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띈 구름은
모든것을 '향수(그리움)'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설사 그것이 단두대일지라도.
-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0p 중에서 (저 밀란 쿤데라)
지난 일인데도 여전히 나를 춤추게하는 그 시간이 벌써 얻그제로 언급되는 지금
문득 이 느낌을 남기고싶은 생각에
새하얗게 나를 반길 메모장을 켰다.
마음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차분한 내자신을 의아해하는 나는 또다시 상대적으로 격앙된 손놀림으로 한자한자 새하얀 메모장을 활자로 더럽힌다.
까만 글자로 얼룩덜룩 한가득 채워진 더러운 메모장이 나를 전부 표현해낸 온전한 피조물인가
혹은 마음 한구석의 이유모를 공허함을
그대로 옮긴듯,
비어있지만 온갖 내 감정들로 의미를 가득채운
공백 투성이 메모장이 진짜 나를 담아낸 것인가에 대한 고찰로 몇분을 고민했다.
나 혼자만의 고찰과 사색을 기다려주고
함께 공감해줄 지인은 오직 한명 뿐인 것을 알면서마치 모두에게 내 마음과 이 글을 드러내고도
인정받고싶은듯이. 신중하게.
굉장히 격앙된 상태로 한시간 한시간을 되짚으며
과거로 향해 걸었지만 그러다보니
마치 최초의 설레임조차도 그 열기를 잃은듯
그 기억도 결국 차분함으로 나를 마주한다.
행복과 괴로움, 혹은 비상과 무너짐.
무한히 반복될 궤도임을 알면서도
그 궤도 안에서 머물길 자처하는 맹인이고 싶음을,
궤도 밖으로 벗어나 새로움을 맞이하는 것이
최대의 형벌인마냥 여기게 된지도 꽤 되었다.
짝사랑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괴로울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알고 있지만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않는것.
벗어나는 것이 더 큰 상처가 될거라 장담하며
이사람이 마음껏 날 아프게 하길 택하는 것.
그 괴로움을 즐거이 택하는 것.
이 글의 서두에 적은 책의 말머리는
언제 읽어도 내게 강렬함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래. 그 오렌지빛 석양이 비추는 순간이라면
그게 단두대처럼 잔인하고 괴로운 과거일지라도
마치 아름다웠던 것 마냥 추억하고 그리워할만큼
가치있는 순간으로 탈을 쓰겠지.
이 책을 두번, 세번 읽었음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떠올리면
507페이지 중에서도 가장 앞쪽인 그 10페이지의
저 구절만이 기억되는 것은
그 책의 화자로서의 내게는
석양에 아름다움으로 포장될 상처가 많음을
나는 나도모르게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
오빠와의 시간들은 내게 단두대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고 기도하는 것쯤, 내게 일상이 되었다.
상처로 남지만은 않을거라고,
비록 이루어지지 못한대도 내 기억에 별처럼 촘촘히 메워진 그 비참하고도 행복한 시간들은
분명 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비출것이라고.
오렌지 빛 석양이 없이도 말이다.
내 지인들에게 신나서 떠들어댄 그 18시간은
'남매'라는 단어로 가장 많이 비유되었다.
분명 머리칼마냥 당연히 내 머리에 딸려다닐
저 행복한 추억은, 단지 '남매'라는 친근하고
이성적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느낌은 아닐테지만
내가 느끼던 행복함과 편안함을 표현할 길이 없어 답답하던 내가 어쩔수 없이 택한 그것이란걸 누가 알까.
슬픔을 앞세워 떠나보낸 지난 많은 시간들을
한순간에 밀어내버릴 그 18시간은,
내가 힘이 들어 그를 잊고싶을때
괴로움을 덮어줄 두터운 이불이 될 터였다.
그는 알고 있을까?
잊을 수 있다.
이쯤이면 지울수 있다,며 덮어버린
그 모든 감정들을
그는 고작 자신의 이름 세글자만으로도
한꺼번에 꺼내 펼쳐낼 수 있다는 것을.
덮어낼 때에는 송곳으로 생살을 긁어내듯
괴로웠는데도 당신은 너무도 쉽게 이름 세글자로
되돌릴 수 있음을.
내가 어찌 손대지도 못하도록 다 뛰쳐나올만큼
나는 내 가득히 당신을 사랑함을.
나는 나 자신보다도 너를 생각한단 걸
알아줄 수만 있다면
나는 너 모르게 쏟아부은 그 모든시간의 곱절을
너에게 흔쾌히 내어줄텐데.
그러나 이 바램에는 늘 쌍둥이처럼
빛 뒤에 늘 함께하는 그림자가 날 찾는다.
나에게 그 그림자의 노크는 단 한순간도
두렵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이 그림자를 너무도 크게 느끼는 나를두고
누군가는 내가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나또한 너무도 잘알고 있다.
하지만 어찌 두렵지않을 수가 있을까.
사랑한다며, 너무 원한다며, 이 긴시간이 지남에도 깊어져만 간다며 못내 인정하는 내가,
지금까지의 시간에 곱절을 더해 더 당신에게
내주겠다는 이 의지가,
나를 희생했지만 끝내 너를 얻어냈다는
성공의 모습이 아니라
빨간 구세군 상자에 내 재산을 집어 넣고서
'나로 인해 행복해질지 몰라' 하고 기대할뿐
그 돈이 만들어낼 상대의 행복을 난 볼수 없으며,
내 행동으로서 일궈낸 것이
내 상황에는 전혀변화를 주지않는
그런 류의 모습으로 남게될 지도 모르지 않은가.
내가 아무리 당신에게 나를 모두 주리라 다짐해보았자
나를 보는 당신의 시선은 여전히 같은 모양새일지도 모른다는 무시못할 가능성 말이다.
이 무시못할 그림자는 늘 나를 좀먹어 왔기에
나는 그저 익숙하다는 단어 뒤에 숨어
늘 태연한척 할뿐이다.
이를테면 머리카락 끝이 잦은 손질에 상하다못해
점점 갈라지며 위로 타고 올라와도,
손으로 빗어내릴 때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아
상해가는 끝을 알면서도 이내 잊게되는 것처럼.
그렇게 내 머리칼은 상해있고 나는 그걸 알고있으며 그 상황은 큰마음을 먹고 잘라내지않는 한 변함이 없는 것처럼.
분명 친해졌고 가까워진 것 같다고
스스로도 평할 수 있는 시간이였다.
허나 사랑에 빠진 누군가는 모두 적토마와 다를 것이 없다.
내 자신이 더 사랑에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내가 보고픈것만 볼 수있게 스스로를 도울 뿐이다.
내가 보고픈 앞만 보는것.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는 분명
당신을 바라볼 때에 얼굴만 뚫어져라 보고있는게
아님에도 당신의 거칠한 피부와 드리워진 눈밑은 보고도 보지 못한채
눈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할지도 모른다. 마치 지금의 내가 오빠의 좋은 점만 보려드는 것처럼.
이처럼,
나는 내가 더 그를 사랑할 수 있도록
내게 다정히 대해주고 따스히 말해주고
가슴떨리게하는 작은 스침에만 의미를 두고
그 18시간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침착해지려 몇번이나 애썼지만 그 또한 쉬운일이
아님은, 짝사랑을 겪은 누구나가 이해할 고통이리라.
나는 과연 이 상한 머리칼을
눈물을 머금고 자르게 될까.
그리고 이 기억이 단두대와 같은 모습이 될까.
아니면 내 바람을 이룬 채
온 얼굴에 만개한 웃음기를 행복히 끌어안고
새로 자라난 머리칼을 보게 될까.