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양반들 많이 살았다는 경상도 유명한 동네 (라고 쓰고 남존여비 엄~청 심한 동네라고 읽음.ㅎㅎ) 2남 3녀중 장남. 그런데 자식은 마흔에 겨우 건진 딸하나가 달랑 ->쓰니임 (요즘도 가끔 엄마랑 싸우시면 본인은 자식이 없다고 하심. ㅎㅎ )작은 아버지는 아들 둘 그것도 나보다 다 오빠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할머니 돌아가시기전까지 아들 없다며 할머니를 비롯한 친가 친척들에게 무시당하고 사심. 거기다 쓰니 4~5세경 집안 사업이 망했고 그 이후로 가난했으니 더 무시 당하셨고 오로지 맏이의 도리만을 강요받고 사심. 우리가 할머니 모시고 살고, 편찮으시면 고모년들이 병원 모시고가 1인실 입원 시켜 놓으면 우리 부모님 아니 우리 엄마가 번돈으로 모두 지불 ㅎㅎㅎ 나 대학교 2~3학년 정도까지 그러고 살았음. (작은 아버지네는 아들 있다고 망하는 와중에도 아파트 한채 정도 받음. 그러나 다 말라드심, 가난해도 화장품 쓸거 다쓰고, 고기 먹고 그리 살았음.)
작은 아버지는 아들이 둘인데 그중 큰 아들인 오빠 1에게 엄청 기대를 하였으나 부모 머리가 그렇다보니 오빠 1은 착하긴 하지만 머리가 나쁨. 둘째 오빠는 그와중에 공부를 좀 잘함. 수재 정도까지는 아니고 상위권이었음. 그래서 작은 아버지 부부는 이 오빠 2에게 몰빵함. 오빠 1은 개무시 당하면서 자람. 그렇데 떠받들어서인지 오빠 2는지밖에 모름. 학교도 외고를 가긴 했는데 공부를 게을리 하여 지방 국립대 영문과감. (당시에는 지방 국립대 나름 잘나갔음. 요즘 sky를 제외한 인서울 크게 안부러울 정도...) 하지만 가서 놀아주심. 3살 어린 내가 봤을때도 가난한집 아들이 뭐 믿고 저러나 싶을 정도로...난 딸이니까 이때까지도 쩌리 취급. ㅋㅋㅋ
그렇게 겨우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동기인지 후배인지 만나 결혼함. 해준거 거의 없는것으로 알고 있음. 그리고 일본에 직장 구해 떠남. 나 그때 제주도 파견 근무 나가있을때인데 아부지가 오라고 하여서 바쁜 와중에 일부러 비행기타고 와서 참석함. 축의금도 10 만원함.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내 결혼식. 당연히 안옴.ㅎㅎ 축의금 20만원 함.(나보다 많이 했다고? 난 오빠 결혼당시 미혼에, 동생에다 우리 부모님은 100만원함. 즉 우리 집에서 간돈 110만원- 엄마랑 나랑 생활비 반반 대던 시절임, 아부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 안하심. 받은 돈은 작은 아버지 50만원에 오빠2 20만원, 오빠1 10만원. 그런데 우리집에서는 오빠1 결혼 할때는 부모님 100, 나 20 했다는거. 즉 230: 80)뭐 사촌 동생 결혼식 안 올 수 있음.
또 시간이 흘러 오빠 1 결혼 (친형 결혼식) -> 안옴.
친할머니 돌아가심 -> 안옴. 난 하찮은 손녀이지만 우리 부모님의 대표선수라는 생각에 3일내내 빈소 지킴. 장지는 출근때문에 못따라감. 여기까지는 봐줄 수 있음.
그러던중 작은 아버지가 암에 걸림.
그보다 1년전 우리 아버지가 같은 암에 걸리셔서 수술 받으신터라 아무리 감정이 안좋았던 작은 아버지라도 불쌍함. 더군다나 우리 아버지는 건강검진 해마다 받으셔서 초기, 작은 아버지는 증상 생기고 진단 받으셔서 중기에서 말기 사이...
그래서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모시고 옴. 난 이미 쩌리가 아님.교수님들 직접 찾아뵙고 부탁 드림. 그래서인지 검사도, 수술도 빨리 할 수 있었음. 검사의 경우 취소된 자리에 밀어넣기, 혹은 정규 검사 시작전에 20~30분 먼저 오셔서 해주시기 등등의 신공이 펼쳐짐. 수술 역시 취소되는 자리에 밀어넣음. 이렇게 배려를 받았기에 수술후에 도움 받은곳 다 찾아가서 교수님들껜 큰거는 못해도 와인이나 고기 같은거 선물로 드리고, 수고한 다른 직원들에게도 피자같은 간식거리 배달시켜줌. 이러느라 돈백 넘게썼음. 또한 나중에 나도 그들이 어려운일 생기면 똑같이 해줘야 하는 빚이 생긴거임. 아버지는 사랑하는 동생인데 병원비라도 좀 챙겨줬음 하는 눈치셨음. 쓰니는 빡침. ㅎㅎ내가 수술 빨리 받을 수 있게 하느라 얼마나 애쓴지 아냐고! 부탁하고 다니느라 쓴 시간과 노력이 얼마고 쓴 돈이 얼만데! 하고 아부지께 빽함. 아부지 깜짝 놀라심. 그길로 병원 가셔서 내가 애쓴거 친가 식구들에게 말함. (하지만 이미 훨씬전부터 난 친척들의 콜센터였음. ㅜ.ㅜ )엄청 고마워함.
그런데 입원하고 수술하는 동안 오빠 2는 안옴. 그러다가 1개월쯤 지나서 한국에 옴. 장인어른 생신이라 겸사 겸사 왔다함. 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고는 나 돈쓴거 어쩌냐며 봉투하나 들고 고맙다고 우리집 찾아옴. 그것도 혼자^^ 난 우리 부모님도 뵐겸 부부랑 아이들까지 함께 올 줄 알았음. (결혼식 한 이후 10년넘게 한번도 만난적이 없기에) 어차피 그정도는 쓸 돈이었고, 작은 아버지는 일도 그만 두시고 해서 형편도 어려우실것 같아 안 받고 작은 아버지 드리라며 돌려 보냄.
얼마후 아버지께 전해 들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봉투 안드리고 갔다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른들은 그 새언니를 더 많이 욕하지만 난 생각이 다름. 그냥 똑같은 사람이 만난거임. 잘 어울리는 커플임. 앞으로도 예쁜 사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