확답을 못 해나도 사실 은연중에 남자는 여자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걔한테 마음이 갔던 거야다른 여자애들은 당연히 남자를 좋아하니까 나를 좋아하게 되는 건데그 애는 내가 남자임에도 나를 좋아한다고 했던 말에 흔들린 거야
나는 이런 내 생각을 부모님께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는데 부모님은 나한테 이상한 말로 변명하지 말고, 니가 게이인 것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화를 냈어나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고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린건데 전혀 들으려고 하지를 않으셨어그 뒤로 나는 엄마아빠랑 대화를 끊었고엄마아빠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전과 달라졌어그러니까 이제 집에 들어가기가 더 싫더라원래라면 집에 가기 싫을 때 걔랑 같이 있으면 모두 다 잊고 좋았거든그런데 이젠 걔랑 같이 있는게 집에 있는 것만큼 힘들게 되니까 정말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우울함이 밀려오더라정말 우울함이 이렇게 파도처럼 밀려와서 나를 삼킨다는게 뭔지 느껴지더라나중에는 내 정신이 점점 이상해진다는 걸 느끼던 중에 학교에서 심리검사를 했어나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내 심정 그대로를 답했는데 자살고위험군으로 나왔고 그 결과가 집으로 갈지는 몰랐어어느 날 집에 갔는데 엄마가 결과 종이를 들고 이렇게 좋은 집에서 좋은 부모 두고 잘 사는 니가 뭐가 그렇게 우울하고 죽고 싶냐고 화를 내시더라이때까지 잘해왔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됐냐고 하시면서,니가 이러면 니를 데려온 엄마아빠는 뭐가 되냐고 하시는데그 말이 정말 비수같이 가슴에 박히더라엄마한테 살면서 이렇게 혼난 적도 처음인데엄마가 누나들을 혼낼 때 "너를 낳아서" 라고 말 했던 것들이 겹치면서 나는 단지 이 집에 입양된 아들일 뿐이라는 생각이 가득찼어
그리고 항상 누나들이 다치고 들어오면 조그마한 상처라도 호들갑 떠시며 물어보던 엄마아빠가내가 다치고 들어오면 원래 남자애들은 이렇게 크는 거라고 넘기셨던 것들이 그 당시 내 팔에 자해 흔적을 가리려고 붙인 데일밴드 여러개에 대해서도 전혀 신경쓰지 않으시는 모습까지 겹쳐지면서 내가 지금까지부모님 아들로 있던 감정에 박탈감이 생기더라
며칠 뒤 뒤늦게 내 상처를 알아보고는 엄청나게 화내시는데나에 대한 걱정보다는 내 자해 흔적들로 좋은 부모를 운운하며주위 사람들에게 엄마아빠가 어떤 부모로 비춰질지에 대해 먼저 걱정하는 그 모습에이 두 사람은 내가 더 이상 기댈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고 수긍했어엄마아빠를 포함해서 주위 사람들 모두 하는 말 항상"너는 잘생기고 머리 좋고 좋은 집에서 좋은 부모님 아래서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게 크고 있는 거라는" 말 그대로우리집은 좋은 집인데 좋은 부모 아래서 자해흔적이 있는, 동성애를 한, 자살위험있는 자식이 있으면 화낼만도 하지 그래
그 다음 날에 담임선생님이 내 심리검사 결과를 보고 나를 부르셔서그냥 장난으로 항목 체크한 거라고 거짓말 치고 넘겼어그런데 얼마 뒤에 하복을 입게 되면서 일이 그렇게 커질 줄 몰랐어팔에 붙인 데일밴드가 물에 젖고 떨어지니까 홧김에 그냥 떼버렸는데 친구들이 이거 칼로 그은 흔적 아니냐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고 마침 오는 담임선생님께 내 팔을 들이밀며 보여주는 바람에그 날 교무실에 불려가서 선생님이랑 상담을 하고 선생님이 부모님께 전화를 한거야. 진짜 최악으로집에 돌아가니까 야근이 일상이던 아빠가 정시퇴근을 해서 집에 와계셨고 손에 매를 들고 날 꿇어앉힌 채 '왜 그걸 선생님께 보였냐'가 첫마디였고 '니 친구들과 선생이 나랑 니엄마를 어떻게 생각할것 같냐' 는게 두번째 말이었어내가 어떤 이유로 손목을 그은 건지는 알려고 하지 않으시고 단지 아빠에게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남들이 보는 시선이더라그 뒤로 나는 부모님께 잘 보이자, 아들로써 기대감을 충족해드리자고 마음먹었던 어린 시절의 의욕은 다 사라졌고 자존감도 하락했어
내가 직접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나는 정말 사랑이 부족했어 집에 있는데도 외로웠어 거실에서 부모님과 누나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게 제일 마음이 무너졌어그나마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 때는 좋았었는데 이쯤부터는 학교 가는 것도 싫고 그냥 다 싫었어
집에 오면 방구석에 앉아 상처를 내고, 손목은 안 되니까 옷에 가려 안 보이는 곳에 상처를 냈는데죽으려고 긋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었어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그 때는 내가 정말 이상했고 내 손으로 하면서도내 몸에 직접 상처를 내고 있다는 그 순간들이 너무 속상했어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 자의로 상처내면서 그걸 멈추지 못 해서 우는 내가 너무 불쌍하고 싫었어그런데 그런 후회도 그 순간 뿐이지칼이 없을 땐 손톱으로 쥐어뜯었어 피는 안 났지만 살이 부어 오를 정도로 손톱마저 없을 땐 주먹을 벽에 내리쳤어그러고 나면 주먹 쥐었을 때 튀어나오는 뼈 네 개에 다 멍이 들어서 며칠 동안 멍을 달고 다녔어그렇게 미친 짓을 하고 나면 나중엔 진이 다 빠져서 내 상황을 수긍해버리고 무덤덤해진단 말이야
그 상태로 밖에 나오면 부모님을 마주쳐도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행동했어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쓰다 보니 점점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다. 그래한창 내가 좋아했던 그 애랑 만나고 있는 걸 들켰을 때, 엄마는 '걔는 널 진정으로 좋아하는게 아니다, 그 선생님은 너가 진정으로 잘 되길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그런 말을 마구 쏟아부으면서 자존감 다 없애 놓고 남아있는 자존감이 있다면 어디 니 몸을 좀 사랑해봐라 이런식이었어어느 날 새벽에 엄마아빠의 대화내용을 잠결에 들었는데그래도 니가 데려온 아들이라고. 데려왔는데 어쩔거냐고 얘기하시더라
그 당시 내가 자해하고 우울함 속에 있을 때 당연히 공부도 손에 안 잡혔기 때문에 성적이 바닥을 치고 있었는데그 때가 1학기 기말고사 대충 전교 300명 중에 200등이였어엄마가 남들이 니 성적 보면서 비웃을 거라고, 무슨 자신감으로 학교 다니냐고 하면서그 애 때문에 그러냐고(니가 동성애에 빠진 후로 이상해진거라고), 엄마가 뭘 잘 못 했냐,엄마가 널 왜 입양했겠냐고 그런 소리하는게 싫어서이 악물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내가 지금까지 벽에 손 찍고 칼로 긋고 하던 걸 공부로 돌려서이대로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했다간 죽고 싶을거라는 생각이 들만큼 조금이라도 더 몸을 혹사시키려는 마음으로 공부했어그렇게 2학기 중간고사 때 전교권에 드는데 성공하니까엄마가 다시 전처럼 나를 대하더라나는 더 이상 엄마아빠랑 대화를 하고 싶지가 않아서 이제 엄마가 뭐라고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도 대꾸없이 그냥 가만히 있었으니까점점 중3~고1 1학기때까지 있었던 일들은 묻혀졌고 겉으로만 보면 아무 문제없는 집안으로 돌아왔어엄마아빠가 나를 대하는 태도도 그 전이랑 똑같아그런데 나는 아직 그 때 일들에서 헤어나오지 못 해서 과거에 갇혀있는 기분이야
그 때 자해방법을 공부로 돌리면서공부하는 과정에만 내 자신을 학대하는게 아니라 그 결과에도 집착하게 돼서어느 순간 성적이 기대치보다 못 나오면 내 자신에게 엄청난 배신감이 들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그래이제는 성적을 볼 때마다 성적이 낮을 까봐 무서운게 아니라 내가 또 나에게 시비걸고 상처 주진 않을까 그래서 무서워
내가 나스스로를 통제하지 못 하는 것 같으니까 미치겠어 남들은 다 건강하게 잘 사는데 나만 이렇게 끙끙대는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과거에 묶여있는 내가 한심해서 화가나나도 이제는 내가 왜 우울한지 감이 안 잡혀서 모르겠어 지금은 좋은 친구들도 있고 그 애 봐도 무덤덤하고 다 괜찮아그런데 우울함이 사라지지가 않아 마음만 과거에 갇혀있는 것 같아나 혼자 생각하면 끝도 없이 우울해서 누군가한테 털어놓고 싶은데혹시 얘기하게 되면 내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지. 내가 잘못했다고 날 깎아내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에 결국 아무한테도 말 못 했어
누가 나 좀 안아주고 그랬으면 좋겠다이젠 이유도 없는데 그냥 힘들어근데 나 뿐만 아니라 다들 힘드니까 기대는 것도 미안해 모르겠다 진짜
이 곳에라도 내 얘기를 털어놓고 가면서너무 줏대없이 길어서 아무도 읽지 않을 수도 있지만댓글이 있더라도 볼 용기가 있을지 모르겠다
추천수964
반대수21
베플ㅇㅇ|2016.05.24 00:28
한번은 흝어보고 또 한번은 글을 천천히 읽어내렸는데 몇번을 읽어도 상처가 깊게 느껴져서 토닥여주고 싶어.. 그 시간들을 의지할 사람 없이 견뎌내왔고, 살짝 위태롭지만서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이렇게 있어줘서 고마워. 사람마다 힘든 점은 분명히 있고 이렇게 말로 해서 마음에 뭉친 게 조금이라도 덜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적어도 나는 네가 잘못한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 잘못한게 아닌거 같은데 잘못했다 여겨지고 받아야했을 상처를 생각하니 내가 속상하다.. 꽤 오랫동안 버텨왔단 걸 글을 읽고 아니까 혹시 내 말이 상처가 되진 않을까 조심스러워져ㅜㅜ 댓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너에게 상처되는 말이 있다면 바로 사과할게. 지금이 나에게는 무기력하고 조금 힘든 시기들 중 하나를 겪고 있는 중이라 충분히 위로해주지 못해 미안해... 나는 평소에 힘든 날들이 있었다면 분명 좋은 날들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날 좋은 날들이 너에게 지어질 수 있기를 바랄게:) 이렇게 글 남겨서 얘기 듣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너도 남의 이야기를 듣고 충분히 위로할 수 있는, 편안하고 여유있는 날을 맞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이 너무 오글거렸다면 미안해:D
베플ㅇㅇ|2016.05.24 00:09
근데 글 잘 쓴다..왠지 몰입해서 읽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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