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은 조선 중기부터 형성됐으며 평양장, 강경장 등과 함께 조선 시대 전국 3대 시장의 하나로 꼽혔다. 시장이 근대적인 면모를 갖추고 공설시장으로 개설 허가를 받은 것은 1922년이다.
서문시장은 1·2·4·5지구와 동산상가, 건어물상가 등 6개 지구로 구성돼 있고 총 점포 수는 4천여 개, 상인 수는 2만여 명에 이른다.
불이 난 4지구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839개 상점이 있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이곳을 찾아 영남권 민심을 잡기 위한 ‘구애전’을 벌이기도 한다.
서문시장에선 그동안 크고 작은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
서문시장 화재의 역사를 정리했다.
■ 1951년10월 21일
점포를 운영하던 박 모씨의 가게에서 불이 나 서문시장 내 점포 수천동이 불에 탔다. 이 화재로 약 14억7천5백만원의 피해가 났다.
■ 1952년2월 24일
양초가 넘어져 발생한 화재로 일대 점포가 폐허가 됐다. 불은 순식간에 번져 겉잡을 수 없이 점포를 집어삼켰다.
■ 1952년12월 26일
점포를 운영하는 정 모씨의 화롯불에서 불이 번졌다. 현재가치로 수억원의 피해액을 낸 후 불길이 잡혔다.
■ 1960년2월 5일
서문시장 내 이 모씨의 과자점서 불이 나 인근 점포 30여개가 전소했다.
■ 1960년6월 16일
박 모씨의 모자점에서 인화물질이 화로에 떨어져 큰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4명의 경상자가 발생했고 서문시장 상가가 전소했다.
■ 1961년2월 15일
서문시장 경비원이 창고에 피워놓은 숯불에서 불이 옮겨붙어 화재가 발생했다. 그 불로 2층건물과 상품창고 1개동, 과자점포 35개가 잿더미로 변했다.
■ 1964년12월 9일
서문시장 내 ㄱ상회와 ㄴ양장점에서 불이 시작돼 41개점포 건물을 전소시키고 2시간만에 진화됐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18가구 8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 1967년1월 1일
전선 마찰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점포 3백여개를 집어삼킨 화마는 2시간만에 진화됐다.

1967년 1월 서문시장에 큰 불이 나 점포 253동을 태우고 2시간만에 진화되었다. 사진|경향신문DB
■ 1968년11월 3일
김 모씨가 운영하는 식당 근처에서 불이 나 억대의 피해를 내고 진화됐다. 이 화재로 점포 270여개와 노점 2백여개가 전소됐고 5백여명의 화재민이 발생했다.

1968년 11월 서문시장 안 김씨가 운영하는 식당 근처에서 연탄에서 불이 나 큰 화재가 발생했다. 경향신문DB
■ 1975년11월 20일
서문시장 4지구 2층 북편의 ㄷ상회 부근에서 원인모를 불이 나 4지구 1,2층과 1지구 2층 등이 전소됐다.

1975년 11월 화재가 발생한 대구 서문시장. 경향신문DB
■ 1975년12월 17일
서문시장 3지구 1층의 돗자리점에서 불이 나 1,2층 532개점포를 태우고 3시간만에 진화됐다. 점포에 쌓아둔 상품을 건지기 위해 불길로 달려든 상인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975년 12월 연말대목을 노리던 서문시장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경향신문DB
■ 1988년2월 29일
서문시장 내 플라스틱 가게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아 인접한 점포로 번졌다. 이날 화재는 11개 점포를 태우고 1시간 20분만에 진압됐다.
■ 1996년11월 11일
서문시장 2지구 1층 배전판에서 전기합선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원단창고 4곳으로 불이 번져 3천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낸 뒤 20분만에 진화됐다.
■ 2005년12월 29일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2지구 1층에서 시작해 2, 3층으로 빠르게 번졌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점포 수십여개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2005년 12월 대구 서문시장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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